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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311화 (1,068/2,000)

1311화. 진극체(眞極體)

*

사방으로 퍼져 있던 분홍 꽃잎들이 보화를 중심으로 몰려들어 한립과 해 도인을 보호하고 있었다. 영역은 축소된 대신 그 전보다 더 밝은 빛과 진한 향기를 내뿜었다.

그런데 명충모의 방대한 육체가 보이지 않았고 하얀 해골 머리들만 잔뜩 박힌 입에서 하얀 화염을 뿜어댔다.

분홍 꽃잎들이 하얀 화염과 충돌할 때마다 괴이한 파동이 일었고 보화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 이마에 땀방울까지 맺힌 그녀의 모습은 무척 위태해 보였다.

“한 형, 영역을 축소했지만 오래 버티지 못할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이것을 깰 수 있을지 시도해 보지요. 이곳이 선계도 아닌데 상대가 진정한 현천영역을 펼쳤을 거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보화의 말에 한립이 낮게 답하고 해 도인에게 전음을 보냈다. 그는 허공을 박차고 올라 거대한 금털 원숭이로 변하더니 어깨를 털어 삼두육비의 흉측한 괴물로 변신했다.

크아앙!

거원이 포효하며 여섯 개의 주먹을 마구 내질렀다. 여섯 덩이의 빛구슬들이 손바닥에서 튀어나가 분홍꽃 영역 밖의 백골들을 강타했다.

콰르릉!

여섯 개의 빛구슬이 금빛 기운으로 흩어지자 해골들도 재가 되었다. 일격으로 꽃 영역 밖 하얀 허공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보화는 그들을 둘러싼 현천영역의 법칙의 힘이 약화된 것을 감지하고 희색을 드러냈으나 그 미소는 오래가지 못했다.

하얀빛이 반짝반짝 되살아나 해골 머리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해골 머리들은 하얀 화염으로 금빛을 밀어내고 더욱 강력한 기운을 뿜어냈다.

“과연 끈질기구나. 그럼 이건 어떠냐!”

거원이 이미 예상했다는 듯 중얼거리며 한 손으로 수결을 맺어 허공을 가리켰다.

쿠쿵!

흩어지던 금색 기운들이 날아올라 금색 소용돌이로 만들어졌다. 천지원기가 요동치고 쾌속으로 회전하는 소용돌이 속에서 불경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센 흡입력에 수많은 해골 머리들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비록 해골 머리들은 그 자리에서 다시 생겨났지만 소용돌이의 흡인력도 끝없이 늘어났다.

이에 해골머리들은 전부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 분쇄되고 말았다.

“헉, 헌원신광(軒元神光)! 아니, 아니지, 저건 그걸 모방한 신통에 불과해. 키키킥, 진짜 헌원신광이었다면 두려워했을지 모르나 가짜라면…….”

허공에서 명충모의 가냘픈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파동이 일고 검은 주술문자가 금색 소용돌이 속으로 쇄도했다.

한순간 법칙의 힘이 모든 것을 장악했다.

콰쾅!

커다란 소용돌이가 검은 주술문자를 흡입하고는 급속도로 작아져 결국에는 사라져 버렸다.

“시간법칙.”

한립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상대의 법칙의 힘은 동급 법칙의 힘을 억제해 상대하기가 무척 까다로웠다.

그동안 보화는 최선을 다해 꽃 영역을 유지하면서 상대의 현천영역에 대항하는 중이었고, 해 도인은 거대한 뇌전 구슬로 맨 처음 명충모가 펼쳐 놓은 회색 그물과 맞서고 있었다.

거대 그물은 어떤 것으로 이뤄졌는지 해 도인이 뇌전의 힘을 극성으로 끌어올렸는데도 전혀 뚫리지 않았다.

그러나 명충모에게는 일반적인 보물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가장 강력한 방법에 법력을 집중하고 있었다.

한립이 침묵하다 멀리 허공 어딘가를 쳐다보았다.

“당신의 시간법칙이 강력하다는 것은 알겠습니다. 허나 몇 번이나 사용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요. 이런 역천의 신통은 무한정 사용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한립이 변한 삼두육비 거원이 주먹을 휘둘러 수많은 금색 주먹허상을 해골 머릿속으로 날려 보냈다.

대량의 금빛 기운 속에서 주술문자들이 응결해 열댓 개의 소용돌이를 형성했다.

그때 누군가 코웃음을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검은 주술문자들이 나타나 정확하게 소용돌이 속으로 파고들었고 아까와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금색 소용돌이는 소리 없이 줄어들다 형체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거원은 무표정한 얼굴로 주먹질을 해 더 많은 금색 주먹 허상들을 날려 보냈다. 금빛 속에서 주술문자들이 응결해 다시 소용돌이치려 하고 있었다.

“이 녀석이 감히!”

명충모가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키에에에엑!

이번에는 검은 주술문자 대신 모든 백골 머리들이 괴성을 지르고 모여들어 산만한 골격을 이루었다. 거대 골격에 박힌 무수히 많은 해골 머리들이 고통에 몸부림 쳤다.

그런 거대 골격이 백 개는 되었고 금색 소용돌이가 흡인력을 일으키는 데도 두 손으로 수결을 맺고 꼿꼿이 서서 버티고 있었다.

켁켁켁켁.

그런데 갑자기 골격들이 괴이한 웃음소리를 내며 전신에서 회백색 주술문자를 뿜어 반짝이는 뼈 갑옷을 입고, 백골 창을 든 거대 병사로 변신하고 있었다.

병사들은 대승기 수사와 맞먹는 기운을 발산했고 들고 있던 창을 소용돌이로 투척했다.

휘휘휘휘휙!

금색 소용돌이는 수축하다 터져나가고 거대 병사들은 뼈창을 만들어 또 다시 투척했다. 그 모습에 보화는 안색이 하얗게 질렸지만 영역을 유지하는 것도 벅차 도움을 줄 여유는 없었다.

하지만 뼈창의 위력을 보고 가만히 당하고 있을 한립이 아니었다. 그가 변한 거원이 현천참령검을 불러내 소리 없이 휘둘렀다. 십여 개의 녹색 선이 허공을 갈랐다.

쿠쿠쿠쿵!

녹색 선과 뼈창들이 크고 작은 두 개의 영역 에서 동시에 소멸되었고 한립은 막대한 법력 소모로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

그러나 거대 백골 병사들은 팔을 휘저어 뼈창을 만들어냈고 이전보다 더욱 강한 기운을 발산하며 투척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뼈창 끝에서 희미하게 법칙의 힘이 전해졌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현천영역이라 해도 한계는 있을 테고 저게 마지막 공격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번 공격만 버텨내면 저도 돕겠습니다.”

보화가 눈을 빛내며 황토색 못을 들어올렸다. 바로 현천의 보물, 토황정이었다.

파아앗!

못을 쥔 보화가 한 팔을 거대 꽃나무 줄기 속으로 집어넣고 폭발적으로 노란 빛을 흘려보냈다. 법력이 흘러들자 시들어 가던 꽃나무에 반짝이는 기운이 흘렀다.

꽃나무는 단비를 만난 식물처럼 생기를 머금고 몸집을 키웠다. 이에 현천영역 전체의 꽃잎들이 손바닥 크기의 분홍색 수정 방패들로 변했다.

삼두육비의 거원은 표면의 은색 문양 진법에서 빛을 발하며 오색 기운을 여섯 개의 손으로 움켜쥐고는 현천참령검으로 쏟아 붓고 있었다.

우웅!

비취색 장검도 강력한 빛을 발했고 장검의 은색 문양도 꿈틀거리며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한립이 변한 거원이 온힘을 실어 장검을 휘둘르자 비취색 고리가 날아갔고, 동시에 그들을 둘러싼 백골 병사들도 뼈창을 힘껏 투척했다.

검은 기운이 맴도는 뼈창은 아주 날카로워 보였다.

뼈창이 손을 떠난 순간 백골 병사들은 폭죽처럼 펑펑 터져 가루로 변했다.

쿠쿠쿠쿠쿵!

엄청난 수의 뼈창들이 미친 듯이 불어나고 있는 비취색 고리와 충돌했다. 천지가 진동하고 검은빛과 녹색 빛이 현란하게 반짝였다. 법칙의 힘 때문에 천지원기가 혼란스러워지고 있었다.

한립이 현천의 보물로 날린 일격도 대단했지만 대승기 수사에 맞먹는 백여 마리의 해골 병사가 날린 뼈창도 만만치 않았다.

검기가 변한 비취색 고리는 대부분 뼈창과 같이 소멸되었고 남은 십여 개가 검은 빛으로 변해 꽃의 영역에 침입했다. 신기하게도 어떤 소리나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보화가 동공을 수축하며 소매 속에서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자 흐릿하게 파동이 생겨나 안 그래도 작아진 꽃의 영역이 더욱 작아져 열댓 개의 검은빛을 감쌌다.

바깥을 잠식하고 있던 명충모의 영역도 힘을 다했는지 서서히 물러나 깊은 바다 속 풍경으로 돌아갔다.

물속에는 여전히 녹색 빛과 노란 빛이 강렬한 파동을 발산하며 한립, 보화 그리고 해 도인을 지키고 있었다. 보화는 녹슨 못을, 한립은 장검을 쥐고 있었다.

그들은 현천의 보물에 의지해 무사했지만 보화가 만들어낸 현천영역은 철저히 망가지고 말았다.

어느새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간 해 도인도 한립 옆에 바짝 붙어 있었고 허공의 거대 회색 그물은 보이지 않았다.

그물도 조금 전 법칙의 힘에 흩어진 것인지 아니면 해 도인이 무슨 수를 써서 없앤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이 나타나자 명충모가 물에 떠서 그들을 마주보고 있었다.

“겨우 하계 것들이 현천의 보물을 두 개나 지니고 있어? 내 화신들이 당할 만도 했구나. 위선뢰는 물론이고, 너희 두 명도 하계에서 만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인물들이겠어.”

이채를 띤 명충모의 중간 머리가 사뭇 진중한 얼굴을 했다.

“과찬 감사합니다. 당신도 원기를 다 회복하지 못한 것으로 아는데 현천영역을 다 발휘하시고 대단하시군요. 허나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은 수행이 얼마 되지 않겠습니다.”

보화가 날카롭게 물었다.

“오, 지금 나를 이길 수도 있겠다고 헛꿈을 꾸는 것이더냐?”

명충모는 한심하다는 듯 키득키득 웃음을 흘렸다.

“우리가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이 더 이상 강력한 신통을 쓸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침묵하던 보화가 빙긋 웃음 지었다.

“그게 무슨 말이……. 이, 이게 무엇이냐!”

여유만만 하던 명충모가 놀란 얼굴로 앞다리를 들어올렸다. 부드러운 피부를 지닌 앞다리에 보일 듯 말 듯 노란 바늘이 박혀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보화는 미소를 머금고 들고 있던 토황정을 흔들었다.

노란 빛과 함께 명충모 앞다리에 박힌 가느다란 바늘이 커다란 못으로 변해 법칙의 힘을 발산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노란 주술문자들이 흘러나와 산만하던 괴충을 법칙의 힘으로 축소시켰다.

“현천의 보물을 세 개나 지니고 있었던 것이냐! 아니, 언제 내 몸에 이런 짓을……. 아, 천지법칙이 충돌할 때 뭔가 찜찜하다 했더니 네 년이 이런 짓을 벌이고 있었구나!”

음흉한 성품의 명충모도 체내의 법력이 제압되자 당황했는지 안색을 굳혔다.

“하하, 세 번째 현천의 보물이라니 틀렸습니다. 토황정은 본래 한 쌍으로 두 개가 함께 있어야 본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지요.”

보화가 밝게 미소 지으며 들고 있던 노란 못을 날려 보냈다.

‘명충모가 제아무리 대단해도 두 개의 토황정으로 억제하면 법력을 전혀 쓸 수 없을 것이다!’

명충모 머리 위로 파동이 일고 두 번째 토황정이 떨어져 내렸다. 불시의 습격에도 명충모는 코웃음을 치며 앞 다리를 움직였다.

펑!

뜻밖에도 두 번째 토황정은 바람에 흩날리는 풀잎처럼 나가떨어졌다. 파공음이 들리고 다른 앞발이 날아가 튕겨나가던 노란 거대 못을 잡아챘다.

“어쩐지 현천의 보물치고 위력이 부족하다 했더니 한 쌍이었구나. 마침 쓸 만한 보물이 필요했는데 잘 되었군.”

명충모는 손 안에서 몸부림치는 낡은 못을 비웃었다.

“이럴 수가……. 진원 대부분이 봉쇄당했을 텐데 어찌!”

보화는 너무 놀라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두 번째 토황정을 꽁꽁 숨겨둔 것은 마지막 순간에 필살기로 쓰기 위해서였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빼앗길 줄은 상상도 못했다.

보화는 심장이 철렁해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의지마저 꺾이고 말았다.

옆에서 명충모를 지켜보던 한립이 눈썹을 꿈틀했다.

“너희가 운이 나쁜 것을 어찌 하겠느냐. 몇 백 년 전에 나를 만났더라면 이런 허접한 수가 통했을 수도 있다. 허나 지금은…… 키키킥! 법력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아도 네 녀석들 쯤은 한 손가락으로 눌러 죽일 수도 있다.”

명충모가 나른하게 말하곤 이전과 다른 무형의 기운을 드러냈다. 강력한 기세에 한립이 입을 열었다.

“그 자신감은 당신의 강력한 육체를 믿기 때문입니까?”

“키킥, 똑똑한 자로다! 본 좌가 오랜 세월 동안 이곳에 갇혀 봉인을 벗어날 궁리만 한 줄 아느냐? 솔직히 말하면 십만 년 전에도 이곳을 떠날 수 있었다. 줄곧 이곳에 머물렀던 이유는 상고봉인의 힘을 빌려 내 옥골진체(玉骨眞體)를 진극체(眞極體)로 만들기 위함이었지.

진극체를 대성했으니 가만히 앉아 너희의 공격을 받아도 아무렇지 않을 것이다. 이제 봉인을 벗어나기만 하면 각 계면을 종횡무진해도 나를 막을 자가 없을 것이다!”

명충모가 자신의 비밀을 드러내고 광소를 터트렸다.

우드득 우드드득!

명충모의 방대한 몸에 하얀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그 틈으로 노란 주술문자와 법칙의 힘이 빨려 들어갔다.

명충모는 가볍게 몸을 떨어 틈을 없애고 앞다리에 박힌 못을 가볍게 뽑아냈다.

“말도 안 돼. 헤아릴 수 없는 세월 동안 제련한 토황정을 어찌 저리 쉽게!”

보화의 얼굴은 보기 안타까울 정도로 파리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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