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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309화 (1,066/2,000)

1309화. 거대 유골

*

황금 게는 방대한 육체를 지녔음에도 여러 다리를 재빨리 움직여 신출귀몰하게 움직였고, 투명한 하늘소 괴충도 쾌속으로 이동했기에 서로를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투명 괴충은 의식비술로 괴뢰에게 영향을 미치려 했지만 도통 통하지 않았다.

다른 쪽에서 한립이 비취색 장검을 들고 길게 포효했다. 삼두육비 법상이 떠올랐고 거대한 검기들이 날아가 거대 손을 갈랐다.

이에 보화가 정신이 번쩍 들어 자신의 두개골을 내리쳐 분홍색 꽃송이 속에서 분홍 소인을 불러냈다. 소인의 입에서 나온 분홍색 빛의 고리가 고공의 회색 기운으로 솟아올랐다.

한립이 도움을 주는 동안 그녀는 원영을 꺼내 거대 손의 주인을 직접 노릴 심산이었다.

* * *

아주 깊은 물 속.

수수한 노인과 흑포 부인이 무언가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바다 깊은 곳에 산맥이라 해도 믿을 법한 거대한 괴충의 뼈가 떠있었던 것이다. 뼈는 회백색 기운에 둘러싸여 엄청난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

수면 위에서 본 소녀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기운이었다.

“이게 명충모의 본체겠죠?”

흑포 부인이 바다 속을 꼼꼼하게 살피며 입을 열었다.

“아마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명충모의 것이 아니면 유골에 이렇게 어마어마한 기운이 남아 있을 리 없지요. 고공에 떠있던 껍데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군요.”

수수한 노인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유골에 남은 흔적으로 보건데 명충모 본체는 아주 오래 전에 죽은 듯합니다. 우리와 싸운 그 화신은 어찌된 일일까요? 설마 벌써 진서의 경지에 이르러 육체의 구속을 받지 않고 원신이 영원히 불멸하는 것은 아니겠죠?”

“노부라고 어찌된 일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맡은 일을 처리할 수 있으니 우리에게는 잘 된 일입니다. 화신이 돌아다니는 것도 유골과 관련이 있을 수 있고요.”

“아, 그럴 지도 모르겠네요! 전신의 원기를 몸 속 어딘가에 응축시킬 수 있는 상고비술이 있다고 들었는데 명충모가 좌화하기 전에 안배를 해놓아 원신만이라도 더 오래 존재할 수 있게 했을지 모릅니다. 이것만 제거하면 다 끝나는 것이겠죠?”

흑포 부인은 바로 한 손을 들어 새까만 단창을 날렸다.

“자, 잠깐!”

노인은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흑포 부인을 말리려 했지만 단창이 이미 검은 뇌전으로 변해 방대한 유골에 떨어진 후였다.

쿠콰쾅!

검은 뇌전이 유골 머리에서 터져 무수히 많은 뇌전실로 변했다. 분명 굉장한 위력이었는데 검은 뇌전이 가라앉고 유골의 머리에는 작은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이럴 리가 없는데요. 천기창(天機槍)은 현천의 보물은 아니라도 최상급 보물도 종잇장처럼 뚫는 물건입니다.”

흑포 부인이 당황해 중얼거렸다. 그때 유골에서 금은색 주술문자가 퍼져 나왔다.

“뭔가 이상합니다!

안색이 확 달라진 노인은 만수패를 던져 반짝이는 옥문으로 만들었다. 그 안에서 만여 마리 요수들의 포효소리가 들리고 괴수 허상들이 빼곡하게 튀어나왔다.

흑포 부인도 흠칫 놀라 등 뒤로 머리가 아홉 개 달린 뱀 허상을 불러냈다. 새까만 뱀 머리 아홉 개가 입을 벌려 보라색 화염을 분출했다.

보라색 화염은 비린내가 진동했고 지나는 곳마다 물을 새까맣게 오염시켰다. 여인의 또 다른 강력한 신통인 황천예염(黃泉穢焰)이었다.

그것은 독성이 강한 81개의 오염물질을 섞어 만든 화염으로 닿기만 해도 목숨을 잃고 만다.

황천예염에 당한 생령은 육체가 썩은 물이 되어 녹아내리는 것은 물론이고 혼백도 윤회의 자격을 박탈당해 귀문을 통과할 수 없었다.

황천예염은 쓰면 쓸수록 줄어드는 터라 흑포 부인도 목숨이 걸린 일이 아니면 잘 사용하지 않는 신통이였다.

보라색 화염과 무수히 많은 괴수 허상에 파묻힌 유골이 갑자기 턱을 움직여 키키킥 웃음소리를 냈다.

유골이 두 팔을 움직이자 무형의 힘이 퍼져 괴수 허상들을 밀어내고 보라색 화염도 벽에 막힌 것처럼 다가오지 못했다.

유골은 음산한 웃음을 흘리며 두 손을 짚고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운이 더 강해지고 있습니다. 어서 더 강력한 신통으로 공격해야 합니다.”

노인이 유골을 훑으며 놀라 소리쳤다. 그는 먼저 흐릿하게 변해 물러나 자신의 뒤통수를 내리쳐 남색 기운을 일으켰다.

남색빛으로 이뤄진 노인과 똑같이 생긴 소인이 허공에 가부좌를 틀고 나타났다. 소인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남색 구슬을 연달아 방출했다. 엄지손가락 크기에 매끄러운 표면을 지닌 구슬들이었다.

구슬들이 수레바퀴 만하게 커져 거대 골격을 향해 날아들었다. 흑포 부인이 주춤하다 지면을 박차고 핏빛 안개로 변해 뒤쪽의 머리 아홉 개 달린 뱀 허상 속으로 뛰어들었다.

쿠쿵!

뱀은 아홉 개의 머리를 흔들며 바닷속 천지원기를 빨아들여 빠르게 실체화했다. 오색반점이 가득한 뱀 괴물은 새빨간 입을 쩍 벌려 이전보다 훨씬 더 진한 어두운 보랏빛의 화염을 뿜었다.

노인과 흑포 부인 둘 다 유골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몰랐지만 불길한 느낌이 들어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몸을 일으킨 유골은 아직 완전히 힘을 회복한 것이 아닌지 아주 느리게 움직였다.

열댓 개의 남색 구슬이 잇달아 부딪쳤고 유골 주변에서 엄청난 파랑이 일었다.

유골은 앞 다리 두 개를 뻗어 막았지만 빛구슬이 한 개씩 터질 때마다 한 걸음씩 물러나야 했다. 열댓 걸음을 물러난 유골은 매끈하던 앞다리가 상처투성이로 변해있었다.

유골이 뭔가 하기 전에 뱀 괴물이 분출한 화염이 그 주위를 둘러싸고 화염의 사슬로 잡아두려 했다.

보랏빛 불 사슬은 끔찍한 썩은 내가 풍겼고 백옥색이던 유골의 몸에 깊게 파고들어 시커먼 흔적을 남겼다. 열댓 개의 빛구슬도 아직 남아 힘을 보탰다.

불 사슬과 빛구슬이 당장이라도 거대 유골을 무너트릴 것 같았다. 이에 수수한 노인과 흑포 부인이 희색을 드러내려는데 거대 유골의 머리에서 무언가가 솟아올랐다.

작은 체구의 그림자는 명충모 원신이 변한 여자아이 화신이었다.

‘분명 다른 수사들이 상대하고 있을 텐데 어찌 여길!’

눈앞이 캄캄해진 노인과 부인이 유골을 계속해서 구속하며 여자아이에게도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이전보다 훨씬 창백해진 여자아이는 그들이 아니라 아래쪽의 유골을 보고 눈을 굴리며 아주 기분 좋은 목소리로 뭐라고 재잘거렸다. 노인과 흑포 부인은 전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였다.

유골은 하얀 기운을 일으켜 남색 구슬들이 찍어대는 것을 막고 불 사슬도 신경 쓰지 않고 느리게 여자아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유골도 턱을 움직여 나지막하게 무어라 말하고 있었다.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유골은 대수롭지 않은 기색이었으나 소녀는 얼굴이 구겨져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수수한 노인과 흑포 부인은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기회라 생각해 법력을 끌어올려 유골 공격에 힘을 실었다.

이에 남색 구슬들의 속도가 배로 빨라져 유성우처럼 유골을 강타했고 바르르 몸을 떤 아홉 개의 불 사슬도 날카로운 가시가 자라나 유골을 더 깊이 파고들었다.

물론 유골과 여자아이가 반격할 것을 대비해 수수한 노인과 뱀 괴물로 변한 부인은 소리 없이 뒤쪽으로 물러났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유골은 별 반응이 없었고 여전히 고개를 들어 소녀와 대화를 나누는데 집중했다.

휘웅!

돌연 눈빛이 흉흉해진 여자아이가 손끝에서 검은 빛을 반짝였다. 빙글빙글 돌며 크기를 키워가던 빛은 주변의 광선들을 끌어 모으고 있었다.

천지원기가 들끓으며 무시무시한 법칙의 힘이 강림했다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시간법칙!”

수수한 노인은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했고 뱀 괴물로 변한 흑포 부인도 화염을 분출을 멈추고 허둥지둥 달아나다 멀리서 멈추었다.

혼자 달아나다 소녀의 살심을 불러일으킬까 겁을 먹고 멈춰선 것이다.

아래쪽 거대 유골이 여자아이가 시간법칙을 펼치려는 것을 보고 방대한 몸을 떨며 말소리가 빨라졌다. 그러나 여자아이는 더욱 재촉하는 어투로 쏘아붙였고 어느 순간 유골이 설득당한 듯 말을 멈추었다.

파앗!

거대 유골은 입에서 커다랗고 새까만 수정돌을 뱉어냈다. 이에 여자아이는 들뜬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서둘러 수정돌로 하강했다.

아이의 두 발이 구슬에 닿기 직전,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거대 유골이 여러 다리를 신속하게 움직여 어두운 보랏빛 불 사슬을 떼어내고 주변의 남색 구슬도 전부 갈라 터트려 버린 것이다.

아이가 분노해 더 빨리 수정돌로 향하는데 놀랍게도 수정돌이 날카로운 이빨이 가득 자라난 거대한 입으로 변해 아이를 삼켰다.

아이를 삼킨 수정돌은 빛덩이로 변해 유골의 입 안으로 돌아갔다.

유골이 몸을 부들부들 떨며 동작을 멈추었다.

멀리서 기회를 엿보던 수수한 노인과 흑포 부인은 어안이 벙벙했지만 즉시 눈빛을 주고받고 한 명은 원영을 육체로 돌리고 다른 한명은 사람 모습으로 돌아가 둔광을 일으켰다.

그들은 유골에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수면위로 달아나려 한 것이었다. 위쪽에 있는 수사들과 힘을 합치면 유골과 일전을 벌여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이 솟구친 순간, 유골의 눈두덩에 검은 화염이 일어나 켁켁 웃음을 흘렸다.

고개를 든 거대 유골이 고갯짓을 두 번 하자 검은 빛덩이 두 개가 번득이고 종적을 감추었던 법칙의 힘이 다시 바다 속으로 강림했다.

죽어라 달아나던 노인과 부인은 순식간에 백골 머리 앞으로 끌려와 있었다. 흉흉한 눈빛으로 그들을 쳐다보던 거대 유골은 입을 벌렸다.

* * *

해수면 위에서 요마가 된 한립은 은색 문양진법으로 뒤덮인 손을 거대 인면충의 몸에서 뽑아내고 있었다.

거대 인면충에는 몸보다 더 큰 거대한 앞다리 한 쌍이 달려있어 아주 흉물스런 꼴을 하고 있었다.

그가 손을 뽑아내자 거대 앞발이 푸쉭 하며 쪼그라들어 다른 다리와 비슷한 크기로 변했다.

그러나 그는 손에 핏자국이 전혀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쉬익-

한립의 미간에서 수정실이 뻗어나가 거대 인면충의 몸을 꿰뚫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펑, 소리를 내며 괴충이 몸이 터져 하얀 빛으로 흩어져 버렸다.

그는 수정실을 불러들이고 안색이 어두워졌다.

반면 다른 쪽에서는 분홍색 꽃 허상이 하늘을 뒤덮었고 그 안에 은색 뇌전이 가득했다.

보화가 어느새 해 도인과 함께 현천영역을 펼쳐 또 다른 괴충을 가둬두고 있었던 것이다.

괴충의 괴이한 의식비술과 신통은 해 도인에게 통하지 않았고 보화는 영역 밖에 있어 더욱 영향을 받지 않았다.

다만 살뢰는 훼멸(毁滅)의 법칙의 힘을 담고 있어 현천의 보물과 겨룰 만 했다.

하지만 해 도인과 보화는 이미 알고 있던 터라 결코 살뢰와 직접 충돌하지는 않았다.

괴충은 보화가 펼친 현천영역을 필사적으로 달아나려 했지만 쉽게 벗어날 수는 없었다. 현천영역은 진선만이 진정으로 장악할 수 있는 선가 신통이었다.

분홍색 꽃잎들이 보화의 조종을 받아 괴충을 겹겹이 둘러싸고 가둬두었다.

아무리 저항하려 해도 괴충은 자기도 모르게 모든 행동이 느려지고 있었다.

의식의 힘을 하얀 수정 보호막으로 응결해 몸을 보호하고 회백색 뇌전으로 전신을 휘감아도 해 도인과 보화의 공격에 이미 전신에 상처가 가득했다.

한립이 그것을 보고 돌연 소매를 펄럭여 비취색 장검을 불러냈다.

12개의 녹색 실이 공간을 넘어 보화의 현천영역 안에서 괴충을 갈랐다.

이에 괴충은 보호막과 뇌전이 일시에 부서졌고 하얀 빛으로 변해 흩어졌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 것도 없었던 것 같았다.

그 모습에 흠칫 놀란 보화가 의식으로 내부를 살피고는 괴충이 사라졌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 현천영역을 거두었다.

이때 보화 옆에서 흐릿하게 파동이 일어 한립이 이동해 왔고, 천둥소리와 함께 해 도인도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와 한립 뒤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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