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5화. 공어 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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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 거대 매를 타고 석성으로 돌아가고 있던 수라주 족모는 걱정스레 소녀를 보고 있었다.
“공어족들을 외부에 두어도 괜찮을지 모르겠구나. 이제 외지인들도 그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는데 말이다. 공어족 성물을 취한 것을 보고 무언가를 알아챈 것은 아니겠지?”
“모친 대인께서 벌써 족인을 보내 감시를 하고 있지 않으십니까. 공어족들은 알아서 살게 두시지요. 그들의 정핵으로 공간의 힘을 추출할 수는 있지만 워낙 세가 기울어 성년도 겨우 연허기 경지에 불과합니다.
앞으로는 더더욱 공간법칙의 힘을 추출하기 어려울 것이에요. 우리 일족이 공어족에 관심을 둔 것은 공간의 힘 때문이었는데 오랜 세월 연구를 해본 결과 소용이 없었습니다. 제가 공간법칙을 깨닫게 된 것도 다른 경로를 통해서고요.”
“다른 경로?”
“예, 게다가 공어족 성물까지 얻었으니 이전에 모아 놓은 공어족 정핵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외지인들과 불필요한 충돌을 일으키기보다 한시바삐 돌아가 노인의 원영을 연화해 시공법칙에 대한 이해를 더 높은 경지로 끌어올리는 것이 시급합니다.
출관하면 시공법칙의 종자를 모친 대인께 드리지요. 그렇게 되면 저희 모녀가 최상급의 법칙의 힘을 다루게 될 게 아닙니까. 앞으로 우리 일족의 앞날에 걸림돌이란 없을 겁니다.”
놀란 수라주 족모를 보고 소녀가 빙긋 웃음 지었다.
“그래, 네가 현재 시공의 힘으로 대승기 적을 상대하는 것을 보면 대승기에 이르면 진령급 존재에 맞먹는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게야. 진룡이나 천봉과 같은 존재를 제외하면 절대 네 적수가 될 수 없을 게다.”
수라주 족모가 뿌듯해하며 말했다.
* * *
푹!
용암호가 있는 지하 동굴 위쪽에서 노란빛에 감싸인 한립이 빠져나와 인상을 찡그렸다.
용암호 주변으로 늑대를 닮은 괴수의 시체들이 쓰러져 있었다. 날카로운 칼에 베인 것처럼 성한 곳이 없었다.
“금동.”
한립의 부름에 손바닥 크기의 자금색 소인이 반짝 나타나 예를 올렸다. 그는 어린아이처럼 뭔가를 옹알거렸고 한립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내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나타났다고? 수라주 쪽에서 보낸 자들인가 보구나. 너를 남겨 두어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를 뻔했다. 금동, 너는 돌아가도 좋다.”
한립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의 소매 속으로 들어간 자금색 소인은 서금충왕이었다.
한립은 자신이 붙여준 ‘금동’이란 이름이 썩 마음에 들었다.
펑!
그는 불덩이를 날려 용암호 주변의 괴수 시체들을 정리하고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옥함을 꺼내 부적을 뜯어내자 남색 구슬이 강렬한 공간파동을 일으켰다.
한담에서 남색 돌덩이와 수정 구슬을 발견했을 때 강렬한 법칙의 힘 외에 익숙한 기운이 섞여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자세히 생각해 보니 이전에 보았던 공어족의 기운이었다.
아주 희미해서 그도 겨우 알아차렸지만 수라주들이 보물로 여기는 물건이 분명 공어족들과 연관이 있을 거라는 결론에 이르렀고, 이에 바로 공어족들이 사는 건화지에 온 것이다.
웅웅!
남색 구슬은 요란하게 빛나며 기운이 더욱 거세졌고 동굴은 극심하게 흔들렸다. 돌덩이가 부서져 떨어져 내렸지만 대승기 수사인 한립에게는 언급할 가치도 없는 일이었다.
푸확!
용암호가 갑자기 둘로 갈라지고 몇 개의 인영들이 빠져나왔다.
그들은 낯선 얼굴의 한립을 둘러싸고 의심스런 눈길을 보내는 있었는데 며칠 전 보았던 장한의 모습을 한 공어족인도 있었다.
그는 한립이 든 옥함을 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격동을 느꼈다.
“선배님은 누구십니까? 저희 일족을 노리고 이런 막대한 신통을 쓰신 것입니까?”
장한 모양의 괴어가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는 공어족에서 가장 수행이 높은 이로 연허 초기의 경지에 있었는데 경지를 파악할 수 없는 강자를 앞에 두고 마음이 불안한 것은 당연했다.
“너희 일족의 책임자를 만나야겠다. 길을 안내하거라.”
한립은 손을 저어 옥함을 치우고 담담히 명했다.
“족장님을 뵙고자 하신다면 제가 바로 안내하겠습니다.”
그 말에 장한의 표정이 달라지며 미소를 머금었다. 어차피 거부할 수 없을 바에는 얌전히 따르는 것이 상책이었다.
장한은 양쪽의 남녀 족인에게 눈짓을 하고 전음으로 몇 마디를 한 뒤 공손히 길을 텄다.
두 공어족인과 장한이 먼저 용암호로 뛰어들었다. 한립은 그것을 보면서도 말리지 않고 천천히 내려와 용암호에 이르렀다.
쏴아아아.
그의 앞쪽으로 용암이 물러나며 널찍한 통로를 만들었다.
“피화술(避火術).”
장한은 그걸 보고 기겁했다. 불길을 피한다는 피화술 자체는 아무나 익히는 술법이었지만 그걸 용암호에서 이 정도로 일으킨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장한은 놀란 표정을 지우고 다른 족인들과 그 뒤를 따라갔다.
용암호는 그리 넓지 않은 대신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깊어서 한립의 속도로도 한참을 내려가서야 쪽빛의 빛의 장막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삐이이익!
신형을 번득인 그가 빛의 장막을 통과해 작은 공간에 들어가자 사방에서 날카로운 호각성이 울렸다.
순찰을 돌던 십여 명의 공어족인들이 몰려들었다.
한립이 눈살 찌푸리며 본때를 보여줘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뒤쪽에 파동이 일고 장한이 따라 들어와 서둘러 외쳤다.
“모두 물러나거라! 이분은 족장 대인을 만나러 오신 귀빈이시다!”
“예? 족장 대인을요? 그래도 될지…….”
순찰병들이 장한의 말에 바로 따르지 못하고 망설였다.
“족장 대인께서 귀빈을 천역청(天域廳)으로 모시라는 명을 내리셨다. 모두 무례를 삼가라!”
그 순간 다른 방향에서 붉은 빛이 날아들어 여성 공어족인이 영패를 들어보였다.
“족장 대인의 명이라면 당연히 따라야지요.”
공어족 병사들이 크게 돌며 분분히 물러섰다. 이에 한립이 미소를 머금고 공간을 둘러보니 백여 개의 삼각형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것이 보였다.
건물에 새겨진 구불구불한 문자들은 아주 예스러우면서도 현묘한 느낌을 주었다.
건물 내부에 얼마나 들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바깥 활동을 하는 자들은 2백여 명밖에 되지 않았고 노인과 아이 그리고 여인들이 대부분이라 장한들은 열 명 중에 한둘도 되지 않았다.
건물 안의 공어족인들을 다 포함해도 5, 6백 명이 될까 말까 하니 그다지 융성한 종족이라 할 수는 없었다.
“선배님, 이쪽으로 가시지요.”
장한이 한립이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것을 보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앞장서거라.”
“예!”
장한이 빠르게 날아갔고 한립은 느긋하게 두 걸음을 떼었을 뿐인데 그와 같이 어느 건물 앞에 도착해 있었다.
“선배님, 족장님께서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장한이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자 한립은 고개를 끄덕이고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대문을 지나 간단한 탁자와 의자가 놓인 대청에 들어가자 회백발을 한 앙상한 노인이 다른 공어족들과 마찬가지로 상반신은 인간, 하반신은 어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겨우 합체 초기에 이른 자였다.
“자네가 공어족 족장인가?”
“후배는 류삭이라 합니다. 미흡하지만 공어 일족의 족장을 맡고 있습니다. 어디서 오신 대승기 고인이십니까?”
노인은 그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답했다. 류삭의 눈이 언뜻 흥분으로 반짝였다.
“안목은 나쁘지 않구나. 난 다른 계면에서 왔다.”
“너무 잘 되었습니다. 본 족이 드디어 선배님과 같은 이계의 강자를 만나게 되는군요! 제발 저희 일족을 구해주시어 수라주 일족의 마수에서 벗어나게 해주십시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자손 대대로 선배님을 주인으로 삼을 것입니다!”
노인은 갑자기 털썩 꿇고 앉자 한립에게 절을 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나를 주인으로 삼겠다고? 오늘 처음 본데다 정체도 모르는 나를? 내가 심성이 포악해 너희 일족을 괴롭히면 어쩌려고 그러지?”
겉으로는 냉랭했지만 한립은 어이가 없기도 하고 조금 웃음이 나기도 했다.
“며칠 전 수라주 염탐꾼들을 처리해주신 분이 선배님이시지요?”
노인은 일어나지 않고 엎드린 채 물었다.
“내가 직접 나선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
“그렇다면 저희 일족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아실 겁니다.”
“알고 있다. 허나 수백 수천 개의 계면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이지. 더욱이 내가 무엇 때문에 너희를 구하기 위해 동급 수사와 척을 진단 말이더냐.”
한립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선배님께서 수라주 염탐꾼들을 처리해 주시고 친히 이곳까지 오신 것은 분명 저희 일족에게 용건이 있어서 일겁니다. 저희를 거둬만 주시면 무슨 일이든 어르신을 만족시켜 드리겠습니다! 저희 공어족은 공간의 힘을 조종하는데 어느 정도 깨우침이 있어 동부 관리나 소형 공간을 만들어내는 등 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노인이 진심을 담아 간청했다.
“하하, 너희를 거둬야 하는 이유가 그리도 많더냐. 네가 총명한 것은 알겠구나. 내 용건이 있어 찾아온 것은 사실이니 일단 날 주인으로 모시는 것은 나중에 이야기하고 이걸 보거라.”
한립은 남색 구슬을 꺼내 들었다. 구슬은 신기하게도 웅웅거리며 노인에게 반응을 보였다.
“산해주(山海珠)! 과연 성물을 손에 넣으셨군요!”
예상과 달리 노인은 한립이 수정을 갖고 있는 것에 안도하며 큰 짐을 내려놓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산해주가 너희 일족의 성물이라고? 내가 이걸 지니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구나!”
“저도 방금 알았습니다. 이것을 봐주시겠습니까?”
노인이 소매를 걷어 올려 팔목의 괴이한 표식을 보였다. 그 표식은 수정 구슬과 똑같았고 은은하게 남색빛을 머금고 있었다.
“이 성흔(聖痕)은 공어족 역대 장로들이 대대로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신분을 증명하는 것 외에 본족의 성물과 감응할 수 있지요. 지금 제 수행으로는 산해주가 백 리 범위로 들어와야 정확한 위치를 찾을 수 있지요. 이것이 제가 선배님을 뵙고 주인으로 모시고 싶다 청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하늘의 뜻이 있다면 어찌 본족의 보물을 아무 손에나 들어가게 놔두었겠습니까.”
노인은 아주 진지했다.
“재미있구나, 일어나서 계속 이야기해 보거라. 나도 우연히 얻은 물건인데, 이게 성물이라면 법칙의 힘을 함유한 것 외에 다른 용도가 있느냐?”
“물론 산해주는 또 다른 놀라운 쓰임새가 있습니다. 공간법칙을 지닌 것 외에 그자체로 희귀한 동천(洞天)의 보물입니다! 저희 종족이 쇠락할 즈음 본족의 실력자가 특수한 비술로 봉인을 해두어 저도 이야기로만 전해 들었습니다.”
노인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공손히 답했다.
“동천보물? 공간보물이 아니란 말이냐. 이게 한담에 봉인되어 있던 것을 알고 있었더냐?”
“선조께서 그리 결정하신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산해주를 후대에 남겨두면 오히려 화를 부를 꺼라 염려하셨습니다. 이런 귀한 보물은 쉽게 재앙을 불러들이지 않습니까! 일족이 번성하여 세력을 되찾으면 성물을 되찾아오라는 말씀을 남기셨지만 부끄럽게도 오늘날까지 방치해 두고 말았습니다. 저희 일족은 나날이 그 수가 줄어 거의 혈맥을 유지할 수 없는 수준에 이렀으니까요.”
“선조가 현명한 결정을 내렸구나. 산해주를 지니고 있었다면 수라주 일족이 진작 빼앗아 갔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수라주 족모가 한담에서 또 다른 공간법칙을 함유한 돌덩이를 가져가는 것을 보았다. 그건 무엇이지?”
“아마, 저희 일족의 또 다른 성물인 누령석(鏤靈石)일 것입니다. 대승기 수사가 공간의 힘을 익히게 돕는 것 말고는 다른 용도는 없는 물건이지요.”
“그렇군.”
한립은 남색 수정 구슬을 살피다 생각에 잠겼다.
“선배님! 저희 일족을 받아주시면 본족의 정혈로 산해주에 남은 선조의 흔적을 지우도록 돕겠습니다. 오래전 초대 족장께서 연화를 해두시어 평범한 제련법으로는 보물의 주인으로 인정받기 어려우시거든요.
제가 전문적으로 산해주를 제련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물론 전제는 선배님께서 대승기 이상이어야만 구슬의 힘에 반서를 당하지 않으실 테지만 말입니다. 아, 또 수라주 일족은 모종의 이유로 쉽게 이 계면을 떠날 수 없으니 그들과 척을 질 것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노인은 한립이 고민하는 것을 보고 구구절절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이 동천의 보물에 흥미가 생기기는 하지만 너희를 거두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특수한 방법으로 이곳에 진입했기에 나갈 때도 홀로 계면을 뛰어넘어 돌아가야 한다. 너희 전부를 영수환에 담아갈 수도 없는 것 아니더냐. 뭐, 수라주 쪽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으니 상관없고.”
한립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걱정이라면 진작 말씀을 하시지요. 아주 쉽게 해결할 방법이 있습니다. 어르신께서 동천의 보물을 연화만 하시면 저희 전부를 그곳에 담아 계면을 나가실 수 있습니다!”
“산해주 내부 동천에 너희 족인을 전부 담을 수 있다는 말이더냐? 연화를 시키는 데는 얼마나 걸리지? 이 계면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며칠 남지 않았다.”
“산해주는 이름 그대로 산과 바다를 담을 만한 동천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면적이 넓기로 최상급 동천 보물 중에서도 손에 꼽히지요. 연화를 시키는 시간은……. 저희 종족 전체가 도우면 선배님의 신통에 2, 3일 내로도 가능할 것입니다.”
“내부 공간이 그리 넓다니 뜻밖의 정보로구나. 2, 3일이라면 기다려 줄 수 있겠다. 좋다, 그렇게 하는 것으로 하고. 너희가 동천 보물을 연화해 준다면 내가 살아 있는 한 너희 공어족 일족을 비호해 주겠다.”
한립은 잠시 고민하다 큰 문제가 없다 여기고 웃음을 머금었다. 그의 수행에 몇 안 되는 이종족 하나를 보호하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큰 은혜에 어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바로 전 족을 동원해 준비할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노인은 기쁨에 다시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한립이 그들에게 무언가 이득을 준다고 약속하지는 않았지만 수라주 일족의 학대 속에 대가 끊길 걱정을 하며 살아온 것에 비하면 훨씬 나은 삶이 될 것이다.
“알았으니 일 보거라. 난 여기서 산해주를 연구해 보고 있겠다.”
“예, 물러가 보겠습니다!”
한립이 손을 내젓자 노인이 몸을 일으켜 대청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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