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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324화 (1,081/2,000)

1324화. 상고제단

*

습지는 녹색 독무(毒霧)가 가득했고 개미처럼 작은 독충들이 득실거렸다. 평범한 요족 수사들은 꺼릴 만한 험한 지역이었지만 한립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피부에서 은색 불길이 일어나 주변의 독무와 독충들을 깡그리 태워 그 무엇도 그의 곁에 접근하지 못했다.

가끔 주제를 모르고 덤비는 요수들은 그가 손을 쓸 것도 없이 은월이 해치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습지 구석에 도착했고 눈동자에서 남색빛을 일렁인 한립이 멀리 물웅덩이 위에 떠있는 낡은 제단을 발견했다.

“찾았다. 화석, 너는 이곳에 남아 있거라.”

한립이 미소를 띠고 화석에게 명을 남겼고, 화석 노조는 허리를 굽혀 명을 받들었다. 그는 신이 난 은월과 주과아를 데리고 제단 쪽으로 날아갔다.

사각기둥 모양의 제단은 총 3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표면에 정체모를 상고 문자들이 가득했다. 대부분이 녹색 이끼로 가려져 있었고 네 귀퉁이도 무너져 아주 오래되어 보였다.

“과연 상고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사남사방단이 맞아! 보화 수사의 말 대로라면 특정 시간에 여기에 새겨진 공각 표식을 발동해 소령계로 통하는 입구를 찾을 수 있을 게야. 과아, 너는 소령계에서 태어나 혼백에 그 계면의 기운이 남아 있을 것이다. 잠시 후 네 혼백의 힘을 빌려 정확한 위치를 찾겠다.”

“예, 선배님! 최선을 다해서 보조하겠습니다.”

주과아가 서둘러 답했다. 그녀의 밝은 표정으로 보아 소령계로 돌아가는 일을 무척 기대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은월은 옆에서 미소를 머금었지만 나서지는 않았다.

한립이 소령계에서 남궁완을 찾으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굳은 심경에 평범한 속세의 여인들처럼 질투하기보다는 진심으로 그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를 기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립은 보화가 거짓말을 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으나 상고제단을 이용해 이계의 계면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는 일은 처음이라 착오가 생기지는 않을까 신중을 기하고 있었다.

보화가 특정 시기에만 상고제단으로 소령계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다고 하지 않았으면 진작 찾아 나섰을 것이다.

한립은 눈앞의 제단을 보고 금빛으로 주과아를 감싸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곧 제단 가장 높은 곳에서 파동이 일고 그들이 나타났다.

은월은 여전히 제단 가장 아래쪽에 남아 그의 행동을 관심어린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제단 위에는 텅 비어 아무것도 없었고 테두리를 따라 바닥에 원형 문양 진법이 남아 있었다. 문양들은 바닥 곳곳에 퍼져 있었으나 모서리 쪽의 주술문자들은 흐릿했다.

한립은 의외라 여기지 않았다. 문양 진법이 완전하든 일부가 부서졌든 탐색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가 길게 숨을 들이마시며 두 손으로 수결을 맺고 법결을 문양 진법으로 던져 넣었다.

쿵!

문양 진법이 반짝거리다 발동되어 제단 위에 알록달록한 빛 알갱이들이 나타나 몰려들었다. 한립은 눈썹을 꿈틀하며 손가락을 튕겨 법결을 던지는데 속도를 더했다.

제단이 웅웅 진동하고 부드러운 빛의 티가 응결되어 서서히 돌기 시작했다. 이때 한립이 법결을 던지기를 멈추고 한 손바닥을 펼쳐 지면으로 가져갔다.

푸확!

푸른 빛기둥이 그의 손바닥에서 분출되어 문양진법을 통해 제단으로 흘러들어갔다. 정순한 법력을 흡수한 제단은 더욱 격렬하게 흔들렸다.

이런 상황이 일다경 가량 이어지고 한립은 제단에 체내의 진원의 4분의 1을 불어넣었다. 문양진법은 밑 빠진 독처럼 채워지지 않았다.

한립은 놀라 헛바람을 들이마셨다.

오랜 세월 요족 수사들이 상고제단의 존재를 알면서도 관심을 두지 않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제단을 발동하는데 필요한 법력을 대승기 수사가 아니면 감당할 수 없어서였다.

합체기 수사 중에서도 법력이 심후한 자가 최상급 영석들을 갖고 와 전력을 다하면 제단을 발동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를 일이었다.

상고제단의 능력은 대부분 보조적인 것들이라 대승기 수사들도 공연히 제단을 발동하는데 법력을 낭비하지 않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아래쪽 문양 진법이 눈을 찌를 듯한 빛을 머금더니 법력을 빨아들이던 흡입력이 사라졌다.

펑!

진법에서 알록달록한 주술문자들이 마구 분출되어 제단 위에서 거대한 원반을 만들었다. 문양 진법에 새겨진 표식들과 비슷한 표식들이 원반 곳곳에서 빛을 발했다.

한립은 얼굴이 환해지며 문양 진법에서 손을 떼고 푸른 고대 거울을 불러냈다.

휘휘휙!

이어 그는 원반의 몇 곳을 가리켰고 손끝에서 수정실이 튀어나가 원반에 떨어져 존재하는 부호들로 파고들었다.

다른 부호 표식들보다 어둑하던 것들이 빛을 머금고 빙글빙글 회전하기 시작했다.

“지금이다.”

“예, 선배님!”

한립의 말에 주과아가 머뭇거리지 않고 손가락으로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의식 한줄기가 그녀의 미간에서 빠져나와 거대한 원반 중심으로 날아갔다.

서서히 회전하던 부호들이 동시에 몸을 떨고 불가사의한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부호들이 회전하고 원반이 깜빡거리는 사이 무수히 많은 주술문자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동시에 푸른 고대 거울이 웅웅 거리자 그 안에서 무언가 어른거렸다.

한립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묵묵히 뭔가를 기다렸다.

한식경 후, 거대 원반이 수없이 깜빡거리고 눈에서 푸른빛을 번뜩인 그가 낮게 소리쳤다.

“찾았다.”

그의 손이 무형의 파동을 일으켜 주변을 장악했다.

펑!

거대 원반의 부호와 표식이 대부분 사라지고 열댓 개만이 남아 하얀빛을 방출했다.

한립은 그것을 자세히 살피다 시선을 앞쪽의 푸른 거울로 돌렸다. 푸른 기운에 휩싸인 매끄러운 표면에 무언가 또렷하게 떠올랐다.

우웅!

거울이 길게 울부짖으며 거대한 지도가 나타났다. 지도 밖 어딘가에서 눈부신 빛이 요동치며 원반의 도안과 공명했다. 그 모습에 한립은 미간을 찡그렸다.

“한 선배님, 소령계의 입구는 찾으셨습니까?”

옆에서 기다리던 주과아가 조급히 물었다.

“찾았다고 해야 할 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소령계로 연결되는 영계의 통로가 뜻밖에도 우리가 있는 풍원대륙에 없다는 뜻이다. 아마 다른 두 대륙에 있겠지.”

“다른 대륙이요? 뇌명대륙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혈천대륙을 이르심입니까?”

“그건 모른다. 제번의 탐색 범위가 풍원대륙으로 제한되어 소령계의 진정한 입구를 찾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다른 대륙의 제단을 찾아 시도해봐야 할 것 같구나.”

“그렇다면 다른 대륙으로 가야겠네요.”

주과아는 한립의 설명을 듣고 퍽 상심한 얼굴을 했다.

“그래야겠지. 소령계 공간입구는 한번 고정되면 최소 수백 년 간은 변하지 않으니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 소령계로 진입할 시기가 조금 미뤄지는 것뿐이야.”

한립도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의 수행에 다른 대륙으로 향하는 것도 큰 부담은 아니었다. 게다가 빙백 선자의 화신과 약속한 일도 있으니 가는 김에 함께 처리하면 될 것이다.

그는 서둘러 생각을 정리하고 거대 거울을 회수한 다음 제단의 문양진법에 법력을 던져 넣었다.

쿠르릉!

극심한 진동이 멈추고 알록달록한 빛들이 사라졌다. 허공의 거대 원반도 진법의 힘이 유지되지 않자 서서히 흩어졌다.

일다경 후 제단은 원래의 낡고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갔고 한립은 주과아와 함께 번득여 제단 아래 은월 옆으로 이동했다.

“한 형, 어찌 되었습니까?”

“썩 좋지도 않고, 그렇다고 나쁜 상황이라 할 수도 없다.”

한립은 쓴웃음을 지으며 간단히 설명했다. 이에 은월은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미소를 머금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그다지 나쁜 결과라고는 할 수 없네요. 지금 당장 소령계 입구를 찾을 수는 없어도 보화 수사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은 확인했으니까요. 곧바로 다른 대륙으로가 비슷한 제단을 찾으면 될 것입니다.”

“풍원대륙을 떠나 다른 대륙에서 해야 할 일도 있으니 함께 처리하면 될 것이다. 일단은 영족으로 갔다가 네 조부의 천겁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겠지만 말이다.”

“한 형, 영왕은 비밀이 많은 존재이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은월이 걱정스레 당부했다.

“조심할 테니 걱정 말거라. 영왕이 백만 년 이상 살았을 지도 모른다는 소리를 듣고 더욱 더 그 자의 내력에 흥미가 생겼다.”

“혹시 영왕이 본 계의 존재가 아닐까 의심하시는 것입니까?”

은월이 그의 말뜻을 알아듣고 놀라 물었다.

“경전을 찾아보니 영족은 인요족이나 인근의 야차족 등 다른 이종족들과 비교해서 뒤늦게 영계에 나타났다. 대충 백만 년 쯤 되었는데 대량의 영족인들이 단시간에 나타나 그 수를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지.”

한립은 자신이 생각한 바를 들려주었고 은월은 안색이 수시로 달라졌다.

“여기 일은 마쳤으니 그만 가자꾸나! 화석 노조는 실력은 고만고만해도 물 속성 신통이 꽤 뛰어나 다른 대륙에서도 쓸모가 있을지 모르겠다. 함께 성도로 데려가야겠다.”

“대승기 수사의 곁에 머물면서 수시로 지도를 받을 기회가 생기면 화석 수사도 절대 거절하지 못할 겁니다.”

은월의 말에 한립이 미소 짓고 금빛으로 은월과 주과아를 감싸 날아올랐다.

* * *

반년 후 양족 접경지대의 성도.

비밀스런 금지(禁地) 안에서 돌연 맑은 휘파람소리가 하늘 높이 울렸다. 성도의 제단들이 공명하자 고계 수사들은 전부 그 소리를 듣고 희색을 드러냈다.

성도의 동부에서 단약을 제련하던 한립도 세발 솥 안에 법결을 던져 넣으며 휘파람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힐끗 쳐다보았다.

“막 수사가 완전히 회복하였구나. 이제 영족 구역으로 출발해야겠군.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어야 할 것인데!”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더는 휘파람 소리를 신경 쓰지 않고 솥의 은색 불길로 법결을 던져 넣는데 집중했다.

* * *

한 달 뒤.

방대한 크기의 묵령성주가 성도 위에 떠올라 허공을 뚫고 날아갔다. 그 위에는 한립, 은월, 주과아 외에도 막간리과 요족 합체기 수사인 화석 노조가 함께하고 있었다.

화석 노조는 은월의 말대로 한립이 한동안 데리고 다니겠다고 하자 기쁜 마음으로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는 동부로 돌아가 간단히 짐을 챙겨 한립을 따라 성도로 왔다.

한립은 먼저 이런저런 단약도 챙겨주었고 가끔 수련 상의 지도도 해주어 그는 놀랍게도 겨우 반년 만에 오랜 세월 맴돌던 합체 초기 경지의 고비에서 벗어나 합체 중기에 이르렀다.

이에 화석 노조는 한립에게 더더욱 공손한 태도를 취했고 절반쯤 그의 제자라도 된 듯 굴었다.

성도를 떠난 선박은 한 방향으로 질주했다. 묵령성주의 기이할 정도로 빠른 속력에 두 달 만에 천연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립과 막간리는 성 안에서 2, 3일 정도 머물며 장로들을 만나고 바로 선박을 움직여 만황세계로 들어갔다.

본래 극도로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만황세계였지만 대승기 수사가 둘이나 탄 선박은 유람을 하듯 목적지로 향했다.

가끔 마주치는 상고 짐승들은 한립과 막간리가 나서기도 전에 괴뢰 병사들이 깨끗하게 처리했다.

유일하게 골치 아팠던 때는 거대한 협곡을 지니다 갑자기 폭풍에 휘말린 날이었는데, 바람기둥들이 선박을 압박해 위력적인 묵령성주도 그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갑판의 수많은 마정괴뢰들이 힘을 모아 바람기둥을 어느 정도 막아내기는 했지만 완전히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때 한립과 막간리가 거대 선박 좌우에 나타났다.

막간리는 두 손에서 뇌전을 뿜어 두 자루의 뇌전검을 만들었고, 한립은 커다란 금털 거원으로 변해 주먹질을 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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