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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321화 (1,078/2,000)

1321화. 영족 영역으로

*

“막 형께서는 석심 노조가 그와 무엇으로 거래했는지 아십니까?”

“아쉽게도 그건 노부도 모르고 그저 거래가 있었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대략 영왕이 석심 노조에게 아주 위험한 일 한 가지를 해주기를 바랐다는 것 같더군요.”

한립의 질문에 막간리가 뜸들이다 답을 내놓았다.

“한 가지 일을요?”

“정확한 내용은 정말 모릅니다. 노부가 이번에 마계에서 원기를 상하지만 않았어도 영왕에게 직접 찾아가 보았을 겁니다.”

“막 형, 어째서 내게는 이 일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것입니까? 우리가 힘을 합치면 영왕에게 삼청뢰소부를 얻을 방법을 찾아냈을 지도 모르는데요.”

듣고 있던 오소 노조가 미간을 좁히고 물었다.

“수사가 미리 알았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었겠습니까? 어차피 마계에서 적잖이 원기를 상했고 천겁을 앞두고 그 준비를 하기도 벅차지 않습니까. 허나 한 수사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요. 내 느낌이 틀리지 않다면 마계로 진입하기 전보다 기운이 더욱 강해진 듯합니다. 노부와 같이 영족 영역에 다녀오겠다면 삼청뢰소부 몇 장을 얻어올 수도 있을 겁니다.”

막간리는 이제야 자신의 계획을 말했다.

“막 형이 한 수사와 같이 영족에 다녀오겠다고요?”

오소 노조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렇습니다. 첫째로, 한 수사와 내가 힘을 합치면 영왕이라고 해도 우릴 무시할 수 없을 것이고 악독한 수를 쓰기 보다는 거래를 하려 하겠지요. 둘째로 지금 가지 않는다 해도 언젠가는 영계에 가야 할 겁니다. 우리의 천겁이 도래할 날도 멀지 않았으니까요. 노부 역시 다음 천겁을 무사히 넘길 수 있다는 확신이 없습니다. 한 수사도 이 부적을 얻으면 그 덕에 언제고 천겁에서 목숨을 구할 수 있을지 모르지 않습니까?”

막간리가 담담하게 자신이 영계로 가려는 목적을 밝혔다. 복잡한 표정의 오소 노조는 잠시 할 말을 찾지 못했고 한립도 침음했다.

“막 선배님! 삼청뢰소부가 그렇게 귀하다면 영왕이 요구하는 일도 극도로 위험할 것입니다. 그 요구를 들어주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단 말입니다.”

듣고 있던 은월이 끼어들었다.

“영왕과의 거래이니 당연히 위험부담이 있을 것이네. 허나 우리가 걷는 수도의 길이 험난하지 않는 적이 있었던가? 물론 상대의 조건이 너무 극악하면 한 수사는 천겁의 위험이 닥치지 않았으니 거절해도 되네. 노부가 바라는 것은 그저 영계로 함께 가주는 것뿐이네.”

막간리도 진작 그런 생각을 해봤는지 고민 없이 답했다. 은월이 그 말을 듣고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한립과 오소 노조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막 형, 만일 삼청뢰소부가 있다면 오소 수사가 천뢰를 넘길 확률이 얼마나 늘어나는 것입니까?”

“적어도 1할 5푼은 될 겁니다.”

“확실히 적지 않은 확률입니다. 오소 수사, 최대한 천겁 시기를 늦추면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겠습니까?”

“길어야 십년일 겁니다. 그 이상은 노부도 버틸 재간이 없습니다.”

오소 노조가 입 꼬리를 꿈틀하며 진지하게 답했다.

“십년이면 시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요.”

한립은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린 듯했다.

“한 수사, 그 말은…….”

“오소 수사를 도울 방법을 찾아냈고 그게 막 수사와 제게도 큰 이득이 되는 일 아닙니까. 당연히 포기할 이유가 없습니다. 막 형, 받으십시오!”

한립은 웃으며 말을 마치고 소매 속에서 하얀빛을 날렸다. 막간리가 무의식중에 받으니 작은 병에서 은은한 약 향기가 새어나왔다.

“이건…….”

“회분단(茴焚丹)입니다. 원기를 보하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이걸 복용하면서 1년간 폐관수련을 하면 소모한 원기를 그럭저럭 되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그때 함께 영왕을 찾아가도록 하지요.”

“그렇게 효과가 좋은 단약이라면 사양하지 않고 잘 쓰겠습니다.”

한립의 말에 막간리는 기쁜 얼굴로 약병을 거두었다. 한립은 고개를 돌려 오소 노조를 향해서도 말했다.

“오 수사, 제가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막 수사보다 원기 소모가 심하고 혼백에도 문제가 있는 듯합니다.”

“흠, 그걸 알아보았습니까? 봉인에 갇혀 있는 동안 강력한 괴충의 의식 비술에 기습당해 혼백에 약간의 문제가 생기기는 했습니다. 회복하려면 한동안 고생을 좀 해야겠지요. 천겁 전에 가능할 지 모르겠습니다. 만일 혼백을 완벽하게 돌려놓지 않으면 그나마 있던 성공 확률도 소용이 없겠지요.”

오소 노조가 탄식하듯 말했다.

“조부님, 그게 정말이세요?”

“이제 와서 숨길 것이 뭐가 있겠느냐.”

“한 형, 혹시…….”

조부의 말에 은월이 다급히 한립을 돌아보았다.

“걱정 말거라, 혼백을 치유하는데 쓰이는 단약도 지니고 있으니.”

한립이 웃으며 손을 젓고는 손바닥을 뒤집어 색이 다른 약병 몇 개를 오소 노조에게 던져주었다.

“감사합니다. 한 형이라면 분명 방법이 있을 줄 알았어요.”

은월은 감격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오소 노조도 두 눈이 밝아져 약병들을 끌어오고 감사 인사를 했다.

“하하, 우리 두 사람 모두 한 수사에게 단약을 받게 되었습니다.”

막간리가 기분 좋게 미소 지었고 오소 노조도 고개를 끄덕였다.

“대도를 이루기 전에 저도 두 분의 보살핌을 받았으니 그때의 은혜를 갚는 것뿐입니다. 1년 후 막 형께서 원기를 회복하면 영족으로 가서 삼청뢰소부를 얻어오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오소 수사께서는 부상을 치유하시면서 천겁을 대비하시면 되겠고요. 저희가 제때 돌아와 수사의 도겁을 돕겠습니다.”

한립이 진지한 얼굴로 상황을 정리했다.

“두 분의 은정은 잊지 않겠습니다만 무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양족에 대승기 수사라고는 우리 셋뿐인데 만일 변고를 당한다면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겁니다. 노부는 삼청뢰소부가 있어도 천겁을 무사히 마칠 가능성이 크지 않으니 그런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없습니다.”

오소 노조가 한립과 막간리에게 각각 포권을 하며 당부했다. 이에 한립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취했고 막간리는 앉은 채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나라고 뭐 수사를 위해서만 가는 줄 아십니까? 영왕의 손에 부적이 한 장 뿐이었으면 안 갔을지도 모릅니다.”

“수만 년 간 친분을 쌓아온 수사의 마음을 내 어찌 모르겠습니까. 고맙습니다.”

오소 노조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감사를 표했고, 막간리는 잔잔히 미소만 지었다.

“처음에는 본 족을 떠나지 말고 한동안 머무르라고 하시더니 이제는 함께 떠나자고 하시고.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무거워진 분위기에 한립이 농담조로 말했다. 그 말에 막간리의 얼굴이 약간 붉어지며 민망해했고 걱정 가득하던 은월도 마음을 놓고 입 꼬리를 끌어올렸다.

한립과 만간리 선배가 삼청뢰소부를 갖고 돌아온다면 조부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조금은 높아지는 셈이었다. 이후 그들은 화제를 바꾸어 양족의 중대사를 논의했다.

또한 그간 양족에 뛰어난 자질을 지닌 후배들이 나타났고, 그 중 특별한 이들은 대승기 노조들도 이름을 들어 알고 있었다. 한립은 관심이 생겨 관련 소식을 물었다.

이렇게 대청 안에서는 반나절 동안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 * *

저녁이 되자 한립은 성도에 마련된 영기가 농염한 동부에서 해대소와 기령자 등 문하 제자들을 만났다.

한립은 제자들을 보고 만족스런 기색을 보였고, 그중 나이가 가장 어린 백과아는 놀라운 성취를 이루었다.

“백과아, 너는 못 본 사이에 벌써 화신 후기에 이르렀느냐. 빙수지체(氷髓之體)의 천부적인 자질이 이제야 빛을 발하는구나.”

“전부 사부님의 지도와 단약 덕분입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어찌 제자가 이렇게 빨리 화신 후기에 이를 수 있었겠는지요.”

백과아는 고개를 숙이고 고분고분 답했다.

“기령자, 넌 후기 경지에서 고비를 겪고 있구나.”

한립이 미소를 짓다 불쑥 기령자에게 물었다.

“사부님께 아룁니다. 제자 후기를 대성하기 직전인데 어떻게 해도 한 걸음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흠칫 놀란 기령자가 앞으로 나섰다.

“그래, 이제 너희도 만황세계로 가서 경험을 쌓을 때가 온 것 같구나. 지난 세월 너희의 수련이 막힘없이 순조로웠던 것은 뛰어난 자질과 단약의 보조 작용 때문이었다. 허나 연허기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폐관수련을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온실의 화초처럼 자라서야 어찌 진정한 성장을 할 수 있겠느냐. 또한 만황세계로 나아가면 스스로의 기연과 조화를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내 깨달음과 경험을 전부 전수해 준다고 해도 너희와는 맞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스승님! 안 그래도 만황세계로 가 경험을 쌓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스승님의 허락을 얻었으니 안심하고 준비해 하루 빨리 천연성으로 향하겠습니다.”

기령자는 그의 분부가 놀랍기보다는 무척 반가웠다. 백과아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분부를 받아들였다.

“허나 만황세계는 아주 위험할 곳이다. 화신 후기인 너희가 아니라 합체기 수사라도 죽을 수 있는 곳이니까 말이다. 몇 가지 보물을 내릴 것이니 유용하게 쓰도록 하거라.”

“감사합니다, 스승님!”

한립이 준다는 보물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기령자와 백과아는 은혜에 감사해 했다. 한립이 미소를 짓고는 그들에게 고리를 하나씩 날려 보냈다.

“이 보물들은 원래 몇 년 후에나 줄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꺼내게 되었구나. 그리 많지는 않아도 평범한 합체기 수사를 상대로도 몇 번은 너희의 목숨을 구해줄 것이다.”

기령자와 백과아가 의식으로 저물탁을 살피고 놀람과 기쁨에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그에게 대례를 올렸다.

“스승님, 사형과 사매가 만황세계로 가면 저도…….”

옆에 선 해대소가 불안한 표정으로 몸을 꼬고 있다 참지 못해 나서서 고개를 숙였다.

“하! 겨우 화신 초기의 수행으로 내가 아무리 보물을 내려주어도 진정한 위기 상황에 대처나 할 수 있겠느냐? 게다가 한동안 이목을 피해있어 은뇌영근에 관한 소문이 잠잠해 졌다지만 아직도 너를 호시탐탐 노리는 이들이 있을지 모른다.

성도를 나서자마자 정체모를 노괴들에게 잡혀가 천겁을 막는 도구로 쓰이고 싶은 것이냐. 일단 얌전히 성도에서 수련하고 있거라. 현재 내 명성이면 네가 성도에 있는 한 다른 이종족 대승기 수사라도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다. 아니면 당시 입조심하지 못한 벌을 지금에라도 곱절로 받겠느냐?“

한립은 해대소가 말을 맺기도 전에 코웃음을 쳤다.

“아, 아닙니다. 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으로 해주십시오, 스승님!”

곱절로 벌을 받겠냐는 말에 해대소도 번뜩 정신이 들어 서둘러 뒤로 물러났다.

“그리 경솔해서야……. 되었다. 기령자가 만황세계에서 경험을 쌓는 동안 문하의 제자들은 네가 맡아 지도 하거라. 이 기회에 신중해지는 법을 익히란 말이다.”

한립이 피식 웃다 분부를 내렸다.

“예, 스승님!”

“예, 스승님.”

기령자는 단번에 답했지만 해대소는 풀이 죽은 얼굴로 원하지 않는다는 티를 팍팍 내었다. 그러나 그는 신경 쓰지 않았고 고개를 돌려 온화한 시선으로 주과아를 쳐다보았다.

“네 수행도 진보가 있구나. 성도로 돌아와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수련에 임했다는 증거겠지. 내일 오시(午時)에 나를 찾아 오거라. 따로 물을 것이 있다.”

“예, 한 선배님. 제 시간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주과아는 기쁜 얼굴로 서둘러 답했다.

“그렇지, 빙봉 사고는 소식이 있느냐?”

한립이 고개를 끄덕이며 기령자를 향해 물었다.

“사부님께 아룁니다. 전해진 소식은 없지만 원신패가 멀쩡한 것을 보면 아직 만황세계를 유람 중이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금쯤이면 돌아올 때도 되었는데 설마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인가? 원신패가 훼손되지 않았다고 해도 어딘가에 갇혀 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니더냐.”

기령자의 말에 한립이 생각에 잠겼다.

“그건 아니지 않을까요? 빙봉 사고께서는 그래도 연허기의 고계 수사시고 빙봉의 몸을 지니셔서 평범한 합체기 수사를 마주쳐도 스스로 방어할 능력은 되시지 않습니까.”

해대소가 크게 고민하지 않고 말했다.

“그러길 바라야겠지.”

한립은 미간을 좁히며 어쩔 수 없다는 듯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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