소설리스트

학사신공-1352화 (1,109/2,000)
  • 1352화. 천지의 힘

    *

    “됐으니 가 보거라. 한 수사에게 약조했으니 너희 두 종족의 일은 중재해 주겠다.”

    “예, 물러가 보겠습니다.”

    의혹과 놀람이 가득했지만 금열은 감히 명을 어기지 못하고 얌전히 물러났다. 그러나 돌아서는 순간까지 한립이 자신이 아는 그 자가 맞는지 다시 훑었다.

    한립은 그 마음을 잘 안다는 눈빛으로 미소를 띠고 입술을 달싹였다.

    “나와 천붕족이 예전에 어떤 인연이 있든 이번에 도움을 주었으니 은원은 깨끗이 정리된 걸세. 앞으로 나를 찾아올 일은 없을 것이야.”

    금열의 귓가에 전음이 울렸다. 화들짝 놀란 금열이 무어라 말하려는데 한립이 소매 속에서 수결을 맺어 손끝으로 그녀를 가리켰다.

    콰릉!

    소녀의 발밑에서 열댓 줄기의 은색 뇌전이 작은 뇌진을 이루었다. 금열은 주위가 흐릿해진다고 느낀 순간 대청에서 사라져 있었다.

    한립이 뜻밖에도 뇌진술을 펼쳐 그녀를 탑 밖으로 내보낸 것이다.

    “호오, 훌륭한 전송 신통입니다. 수사의 실력이 노부의 예상보다 더 뛰어난 듯싶습니다. 제게는 아주 잘된 일입니다.”

    월륭이 그것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거탑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건물 위에 파동이 일고 금열이 은색 뇌전에 휩싸여 나타났다. 그녀는 주변 풍경을 확인하고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다음 날, 해가 뜰 무렵 푸른색과 검은색 둔광이 거탑을 날아올랐다. 그리고 반나절 후에는 두 빛줄기가 어느 산맥으로 진입해 두 산봉우리 사이의 움푹 파인 땅에 내려섰다.

    “이곳입니까?”

    한립이 주변을 살피고 미간을 좁혔다.

    크고 작은 구덩이를 제외하고는 풀한 포기 자라지 않았고, 튀어나온 부분은 날카로운 무언가로 잘라낸 것처럼 반듯했다.

    유일하게 눈에 띈 것은 중앙에 높게 솟은 청동 기둥일 것이다.

    엄청난 크기의 기둥 표면에는 문양 진법들이 겹겹이 새겨져 있었는데 낡고 녹슬어 아주 오래된 물건 같았다.

    “지금 이런 꼴이 된 것은 이곳에서 두 번이나 천겁을 치렀기 때문입니다. 천기의 힘을 견뎌낼 만한 영지(靈地)가 많지 않아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월륭이 성큼성큼 기둥으로 걸어가며 설명했다.

    “이걸로 천지의 힘을 일으키겠다는 것은 아니겠지요?”

    한립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번에는 청동 기둥을 바라보았다.

    “허허, 그럴 리가요. 제가 금속 속성의 힘을 끌어들이려 특별 제작한 금풍주(金風柱)인데 지난 번 실패로 망가져 더는 사용하기 어렵습니다. 당연히 이번에는 새로운 기물을 이용할 예정이고요.”

    월륭은 웃음을 터트리며 손을 뻗어 백여 개의 푸른 빛덩이를 날려 보냈다.

    빛덩이가 바닥에 떨어져 백여 개의 청둥 기둥으로 솟아났다.

    전부 매끈하고 새 것 다운 면모를 뽐내고 있었다.

    쿠르릉!

    이어 그가 주술을 외자 지면이 흔들리고 눈부신 빛을 내뿜은 기둥들이 거대한 진법을 형성해 월륭과 한립을 에워쌌다.

    “금풍주 108개로 형성한 금강풍마진(金罡風魔陣)입니다. 진법의 힘을 빌리면 끌어들인 천지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을 겁니다. 수사께서는 어제 말씀 드린 대로 해주시면 쉽게 천지 힘을 조종하실 수 있을 테고요.”

    “알겠습니다. 때가 되면 나서겠습니다.”

    한립은 평온히 답하고 흐릿하게 사라져 팔짱을 낀 채 청동기둥 중 하나 위에 나타났다.

    그걸 본 월륭이 소매 속에서 진법 법기와 깃발을 날려 지면 곳곳에 투척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청동 진법 외부에 크기가 제각각인 8개의 현묘한 금제가 펼쳐졌다.

    월륭은 입을 벌려 다섯 가지의 보물을 불러냈다.

    목기 기다란 하얀 옥병, 자금색 호리병박, 푸른 나침반, 은색 세 발 달린 화로와 적홍색의 깃털 부채였다. 보물들은 곧장 날아올라 노인 주위를 맴돌았다.

    “가라.”

    월륭이 푸른 나침반을 가리키자, 펑! 하고 커다랗게 불어난 보물의 표면에 별이 가득 박힌 새까만 하늘이 나타났다.

    그는 두 손을 뒤집어 세 개의 은색 구슬과 검은 천처럼 나풀거리는 실그물을 한립 방향으로 던졌다.

    “어제 약속한 천지의 힘을 감당할 보물들입니다. 제대로만 사용하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조심해서 사용하겠습니다.”

    한립이 고개를 끄덕이자 월륭은 가부좌를 틀고 나침반을 보며 침묵했다.

    * * *

    두 시진이 지났을 때, 푸른 나침반이 만들어낸 밤하늘이 달라졌다. 원래 눈에 띄지 않던 몇 개의 별이 밝게 빛나 기이한 파동을 내뿜기 시작한 것이다.

    “성신의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천지의 힘을 끌어들이겠습니다.”

    월륭이 열기어린 눈빛으로 외쳤다. 그가 한 손으로 지면을 내리쳐 무형의 파동을 일으켰다.

    땅이 크게 울리고 여러 금제들이 공명하며 겹겹이 보호막을 만들거나 짙은 안개를 뿜어냈다.

    108 청동기둥도 미친 듯이 반짝이다 금색 주술문자에서 눈부신 빛을 발산했다. 이에 월륭은 길게 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자금색 호리병박을 가리켰다.

    뒤집어진 호리병박에서 금빛 찬란한 가루가 떨어져 내렸다.

    가루들은 흩날리지 않고 중량이 꽤 나가는 듯 수직으로 곧장 떨어졌다.

    월륭이 한 손으로 수결을 맺고 적홍색 깃털 부채를 향해 손을 뻗자 새빨간 주술문자들이 쏟아져 나와 그의 손에 들렸다.

    화륵!

    월륭이 금가루를 향해 깃털부채를 흔들자 바람을 타고 새빨간 화염이 돌풍을 이루어 금가루를 휩쓸었다.

    금가루가 돌풍을 타고 고공으로 치솟아 종적을 감추자 월륭이 정혈을 뱉어 돌풍에 흡수시켰다.

    새까만 정혈이 스며든 돌풍은 굉음을 내며 검은 화염을 일으켰다.

    촤르륵!

    검은 화염은 바람과 불의 힘을 모두 받아 엄청난 기세로 솟구쳤다.

    새까만 불기둥의 크기가 어찌나 큰지 멀리서 보면 하늘과 땅을 잇는 것만 같았다.

    그 불기둥 위에서 사라졌던 금가루들이 튀어나와 거대한 주술문자로 변했다.

    거대 주술문자들은 넓게 퍼져 거의 하늘을 뒤덮고 복잡한 초대형 진법을 만들었다.

    진법은 금빛을 반짝여 눈에 띄었고 진법에서 강력한 영기의 압력이 뿜어져 나왔다. 이에 호응하듯 주변의 고공에서 하얀 뇌전 덩어리가 뭉쳐지고 있었다.

    처음에 열댓 개였던 뇌전 구슬은 백 개, 천 개, 만 개로 늘어나 하얀 유성우처럼 떨어져 내렸다.

    하얀 유성들은 거대한 영기의 압력에 이끌리듯 전부 금색 진법 속으로 떨어져 굉음을 냈다.

    “준비는 다 되었습니다. 한 수사, 천지의 힘이 내려올 겁니다!”

    월륭은 기다렸다는 듯 외치고 수결을 맺은 손으로 화로를 가리켰다.

    우웅!

    화로가 산만하게 불어나 화려한 빛과 함께 다양한 재료들을 내뿜었다.

    재료의 크기와 모양은 제각각이었지만 전부 정순한 금속 속성 영기를 품고 있었다.

    거대한 화로는 수많은 재료를 뱉어내고는 허공에 떠서 움직임을 멈추었다.

    콰릉!

    또한 고공의 금색 진법은 경천동지할 굉음을 터트리고 금빛을 분출했다. 금빛은 내려올수록 굵어졌고 수천가닥의 수정 실을 품고 있었다.

    이에 월륭이 심각한 표정으로 수결을 맺고 주문을 외웠다.

    웅웅웅웅웅!

    108개의 청동기둥이 진동하며 사라지고, 그 자리에 청동 갑옷을 입은 괴뢰들이 나타나 다양한 병장기를 하늘 높이 쳐들었다.

    쉬쉬쉬쉬쉬쉭!

    날카로운 파공음을 내며 병장기가 빛덩이를 터트리자 광풍 속에 움푹 파인 저지대를 전부 감쌌다. 광풍 속에서 수많은 병장기들이 충돌하는 듯 엄청난 소음이 퍼져나갔다.

    다음 순간 고공에서 떨어지던 금빛이 광풍속으로 진입했다.

    광풍을 빠져나온 금빛은 이전보다 절반으로 줄어 그대로 거대한 화로 안으로 들어갔다.

    댕!

    은색 화로가 부들부들 떨리고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보물의 조정하던 월륭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대신 영기의 보호막이 부르르 떨렸다.

    금빛이 연이어 떨어지고 고공의 금색 진법에서 쩌렁쩌렁 폭음이 들려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폭음의 빈도가 잦아졌고 처음에는 한 줄기씩 떨어지던 금빛이 두 줄기씩 떨어지기 시작하자 월륭의 표정도 굳어갔다.

    거대 화로를 이용해 금빛을 받아내고는 있었지만 금빛이 떨어질 때마다 거대한 물체와 충돌한 것처럼 굉음이 울리고 월륭의 낯빛도 어두워졌다.

    처음부터 힘겹게 버티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청동기둥이 괴뢰로 변했을 때 저공에 떠오른 한립은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콰르릉!

    마른하늘에 천둥소리가 울리고 금색 진법에서 금빛이 세 줄기씩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때 월륭의 안색이 달라졌고 한립은 힐끗 그를 살피다 영기의 압력을 방출했다. 그제야 월륭은 안심하며 미친 듯이 체내의 진원을 끌어올려 거대 화로에 퍼부었다.

    이에 화로는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고 도처에 떨어졌던 재료들이 저절로 날아들어 안으로 들어갔다. 이때 금빛 세 줄기가 광풍을 통과한후 위력이 줄어들어 거대 화로로 떨어져 내렸다.

    멀리서 그것을 지켜보던 한립은 손가락을 튕겼다.

    콰릉! 콰콰쾅!

    굵은 금빛 뇌전이 튀어나가 순간이동을 하듯 날아가더니 정확히 세 줄기로 갈라져 금빛을 공격했다. 뇌전에 휩싸인 금빛은 다시 몸집이 절반으로 줄어 거대 한 화로 속으로 들어갔다.

    쿠쿵!

    화로가 휘청거렸지만 무너지지 않고 금빛을 버텨냈다. 그 후로도 한립은 적절한 시기에 벽사신뢰로 금빛을 약화시켜 더는 위협이 되지 않도록 했다.

    한립의 도움에 안심한 월륭은 열손가락을 쉼 없이 튕겨 법결들을 날렸다. 법결을 머금은 은색 화로 안에서 쨍강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마치 수많은 금속 재료들이 잘게 부서지는 것 같았다. 이어 월륭은 옥병으로 시선을 옮겼다.

    “터져라!”

    하얀 주술문자가 가득한 옥병이 산산조각이나 회백색 화염으로 변했다. 화염은 커다란 불 구렁이로 변해 은색 화로 밑에서 똬리를 틀고 활활 타올랐다.

    화로의 색깔이 빠르게 은색에서 붉은색으로 바뀌며 온도가 치솟아 대부분의 재료들이 녹아내렸다. 특수한 재질의 재료 몇 개만 겨우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에 화로를 주시하던 월륭은 정혈을 한 모금 뱉어 화염을 분출했다. 그러자 화로 아래의 불길이 눈에 띄게 거세져 남아 있던 재료들마저 서서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고공의 금색 진법은 계속 금빛을 떨궈 이제는 네 줄기가 함께 떨어지고 있었다.

    이에 한립이 뇌전을 튕겨 보내기를 멈추고 노란 호리병박을 불러내 그 안에서 작은 모래 알갱이 천여 개를 쏟아냈다.

    “가라.”

    그의 목소리에 모래 알갱이들이 튀어 올라 분분히 사라졌다.

    휘잉!

    다음 순간 화로 위쪽에 노란 모래 바람이 일고 맷돌크기의 반짝이는 돌덩이들이 떠올라 돌로 형성된 진법인 석진(石陣)을 이루었다.

    콰릉!

    마침내 금빛 네 줄기가 석진 한 가운데로 떨어져 돌덩이 십여 개를 쪼갰다. 하지만 금빛도 간신히 석진을 통과하며 빛이 어둑해지고 쇠약해졌다.

    이렇게 한동안 금빛을 받아들이던 화로가 갑자기 날카롭게 울어댔다. 이에 월륭이 안색이 변해 소리쳤다.

    “한 수사, 천지금력(天地金力)을 막아주십시오! 제가 앞에 것을 연화시키고 난 다음에 다시 보내셔도 됩니다.”

    말을 마친 그가 기합을 넣고 연달아 피를 토해내 화로 아래의 화염으로 흡수시켰다.

    화르르륵!

    불길은 기세가 더 왕성해져 거대 솥을 완전히 뒤덮고 금색으로 변해 타올랐다. 고온에 주변 대기가 이글이글 왜곡되었고 솥안의 재료들은 완전히 액체로 변해 금빛으로 반짝였다.

    미간을 찌푸린 한립이 한 손을 들어올렸다.

    석진에서 오색 기운이 흘러나오고 돌덩이들이 무서운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제 금빛들은 더욱 빛을 잃고 쇠약해져 있었다.

    쉬익!

    그러나 한립은 그마저도 놓치지 않고 다른 손에서 검은빛을 쏘아 보냈다. 검은빛은 먹구름이 되어 석진을 통과해 내려온 금빛들로 몰려갔다.

    먹구름 속의 가느다란 실들은 월륭이 미리 내준 새까만 실그물이었다. 무엇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아주 가느다란 실로 엮여 있어 금빛들이 벗어나지 못하고 몸부림쳤다.

    한립이 멀리서 수결을 맺어 먹구름 속으로 막대한 법력을 주입했다. 아래에 있던 월륭은 금빛이 더 이상 내려오지 않자 희색을 드러내며 불길을 더욱 거세게 일으켰다.

    거대한 화로 속에서 백여 개의 수정벽돌들이 서서히 모양을 잡아가고 있었다. 하나같이 손바닥만 한 크기에 금빛을 띠는 벽돌들이었다.

    “됐습니다! 천지금력을 놓아주세요.”

    먹구름 속에 갇힌 금빛이 거의 백 개에 다다를 무렵 월륭이 외쳤다. 한립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손끝으로 허공을 갈랐다.

    푹!

    먹구름에 기다랗게 틈이 벌어져 금빛들이 한 줄기씩 거대한 화로 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 후로 월륭은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금빛의 양을 조절해 줄 것을 요청했고 한립은 자유자재로 먹구름을 조종해 상대가 제련에 전념할 수 있도록 보조했다.

    그러나 속도를 조절해 금빛을 떨구다 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먹구름에 쌓이는 금빛의 수량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