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1340화 (1,097/2,000)
  • 1340화. 수라주 전투 (5)

    *

    “저도 혈령술의 현묘함을 제대로 알아보고 싶습니다. 그 전에 혁 수사께서도 구경만 마시고 함께 덤비시지요.”

    거원이 돌연 세 개의 손으로 수결을 맺은후 석성 상공을 가리켰다.

    우우웅!

    고공에서 꼼짝 않던 세 산봉우리들이 천 장 높이로 커졌다. 회색 기운으로 둘러싸인 검은 산봉우리는 열댓 줄기의 대형 촉수를 만들어 금제를 호되게 내리쳤다.

    푸른 산봉우리는 밑에서 무형의 검기들을 폭발적으로 내뿜어 검기의 그물을 이루었고 알록달록한 산봉우리는 빛의 고리들을 만들어 떨구었다.

    이에 석성의 금제가 다시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하반신을 복구 중이던 혁 노인이 어쩔 수 없이 회복을 멈추고 뭔가 손을 쓰려는데 옆쪽에 파동이 일고 앵화가 나타나 손을 뻗었다.

    놀란 혁 노인이 무의식중에 피하려 했으나 뽀얀 손이 그의 보호막을 뚫고 어깨에 닿았다.

    파아앗!

    놀란 노인이 노호성을 터트리려는 찰나 어깨에 닿은 손에서 녹색 빛이 일었다. 익숙한 법칙의 힘이 그의 몸을 감쌌고, 불가사의하게도 핏빛 실로 엉성하게 만들어진 하반신이 멀쩡해졌다.

    그제야 소녀가 싱긋 웃으며 노인의 어깨에서 손을 치웠다.

    “물령회삭(物靈回朔)!”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한립은 경악해 소리를 높였다. 이건 불멸체나 그와 비슷한 술법이 아니라 시간법칙에 소성(小成)하여 펼치는 신통이었다.

    혁 노인도 얼굴이 확 밝아져 감격해하며 물었다.

    “앵화 수사! 그걸 익히는데 성공한 겐가!”

    “그게 그리 쉬운 일이던가요? 그저 간단한 것만 익혔을 뿐입니다. 앞으로의 싸움은 힘들겠지만 혁 사백께서 도움을 주셔야겠습니다. 상대는 대승기 강자인데 어찌 저 홀로 상대할 수 있겠습니까.”

    소녀가 웃는 얼굴로 말했다.

    “허허허! 물령회삭까지 펼치고선 어찌 피상적인 내용만 이해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앵화 수사가 나섰으니 우리가 우위에 설 수 있을 걸세.”

    혁 노인은 소녀의 신통으로 하반신은 물론 소모된 원기까지 회복된 것을 깨닫고는 자신감이 생겼다.

    크아악!

    괴인은 고개를 쳐들고 길게 포효하며 금색 거울과 은색 두루마리를 다시 불러냈다. 두루마리는 흐릿해지며 갑옷으로 변했고 금색 구리거울은 빛을 머금고 두 자루의 금색 거검으로 갈라졌다.

    소녀는 은색 갑옷을 입고 금색 장검을 든 노인을 보고 수결을 맺었다.

    펑!

    늑대 머리 괴수 한 마리가 폭발해 핏빛 안개로 변해 그녀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소녀가 핏빛을 머금은 손으로 노인을 가리키자 핏빛 주술문자들이 튀어나가 노인의 갑옷으로 흡수되었다.

    그러자 은색 갑옷에 괴상한 핏빛 문양이 떠다녔다. 이에 혁 노인은 기운이 들끓고 온몸에 힘이 넘치는 것을 느꼈다.

    두 눈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노인은 폭발 직전의 분노와 호승심으로 가득 찼다!

    “기혈술(嗜血術)! 으하하, 노부가 바라던 바일세!”

    노인은 광소를 터트리며 기탄없이 금제를 뚫고 나가 두 팔을 들어 올렸다.

    쇄애액!

    거대한 금색 검기 두 줄기가 흉흉하게 날아갔다. 하늘을 가를 것 같은 강력한 기운이었다. 한립은 날아드는 금색 검기가 아닌 석성 위에 선 소녀를 힐끗 보고는 고공으로 손짓했다.

    우웅!

    세 극산이 이동해 그의 앞에 나란히 나타났다.

    쿠콰쾅!

    두 개의 금색 검기가 극산과 충돌하자 세 산봉우리는 잘게 몸을 떨며 검기들을 튕겨냈다. 이에 혁 노인은 눈빛이 사나워지더니 즉시 무어라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튕겨 나가던 두 거검에서 금빛이 만발하고 하나로 합쳐져 극산들의 크기와 비슷해졌다.

    “와라!”

    거원이 코웃음을 치며 여섯 개의 손으로 수결을 맺어 몸속에서 푸른 비검 72자루를 뿜어냈다.

    웅웅웅!

    푸른 검빛으로 갈라진 비검들은 다시 하나로 합쳐져 하나의 커다란 거검으로 변했다. 거검은 한립의 조종을 받아 금색 거검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꽝!

    두 거검이 격돌했다.

    금빛과 푸른빛 검기들이 하늘을 뒤덮고 날카롭게 교차되어 똑바로 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두 거검의 대치에 안색이 어두워진 혁 노인은 손끝을 튕겨 마구 법결을 던져 넣었다.

    찰나의 순간 금색 거검의 기운이 왕성해져 금빛이 실처럼 쏘아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거원의 세 머리도 굵직한 금색 뇌전을 뿜었다.

    푸른 거검에 수많은 뇌전이 어리고 뇌전들이 뱀처럼 금색 거검으로 달려들었다.

    콰릉!

    금색 거검은 푸른 거검의 힘과 금색 뇌전의 공격을 이기지 못하고 부서지고 말았다. 이에 혁 노인이 멍해져 있는데 거원이 성큼 앞으로 나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가슴이 서늘해진 노인은 핏빛 치마 소녀를 부르고는, 한 손으로 수결을 맺어 오색 기운 속에서 여덟 개의 오색 수정방패들을 불러냈다. 그의 다른 손에는 보랏빛의 나무 자가 나타나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석성 위 소녀가 노인의 부름에 미소를 짓고는 늑대 머리 괴수를 가리켰다.

    펑!

    괴수가 처절하게 울부짖으며 핏빛 안개로 흩어졌다. 바로 그때 혁 노인 옆에서 파동이 일고 삼두육비 금색 신형이 번개처럼 달려들었다.

    노인이 미끄러지듯 뒤로 물러나며 손에 들고 있는 보랏빛 나무 자에서 무수히 많은 보라색 빛들을 쏘아 보냈다. 그런데 금빛 신형은 보랏빛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충돌했다.

    탱탱탱탱!

    금속성의 충돌음이 잇달아 울렸다!

    보랏빛 대부분은 반탄력에 의해 날아가고 아주 일부만이 금빛으로 파고들었다. 피 냄새와 함께 금빛 신형의 속도가 둔해졌다.

    ‘흐흐, 그렇지!’

    혁 노인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보랏빛은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괴이한 독을 품고 있어 대승기 수사라도 중독되면 무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노인의 얼굴이 굳어갔다.

    금빛 신형의 세 얼굴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여섯 개의 주먹을 휘두른 것이다. 혁 노인을 향해 주먹 허상들이 빼곡하게 날아들었고, 삼두육비의 금빛 신형도 속도를 높였다.

    수십 개의 보라색 가시가 박히고도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는 듯했다. 혁 노인은 자신의 두 눈을 믿을 수 없었고 등 뒤로 식은땀만 흘렀다.

    그는 체내의 법력을 더욱 끌어올려 입에서 푸른 인장을 뱉어냈다. 인장은 바람을 타고 물 항아리 크기로 커져 주술문자들을 날렸다.

    혁 노인은 피하지 않고 한립과 필사적으로 맞붙을 결심을 한 것이다. 푸른 인장은 괴이한 힘을 방출해 주먹 허상들이 있는 양쪽으로 흘려보냈다.

    그리고 그 뒤의 금빛 신형은 괴이한 힘에 제약받지 않고 그대로 맨몸으로 충돌해왔다.

    움찔한 혁 노인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푸른 인장은 그의 본명 보물로 위력은 현천의 보물에는 비하지 못해도 단단함으로는 어떤 보물에도 뒤지지 않았다.

    맨몸으로 푸른 인장을 맞고 멀쩡한 자가 있을 리 없었다.

    대앵!

    과연 거대한 종이 울린 것처럼 충돌음이 퍼지고 금빛과 푸른빛이 요란하게 터져 나왔다. 금빛 신형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기 급급했다.

    콱!

    그때 등 뒤에서 피비린내가 일고 새빨간 늑대 머리가 등장해 금빛 신형의 허리를 물어뜯었다. 금빛 신형은 괴수의 이빨이 박힌 채 몸을 떨었고 그는 여섯 개의 손을 펼쳐 늑대 머리를 가격하려 했다.

    이에 핏빛 치마 소녀가 주술을 외며 수결을 맺고 손을 뻗자 늑대 머리가 흐릿하게 변해 주먹들을 그냥 통과시키고 커다란 입은 끈질기게 금빛 신형의 허리를 물어뜯으며 놓지 않았다.

    완전히 살점을 뜯어내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는 눈치였다. 그것을 발견한 혁 노인이 흉악한 미소를 짓고 어두운 보랏빛 자를 기다란 창으로 바꿔 던지려 했다.

    바로 그 순간, 노인 뒤쪽에 가벼운 바람이 불고 또 다른 금색 신형이 나타나 두 주먹을 내질렀다.

    새로 등장한 금색 신형도 금색 거원으로 전신에 은은하게 보랏빛이 반짝이고 은색 문양이 떠다녔다.

    이 거원이 바로 한립의 본체이고 앞서 나타난 삼두육비의 금색 신형은 그와 분리된 범성금신이었던 것이다.

    한 줄기 의식으로 금신을 따로 조종해 노인과 소녀의 주의를 끈 것이다.

    한립 본체는 범성금신이 아니어도 산악거원 변신술과 백맥연보결로 충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앗!”

    소녀가 놀라 다급히 경고를 하려는데 한발 늦고 말았다. 그러나 대승기 강자인 혁 노인도 등 뒤의 이상을 감지하고 창의 방향을 틀어 뒤쪽으로 투척했다.

    쾅!

    그러나 보라색 창은 한립의 주먹을 맞고 으스러졌고, 또 다른 주먹은 노인의 수정방패를 호되게 내리쳤다.

    방패는 주먹을 막으려 들었지만 금색 주먹이 닿는 순간 보랏빛이 번득이며 산산조각이 났다.

    그 뒤에 있던 법력으로 된 방어막은 종잇장처럼 뚫려 결국 주먹은 노인의 등에 꽂히고 말았다.

    이에 혁 노인은 대경실색하며 비술을 펼쳐 진원의 힘을 모두다 갑옷으로 쏟아 부었다.

    쿠쿵!

    은색 갑옷의 핏빛 문양이 주술문자로 떠올라 핏빛 보호막으로 변해 노인을 보호했다. 그 모습에 거원이 조소하며 자금색 손을 펼쳤다.

    은색 문양진법 십여 개가 겹겹이 나타나 폭발했고 거원은 직전에 그 자리를 떠났다.

    “안 돼!”

    은빛의 위력에 노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즉시 그의 두개골이 열리고 팔뚝 크기의 무언가가 허겁지겁 빠져나와 달아났다.

    콰르릉!

    은빛은 핏빛 보호막을 뒤덮고 엄청난 폭음을 터트렸다.

    은색 주술문자로 가득 찬 은색 태양은 혁 노인이 있던 자리에서 서서히 떠올라 크기가 제각각인 빛의 진법을 만들어냈다.

    그 빛의 진법들이 또 폭발을 일으켜 거대한 빛기둥으로 주변의 천지원기들을 헤집었다.

    쿠콰콰쾅!

    엄청난 천기 현상에 범성금신을 물어뜯던 핏빛 늑대 머리도 물러나고 격렬히 싸우던 혈연, 흑린 그리고 수라주 족모도 신통을 거두고 피했다.

    그들은 이제 한립을 보는 눈빛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혈연, 흑린 역시 기뻐하면서도 놀란 기색이 가득했다.

    같은 대승기 수사라도 하늘과 땅을 깨부술 것 같은 위력적인 신통을 모두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수라주 족모는 하늘 높이 치솟는 빛기둥을 보고 두려운 마음이 생겨났다.

    하지만 곧 혈연과 흑린이 보물과 신통을 발휘해 다시 공격해오자 미부인은 굳은 얼굴로 세 마리의 흉악한 거미로 변해 튀어나갔다.

    세 수사의 격전이 다시 이어졌다. 다만 막간리는 성년 수라들과 얼마나 멀리 떨어진 것인지 아직도 보이지 않았다.

    쿠쿵!

    거대 빛기둥이 사라지고 작열하는 열기 말고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을 때 혁 노인이 있던 자리는 텅 비어있었다.

    오광족 대승기 수사가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이에 핏빛 치마 소녀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팟!

    노인이 있던 자리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파동이 일어나더니 유리 갑옷을 입고 두 팔로 푸른 인장을 껴안은 오색 빛의 소인이 나타났다.

    바로 혁 노인의 원영이었다.

    소인은 표독한 얼굴로 자신의 육체가 소멸된 곳을 보고 서둘러 석성 방향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그가 날아가는 방향에 홀연히 삼두육비 금색 신형이 나타나 길을 막았다.

    놀란 소인이 둔광을 틀어 다른 방향으로 내려가려는데 파동이 일며 털이 북슬북슬 난 두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리고 금색 거원이 펄쩍 튀어나와 입에서 두꺼운 금색 뇌전을 분출하기 시작했다.

    소인은 이미 피하기에는 늦었다고 생각해 두 팔로 안고 있던 인장을 던졌다. 인장은 바람을 타고 커져 소인의 앞을 막아섰다.

    펑-!

    금빛 뇌전이 인장을 튕겨내고 번뜩 흩어졌다. 금털 거원은 흉흉한 얼굴로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와 맨손으로 소인을 낚아채려 했다.

    펑!

    하지만 노인의 원영은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고 두 손으로 수결을 맺어 스스로 폭발했고 깃털로 변해 종적을 감추었다.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