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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337화 (1,094/2,000)

1337화. 수라주 전투 (2)

*

혈연도 긴장을 놓지 않고 재빨리 수결을 맺었다. 주위의 여덟 원영이 낮게 포효하고 피부의 문양에서 핏빛을 터트리며 뿔이 달린 악귀로 변해 튀어나갔다.

핏빛 화염으로 둘러싸인 여덟 악귀는 손가락이 날카로운 칼날처럼 변해 검은 구렁이들을 사정없이 난도질했다. 거대 구렁이들도 괴력을 발휘해 원영을 휘감으며 날카로운 이빨로 물어뜯었다.

구렁이의 입에서 녹색 기운으로 이뤄진 독기가 흘러나왔다. 고공에 녹색 기운과 붉은 화염이 뭉쳐 난투를 벌였다.

그러나 누가 보아도 여덟 악귀들이 검은 구렁이들에게 밀리는 듯했다.

이에 혈연이 난색을 표하며 다른 보물을 불러내려는데 수라주 족모가 흉흉한 눈빛으로 자신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녹색 기운이 치솟아 거대 거미로 변했다.

청록색 피부를 지니고 전신에 강철 가시 털이 박힌 거미는 여섯 개의 다리를 미세하게 떨더니 휙! 사라졌다.

흠칫 놀란 혈연이 피하려는데 거대 거미를 방출한 미부인이 먼저 입을 벌렸다.

쉬쉬쉬쉭!

무수히 많은 녹색 실이 혈연 앞에 나타났다.

그 순간 혈연의 머리 위로 파동이 일고 날카로운 곤충의 두 발이 날아들었다.

혈연이 놀라 품에서 노란 채찍을 꺼내 들고 고공으로 휘둘렀다.

쿠릉!

집채만 한 노란 산봉우리 허상이 번득 나타나 날카로운 곤충의 두 발을 막아섰다.

퍼퍽!

작은 산 허상에 노란 기운이 흐르고 날아들던 곤충 발을 가볍게 튕겨냈다.

녹색 실들은 아무런 장애물 없이 혈연의 보호막을 파고 들려다가 갑작스레 나타난 두꺼운 곤봉 허상에 막혀버렸다.

혈연 옆으로 파동이 일고 자금색 곤봉을 든 흑린이 나타났다.

“어디 이건 어떠냐!”

수라주 족모가 심기가 상해 두 손을 합장했다 펼쳤다. 그러자 빛 알갱이들이 알알이 떠오르며 굉음이 울렸다!

다양한 빛깔의 빛알갱이들은 영성을 지닌 것처럼 쏘아져 나가 혈연과 흑린을 덮치려 했다.

순간적으로 혈연과 흑린 그리고 수라족 족모의 신통이 격돌했다.

석성에 선 네 명의 성년 수라주가 이걸 보고 전음을 나누더니 그 자리에서 가부좌를 틀고 주술을 외기 시작했다.

넷의 정수리에서 녹색 빛덩이가 빠져나와 한 데 뭉쳐져 거대한 거미 허상을 만들어냈다.

거미의 크기는 미부인이 방출한 것보다도 더 컸지만 흐릿한 것이 법상처럼 실체가 없는 듯했다. 거대 거미 허상은 즉시 녹색 그림자로 변해 전투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성년 수라주들이 참다못해 족모를 도우려 나선 것이다.

“흠…….”

막간리가 얼굴을 굳히고 말없이 사라졌다. 잠시 후 거미 허상 앞에 파동이 일고 음산한 검기가 나타났다. 이에 거미 허상은 녹색 기운을 거두고 멈춰 섰다.

이때 단검을 쥔 막간리가 나타나 거미 허상을 훑고 수중에 물건을 던졌다.

쉬쉬쉬쉬쉬쉭!

검 그림자들이 겹겹이 떠올라 검산(劍山)을 이루었다. 석성 위에 성년 수라주들이 변한 남녀 네 명이 수결을 변화했다. 거미 허상이 훌쩍 뛰어올라 검산을 무시하듯 통과해 그대로 막간리를 공격하려 했다.

놀란 막간리가 수정벽돌 모양의 보물을 움직여 앞을 막고 한 손을 뻗었다. 이에 수정벽돌이 빙글 회전하며 폭발적으로 남색빛을 발산해 태극 도안을 만들어냈다.

노인의 손끝에서는 검은 빛이 반짝였다. 전방의 허공이 무너질 듯 어둑하게 변해 무형의 압력을 만들어냈다.

쿠쿵!

거대 거미 허상은 두 앞 다리를 휘둘러 여러 빛을 쏘아 보냈지만 태극 도안과 접촉한 순간 모두 산산조각이 났다. 거미의 방대한 몸조차 무형의 압력에 의해 순간적으로 굳고 말았다.

“터져라.”

막간리가 냉소하며 조용히 읊조렸다.

퍼퍼퍼펑!

태극 도안 조각들이 미친 듯이 반짝이고 남색빛이 터지며 폭발했다. 기이한 한기를 머금은 힘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이에 거미 허상은 남색 얼음층에 겹겹이 쌓여 봉인되었다. 이에 막간리가 희색을 드러내며 지체 없이 남색 얼음으로 봉인된 거미 허상을 향해 검은 부적을 날렸다.

쾅!

검은 부적이 흩어져 용머리에 봉황의 몸을 한 괴수 허상으로 변해 한 입에 거미를 삼키려 했다. 용두봉신(龍頭鳳身)의 괴수 허상이 닿기도 전에 웬만한 대승기 수사도 혼비백산할 압력이 전해졌다.

네 성년 수라주들이 기겁해 눈을 부릅떴다.

괴수 허상이 얼음 덩어리를 집어 삼키기 직전, 거미 허상이 자폭해 빛 알갱이로 흩어져 봉인에서 벗어났다.

검은 괴수 허상은 허공을 덮치고 괴성을 지르며 사라졌다. 녹색 빛들이 얼음 덩어리 바깥에서 네 덩이로 응결해 석성의 성년 수라주 몸속으로 흡수되었다.

성년 수라주 넷은 몸을 떨었고 시선은 더욱 또렷해졌다. 그들은 곧장 빛줄기로 변해 막간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막간리는 공들인 한 수가 실패한 것이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성년 수라주 네 마리가 직접 다가오는 것을 보고 허공을 박차 하얀 빛줄기로 변했다.

백호와 불새가 하얀 빛줄기 뒤를 바짝 쫓고 있었다.

콰르릉!

고공에서 성년 수라주 넷과 막간리 그리고 그의 영총들이 맞붙었다. 강력한 영총 두 마리가 있다고 해도 성년 수라주 넷을 상대하기는 무리였다.

그는 부적을 날려 강력한 신통을 일으키거나 또 다른 괴수 환영을 불러내 간신히 성년 수라주들의 맹공을 막아냈다.

‘이 틈을 노려서…….’

이제껏 가만히 있던 혁 노인이 소매 속에 숨겨둔 황금색 동전을 쥐고 무언가를 하려는데 귓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렸다.

“수사의 상대는 접니다. 아마 딴 곳에 신경 쓸 틈이 없으실 겁니다.”

목소리와 함께 위쪽에서 막대한 영기의 압력이 감지되었다. 수행이 높은 혁 노인도 가슴이 서늘해져 당장 성벽 위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성벽 위 고공에서 파동이 일고 소리 없이 나타난 혁 노인은 뒷짐을 쥐고 마주선 한립을 바라보았다. 청년의 얼굴은 파문이 일지 않는 고요한 물과 같았다.

“보아하니 미리 계획을 세워 각자 누굴 맡을지 정하고 왔나봅니다. 수사가 노부를 택한 것은 이길 자신이 있다는 뜻이겠지요?”

혁 노인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오해십니다. 저는 다른 수사들이 선택하고 남은 수사를 맡게 된 것뿐입니다. 그리고 승패야 싸워보지 않고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한립이 미소를 띠고 차분히 답했다.

“아주 자신만만해 보이는데 이 자리에서 실력의 고하를 확인해 봅시다!”

혁 노인은 푸른 고대 등잔을 불러내 손가락으로 튕겼다. 등잔에 보라색 불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일어나라.”

노인의 말에 만황의 기운이 일어나 아홉 개의 똑같이 생긴 등잔으로 불어났다. 혁 노인은 열심히 수결을 맺어 아홉 개의 색깔이 다른 등잔에 법결을 던져 넣었다.

보라색 빛이 넓게 퍼지며 아홉 개의 등잔이 서서히 회전하다 보라색의 커다란 화염으로 뭉쳐졌다.

그 순간 맑은 울음소리가 들리고 사람 크기의 보라색 새가 불길을 뚫고 날아올랐다.

보라색 깃털을 지니고 눈에 붉은 보석을 박아 넣은 듯 아름다운 자색 공작(孔雀)이었다.

공작은 고개를 쳐들고 맑게 포효하며 3, 40배로 불어나 깃털마다 보라색 불길을 머금었다.

한립은 등잔에서 자색 공작이 소환되자 놀란 눈을 크게 떴다.

“모란성조?”

소환해 내는 방식이나 자색공작 자체의 기운이 인계 모란초원에서 보았던 모란성조와 비슷했다. 물론 둘 사이의 차이도 컸다.

모란성조는 화신기에 가까운 실력을 지녔다면 자색공작은 대승기의 무시무시한 영기의 압력을 발산하는 중이었다.

그때 멀리 혁 노인이 입에서 금색 거대 거울을 뿜고 손바닥을 뒤집어 은색 두루마리를 불러냈다.

금색 거울은 금빛을 발산해 천여 개의 거울 허상을 만들어냈고 은색 두루마리는 스스로 풀려 무수히 많은 은색 문자를 뿜어냈다.

은색 문자들은 열여덟 명의 은갑 병사로 뭉쳐 도, 검, 창, 활 같은 무기를 들고 음산한 눈빛을 보냈다.

“가라, 저 놈을 죽여!”

두 눈이 새빨갛게 물든 혁 노인이 한립을 가리켰다. 자색공작이 보라색 불구름으로 변해 날아들었고 천여 개의 거울 허상이 금색 화염을 동시에 뿜어냈다.

8명의 은갑 병사들도 직접 몸을 날렸다.

‘어딜!’

그 모습에 한립은 더는 모란성조고 뭐고 생각하지 않고 한숨을 내쉬었다. 소매 속에서 은색 화염이 빠져나가 은색 불새로 변했다.

불새는 눈 깜짝 할 사이에 자색공작만큼 커져서는 두 날개를 펄럭여 은색 화염을 품고 불구름으로 달려들었다.

거대 불새들이 충돌하기 전에 보라색과 은색의 불구름이 먼저 접촉했다. 이어서 두 불새도 번뜩 이동해 서로를 할퀴고 쪼아대며 육박전을 벌였다.

두 가지 색깔의 불덩이들이 눈부신 빛을 뿜으며 격돌했다. 보라색 구름과 은색 화염의 빛으로 하늘이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뜨거운 열기가 사방을 채웠다.

이때 천여 개의 금색 화염이 한립을 향해 쇄도했다.

쉬쉬쉬쉬쉭

한립은 서두르지 않고 몸속에서 72자루의 푸른 비검을 날렸다. 비검들이 공명하며 고공에서 수백 개의 검기로 불어났다.

“깨트려라.”

푸른 검기들이 금색 화염을 마구잡이로 갈라냈다.

혁 노인이 멀리서 기괴한 수결을 맺자, 등 뒤로 천여 개의 거울이 부들부들 진동하고 눈부신 금빛을 반짝였다.

한립 머리 위로 잘려나간 금빛 화염들이 수많은 날카로운 빛으로 뭉쳐져 허공을 갈랐다.

“와라!”

한립은 호탕하게 소리친 뒤 비검들을 가리켰다. 모든 비검들이 부르르 몸을 떨고 동시에 사라져 그의 머리 위에서 밝은 빛을 머금은 푸른 연꽃으로 피어났다.

채채채챙!

회전하는 거대 연꽃에서 검기들이 요동쳤고 비처럼 쏟아진 금빛들은 그 안에서 속수무책으로 터져나갔다.

연꽃 안이 잠잠해질 무렵 한립 면전에 파공음이 들리고 기다란 화살 세 개가 번개처럼 날아들었다. 이에 한립은 헛바람을 들이키며 무표정한 얼굴로 자금색 손가락을 튕겼다.

퍼퍼펑!

자금색 손가락이 한 치의 오차 없이 세 화살을 쳐내서 날아들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돌아갔다.

푹! 푹! 푹!

다음 순간 허공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리고 은색 병사들의 가슴이 뚫려 고꾸라지며 빛 입자로 흩어졌다. 혁 노인은 안색이 급변해 주술을 외며 은색 두루마리를 가리켰다.

법결을 머금은 은색 두루마리가 반짝이자 남아 있던 은갑 병사들의 체구가 불어났다. 크기가 커져 굼떠지기는커녕 더욱 속도가 빨라져 병사들은 번개처럼 병장기를 휘둘렀다.

도, 검, 창이 음산한 기운을 내뿜었다.

“쯧, 고작 이런 수로.”

하찮다는 얼굴로 한립이 손가락을 뻗었다. 그러자 회색 기운이 나타나 보호막을 만들었고 기세등등하게 날아든 검기와 도기 등이 보호막에 녹아들 듯 사라졌다.

그 틈에 은갑 병사들이 한립의 지척으로 이동해 직접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립의 회색 보호막이 모든 병장기를 튕겨냈다.

우우웅!

회색 보호막이 십여 개의 거대한 파랑으로 변해 거꾸로 은갑 병사들을 덮쳤다.

은갑 병사들도 늦지 않게 병장기를 휭으로 휘두르며 물러났지만 회색 파랑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빛의 실을 응결해 병사들을 파고들었다.

빛의 실에 꽁꽁 묶인 병사들이 회색 파랑에 매몰되어 더 이상 반항하지 않았다. 혁 노인이 얼굴을 굳히고 입에서 정기를 뿜어 두루마리에 흡수시켰다.

쿠콰쾅!

두루마리가 회전하자 멀리 회색 기운에 갇힌 은갑 병사들이 엄청난 폭음을 터트렸다. 엄청난 여파에 회색 기운이 찢겨나갈 듯했다.

그러나 한립이 다섯 손가락을 회색 보호막 표면에 가져다 대자 회색 기운 속 폭발의 여파가 강력한 힘에 억눌려 어둑하게 변해 소멸했다.

그제야 고개를 든 한립은 서령불새가 아직도 자색공작과 한데 엉켜있는 것을 보았다.

둘 다 실체를 지니지 않았고 현묘한 화염을 품고 있어 진정으로 승부를 보려면 시간이 걸릴 듯했다.

한립은 눈을 가늘게 뜨고 노인을 향해 말했다.

“이런 잔꾀로 시간을 끌지 마시지요. 수사께서 진정한 능력을 보이지 않으시니 제가 먼저 제대로 된 공격을 해볼까요?”

수결을 맺은 그의 뒤로 삼두육비의 금색 법상이 떠올랐다. 법상은 여섯 개의 팔을 휘둘러 여섯 개의 빛구슬을 만들어냈다.

휘우우웅!

여섯 빛구슬이 기세등등하게 노인을 향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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