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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344화 (1,101/2,000)

1344화. 두 번째 보물

*

“여러분의 도움으로 본 족이 필요한 보물을 얻게 되었습니다.”

핏빛 안개를 걷고 나타난 소녀가 남색 돌덩이를 한 손에 들고 즐겁게 이야기했다.

“원하시던 물건은 구해 드렸으니, 이제 우리가 나머지 정핵을 받아야겠지요?”

한립이 상대가 든 돌덩이를 살피며 한마디 했다.

“물론이지요. 수사 분들이 약조를 지키셨는데 제가 어길 수 있나요.”

소녀가 빙긋 웃으며 돌덩이를 회수하고 또 다른 하얀 옥함을 불러내 한립에게 던져주었다. 혈연, 흑린, 막간리의 시선이 옥함으로 집중되었다.

한립은 소매를 펄럭여 옥함을 끌어와 뚜껑을 열었다.

“맞습니다. 나눠가지면 되겠습니다.”

빠르게 정핵의 진위를 확인한 그는 가볍게 옥함을 두드려 정핵 네 개를 세 사람에게 분배했다. 남색 돌덩이에 욕심이 생기긴 했어도 가장 중요한 것은 수라주 정핵이었다.

다들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자신 몫의 정핵을 받아들었다.

“대가도 지불했고 본 족도 여러분과의 거래에 크게 만족했습니다. 허나 이곳 계면이 좁아 이렇게 많은 대승기 수사들을 모시기 어려운데 언제쯤 떠날 요량이십니까?”

수라주 족모는 예의상 한마디를 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하하, 며칠 내로 알아서 떠날 테니 염려 않으셔도 됩니다. 소수라계에서 생산되는 재료들이 우리 영계와는 크게 달라 조금 챙겨가려 하는데 그것까지 막지는 않으시겠지요?”

한립이 가볍게 웃으며 평온히 물었다.

“제가 그런 것에 관여해 뭐하겠습니까. 다만 이곳에는 저희 말고도 수사들이 경계할 만한 존재가 두셋 더 있으니 안전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미부인이 처음으로 미소를 보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오, 그중 하나가 혹시 차읍자 아닙니까?”

막간리가 바로 뭔가를 떠올렸다.

“흉수의 존재를 아시는 것을 보니 벌써 만나셨나 봅니다.”

“흉명이 자자한 상고 흉수답더군요. 노부도 하마터면 큰일을 당할 뻔했습니다!”

노인이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런 흉수가 산다고요? 나 수사, 그 흉수의 소굴이 어딘지 알고 계십니까?”

혈연이 미부인과 막간리의 대화에 곧장 반응을 보였다.

“차읍자의 소굴이라면 알기는 알지만…….”

“우리 형제가 공으로 정보를 얻으려 하겠습니까. 정보만 확실하면 사례를 할 것입니다.”

수라주 족모가 고의로 말끝을 흐리는 것을 보고 혈연이 적당한 크기의 가죽 보따리를 꺼내 던져주었다.

미부인은 가죽 주머니 안을 의식으로 살피고 의외라는 듯 혈연을 보았다.

“지도를 드리지요. 차읍자가 머무는 곳이 표시되어 있으니 찾아가시면 될 겁니다.”

그녀는 소매 속에서 하얀 옥간을 던져주었고 혈연은 곧장 의식을 불어넣어 내용을 확인했다. 옆에서 흑린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핏빛 치마 소녀가 한립을 향해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수사들은 바깥 계면에서 이름깨나 날리시는 인물들이실 겁니다. 가진바 진귀한 보물이 많으실 텐데 저희 일족이 오랜 세월 모아둔 자원과 교환하심이 어떨지요? 그런 다음에 다른 보물들을 직접 찾아보시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겁니다.”

“앵화 수사의 말씀은 교역회를 갖자는 것입니까?”

“예, 솔직히 말씀드려서 이곳 계면의 진귀한 물건이라면 본 족이 약간씩은 모아두고 있습니다. 적절한 가격을 치르시면 분명 만족할만한 거래를 할 수 있으실 겁니다.”

소녀의 말에 수라주 족모도 묵인했다. 막간리 등에게는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소수라계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필요한 재료를 충분히 확보하기에 빠듯했다.

“좋습니다. 노부도 쓸 만한 물건이 있으니 귀 족과 거래하겠습니다.”

막간리가 잠시 고민하다 가장 먼저 대답했다.

“우리 형제가 지닌 보물들도 구경할 만하실 겁니다.”

“모두 교역회에 참가하신다는 데 제가 빠질 수 없지요.”

연이어 한립이 덤덤히 말했다.

“그럼, 주변의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실까요?”

소녀가 요염하게 눈웃음치며 물었고 나머지 수사들도 동의했다. 한립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담이 있는 방향을 슬쩍 쳐다보았지만 아주 은밀한 행동에 아무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 * *

몇 시진 후 한담이 있는 섬에서 가까운 또 다른 섬 상공.

수라주 일족은 검은 매를 타고 흡족한 얼굴로 떠나갔고 한립과 네 명의 이계 수사들만이 남아 있었다. 거래를 통해 다들 소수라계 특유의 자원을 얻어 기분이 좋아보였다.

“한 형, 정말 저들을 그냥 보낼 것입니까? 지금이라도 마음이 바뀌었다면 말해 주시지요.”

떠나가는 수라주 족인들을 보며 혈연이 아쉽다는 듯 말을 꺼냈다.

“마음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저들이 그리 호락호락했다면 거래는 어찌했겠습니까. 그냥 몰살시키고 빼앗아 오면 될 것을요.”

한립은 단호히 말했다.

“수라주 일족의 가산이 저렇게 풍부할 줄은 몰랐습니다. 우리 앞에 내놓은 물건은 일부일 게 아닙니까. 게다가 수사께서는 공간석(空間石)에 마음이 흔들리지도 않는단 말입니까? 저렇게 강력한 공간법칙의 힘을 함유한 물건은 제 평생 처음 봅니다. 그냥 곁에 두고 시간이 흘러도 언젠가 공간법칙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단 말입니다.”

흑린이 불만스런 말투로 설득했다고, 듣고 있던 막간리도 표정이 미세하게 달라졌다.

“하하하, 안타깝게도 저는 공간의 힘에 그다지 흥미가 없어서요. 저는 공간석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지는 않을 생각이니 원하시면 두 분이 수라족을 찾아가 상의해보시지요.”

“농도 잘하십니다! 저리 애지중지하는 보물을 어찌 우리와 거래하겠습니다. 우리 형제의 가산을 다 털어도 안 될 겁니다. 하아, 한 형이 나서지 않겠다니 제가 한 말은 못 들은 것으로 해주세요. 우리는 다른 볼일이 있어 여기서 수사들과 헤어져야겠습니다.”

혈연과 흑린은 한립과 막간리에게 포권을 했다.

“평안한 여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한립은 웃으며 예를 취했고 막간리도 몇 마디 당부했다. 그들이 둔광을 일으켜 떠나고 섬 위에는 막간리와 한립만 남았다.

“한 수사는 이제 무엇을 할 계획입니까?”

“하하, 이곳을 떠날 날이 며칠 남지 않았으니 눈을 크게 뜨고 찾아봐야겠지요.”

“노부는 정핵 3개를 찾은 것으로 만족합니다. 괜히 돌아다니지 않고 조용한 곳을 찾아 떠날 때까지 휴식을 취할 예정이에요. 한 수사의 실력이 뛰어난 것은 알지만 혹시나 수라주 일족들이 되돌아와 허튼 짓을 할 수 있으니 항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이런저런 일로 원기를 상한 막간리는 확실히 휴식이 필요해 보였다.

“옳은 결정이십니다. 다만 수라주들은 저 혼자 그들을 격살하지는 못해도 그들이 제게 무슨 짓을 벌일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한립이 미소 지으며 자신 있게 말했다.

“항상 신중하게 움직이는 성격이니 노부도 마음이 놓입니다. 이만 가볼 테니 며칠 후에 영계에서 다시 만나지요.”

막간리가 마주 웃으며 인사를 했다. 이에 한립은 막간리가 작은 배에 올라 날아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한동안 허공에 떠있던 그가 모두가 떠난 것을 확인하고는 한담이 있는 거대 섬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어디 이제 가볼까?’

그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거대 섬으로 쏘아져 나갔다.

* * *

한식경 만에 원래 있던 골짜기로 돌아온 한립은 한담의 한기가 이전만 못한 것을 발견했다.

그래도 진법이 철거된 한담 주변은 꽁꽁 얼어있었고 한담 입구도 얼음으로 봉인된 상태였다

얼음 지대로 변한 골짜기를 살피던 그가 입안에서 은색 화염을 분출했다.

화르륵!

화염은 빙글 돌아 은색 불새로 변했다.

한립이 수결을 맺고 법결을 날리자 은색 불새가 맑게 울며 날개를 펼치고 급속도로 커졌다.

작은 언덕 크기로 변한 은색 불새는 조금 피곤해 보였다.

상고 등잔이 소환한 자색 공작과 싸우느라 기운이 빠진 듯했다.

“흠…….”

한립이 턱을 쓸어내리며 입에서 푸른 정기를 뿜어 거대 불새에게 불어넣어 주었다.

은색 불새는 날개를 펄럭이며 언제 그랬냐는 듯 생기 있게 변했다. 골짜기 전체가 은색 불빛으로 반짝였다.

“흡수해라.”

한립은 수결을 맺고 명을 내렸다. 그러자 거대 서령불새가 고개를 숙이고 한담의 현빙을 향해 은색 불길을 꿀렁꿀렁 내뱉었다.

현빙이 굉장한 속도로 녹고 은색 빛 알갱이로 변해 빠르게 화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얼음이 걷힌 한담은 원래의 연못으로 돌아갔다. 그 위로 은색 불길이 퍼져나갔다.

부글부글.

엄청난 한기가 피어올라 은빛으로 변하더니 놀랍게도 은색 화염에 녹아들었다.

서령진화는 본래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룬 변이 진화로 한립의 오랜 연화를 거처 세상천지 유일무이한 특별한 화염으로 거듭났다.

극도의 음기도, 극도의 양기도 품고 융화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것이다. 수라주 일족을 도우러 한담에 이르렀을 때 체내의 서령진화가 요동쳤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한기를 삼키고 싶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이에 한립은 놀라면서도 무척 기뻤다. 오랜 세월 서령진화가 이렇게 격하게 반응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를 통해 한립은 수라주 일족이 속수무책이던 기이한 한기를 자신은 서령진화를 통해 간단히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생겼다.

물론 서령진화가 한기를 집어삼키는 모습을 다른 수사들에게 노출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수라주 일족이 진법과 보물의 힘을 빌려 보물을 건져가게 두었다.

골짜기에 이른 한립은 조용히 서령불새를 지켜보았다. 한담의 한기가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그가 서령불새를 가리켰다.

찰랑!

불새의 크기가 작아져 거침없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은색 화염과 불새가 자취를 감추자 연못 깊은 곳에서 은은하게 진동이 느껴졌다.

한립은 눈을 감고 낮은 목소리로 주문을 외는 동안 한담의 한기가 급속도로 사라져갔다.

한 시진 후, 은색 불새가 맑게 지저귀며 한담에서 솟구칠 때는 주변의 한기가 전부 사라져 있었다. 마치 평범한 연못처럼 맑은 물만 찰랑였다.

한립이 눈을 뜨고 서령불새를 흡족하게 쳐다보았다. 은색 화염으로 가려진 본체가 수정처럼 실체화되어가고 있었다.

불새는 한담의 엄청난 한기를 흡수하고 이변을 일으킨 것이 틀림없었고, 이런 변화는 시작에 불과했다.

대승기 수사도 함부로 접근하지 못한 한기를 흡수했으니 천천히 연화를 해나가야 할 것이다.

쉭!

한립이 수결을 바꾸어 서령불새를 거둬드리려는데 불새가 입을 열어 하얀 빛덩이를 쏘아 보냈다. 뭔가 싶어 잡아 보니 극도의 한기를 품은 달걀 크기의 수정 구슬이었다.

강력한 육체를 지니지 않았으면 맨손으로 잡는 순간 구슬의 한기에 부상을 당했을 것이다.

“이걸 아래서 찾았다고?”

놀란 한립이 서령불새를 보고 물었으나 은색 불새는 허공에 떠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런! 너 정도 영성을 갖고 어찌 내 말에 대답을 하겠느냐.”

한립이 피식 웃고는 화염을 일으킨 손으로 수정돌을 만지작거리다 의식으로 살펴보려 했다.

“흠?”

곧바로 그의 표정이 달라졌다. 의식이 구슬표면을 타고 미끄러지듯 지나쳤다. 손에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의식에 감지되지 않았다.

그가 의아한 얼굴로 손끝에 미간을 가져다대고 수정실을 뽑아내 수정구슬로 집어넣었다. 의식정화였다.

“그런 거였군!”

뭔가를 깨달은 한립이 수정 구슬을 던지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콰릉!

금색 뇌전이 튀어나가 구슬과 부딪쳤다.

쨍강!

깨져나간 구슬 속에 손톱 크기의 남색 구슬이 들어있었다. 놀라운 한기를 품은 구슬에서 공간의 힘이 전해졌다.

한담에 가라앉아 있는 보물은 남색 돌덩이 하나가 아니었던 것이다.

큰 남색 돌덩이는 미부인이 가져갔지만 작은 남색 구슬은 그의 손에 들어왔다. 크기는 달라도 두 물건이 함유한 공간법칙의 파동은 엇비슷했다.

다만 구슬은 다른 보물로 특별히 기운을 감춰 대승기 수사의 이목까지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빈 옥함을 꺼내 수정 구슬을 담고 여러 금제 부적으로 봉인한 한립은 서령불새를 소매 속으로 거두고 날아올랐다. 그가 향한 방향은 공어족이 사는 건화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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