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1325화 (1,082/2,000)

1325화. 영천요새(靈天要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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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빛이 미친 듯이 반짝였고, 은색 뇌전빛이 거대한 바람기둥 여러 개를 갈랐다. 그리고 권풍(拳風)이 소리 없이 일었다.

바람기둥 중심에서 거대한 금색 소용돌이가 나타나 회전했다. 결국 바람기둥들은 금색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폭풍해(暴風海)를 벗어난 묵령성주는 더욱 속도를 높여 빠르게 협곡을 빠져나왔다. 그 후에는 별 다른 일 없이 반년 만에 영족 영역에 도착했다.

한립 일행은 선박 위에서 낮은 산들이 연결된 성벽을 내려다보았다.

성벽 뒤로 하늘을 찌를 듯 높은 산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었다.

안개로 둘러싸인 산봉우리 중턱에 삼각형 모양을 한 높은 탑들이 오밀조밀 세워져 있었다.

“전방에 보이는 것이 그 유명한 영족의 영천요새(靈天要塞)입니다. 인요족의 천연성과 비슷하게 이종족이 영족 영역에 침입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합니다. 다만 우리는 초대형 진법을 이용해 종족의 영역을 전부 막아두고 천연성에만 출입구를 남겨 놓은 것과 달리 영족은 주변이 모두 험지라 대군이 들이닥치기 어려워 몇 군데 요충지만 지키면 되지요. 그래서 이런 요새가 영족 곳곳에 7개나 존재한답니다.”

막간리가 한립을 향해 설명해주었다.

“요새의 방비가 철저해도 그냥 통과하는 것도 가능할 겁니다. 그런데 막 형은 영천요새를 돌아 영족 영역으로 진입하고 싶다고요?”

“영왕과 미리 약속하고 찾아온 것도 아니고, 삼청뢰소부를 구하는 일을 가볍게 여길 수도 없으니 조용히 움직이는 것이 나을 겁니다.”

“막 형의 말씀이 일리가 있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지요.”

한립이 고개를 끄덕였고 다른 이들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선박은 방향을 틀어 요새 측면으로 날아갔다.

* * *

거대 성벽 뒤 산봉우리에 위치한 거탑.

놀라운 진법이 새겨진 하얀 벽 앞에서 젊은 부인이 미간을 좁혔다. 하얀 벽 위의 진법 하나가 미약하게나마 기이한 파동을 일으킨 것이다.

요새에 막대한 영력을 지닌 인물이나 기물이 나타나지 않고는 이 ‘복라도(卜羅圖)’가 반응을 보일 리 없었다.

미부인이 바깥을 향해 소리치자 영족 병사가 들어와 허리를 숙였다.

“천감 대인을 뵙습니다.”

“이상한 파동이 감지되었다. 화리(火離) 3호 구역을 순찰하고 오거라.”

“존명!”

영족 병사가 나가고 백여 명의 영족인들이 영천요새를 떠나 묵령성주가 머물던 곳을 살피러 갔다.

이때 묵령성주는 이미 그곳을 벗어나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병사들은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 소식을 듣고 미부인은 얼굴을 굳혔다.

별일 아닐 수도 있었지만 무언가 그녀의 마음을 굉장히 불편하게 했다. 이에 그녀는 한참 고민하다 오랜 세월 감찰 업무를 맡아 피로한 탓이라 여기고 이 일을 잊기로 했다.

한편 한립 일행은 조용히 흑수(黑水) 지대를 지나는 중이었다.

어째서인지 한립은 묵령성주를 거둬들이고 보호막을 크게 펼쳐 은월 등을 보호하고 있었고, 막간리는 작은 빛의 장막을 만들어 날아갔다.

보호막 밖은 노란 안개가 가득했고 검은 물속에서는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괴이한 소리가 들릴 때마다 크고 작은 두 보호막은 왜곡되거나 극심하게 떨려 막대한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느닷없이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함께 검은 물이 갈라지고 검은 그림자가 한립의 보호막을 향해 달려들었다.

한립은 무표정하게 손끝을 튕겼다.

펑!

검은 그림자는 망치로 머리라도 두들겨 맞은 것처럼 휘청거리다 처음보다 더 빠른 속도로 튕겨나갔다.

두꺼비를 닮은 작은 짐승은 등에 날카로운 가시가 달려 있었고 전신이 어두운 노란색을 띄었다.

한립의 공격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무시무시한 위력이 담겨 있어 웬만한 최상급 보물도 그 자리에서 부서질 만 했다.

그런데 작은 짐승은 검은 물위로 떨어지기 직전 균형을 되찾고 소리를 지르며 물속으로 숨어들었다.

일정 간격을 두고 이런 짐승들이 한두 마리씩 튀어나와 보호막을 공격했다. 그러나 한립과 막간리가 번갈아 가며 처리해 빠르게 흑수 지대를 벗어날 수 있었다.

서너 시진이 지난 후에는 드넓은 비취색 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영족 영역에 진입했네요! 조금 전 흑수호(黑水湖)는 보물로도 쉽게 차단할 수 없는 독을 품고 있는 데다 현서수(玄蜍獸)까지 서식해서 성가시기가 이를 데 없었어요. 현서수들이 공격력이 높지는 않아도 가죽이 두껍고 아주 끈질겨서 평범한 합체기 수사들은 떨쳐내기 쉽지 않겠어요.”

은월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허허, 한 수사의 배를 타고 이동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흑수금제의 제약을 받아 느리게 움직이는 바람에 맨 몸으로 건너왔습니다.”

막간리도 가볍게 웃으며 한립을 보았다.

“제 묵령성주 뿐만 아니라 비행보물이라면 거의 다 흑수금제의 제약을 피할 수 없을 겁니다. 거기다 현서수까지 소란을 피우니 이곳에 영족이 따로 병력을 파견하지 않은 이유를 알겠습니다.”

“그 덕에 우리는 편하게 이동하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빨리 아무도 모르게 영족 영역에 들어왔으니 말입니다. 호수에 현서수들만 서식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그 정도 수행을 지닌 다른 짐승이었으면 수확이 적지 않았을 텐데요.”

“현서수는 요단도 없고 가죽과 뼈도 보물이나 단약을 제련하는데도 쓸모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저 기이한 짐승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일 테지요. 어찌되었든 여기까지 왔으니 이번 여정은 절반은 성공입니다. 이제 영족 중심부로 가서 영왕만 만나면 되겠군요! 앞으로는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신분을 드러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한립의 말에 나머지 수사들은 공손히 답했고, 막간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다시 묵령성주를 방출했는데 평소보다 몇 십 배는 작고 외양도 평범한 비행 선박들과 다를 바 없게 변해있었다.

심지어 연허급 마정괴뢰 몇 마리도 기이한 빛이 돌고 기령족 인물과 비슷하게 기운이 달라져 있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면 이 꼭두각시들이 해결할 겁니다. 우리는 그동안 선박 안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시지요.”

준비를 마친 한립이 미소를 지었다.

“하하, 아주 좋은 생각입니다. 기령족은 본래 기물이 영성을 얻은 자들이라 한 수사의 꼭두각시로 그들의 기운을 모방한다고 해도 들킬 일은 없을 거예요.”

막간리가 박장대소를 하고 먼저 선실 안으로 들어갔다. 한립을 비롯해 모두 안으로 들어가자 검은 선박이 웅! 소리를 내며 출발했다.

* * *

영족 모처에서 새까만 피부를 가진 이종족 대승기 수사 두 명이 비밀리에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금제로 차단된 누각 안의 인물들은 생김새가 비슷했다.

그들의 대화 속에서 간간이 ‘영왕’, ‘삼청뢰소부’ 같은 단어가 들려왔다.

* * *

그 시각, 영족의 금지 내부.

경비가 삼엄한 거탑 꼭대기 층에 5개의 반짝이는 옥패가 둥실 떠있었다. 금색 뇌전들이 옥패를 둘러싸고 간간이 치지직 거리는 소리를 냈다.

영족의 인구는 인요족과 비교하면 극히 적었고 한립 일행은 일부러 구석진 곳을 택해 움직였기에 영족인들을 만날 일이 드물었다.

영족인들은 모습을 바꾼 검은 선박과 그 위에 선 마정괴뢰를 보고도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몇몇은 수행이 높은 ‘동족인’을 보고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한립의 조종을 받은 괴뢰들은 이런 ‘족인’들을 자연스럽게 상대했다.

* * *

두 달이 지난 후, 선박은 영족의 가장 큰 성인 취연성(翠烟城)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십여 만 리 정도 떨어진 곳에 영족의 성지인 복령산(伏靈山)이 있었다.

영족 내에서 무상의 지위를 누리는 ‘영왕’은 평생토록 복령산을 벗어나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성지를 지키고 있었다.

영족의 규정에 따르면 그곳에서 삼만 리 반경은 금지구역으로 합체기 미만의 수사는 접근할 수 없었고, 합체기 이상의 수사는 영왕의 허락이 있어야 복령산을 올라 산중턱에서 잠시 머물 수 있었다.

수시로 새로 성령급이 된 족인들을 불러들여 만나던 영왕은 몇 해 전 새로운 공법을 수련한다며 폐관수련을 선포하고, 모든 일을 성령들에게 맡기고 성지를 봉쇄했다.

이전에는 없던 일이라 영족인들은 술렁였지만 관리를 맡은 성령들이 잘 처신해 소란을 잠재웠다. 그러나 이상한 소문이 도는 것은 막을 수 없어 영족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오는 동안 여러 가지 정보를 수집한 한립과 막간리는 영족의 정황에 놀랐지만 계획을 변경하지는 않았다.

영왕이 얼마 전 이종족 대승기 수사와 삼청뢰소부를 놓고 거래한 것을 고려하면 정말 폐관 수련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남몰래 무슨 일을 꾸미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무슨 일을 하려는지는 몰라도 삼청뢰소부가 꼭 필요한 한립과 막간리는 물러날 수 없었다.

그들은 상의 끝에 취연성 인근에 묵령성주를 멈추고 은월, 주과아, 화석 노조 그리고 마정괴뢰들을 남겨 두기로 했다. 대승기 수사들끼리 움직이면 상대가 악의를 품어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었다.

반나절 후 한립과 막간리는 영족 성산 가까이로 접근했다.

은신술을 펼친 한립은 고개를 들어 아름다운 무지개로 뒤덮인 비취색 거대 산봉우리를 보고 동공을 수축했다.

그의 수행에도 영족의 성산에서 알 수 없는 위압감을 느꼈다. 산봉우리 자체가 그가 지닌 극산들에 뒤지지 않는 막대한 위력을 지닌 보물이었다.

“영왕이 성산의 위력을 그대로 노출한 것이 흥미롭지 않습니까?”

투명하게 변해 옆에서 날아가던 막간리가 혀를 찼다. 대승기 수사인 그도 한 눈에 성산의 현묘함을 알아본 것이다.

“막 형, 영왕이 강력한 금제를 대놓고 펼쳐 놓았는데 무턱대고 침범해도 될 지요?”

“안 될 것이 무엇입니까? 먼저 실력을 드러내지 않으면 영왕이 먼저 나서서 우리를 만나주지도 않을 것입니다. 설마 막상 성산에 이르니 마음이 바뀐 것은 아니겠지요?”

차분한 한립의 물음에 막간리가 미소를 지었다.

“하하, 막 형께서 계획이 있으시다면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어찌 우물쭈물 하겠습니까.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한립도 개의치 않고 웃으며 답했다. 그들은 결정을 내리고 따로따로 행동에 들어갔다.

막간리가 한 손으로 수결을 맺고 주문을 외자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인족 대승기 수사의 투명한 몸에서 우윳빛 광채가 번지더니 그의 몸이 액체로 변해 종적을 감춘 것이다.

그걸 본 한립도 소매를 털었다.

파앗!

부적이 날아올라 보라색 주술문자로 변해 그를 뒤덮어 안개로 변했다. 안개가 걷힌 자리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얼마 전 새로 제련한 태일화청부였다.

대승기에 이른 후에 사용할 일이 많지 않았으나 태일화청부가 무용지물이 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선계 비술로 제련한 부적이라 그의 수행이 증가함에 따라 위력도 증폭되었다.

아쉬운 점은 재료를 거의 다 써서 몇 장 남지 않았고 아껴 쓰는 중이었다. 영족 성지인 복령산에 숨어들어 적인지 벗인지 모를 영왕을 만나러 가는 오늘이야 말로 아껴둔 부적을 쓰기에 적기였다.

한립은 허상화 된 몸으로 표표히 날아갔다.

그의 몸이 복령산에 진입하려는 찰나 몇 겹의 금제 파동을 느낄 수 있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의식 일부를 연결해 두었기에 막간리도 무사히 산으로 진입해 그와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수시로 순찰을 도는 영족 병사들을 지나쳤다.

다양한 색의 갑옷을 걸친 병사들은 요족처럼 괴상한 용모를 하거나 영기의 빛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화신 혹은 연허 급의 고계 수사들이었다.

고계 수사들로 이뤄진 병사들이 순찰을 돌고 있으니 평범한 수사들은 절대 성산에 침입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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