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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319화 (1,076/2,000)

1319화. 괴뢰대군

*

“마정괴뢰요?”

은월이 눈썹을 끌어올리며 한립을 보았다.

“마계 고유의 괴뢰술이다. 이전에 마계에서 연구해볼 기회가 있었는데 눈앞의 꼭두각시는 거의 합체 후기에 상당하는 수행을 지녔구나.”

땅에서 완전히 빠져 나온 거대 괴뢰는 냉랭히 눈을 번득이고 손에 들고 있던 거대한 칼에서 날카로운 빛을 뿜어 한립을 갈랐다.

괴뢰는 체구가 크고 동작이 전광석화와 같아 눈 깜짝할 사이에 한립의 머리 위로 한기가 들이닥쳤다. 서늘한 기운에 피가 얼어붙는 듯했다.

“선천동광(先天凍光)이라, 흥미롭구나! 서령불새가 당할 만 했어.”

한립이 눈을 빛내며 한 팔을 들어 올리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공기의 파동이 퍼져나갔다. 불바다 전체가 요동치고 거대 칼날은 그의 손가락에 가볍게 막히고 말았다.

한립은 칼날을 타고 한기가 흘러드는 데도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거대 괴뢰는 칼이 막히자 입을 벌려 빛기둥을 분출하고 한 팔을 휘둘렀다. 동시에 주술문자로 둘러싸인 적홍색 거대 손이 나타나 한립을 낚아채려 들었다.

거대 손이 떨어지기 전에 이미 작열하는 열기를 품은 붉은 빛이 먼저 날아들어 주변에 탄 냄새를 풍겼다.

붉은 빛은 허공조차 녹일 만큼 위력적이었다.

한립은 얼굴을 굳히고 소매를 앞쪽으로 펄럭여 회색 기운을 뿜어냈다.

거대 괴뢰의 빛기둥이 번득하고 종적을 감추었다. 마치 회색 안개 속으로 걸어 들어가 시야에서 사라진 듯했다.

그리고 새하얀 손이 소매를 빠져나와 붉은 빛과 적홍색 거대 손을 살짝 내리쳤다.

퍽!

평범해 보이는 한립의 손바닥이 붉은 빛을 통과해 적홍색 거대 손과 부딪쳤다. 한립의 손보다 족히 10배 이상 큰 거대 손이 무형의 괴력을 이기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다가 가루가 되었다.

이에 거대 괴뢰는 붉은 빛을 일으켜 소와 호랑이를 닮은 마물 허상들을 만들어냈다.

이때 눈빛이 서늘해진 한립이 입에서 푸른 검기를 뿜었다. 검빛이 번득이며 괴뢰 근처로 이동해 상대의 커다란 몸을 휘감았다.

서걱!

불길과 보호막이 검빛을 전혀 막지 못했고 거대 괴뢰는 허리가 잘려 두 토막이 났다.

한립을 향해 달려들던 반우반호(半牛半虎)의 마물 허상들이 애달피 울부짖으며 푸른 연기로 변해 사라졌다.

그러나 두 동강 난 괴뢰의 몸이 지면의 수정돌에서 화염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붉은 빛이 수정실처럼 변해 괴뢰의 몸과 수정 지반을 연결했다.

거대 괴뢰의 잘린 몸이 반짝반짝 빛나고 금방 회복되었다.

‘그렇다면…….’

그걸 본 한립은 말없이 손바닥을 펼쳤다.

쿠릉

거대한 금색 빛의 손이 괴뢰 위에서 나타나 떨어져 내렸다. 거대 괴뢰의 몸이 묵직해진 순간 거대 손이 사정없이 괴뢰를 짓눌렀다.

콰콰콱!

폭음 속에서 주먹 크기의 금빛덩어리가 빠져나와 달아나려 했다.

한립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펼치고 있던 손을 오므렸다.

쉭!

금빛 덩어리는 엄청난 압력에 휩싸여 강제로 한립의 손바닥으로 끌려왔다.

자세히 살펴보니 표면에 정교한 문양과 구멍이 뚫린 금색 구슬이었다.

구슬은 무게가 거의 나가지 않아 손에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보통의 꼭두각시와 뭔가 다르다 했더니 그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군.”

한립은 금색 구슬을 던졌다 받았다를 반복했다. 옆에 서 있던 은월은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한립이 대승기에 이르러 엄청난 실력을 가졌다는 것을 알았지만 지금까지와는 크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자신보다 훨씬 강한 거대 괴뢰를 별 것 아니라는 듯 단번에 제거하는 것을 보니 그와의 실력 차이가 분명하게 느껴졌다.

은월이 한탄하고 있을 때 허공의 은색 화염들이 서서히 하나로 뭉쳐졌다.

펑!

은색 불새가 다시 나타났다. 한립은 불새를 재촉하지 않고 들고 있던 금색 구슬을 거둔 후 법결을 날렸다.

이에 은색 불새는 맑게 울부짖으며 불바다 속에서 몸집을 부풀렸다. 사방의 불길이 거대 불새에게 밀려나 넓은 공간이 생겨났다.

“거두거라.”

한립이 낮은 목소리로 명을 내렸다.

쿠르르릉!

불새의 거대한 은색 날개에서 수많은 은색 주술문자들이 쏟아져 나와 강력한 흡인력을 만들었다.

불새의 기운에 밀려나던 불바다가 우웅! 울며 열댓 개의 불기둥으로 뭉쳐져 빨려 들어갔다.

적홍색 화염 기둥은 불새의 몸에 닿는 족족 소리 없이 녹아들었다. 일다경이 지나자 불바다가 모두 사라졌다.

“저건……!”

은월이 초롱초롱한 눈길로 주위를 둘러보고 깜짝 놀랐다. 그들이 서있는 곳은 아주 넓은 탑 위로 표면에 적홍색 수정구슬이 가득 박혀 있었다.

탑 근처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덩이가 파여 있었고 그 안에 크고 작은 마정괴뢰들이 웅크리고 있었다.

색색의 갑옷을 입은 괴뢰들은 각종 병기를 들고 있었고 개중에는 요수의 형상을 한 것도 있었다. 멀리서도 흉흉한 기세가 대단했고 거의 십만 마리는 될 것 같았다.

한립은 눈썹을 빠르게 끌어올리며 괴뢰들의 상태를 살폈다.

대부분이 결단, 원영기 수행을 지니고 있었고 화신, 연허급도 10분의 1은 되었다.

그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방금 없앤 거대 괴뢰가 수십 마리나 된다는 점이었다.

수십 마리 마정괴뢰들은 합체 초기나 중기의 수행을 지니고 있었다. 이런 엄청난 병력이 바깥 세상에 나타난다면 어느 세력이든 군침을 삼킬 것이다.

“읍령 노조는 마정괴뢰를 제련하는 대종사(大宗師)였어.”

한립이 입 꼬리를 끌어올렸다.

“이 괴뢰들을 어떻게 하시려고요?”

은월은 놀라운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길게 심호흡을 하며 신이나 물었다.

“당연히 전부 가지고 가야지. 아니면 마족들을 위해 남겨두기라도 해야겠느냐?”

“좋은 생각이네요! 저도 도울 게요.”

들뜬 은월을 보고 한립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은월은 곧장 각양각색의 저물탁을 날려 보냈다.

한립도 차분히 수십 개의 다채로운 고리들을 쏘아 보냈다. 고리들이 고공에서 힘껏 선회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바람을 가르며 날아갔다.

저물탁이 빙글 돌아 기운을 뿜을 때마다 구덩이 속 마정괴뢰들이 사라졌다. 수량이 꽤 되었지만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하니 단시간 내에 대부분을 챙길 수 있었다.

그런데 합체급 괴뢰를 거두려 할 때 마정괴뢰 표면이 반짝이면서 저물탁의 기운에 저항했다.

은월은 그 모습에 더욱 기뻐하며 손가락을 튕겨 최상급 괴뢰들을 향해 법결을 날렸다.

웅!

괴뢰들은 몸을 떨며 저항하지 않고 고리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쿠르릉!

마지막 괴뢰가 구덩이에서 사라지고 거대 탑이 지하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다. 은월은 얼른 한립 곁으로 돌아왔고, 눈빛이 달라진 한립은 거대 불새를 거두고 고공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탑이 지하 깊숙이 가라앉자 모든 진동과 소음이 사라졌다. 이에 탑 뒤에 숨겨져 있던 회백색 석벽과 푸른 석문이 드러났다.

“가자. 저 안쪽에는 금제의 파동이 느껴지지 않는구나. 저곳이 바로 읍령 노조의 진정한 보물 창고라는 소리겠지.”

“네!”

한립의 말에 은월이 즐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립은 문으로 다가가 손을 뻗었다. 무형의 괴력에 석문이 소리 없이 열리고 전당이 나타났다.

한립은 희색을 드러내며 은월을 데리고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기다랗게 놓인 바위 위에 크고 작은 함과 상자들이 가득했고 용기마다 보물이 담겨 있었다. 어떤 것은 휘황찬란하게 빛을 뿜어 바라보기도 어려웠고 또 어떤 것은 아주 낡고 변변치 않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들이 발산하는 기운이 전부 바깥세상에서는 최상급 보물이라고 칭찬할 만 하다는 점이었다.

한립은 대충 전당을 훑고 중앙에 위치한 다른 바위들보다 세 배는 높은 섬돌로 시선을 돌렸다.

그 위에 세 가지 물건이 놓여 있었는데 녹슨 고대 등잔과 노란 호리병박 그리고 팔뚝 절반 크기의 새까만 배였다.

그는 의식으로 세 물건을 살핀 한립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웃음이 떠올랐다. 은월 역시 세 보물에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냈다.

한립은 먼저 고대 등잔을 향해 손짓했다. 표면에 푸른빛이 반짝이는 등잔이 쉭! 하고 날아들었다. 그는 피식 웃으며 그것을 은월에게 던져주었다.

“현천잔보를 녹여 만든 보물 같은데, 내겐 크게 쓸모가 없으니 네가 사용하거라.”

“고맙습니다, 한 형! 사양하지 않고 잘 쓸게요!”

은월은 거절하지 않고 냉큼 등잔을 받아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다음으로 한립은 노란 호리병박을 끌어왔다.

“이건…….”

언뜻 놀란 눈빛을 보이던 그가 손바닥을 뒤집어 호리병박을 넣어두고는 세 번째 보물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새까만 선박은 말로만 듣던 ‘묵령성주’가 분명했다.

한립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선박을 응시하다 한 손으로 수결을 맺고 보물을 가리켰다.

검은 선박이 부르르 몸을 떨며 섬돌 위에서 천천히 떠올라 검은 주술문자를 마구 흩날렸다. 선박 주위로 광풍이 불고 전각 내의 다른 보물들이 공명했다.

* * *

반 시진 후, 고요하던 호수 표면에 부글부글 거품이 올라오고 거대한 파도가 만들어졌다.

콰르르릉!

경천동지할 굉음과 함께 호수를 포함한 빙원(氷原) 일부가 부서졌다.

얼음 조각들이 눈발처럼 휘몰아치는 와중에 거무튀튀한 무언가가 서서히 떠올랐다. 웬만한 거산에 뒤지지 않을 방대한 규모의 선박이었다.

선박은 십여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새까만 표면에 현묘한 문양들이 가득했다. 뱃머리와 꼬리에는 각종 요수가 그려진 커다란 은색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그리고 거대 선박의 갑판 위에는 마정괴뢰 병사들이 꼿꼿이 서있었다.

쿠쿵!

별안간 거대 선박은 검은 빛으로 변해 시야에서 사라졌다.

* * *

쿠르릉!

두 달 후, 영계의 이름 모를 산맥 위.

먹구름이 사방팔방에서 모여 들어 거대한 소용돌이를 이루었다. 엄청난 공간파동이 전해지고 은색 뇌전들이 번뜩이자 거대 선박이 나타났다. 이에 주변 공간이 일그러져 하늘이 찢겨지는 듯했다.

선박의 가장 높은 곳에서 한립이 두 눈을 감고 고요히 서있었다. 그 뒤로는 들뜬 얼굴의 은월이 보였다.

“드디어 영계로 돌아왔구나. 묵령성주가 공간신통을 지니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그 덕에 생각보다 편하게 돌아왔어.”

선박이 소용돌이를 빠져나오자 한립이 눈을 떴다.

“하하, 그러니까요! 찾아낸 공간접점이 안정적이지 않아서 시간이 더 걸릴 줄 알았는데 다행이에요.”

은월이 빙긋 웃음을 머금었다.

“마계에 헛걸음을 한 것은 아니었어.”

“맞습니다.”

한립의 말에 읍령의 보물 창고에서 귀한 보물을 얻은 은월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이곳의 위치를 파악하고 성도로 가자꾸나. 막 형과 오소 선배님께서 그곳에서 우릴 기다리고 계실 테니까.”

“이곳이 인족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가 봐요?”

“계획대로라면 그럴 것이다.”

“잘 되었네요. 어서 가요, 우리!”

신난 은월을 보고 한립은 웃음을 머금었다. 곧바로 묵령성주가 우웅! 진동하고 앞으로 쏘아져 나갔고, 그 자리에 있던 새까만 소용돌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조용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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