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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350화 (1,107/2,000)

1350화. 월륭

*

“동급 수사를 상대하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빈도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시지요.”

삼전 도인이 고민하다 신중하게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제가 이곳에서 며칠간 기다릴 테니 결정을 내리시면 그때 같이 출발하지요. 수사께서 거절하시면 혈원협(血怨峽)의 구원 수사를 찾아가보겠습니다. 흡수대법(吸髓大法)을 익힌 수사라 동급 수사를 상대하는데 유리한 인물이니까요.”

황원자는 담담하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3일 후에 정확한 답을 드리겠습니다.”

삼전 도인이 흐릿하게 초원 상공에서 사라졌다.

쿠릉!

그 모습에 황원자는 웃음을 흘리며 소매를 휘날려 금빛의 휘황찬란한 궁전을 불러냈다. 그곳에서 꽃처럼 아리따운 궁장 시녀들이 궁전에서 걸어 나와 그를 향해 예를 올리고 ‘주인님’이라 불렀다.

* * *

비령족 인근의 해역.

새까만 거대 선박이 고공을 질주하고 있었다. 뱃머리에는 열댓 마리의 마정괴뢰 병사들이 서서 강대한 기운을 드러냈다.

가끔 모자란 해수(海獸)들이 튀어오를 때마다 그 중 몇 마리가 손을 뻗어 굵직한 빛기둥들을 분출했다.

선박의 행로를 방해하는 해수들은 전부 구멍이 숭숭 뚫려 죽임을 당했다.

거대 선박 최고층 대청 안에서 한립이 은색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화석노조와 주과아가 그 옆에 서서 자리를 지켰다.

한립이 만황세계를 지난 게 한두 번은 아니지만 무애해를 출발한지 벌써 2 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 옆에는 하얀 의복을 입은 냉랭한 표정의 여인이 앉아 있었다. 두 눈에 붉은 기운이 돌고 미간에는 괴이하게도 선홍색 주술문자 하나가 보일 듯 말 듯 자리 잡고 있었다.

“혈혼 수사, 조금만 더 가면 비령족 구역으로 진입할 걸세. 풍원대륙이 상당히 넓어 이곳까지는 처음이겠지?”

한립이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려 백의 여인이게 물었다. 옆에 앉은 여인은 빙백선자의 혈혼 화신이었다.

2년 전 무애해를 떠난 그는 바로 만황세계로 진입하지 않고 우선 허 씨 가문으로 가서 그녀를 데려왔다.

“예, 한 선배님! 비령족을 만나본 적은 없지만 상고진령과 관련된 신통을 부린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비령족은 오래 전 내가 유람했던 곳 중 하나로 가까운 벗이 그곳에서 은거하고 있네. 어차피 여기까지 왔으니 잠깐 들려 인사나 하려고. 그런데 자네가 말한 이대륙 전송진에 관한 정보는 믿을 만한 것이겠지? 여기까지 와서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혁련상맹(赫連商盟)은 영계 3대 대륙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비밀 세력 중 하나입니다. 각치족과 같은 초대형 종족과 비교해도 그리 모자람이 없지요. 대륙 간 전송진을 보유한 그들은 특수한 이유로 일정 기간마다 한 번씩 전송 인원을 놓고 경매를 합니다.

당초 제 본체가 운 좋게 상맹의 귀빈이 되지 않았다면 참가 자격을 얻지 못하는 것은 물론 이 사실 자체를 몰랐겠지요. 올해가 마침 그 경매가 열리는 해로 다음 번 기회를 기다리시려면 적게는 수십 년에서 길게는 2, 3백 년도 걸릴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경매회에 참여하는 각 종족의 강자들이 셀 수 없이 많을 것이고요.”

혈혼이 상세히 설명했다.

“혈련상맹에 대해서는 나도 들어 알고 있네. 예전에 이런 경매회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뇌명대륙에서 돌아올 때 그리 고생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 말이야. 하긴, 당시 내 신분으로는 혁련상맹과 접촉할 자격도 없었지만.”

한립은 가볍게 웃음 지었다.

“그러합니다. 대륙 간 전송진 이용과 관련한 경매회는 혁련상맹도 중시하는 일입니다. 누군가의 소개를 받아서 참석하는 경우가 아니면 각 종족에서 신분이 있거나 합체기 이상의 수행을 지녀야 하지요. 물론 한 선배님과 같은 분이 경매회에 참석하는 것은 그들로서도 영광일 것입니다.”

“자네의 말대로 일이 순조롭게 풀렸으면 좋겠군. 그밖에 해 둘 말이 있네. 이전에 약속한 바가 있어 이번에 자네와 동행하지만 뇌명대륙으로 가면 바로 이동하지 않고 한동안 머물며 찾을 물건이 있네. 양해해 주실 바라네.”

“이미 오랜 세월을 기다려 왔는데 그 정도도 못 참겠습니까? 선배님께서 원하는 대로 하시지요.”

혈혼이 빙긋 웃으며 답했다.

“그렇게 말해주니 마음이 놓이는군. 오래 걸리지 않을 터이니 안심하게.”

고개를 끄덕인 한립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 * *

방대한 크기의 묵령성주가 비령족 영역에 들어섰으니 비령족 강자들이 눈치 채지 않을 리 없었다. 하지만 거대 선박 안의 대승기 수사의 기운을 감지하고는 함부로 나서지 않았다.

닷새가 지나 거대 선박이 비령족 구역 깊숙이 진입해 호수 위를 지나고 있을 때 노쇠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느 일족의 수사 분이 비령족까지 찾아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월륭이 수사를 뵙고자 합니다.”

전방에 먹구름이 일고 머리가 9개 달린 거산 크기의 괴조가 나타났다. 괴조의 머리는 죄다 흉악하게 생겼는데 오색찬란한 깃털이 달린 몸체는 또 굉장히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구두(九頭) 괴조에게서 느껴지는 무시무시한 영기의 압력은 묵령성주 내부의 대승기 기운에 못지않았다.

“월륭 수사, 저는 인족의 한립이라 합니다. 귀 종족에 온 것은 지인을 만나고자 함입니다. 나쁜 뜻은 없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검은 선박 갑판에 푸른 장포를 입은 한립이 나타나 방대한 괴조를 향해 말했다.

“한립? 마계에서 명충모를 죽였다는 그 인족 수사십니까?”

구두 괴조가 깜짝 놀라 다급히 물었다.

“인족에 또 다른 ‘한립’ 수사가 없다면 제가 맞을 듯합니다. 수사는 어디서 제 보잘 것 없는 이름을 들었는지 모르겠군요.”

한립이 눈을 빛내며 평온하게 반문했다.

“허허허, 정말 명성이 자자한 한 수사셨습니다. 이거 본 족의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누추하지만 제 동부로 가서 이야기 나누시지요. 명충모를 상대하기 위해 마계로 지원 나갔던 벗이 있어 수사께서 다른 수사들을 구출하고 명충모를 참살한 내용을 들었습니다.”

구두 괴조는 굉장히 기뻐하며 검은 바람 속에서 구척장신의 못생긴 노인으로 변했다. 알록달록한 깃털 옷을 걸치고 평범해 보이는 누런 나무 지팡이를 쥔 노인이 한립을 마주보았다.

“그러셨군요. 수사의 벗께서는 어느 일족 분인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장신족(長身族)의 원비 수사입니다. 들어보셨습니까?”

한립의 물음에 월륭이 고민 없이 답했다.

“장신족, 원비 수사라……. 기억납니다. 시인의 땅에 갇혀 있던 수사들 중 한 명이셨지요.”

“허허, 장신족은 비령족과는 이웃이라 할 만 합니다. 오랜 세월 교류하다 보니 자연스레 친분이 깊어졌는데, 원비 그 친구는 마계에서 갇혀 있는 동안 원기를 상해 폐관수련에 들어갔답니다. 안 그랬으면 자신의 동부로 한 수사를 모시려고 안달했을 겁니다.”

“월 수사의 환대를 어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잠시 폐를 끼치겠습니다.”

상대의 친절한 태도에 갑판 위의 한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잘 되었습니다. 저를 따라 가시지요.”

월륭은 곧장 허공을 박차고 돌풍이 되어 어딘가로 날아갔다.

“금방 돌아올 것이니, 너희는 여기서 기다리거라.”

한립은 고개를 돌려 화석 노조와 혈혼, 주과아에게 분부를 내리고 푸른 빛줄기로 변해 날아갔다.

그들은 순식간에 수백 만 리를 지나 울창한 산맥으로 둘러싸인 분지 상공에 도착했다. 분지 한 가운데에는 백여 층에 달하는 거대 석탑이 우뚝 솟아있었다.

분지 주변으로 높고 낮은 다양한 건물들이 세워져 있었지만 거탑 가까이로는 아무도 다가가지 않았다.

하늘에 우둑해지고 월륭이 날아들자 분지 속 비령인들이 놀라 즉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한 수사, 이곳이 제 7대 동부 중 한 곳입니다. 비교적 특수한 형태로 지어진 건물이지요. 안으로 드시죠.”

월륭은 뒤따라온 한립을 청하며 거탑을 가리켰다.

일다경 후, 한립은 무척 화려하게 꾸며진 대청 안의 황금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맞은편 의자에는 월륭이 비취색 술잔을 들고 살갑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 형, 이 호원주(瑚元酒)는 49가지 영초를 숙성해 빚은 술입니다. 법력을 회복하게 돕고 정신을 맑게 해주는 효과를 지닌 명주이지요.”

“이런 좋은 술을 맛보고 제가 먹을 복은 있나 봅니다.”

한립도 술잔을 들어 한 모금 하고 칭찬했다.

“마음에 드신다면 몇 잔 더 드시지요.”

“사양치 않겠습니다.”

한립이 술병을 향해 손짓을 하자 술병이 날아와 스스로 빈잔을 채웠다.

쪼르륵!

“허허, 좋아해 주시니 다행입니다. 제게 바깥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보물이 몇 가지 있는데 구경이나 하시지요.”

월륭은 짝! 소리가 나게 박수를 쳤다. 그러자 문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비령족 시녀들이 고개를 숙이고 들어와 한립 앞에 섰다.

이에 한립은 시녀들이 들고 있는 은색 쟁반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쟁반에는 각기 다른 색깔의 수정 벽돌이 놓여 있었다.

매끈한 표면의 벽돌은 짙은 노랑색, 옅은 남색 그리고 불타오르는 듯한 붉은 색을 띠고 있었다.

“이건…….”

한립은 의식으로 수정벽돌을 훑고 관심을 보였다. 흙, 물, 불 세 가지 속성을 지닌 세 수정 벽돌은 극품영석보다 훨씬 정순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한 형이 보시기에 이 극원정(極元晶)들이 어떠십니까? 제가 직접 제련해낸 재료인데 법기를 제련하기에도 좋고 영석을 대신하기에도 좋아 쓸모가 많습니다.”

줄곧 한립의 표정을 주시하던 월륭이 그의 놀란 표정을 읽고 흡족하게 물었다.

“극원정! 현천의 물건이 아니라 수사께서 직접 제련한 재료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일종의 비술을 이용한 것으로 무수히 많은 실패를 거쳐 얻어낸 결과물입니다. 수많은 진귀한 재료가 들어갔지만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비술이요?”

“허허, 일단 찬찬히 살펴보시고 제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월륭의 의미심장한 눈짓에 한립이 남색 수정 벽돌을 끌어와 살폈다. 그의 미간에서 수정실이 빠져나와 수정벽돌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월륭은 미소를 지을 뿐 그의 행동을 막지 않았다. 잠시 후 눈썹을 끌어올린 한립이 수정 실을 거둬들였다.

“극도로 정순한 천지 힘입니다. 극품영석의 네다섯 배는 되는 영기를 머금고 있군요. 자연적으로 문양을 품고 있어 법기를 제련하면 특수한 신통을 발휘할 수도 있겠습니다. 강도는 어떠합니까?”

“안목이 훌륭하십니다. 극원정의 특성을 거의 다 말씀하셨어요. 강도가 어떤지는 직접 실험해 보셔도 괜찮습니다.”

그의 칭찬에 월륭이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직접 확인해 보겠습니다.”

한립의 입에서 푸른 실이 빠져나와 빠르게 수정 벽돌을 휘감고 들어갔다. 그런데 곧장 수정벽돌에서 남색 빛이 뿜어져 나와 흐릿하게 남은 칼자국을 지웠다.

“중원소령(重元塑靈)! 소령(塑靈) 신통을 지니고 있단 말입니까?”

놀란 한립이 소리를 높였다.

“명성이 자자한 분답게 한 눈에 알아보십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나머지 극원정들도 모두 소령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완전히 파괴되지 않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스스로 원래 모양을 복원하지요.

다른 본명보물들도 스스로 복구하는 경우가 있지만 반드시 주인이 쉼 없이 진원으로 배양해야 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습니까. 얼마나 가치가 있는 재료인지 더 말씀드리지 않아도 아시겠지요?”

“중원소령의 신통을 지닌 재료라면 영계가 아니라 어떤 계면에 가더라도 귀한 대접을 받을 겁니다. 게다가 제 검빛에 당하고도 거의 흔적이 남지 않았으니 기본적으로 강도가 상당하고요. 수사께서 제게 극원정을 보여주신 것은 그저 구경을 시켜주시려는 의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돌려 말하는 법 없이 아주 성격이 시원시원하십니다. 제가 한 형을 모신 것은 부탁할 일이 있어서입니다. 일이 성사되면 이 극원정 세 개를 보수로 드리겠습니다.”

“귀한 물건을 세 개나 주신다고 하실 때는 바라는 바도 간단하지 않겠지요. 무슨 일인지 먼저 듣고 결정을 내리지요.”

한립은 수정벽돌을 쳐다보며 담담히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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