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3화. 한담의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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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에 준비가 필요합니다. 앵화야 시작 하거라.”
수라주 족모가 고개를 끄덕이며 소녀에게 말했다.
“예, 알겠습니다. 너희는 가져온 물건을 꺼내 진법 개조에 들어간다.”
소녀가 몸을 돌려 다른 족인들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에 수라주 족인들이 빙음 탑의 진법으로 날아가 진법 원반과 깃발 혹은 기이한 형태의 다른 법기들을 꺼내 여기저기 박아 넣고 진법을 수정했다.
배치를 마친 족인들이 다 같이 주문을 외자 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이전과 확연히 다른 대형 진법이 빛을 머금었다.
진법 중앙의 원형 탑이 삐그덕 거리고 하얗게 금이 가고 있었다.
쩌적!
완전히 쪼개진 원형 탑 안에서 숨겨져 있던 작은 연못이 나타났다. 거울처럼 맑은 연못에서 하얀빛기둥이 치솟았다.
빛기둥이 백여 장 높이에 이르렀을 때 돌연 진법이 강한 빛을 터트리며 남색 빛의 장막으로 골짜기 전체를 봉쇄했다.
콰르릉!
빛기둥이 보호막과 충돌해 하얀 빛 입자들이 연달아 폭발했고 새하얀 한기가 퍼져나갔다.
촤르륵!
한기가 한립 일행을 덮쳤지만 대승기 수사들답게 영기의 보호막을 일으켜 간단히 물리쳤다.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는 않는데요?”
흑린이 의식으로 한기를 훑고 입을 비죽였다.
“그럼 직접 실험해 보시던가요!”
수라주 족모가 눈을 번득이고 연못으로 손을 뻗었다.
연못가에서 붉은빛 몇 개가 떠올랐다. 붉은빛에 휩싸인 여의, 거울, 구슬 및 고리였다.
네 보물이 작렬하는 열기를 내뿜어 주변의 한기를 무(無)로 돌리고 있었다. 고요하던 연못이 네 보물이 등장하자 보글보글 거품이 일었고 빛기둥이 짙어져 우윳빛으로 물들었다.
찰나의 순간 보호막 내부의 한기가 이전보다 열 배 이상 왕성해졌다.
깜짝 놀란 막간리와 혈연 등은 수결을 맺어 방어 보물들을 불러내 흔들거리는 보호막 바깥으로 또 다른 빛의 장막을 쳐야했다.
“과연 다르긴 하군요. 저 보물들이 귀족이 특별히 묻어둔 양기를 품은 물건들인가 봅니다. 하지만 이 정도라면 수사의 능력에 충분히 보물을 건져 올릴 수 있었을 것 같은데요.”
한립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는 어떤 보물도 불러내지 않고 은색 화염으로 이루어진 보호막으로 한기를 전부 빨아들이고 있었다.
“이게 다라면 진작 그렇게 했을 겁니다. 수사는 모르시겠지만 연못의 수심이 깊어질수록 한기도 강해져 밑바닥은 얼마나 냉기가 가득할지 짐작도 가지 않습니다. 그 아래에 가라앉아 있는 보물을 건져 올리려면 특별한 방법이 필요합니다.”
미부인은 여전히 냉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한립을 대할 때는 약간의 긴장감을 유지했다.
혁 노인의 신통은 그녀에게도 뒤지지 않았는데 한립이 노인의 육신을 멸하고 원영에 중상을 입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랬군요. 저희가 어떻게 도움을 드리면 되겠습니까?”
“간단합니다! 이 진법은 저희 종족이 수백 년을 고심해 만들어낸 보물 인양용 진법입니다. 여섯 명 이상의 대승기 수사가 동시에 법력을 주입하면 연못 깊이 가라앉은 보물을 끌어올릴 수 있지요. 이전에는 그렇게 많은 대승기 수사들을 모으지 못해 계획을 미뤄두고 있었는데 이제는 가능하겠지요.”
옆에 서있던 소녀가 웃음을 머금고 설명했다.
“여섯이라. 대승기 수사는 나 수사를 포함해도 총 다섯 명인 것으로 압니다.”
“그건 한 형께서 심려치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잠시 경지를 높이는 비술을 사용해 그럭저럭 인원수를 채울 수 있을 테니까요.”
“그 역시 시공 신통 중 하나입니까?”
소녀의 말에 한립이 관심을 보였다.
“시공법칙에 대해 이해가 깊으시군요. 이 술법은 수사의 말씀대로 시공의 힘에 기초해 펼치는 것입니다.”
소녀가 한립을 의미심장하게 보고 대답해 주었다. 한립은 그저 미소를 지으며 더는 캐묻지 않았고 기다리던 흑린이 조급히 끼어들었다.
“거, 준비가 다 되었으면 얼른 진행합시다. 여기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힘이 다 빠지겠습니다.”
“바라던 바입니다. 다들 진법의 정해진 위치에서 서주시지요. 다들 진법에 조예가 깊으실 테니 자연히 아무런 공격 능력을 지니지 않은 진법이란 것을 아셨을 겁니다.”
수라주 족모가 수결을 맺고 한담 위의 네 보물을 가리켰다.
퍼퍼퍼펑!
네 보물들은 바르르 몸을 떨며 출렁이는 불구슬로 변해 몸집을 키웠다. 순식간에 새빨간 네 개의 태양이 떠올라 사방으로 열기를 내뿜었다.
쿠쿠쿠.
얼어붙은 골짜기가 붉은 파랑에 녹아내렸고 한담 주위의 진법에서 여섯 개의 돌기둥이 솟아올랐다.
복잡한 문양이 빼곡하게 새겨진 돌기둥 하단에는 각각 은색의 소형 진법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각자 돌기둥 위로 가셔서 제가 신호를 보내면 전력을 다해 법력을 불어넣어 주시면 됩니다. 진법을 조종하는 것은 본족에게 맡기시고요. 앵화, 네가 먼저 올라서거라.”
수라주 족모가 길게 심호흡을 하고 수결을 풀었다. 소녀가 앞장서게 한 것은 다른 이들의 경계심을 풀기 위해서였다.
과연 소녀가 표표히 날아올라 돌기둥 중 하나에 오르자 혈연과 흑린과 날아올랐다.
막간리도 주저하지 않고 날아갔고 한립도 흐릿하게 사라져 남은 돌기둥 위로 이동했다.
모든 이들이 자리를 잡자 미부인이 마지막 돌기둥에 올라 다른 족인들을 향해 말했다.
“술법을 시작한다!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예, 족모 대인!”
성년 수라주 중 사내가 숙연히 답하고 진법 가장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주문을 외웠다.
파앗!
진법의 문양들에 괴이한 기운이 흐르고 주술문자가 마구 떠올라 가운데 한담 상공으로 모여들어 동그랗게 뭉치기 시작했다.
다른 수라주 족인들은 법기를 발동하고 수결을 맺어 정순한 법력을 진법으로 불어넣었다.
우웅!
진법의 문양들이 보석처럼 빛나고 떠오른 주술문자들의 크기가 커져갔다.
한담 상공의 주술문자 구슬이 사람만 하게 커졌을 때 수라주 족모가 소리쳤다.
“지금입니다! 전력으로 법력을 주입해 주세요!”
부인의 환하게 빛을 터트리고 발바닥을 통해 돌기둥으로 법력을 쏟아부었다. 이에 나머지 다섯 수사들도 신속하게 각자의 방법으로 법력을 쏟아냈다.
여섯 개의 돌기둥을 타고 대량의 법력이 밀려들자 진법은 거의 미친 듯이 반짝였다.
쿠르르릉!
얼마 지나지 않아 한담 위의 주술문자 구슬이 거의 누각 크기로 커졌다. 이에 여인이 표정이 밝아지며 한 손으로 한담 상공을 가리키며 입에서 푸른 실그물을 뿜었다.
푸른 실그물이 흔적도 없이 주술문자 구슬 속으로 사라지고 부인은 열손가락을 마구 튕겨 법결을 날렸다.
빛을 만발한 주술문자 구슬이 빙빙 돌아 깔때기 모양의 오색구름을 만들었다. 주술문자가 반짝이는 구름 속에서 무언가 응결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수라주 족모가 낮게 기합을 넣고 구름 속에서 손가락 굵기의 울긋불긋한 수정실 다섯 가닥이 뻗어나가 한담으로 풍덩 빠져들었다.
촤르륵!
호수 표면에 닿자마자 수정 실 표면에 하얀 한기가 어리고 있었다.
미부인이 눈썹을 끌어올리며 깔때기 형태의 구름을 가리켰고 콰릉 하는 천둥소리와 함께 오색 기운이 수정실을 타고 흘러내려 하얗게 낀 서리를 걷어냈다.
수정 실은 더 깊이 한담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한립은 돌기둥 위에 법력을 주입하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미부인은 전력을 다해 달라고 했지만 그의 농후한 법력으로는 그리 힘든 일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 수정실이 10장, 30장, 100장, 300장…….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기의 방해로 수정실의 이동 속도가 느려지고 있었다.
천 장 깊이에 이르렀을 때는 미부인도 침을 삼키고 아주 조심스럽게 술법을 조종했다.
한 호흡마다 겨우 손가락 한 마디씩 내려가는 수정 실에서 아무도 눈을 떼지 못했다.
이때 핏빛 치마소녀는 전신이 핏빛 안개에 가려져 윤곽밖에 보이지 않았다. 무슨 비술을 쓴 것인지 확실히 대승기 수사에 맞먹었다.
반 시진이 흘러갔다.
수정실 표면은 하얀 서리가 끼었다가 오색 기운에 녹기를 반복했고 움직임은 맨눈으로는 거의 포착하기 어려울 만큼 느려져 있었다.
이에 막간리 등 대승기 수사들도 오랜 시간 법력을 불어넣느라 표정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혈연은 인상을 찡그리고 몰래 흑린과 전음을 주고받기도 했다.
진법 바깥의 수라주 족인들마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언제라도 쓰러질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미부인은 마음이 급해졌다.
‘이렇게는 안 돼!’
그녀는 마음을 굳게 먹고 자신의 뒤통수를 때려 푸르스름한 녹색 기운 속에서 팔뚝 크기의 벽옥(碧玉) 거미를 불러냈다.
두 눈을 번득인 거미가 한담 상공을 향해 입을 벌려 푸른빛에 휩싸인 하얀 정핵을 분출했다. 수라주 족모의 정핵이 깔때기 구름 속으로 자취를 감춘 것을 보고 다른 수사들은 깜짝 놀랐다.
본명 정핵을 내놓은 것을 보면 정말 필사적이란 소리였다.
쿠르르릉!
정핵을 흡수한 구름이 격렬히 진동하고 흉흉한 기세의 오색 기운을 수정실을 따라 내려보냈다.
하얀 한기가 멀리 밀려나 수정실의 움직임이 열 배 이상 빨라졌다가 금방 원래 속도로 돌아가려 했다. 미부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 순간 핏빛 안개 속에서 소녀의 탄식이 들리고 은색 빛기둥이 뻗어 나와 깔때기 구름 속으로 스며들었다.
구름의 기세가 강해지고 이번에는 수정실이 제법 오래 빠른 속도로 가라앉았다.
“됐습니다, 바닥에 이르렀어요! 앞으로 조금만 더 버텨주시면 보물의 정확한 위치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갑자기 멈춘 수정 실을 보고 미부인이 뛸 듯이 기뻐하며 수결모양을 바꾸고 눈을 감았다.
의식의 힘이 그녀의 미간을 빠져나와 다섯 줄기의 수정실을 타고 내려갔다.
“찾았다!”
잠시 후, 그녀가 눈을 뜨고 더욱 신중히 주문을 외웠다.
동시에 한립은 빠져나가던 법력의 흐름이 빨라져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법력이 소모되는 것을 느꼈다.
재빨리 한담 쪽을 살피니 연못에 잠긴 수정 실들이 부들부들 떨면서 천천히 구름 쪽으로 끌어당겨지고 있었다. 그 속도가 굉장히 느려 아주 무거운 물건을 온 힘을 다해 잡아당기는 느낌이었다.
고요하던 수면이 요동치고 불가사의하게도 소용돌이가 치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다섯 줄기의 오색실들이 팽팽하게 당겨져 잘 버티고 있었다.
이전보다 몇 배는 강해진 한기가 소용돌이에서 몰려나와 수정실을 막으려 들었다.
소란스런 광경에 혈연, 흑린 막간리도 눈도 깜빡이지 않고 한담을 주시했다.
콰릉!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소용돌이 중간에서 굉음이 들리고 사람 머리통만한 남색 돌덩이가 끌려 나왔다. 강렬한 법칙의 파동이 진동을 했다.
“공간의 힘!”
흑린이 돌덩이가 함유한 법칙의 힘을 느끼고 탐욕스런 시선을 보냈다. 공간의 힘은 시간의 힘보다 신묘하진 않아도 진정으로 법칙을 장악해 활용하는 자가 거의 없었다.
대부분 대승기 수사들이 공간보물이나 진원의 힘을 빌려 허공을 찢고 순간이동을 했지만 진정한 공간법칙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한립이 그것을 보고 잔잔히 미소를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공간의 힘을 부리는데 능통한 천봉으로 변신할 수 있는 그는 충분한 시간만 주어지면 공간법칙을 깨달을 수 있었다. 굳이 눈앞의 보물에 목을 맬 이유가 없었다.
혈연도 남색 돌덩이를 보는 눈빛이 남달랐는데 의외로 막간리만이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혈연과 흑린이 망설이는 동안 핏빛 안개 속 소녀가 수정실 다발을 쏘아 보내 돌덩이를 확보했다.
“……!”
혈연이 돌덩이가 소녀에게로 끌려가는 것을 보고 소매 속에 숨겨진 손을 살짝 움직이려는데 칼날 같은 시선이 느껴졌다.
움찔한 그가 슬쩍 고개를 돌리니 수라주 족모가 섬뜩한 눈빛으로 그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혈연은 재빨리 한립과 막간리를 살피고는 그들이 가만히 있자 손을 풀며 가식적인 미소를 지어보였다.
흑린도 안타깝지만 남색 돌덩이가 핏빛 안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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