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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315화 (1,072/2,000)

1315화.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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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신술 3성에 이르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2성에 이를 때도 여러 방법을 써야 했는데 더 높은 경지에 이르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텐데요.”

한립은 약간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네가 명충모의 진극체와 싸우는 것을 진법을 통해 지켜보았네. 육체는 현선 못지않더군! 거기에 내가 지도까지 해주면 연신술 3성에 이르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쉬울 것이야. 연신술을 익힌 적은 없어도 순찰사자로 일하며 금술을 익힌 자들을 여럿 잡아봐서 비술을 익히는 요령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많다네.”

사내가 다 생각이 있다는 듯 말했다.

“조금 난감한 제안이십니다. 연신술이 후환이 무궁무진한 비술인 것을 알고도 어찌 아무 대책 없이 다음 경지로 나아가겠습니까? 이 상태로 선계로 가게 된다고 해도 모두 저를 잡으려 들 것인데요.”

“네 말을 전부 믿지는 못하겠다는 말로 들리는구만? 괜찮네, 자네의 실력에 더 이상 연신술을 익히지 않아도 길면 천 년, 빠르면 백 년 내로 정신에 이상이 생기는 것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야. 그때가 되면 제 발로 빈도를 찾아오게 될 걸세. 하하, 그러니 지금은 선계로 비승해 어떤 대접을 받게 될지 고민하는 것은 너무 이르지 않겠나? 어떻게 연신술의 위험에서 벗어나 선계로 비승해야 할지도 모르면서 말이야.”

한립이 주저하는 태도를 보이는데도 사내는 재촉하지 않았다.

“양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대도(大道)를 이룰 수 있을지 없을지가 걸린 중대한 일이라 신중할 수밖에 없어 그럽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여쭈어도 될지요?”

고민하던 한립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래, 또 뭐가 궁금한가?”

“선계가 어떤 곳인지 듣고 싶습니다.”

“하하하, 선계라! 지금은 너무 이르고 비승 도겁 전에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겠네. 지금 말해 줄 수 있는 것은 선계가 광활하다는 것뿐이야.

선계에 올라가야 곳곳의 선역이 얼마나 넓은지 이해할 수 있을 테지만, 평범한 선인이 평생을 걸어가도 가장 작은 선역도 두루 살필 수가 없다네.

그러니 수사가 연신술을 익혔다고 해도 선역의 큰 성에만 가지 않으면 우리와 같은 순찰사자를 마주칠 가능성은 아주 낮고 퍽 안전하게 지낼 수 있네.”

“선배님의 말씀을 들으니 더욱 선계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사내의 설명에 한립이 미소를 머금었다.

“선계는 수련 자원과 각종 천지보물들이 하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족하다네. 그래서 빈도도 간절히 돌아갈 방법을 찾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만 하면 된 것 같네, 당장 내 제안에 대답할 마음이 없다면 가보도록 하게. 그리고 이건 명충모를 처리하는데 도움을 준 보수일세. 하하, 빈도는 일생 동안 은원(恩怨)이 분명한 삶을 살아왔거든.”

발우 속에서 하얀빛이 휙 날아들었다. 한립은 의식으로 그것을 살피고 표정이 달라져 하얀빛을 끌어왔다.

종이처럼 얇은 옥 조각에는 금은색 문자가 빽빽하게 적혀 있었는데 선계 문자인 은과문과 금전문이었다.

“선계에서 갖고 내려온 보부(寶符)인데 선계에서도 귀한 자운정(紫芸精) 한 방울을 품고 있으니 근원의 불을 태운 손실을 보충해 줄 게야.”

사내의 말에 한립이 기뻐하며 옥 조각을 챙기고 감사인사를 올렸다.

“이제 그만 가보게. 언제고 계속 연신술을 수련할 마음이 생기면 이곳으로 찾아오고.”

이 말을 끝으로 한립 발밑에도 회백색 빛의 진법이 나타나 그를 전송시켰다.

“……이미 연신술을 익혔으면서 도중에 그만두겠다? 그럴 수만 있었으면 다들 좋은 것만 취하고 중도에 그만두었겠지.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다시 보게 되겠구나.”

사내가 혼잣말을 하고 발우가 웅! 진동했다.

제단과 8개의 청동 기둥들이 공명한 후 석림 전체가 초대형 진법 문양을 이루어 허상처럼 사라졌다.

* * *

1년 후, 상고봉인이 있던 시인(始印)의 땅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산봉우리 위에 검푸른 장포를 걸친 청년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는 명상에 잠겨 있다 눈을 뜨고는 눈동자에서 보라색 빛을 일렁였다.

“어째서 저 자가…….”

표정이 달라진 그의 어투에서 경계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파공음과 함께 푸른 둔광이 날아들어 산봉우리 위에 멈추었다.

“원염 수사, 약속 시간보다 두 시진이나 먼저 나와 기다리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둔광이 가시고 나타난 한립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산 정상에 앉은 이는 원염이었다.

“나와 이곳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이는 수사가 아닙니까. 보화 수사는 어디 있습니까? 전부 그녀가 짠 계획은 아니겠지요.”

“보화 수사야 지금쯤 백만 리 밖의 비운곡(翡雲谷)에 있을 겁니다. 제가 약속 장소에 대신 나온 것은 그녀의 부탁을 받고 수사를 이곳에 한동안 붙들어 두기 위해서고요.”

뜻밖에도 한립은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목적을 밝혔다.

“비운곡은 육극 수사가 잠시 요양하고 있는 곳이 아닙니까! 보화가 시조 자리를 되찾기로 결단을 내린 모양이군요. 열반 쪽도 누군가 막고 있을 테고요. 외부 계면에서 온 대승기 수사 중 열반 수사를 막을 자라면 아마 동아 노인일 가능성이 높겠습니다. 도대체 보화 수사가 무엇을 약속했기에 이런 부탁을 들어주기로 한 것입니까?”

원염은 난처한 얼굴이었지만 그다지 화내는 얼굴은 아니었다. 오히려 예상보다 더 차분해보였다.

“열반 수사를 누가 맡을지는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변이 없는 한 수사의 예상이 맞겠지요. 뭐, 보수는 적당히 챙길 만큼 챙겼기에 저도 한 계면의 시조를 붙들어 두겠다고 약조한 것 아니겠습니까.”

“흥, 명충모를 참살할 때 여럿이 힘을 합치기는 했어도 수사의 공이 가장 크다는 소리는 들었습니다. 대승기에 이르러 우리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존재가 된 것은 인정하지요. 허나 제가 이곳을 떠나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느긋한 한립의 말에 원염이 서늘하게 눈을 빛냈다.

“명충모는 들으신 대로 모두 힘을 합쳐 처리한 것이지 제가 홀로 어찌할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수사께서 제가 막아서는데 무사히 빠져나갈 자신이 있으시다면 언제든 시도해 보셔도 좋고요.”

한립의 말에 원염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는 한참을 고민하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어찌 되었든, 본 좌가 봉인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보화 수사가 여러 대승기 수사들을 모아 도와주러 왔기 때문입니다. 신세를 졌으니 이번 일에는 나서지 않는 것으로 하지요.

만일 성공한다면 그녀는 시조의 지위를 되찾을 것이고 실패한다면 두 번째 기회는 주어지지 않을 겁니다. 성계의 3대 시조는 줄곧 진퇴(進退)를 함께 하였으니까요.”

“하하, 그렇게 결정을 내리셨다니 다행입니다. 괜찮으시면 시간도 난 김에 같이 수련 상의 깨달음이나 교류하실까요?”

반가운 소리에 한립이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저도 한 수사의 엄청난 수련 속도에 흥미가 많습니다. 교류를 원하신다면 당연히 응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원염도 오래 고민하지 않고 답했다. 한립은 거침없이 원염과 멀지않은 곳으로 내려갔다.

* * *

거대 호수 속 작은 섬 위에 동아 노인이 무표정하게 떠있었다.

그 맞은편에는 투명하게 반짝이는 갑옷을 걸친 빼어난 외모의 청년이 노인을 노려보고 있었다.

* * *

비취색 대나무들이 가득한 산골짜기를 하얀 안개가 자욱하게 덮고 있었다.

그 깊은 곳에서 폭음이 잇달아 울리고 출렁이는 안개 속으로 흐릿하게 분홍색 꽃잎들이 나풀거렸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육극, 네 수행은 여전하군. 아, 예전에 나와 싸우며 생긴 부상에서 아직 회복하지 못한 탓인가. 이제 네 여섯 개의 화신도 내 손에 전부 목숨을 잃었고, 네 본체도 현천영역 안에 갇히고 말았다. 결국 지금 상황에 만회할 여지란 없단 뜻이다.”

보화의 목소리가 꽃잎 허상 속에서 유유히 퍼져 나갔다.

그러나 하얀 안개 속에서는 계속 쿵쿵거리는 굉음만 들려올 뿐 사람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화신들을 희생해 지금까지 버틴 건 열반과 원염이 와주기를 기다린 것이겠지?”

보화는 개의치 않고 입꼬리를 끌어올려 조소했다.

“그렇다면 네가 어쩔 것이냐! 내가 시조 직위를 얻고 나서 열반과 원염은 약속을 했다. 반드시 최선을 다해 내 안위를 지켜주겠다고 말이야. 지금은 내가 진정한 3대 시조의 1인이라는 것을 잊지 말거라. 네가 분명 복수하러 올 줄 알고 나는 진작 그들에게 연락을 취해 놓았다.”

분노에 찬 또 다른 여인의 목소리가 안개 속에서 전해졌다.

“그래, 그랬겠지. 하지만 널 도와주러 오려면 여유가 있어야 할 텐데 그럴 시간이나 있을지 모르겠군.”

보화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뭐라고? 설마, 널 돕는 자가 있단 것이냐. 성계에서 감히 원염과 열반에게 대적할 자는 없을 텐데, 이계의 강자란 말인가! 이계 수사가 어찌 권력을 잃은 너를 도우려 시조급 수사들과 맞설 수 있지?”

육극은 약간 당황한 목소리였다.

“머리는 제법 돌아가는구나. 나 역시 도움을 줄 수사를 찾느라 적잖은 대가를 치렀지. 한 명은 시조들과 실력이 엇비슷할 테고 다른 한 명은……. 하하, 그들보다는 위겠지. 육극,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고 있었다면 퍽 실망스러운 소식이겠군.”

“보나마나 동아 노인이 포함되어 있을 텐데, 나머지 한 명은 누군지 모르겠군. 이계의 강자 중에 성계 시조를 압도할 강자가 있다고? 나를 굴복시키려 허풍을 떠는 건가?”

“허풍인지 아닌지는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다. 원염과 열반의 거처가 이곳과 그리 멀지 않은데 도움을 주러 달려온다면 곧 도착할 것이 아니겠느냐.”

보화가 담담히 답했다.

육극은 열이 받았지만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상대의 말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이 상황에서 더 이상 대화를 나눠봐야 치욕스러울 뿐이었다.

그 모습에 보화가 냉소하고 육극이 놀랄 만한 말을 꺼냈다.

“지금 내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이곳에서 육체와 원신이 소멸하더라도 다시 힘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 알고 있다.”

“무슨 헛소리야!”

“네게 꽁꽁 숨겨둔 일곱 번째 화신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줄곧 잘 숨겨 왔지만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지. 이렇게 내가 알게 되었으니까 말이야.”

보화의 미소가 짙어졌다.

“어디서 무슨 소문을 들었는지 몰라도 내가 속을 줄 아느냐?”

육극은 보화의 오랜 숙적답게 중대한 비밀이 들통 난 상황에서도 냉정을 유지했다.

“일곱 번째 화신은 목숨을 잃을 경우를 대비해 준비한 것이겠지. 분신에 불과하지만 네 실력이면 본체의 기억과 신통을 회복하게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야. 지금쯤이면 네가 숨겨 놓은 일곱 번째 화신을 처리할 때가 되었는데…….”

“정말 화신을 숨겨 놓은 곳을 알아냈단 말이냐! 그럴 리가, 누굴 보낸 것이냐?”

“흑악 녀석이 네 곁에 없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다니.”

“흑악? 겨우 합체기 꼬마 녀석이 내가 펼쳐 놓은 금제를 뚫을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래, 흑악의 능력으로는 힘들겠지. 그래서 네 금제와 상극인 현천의 보물을 쥐어 보냈다.”

“현천의 보물을 감히 남에게 넘겨주다니. 그 녀석이 그냥 달아나 버릴까 걱정도 되지 않더냐!”

“현천의 보물에 따로 손을 써두었는데 걱정할 이유가 무엇이지? 이 정도 말상대를 해주었으면 성의는 다 한 것 같은데. 이제 친히 저승길로 보내주마.”

보화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서늘해졌다.

하얀 안개 속을 서서히 날아다니던 분홍 꽃잎들은 빛을 머금고 빠르게 나부끼기 시작했다.

예리한 꽃잎들이 커다랗게 변해 산골짜기 속에 칼날들이 가득 찬 것 같았다.

쿠콰콰쾅!

꽃잎과 안개가 거대한 빛덩이로 뭉쳤다가 사라졌다. 빛과 파동이 가신 자리에는 하나의 인영밖에 남지 않았고, 그녀는 작게 탄식한 후 흐릿하게 변해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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