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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338화 (1,095/2,000)
  • 1338화. 수라주 전투 (3)

    *

    혁 노인은 서늘하게 웃고는 뒤쪽으로 손짓했다. 그의 등 뒤에 있던 천여 개 금색 거울들이 웅웅 울어대고 가느다란 금실을 분출했다.

    금실들이 노인 앞에서 거대한 실그물을 이루었다. 노인이 법결로 재촉하자 금빛의 거대 그물이 여섯 빛덩이를 향해 날아갔다. 빛구슬을 일망타진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거대 그물과 빛구슬들이 충돌하기 직전 한립이 입을 달싹였다.

    “동선금광.”

    금색 빛구슬은 하나로 융합되어 금빛 소용돌이를 만들었고 오색 주술문자와 함께 엄청난 흡입력이 발생했다.

    현묘한 능력을 지닌 거대 그물도 그 힘을 버티지 못하고 빨려 들어가 가루처럼 잘게 부스러졌다. 깜짝 놀란 혁 노인이 허리춤의 옥패를 잡아챘다.

    크아앙!

    옥패가 하얀 교룡으로 변해 발톱과 이빨을 드러내고 소용돌이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금색 소용돌이가 놀랍게도 교룡마저 빨아들였다.

    쿠콰콰쾅!

    굉음이 사라지고 노인의 허리춤에서 옥패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이에 혁 노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러나 노인은 금방 평정을 회복하고 두 손으로 수결을 맺으면서 다섯 가지 종류의 기운을 몸에서 뿜어냈다.

    휘익!

    오색 기운이 그의 주위로 퍼져나가 금색 소용돌이마저 없앴다.

    “오색신광(五色神光)! 비령족의 오광족인!”

    뭔가 이상하다고 눈치채고 있었지만 오색 기운을 본 한립은 움찔하며 소리쳤다.

    “하하하, 그리 견문이 넓을 줄은 몰랐습니다! 한 눈에 노부의 내력을 파악하다니요! 이렇게 된 바에 더는 숨길 것도 없으니 오색신광의 진정한 무서움을 맛보여 드리리다.”

    혁 노인은 한립이 자신의 본명신통을 알아본 것이 이상했지만 곧 흉흉한 웃음을 흘렸다.

    그가 허공을 구르자 천둥소리가 울리며 오색 기운이 몰려들어 오색공작으로 변했다. 오색공작의 음산한 안광에 한립도 등골이 서늘해졌다.

    “정말 오색공작의 몸을 지니셨습니다! 흠, 오광족에 수사와 같은 존재가 있었다니 만난 김에 경험이나 쌓으시지요.”

    한립은 동공을 수축하며 가볍게 웃음 지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하하하…….”

    한립은 고개를 쳐들고 웃음을 터트리며 몸에서 오색 화염을 일으켜 화려한 깃털을 지닌 또 다른 오색 공작으로 변했다.

    “다, 당신도 오광족인이라고? 아니지, 기운이 달라. 그저 본 족의 진혈을 제련해 성조로 변신한 것이로구나!”

    당황하던 혁 노인이 눈을 번득였다.

    “혜안을 지니셨습니다. 한 눈에 제 변신술을 다 알아보시고 말입니다.”

    한립이 냉소하며 오색 화염을 일으켜 빛의 파도처럼 쇄도하게 했다.

    “감히 노부의 면전에서 신광술을 펼치다니, 무엇이 진정한 오색신광인지 알려드리지요!”

    열 받은 혁 노인은 날개를 털어 오색 깃털들을 화살처럼 쏘아 보냈다.

    솨아아아.

    쉬쉬쉬쉬쉭!

    오색깃털 화살들이 오색화염을 뚫고 한립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에 한립이 변한 공작은 바로 깃털을 털어 오색 빛의 실을 분출했다.

    빛의 실들은 정확히 깃털을 하나씩 휘감고 조각조각 잘라냈다.

    다음 순간, 혁 노인이 변한 공작 주변으로 파동이 일고 빛의 실들이 나타났다. 이에 혁 노인의 오색공작이 오색기운을 터트렸다.

    빛의 실이 오색 기운을 조였으나 그 안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한립이 흠칫 놀라고 있을 때 혁 노인이 변한 공작이 수백 장 공간을 뛰어넘어 그를 향해 발톱을 휘둘렀다. 그러나 한립은 그 자리에서 사라져 혁 노인의 옆으로 다가가 입을 벌려 은색 화염을 내뿜었다.

    혁 노인의 거대 발톱은 은색 화염이 등장한 순간 방향을 틀었다.

    펑!

    거대 발톱은 놀랍게도 은색 화염을 멸하고 그대로 한립이 변한 공작을 노렸다. 그러나 발톱이 닿기 전에 한립 주위로 오색 주술문자들이 나타나 무형의 금제를 형성했다.

    한립이 변한 공작은 날개를 펄럭여 오색 화염을 퍼트려 보았지만 오색 문자들과 닿으면 천적을 만난 듯 사라졌다.

    놀란 한립은 전신의 깃털을 바르르 떨며 눈부신 오색기운을 방출해 허공에서 열댓 개의 아름다운 오색 검기를 형성했다.

    채채챙!

    날카로운 금속성의 마찰음이 들리고 오색 검기가 주술문자를 베었으나 전부 튕겨 나오고 말았다.

    “흐흐흐, 노부의 고화천지(固化天地) 신통이 그렇게 쉽게 뚫리겠느냐? 그냥 얌전히 죽어라!”

    혁 노인이 기뻐하며 또 다른 발톱을 세워 날아들었다. 또 다른 발톱에서도 오색 기운이 주술문자로 뭉쳐져 한립이 변한 오색공작을 단단히 제압했다.

    쿠콰콰쾅!

    두 개의 거대한 조류 발톱 허상이 앞뒤로 떨어지고 한립이 변한 오색 공작은 왜곡된 공간과 돌풍 속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혁 노인은 광소를 터트렸다. 오색신광으로 이렇게 간단히 강적을 처치할 수 있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의심 많은 노인은 혹시 몰라 뒤로 물러나며 날개를 펄럭여 오색 기운 속에서 반투명하게 변했다. 반투명한 오색공작은 입에서 빛기둥을 분출해 한립이 있어야할 왜곡된 허공을 공격했다.

    크아아악!

    바로 그때 괴수의 포효소리가 들려오고 털이 북슬북슬 난 거대한 손바닥이 유리 빛기둥을 막았다. 경천동지할 굉음이 울렸다!

    유리 빛기둥은 털이 숭숭 난 손바닥을 맞고 터져 주변의 천기원기가 요동치고 반투명한 빛덩이가 태양처럼 떠올랐다. 피와 살로 이루어진 자금색의 손이 빛기둥을 막은 것이다.

    혁 노인이 다른 조치를 취하기 전에 금빛 속에서 얼음장 같은 코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헉!’

    혁 노인이 변한 공작은 그 소리를 듣자마자 벼락을 맞은 것처럼 몸을 떨었다.

    금빛 속에서 분노에 찬 괴성이 울리고 산만한 금색 주먹 허상 두 개가 나타나 거대 조류 발톱 허상들을 찢어버렸다. 그 강력한 기운에 주변을 억누르던 오색 주술문자도 분분히 터져나가는 중이었다.

    빛이 가시고 나타난 것은 자금색 거대 원숭이였다.

    “보, 본체가 산악거원! 산악거원이라고 해도 이렇게 쉽게 고화천지를 벗어날 수는 없을 텐데.”

    공작이 슬쩍 뒤로 물러나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 본체가 무엇인지 수사가 알 필요는 없겠지요. 수사의 오색신광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충분히 가르침을 받았으니 이제는 제 차례입니다.”

    거원이 오색 공작을 냉랭히 내려다 보았다.

    “겨우 다른 변신술을 썼다고 노부를 이길 수 있을 거라 여기면 오산입니다!”

    혁 노인도 거원의 기운이 대단함을 느꼈지만 겁먹지 않고 오색 기운을 발산해 또 다른 모습으로 변신했다. 공작의 머리에 비단 장포를 걸친 노인은 등에 다섯 자루의 장검을 메고 있었다.

    “아직도 남겨둔 한 수가 있었다니 재미있군요. 그렇다면 더 신나게 놀아볼 수 있겠습니다.”

    거원이 눈을 번득이고 양 손에 푸른색과 검은색 산봉우리를 불러냈다. 두 산봉우리를 거침없이 띄우고 거원이 손을 뻗었다.

    법결을 머금자 산봉우리들은 거대해졌고 한립이 변한 자금색 거원도 몸집을 부풀려 3, 4백 장에 달하는 방대한 괴수로 변했다.

    크하아앙!

    거원은 집채만 한 주먹으로 가슴을 두들기고 다시 두 극산을 집어 들어 힘껏 투척했다. 두 산봉우리가 푸른색과 검은색 빛구슬로 변해 불가사의한 속도로 날아갔다.

    파공음이 들리고 대승기 수사를 위협할 만한 기운과 방대한 물체들이 밀려들었다. 아직 두 극산이 도달하지도 않았는데 노인의 몸이 덜덜 떨리고 살이 칼날에 저미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혁 노인이 변한 괴물은 이채를 띠었지만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고 대신 등 뒤의 장검 다섯 자루가 빛을 머금었다.

    채챙!

    다섯 장검들이 노인 앞으로 순간 이동해 교차하더니 무형의 압력을 무(無)로 돌렸다. 그러나 한립을 놀라게 한 것은 두 극산이 그 앞에서 멈추었다는 사실이다.

    멀리서 보면 다섯 자루의 검이 두 극산을 막아내는 것처럼 보였다. 대승기에 이른 후 산악거원 변신술이 지닌 위력을 알았기에 더욱 놀라운 일이었다.

    쾅!

    빛을 번득인 장검 다섯 자루가 법칙의 파동을 일으켜 두 극산을 뒤쪽으로 튕겨냈다. 이에 두 극산은 흐릿하게 변해 한립을 덮쳤다.

    마치 의식 연계가 끊긴 것처럼 두 보물과 소통이 되지 않았다. 한립은 가슴이 철렁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거원의 커다란 손으로 두 극산이 있는 방향을 힘껏 내리쳤다.

    그러자 거대 손 두 개가 나타나 손바닥에서 은빛 문양 진법들을 층층이 불러냈다.

    쾅! 쾅!

    하늘이 쩌렁쩌렁 울리고 한립 앞에 회오리바람이 몰아쳤다.

    두 극산은 거원의 엄청난 힘에 멈춰 은빛과 함께 사라졌다. 두 극산이 거대 손과 닿는 순간 의식연계를 회복해 보물을 거둔 것이다.

    그러나 혁 노인은 그 틈을 타 공격하지 않고 장검 다섯 자루를 띄우고 그대로 서있었다.

    그때 한립이 상대가 놀랄 만한 말을 꺼냈다.

    “시간법칙이라. 법칙의 힘을 다룰 줄 아는 것은 놀랍지만 조금 전 신통은 간신히 발동한 것 같은데 맞습니까?”

    “흥, 시간법칙 같은 대단한 신통을 바로 알아보시는 것을 보니 다른 곳에서 법칙의 힘을 본적이 있나 봅니다.”

    노인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그는 손끝으로 장검을 가리켜 다시 법칙 파동을 일으켰다. 그러나 거원은 다섯 장검을 뚫어져라 보다가 냉소했다.

    “확실히 다른 곳에서 비슷한 신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수라주만이 시간신통을 쓸수 있는 줄 알았는데 수사가 그런 능력을 지녔다니 조금 놀랍군요. 이곳에서 머문 세월이 짧지 않은 듯합니다. 수라주의 신임을 받고 있거나 엄청난 대가를 치렀을 테지요. 허나 그 정도로 저를 상대하려 했다면 큰 실수하신 것입니다.”

    거원은 두 주먹을 가슴 앞에서 부딪치며 다시금 몸을 키웠다.

    커다란 거원의 입에서 색색의 빛구슬이 빠져나와 천룡, 채봉, 청란, 뇌붕 등의 거대 허상으로 변했다.

    거원은 고개를 쳐들고 길게 포효하며 온몸이 자금색 비늘로 뒤덮이고 삼두육비의 괴수로 변했다. 그리고 세 개의 머리에는 은색의 짧은 뿔이 솟아 있었다.

    한립은 상대가 법칙의 힘을 쓰는 것을 보고 범성진마공과 열반성체를 극성으로 일으킨 것이다.

    삼열변신을 한 그는 대승기 수사라도 공포에 떨 만한 무서운 기운을 발산했고 여섯 개의 팔이 흐릿하게 움직였다.

    금색 주먹 허상들이 마구 생겨나 사라졌다가 혁 노인 주위에서 나타났다. 혁 노인이 대경실색해 날카롭게 소리를 내며 팔을 크게 돌려 수결을 맺었다.

    그러자 장검 다섯 자루가 오색 보호막으로 변해 노인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보호했다. 희미한 주술문자는 물론 흩어졌던 법칙의 힘까지 등장했다.

    찰나의 순간 노인 주변이 법칙의 힘에 둘러싸였고 주먹 허상들이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

    퍼퍼퍼퍼퍽!

    하지만 주먹 허상들은 법칙의 영향을 받지 않고 그대로 노인을 향해 쏟아졌다.

    오색 보호막 밖에서 폭음이 울리고 금빛이 번쩍일 때마다 강렬한 충격이 전해졌다.

    금색 주먹 허상이 함유한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요란한 금빛이 터졌고 혁 노인은 금색 물결에 갇힌 꼴이 되고 말았다.

    ‘무슨 힘이 이렇게!’

    보호막 속의 혁 노인은 간담이 서늘해지며 영기의 압력을 느꼈다. 금색 허상이 끝없이 날아들어 터졌고 오색 보호막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노인은 더 이상 평정을 유지할 수 없는지 낮게 기합을 넣고 법결을 변경해 보호막의 범위를 절반으로 줄였다.

    입에서 청록색 정혈 몇 모금이 빠져나와 주술문자로 변해 보호막으로 스며들었다.

    우웅!

    보호막이 다시 안정을 되찾고 금색 파랑을 굳건히 막아냈다.

    혁 노인은 조금 안심하면서도 계속 주문을 외웠다.

    보호막에서 흐릿하게 주술문자가 떠올라 검 그림자 다섯 개를 만들었다.

    바로 그때, 한립이 변한 거원이 주먹질을 멈추고 느닷없이 나타난 암녹색의 장검을 들었다. 정체모를 은색 고대 문자가 새겨진 검이었다.

    목검 표면에 보광이 반짝이자 몇 리 안의 천지원기들이 아름다운 빛깔을 자랑하며 몰려들었다.

    거검은 거원만큼 커졌고 그는 엄청난 크기로 변한 거검을 지체 없이 휘둘렀다.

    휘익!

    금은색 주술문자가 나풀거리며 그 속에서 은색 초승달이 목검을 빠져나갔다.

    초승달은 빼곡한 주먹 허상들을 지나 법칙의 힘이 지배하는 공간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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