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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308화 (1,065/2,000)

1308화. 명충모와의 전투

*

“그럼 사양하지 않고 맛좋은 원영을 즐겨 볼까?”

아이가 혀를 날름거리며 천진하게 웃고 주먹을 쥔 채 흐릿하게 사라졌다. 속도가 빨라 한립이 파공음을 들었을 때는 검은 화염을 품은 주먹이 그의 가슴 앞에 도달해 있었다.

그러나 배시시 웃으며 나타난 아이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비취색 선이 번득 나타나 아이의 몸을 세로로 갈랐기 때문이었다.

아이의 주먹에 맞아 가슴이 뚫린 한립은 금빛으로 흩어졌고 멀리서 멀쩡한 한립이 무표정하게 걸어 나와 손에 비취색 장검을 쥐었다. 약간이지만 법칙의 힘이 남아 있었다.

“현천의 보물! 헤헤, 네 놈을 잡아먹으려면 조금 더 놀아줘야겠구나!”

괴이한 일이 벌어졌다. 갈라진 몸에서 피가 새어나오지 않고 좌우의 몸 조각이 턱을 움직여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수수한 노인과 흑포 부인이 간담이 떨려 꼼짝 못하고 있을 대 보화가 노란 못을 날리고 분홍빛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수수한 노인과 흑포 부인의 귓가에 보화의 목소리가 울렸다.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고 뭐하는 것입니까. 명충모의 본체를 없애야만 우리가 이곳에서 살아서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저와 한 수사도 상대의 원신을 오래 붙들고 있지는 못할 것입니다.”

보화의 전음에 노인과 흑포 부인이 주저하다 둔광을 일으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보화가 봉령반에 손을 써둔 것은 열 받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저것들이 죽고 싶구나!”

소녀의 표정이 급변해 노인과 부인을 막으려는데 눈앞에 노란 못이 나타나 실그물로 변해 두 동강이 난 아이의 몸을 뒤덮었다.

실그물은 주술문자로 가득해 강렬한 법칙의 힘을 머금고 있었다. 눈빛이 서늘해진 아이는 두 쪽으로 갈라진 몸을 폭발해 검은 실로 변했고 즉시 노란 실그물이 뒤덮은 곳을 벗어나려 했다.

한립이 그것을 발견하고 전신에서 자금색 빛을 터트렸다. 현천참령검에서 녹색 실들이 잔뜩 튀어나와 검은 실들 앞을 막고 미친 듯이 베어나갔다.

쉬쉬쉬쉬쉬쉭!

녹색 실에 잘린 검은 실들이 터져 검은 기운으로 뭉쳐졌다. 한립은 얼굴을 굳히고 손을 뻗어 녹색 실들이 검은 기운을 공격하게 만들려 했다.

그런데 검은 기운들이 돌연 흩어져 자취를 감추었고 인근에서 검은 기운이 피어올라 소녀가 온전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아이가 피식 웃으며 강력한 신통을 발동하려는데 기이한 향기가 기습적으로 몰려들었다. 도처에서 분홍색 꽃잎들이 나풀나풀 날아들어 주변 공기를 끈적끈적 하게 만들었다.

놀란 소녀가 즉시 그곳을 벗어나려 했다. 그때 보화가 꽃잎들 위로 등장해 손바닥에 거대한 빛구슬을 일으켰다.

쿵!

폭발한 빛구슬 안에서 주술문자들이 흘러나와 춤추듯 주변을 맴돌았고, 폭발의 중심에서 새싹이 자라나 눈에 보이는 속도로 자라났다.

잠시 후에는 녹색 거목이 보화의 손바닥 위에 자라나고 있었다. 그녀의 주문소리가 울리고 나무 가지마다 꽃송이가 맺혀 거목 자체를 분홍빛으로 물들였다.

찰나의 순간 불경 읊는 소리와 함께 하늘과 땅이 전부 분홍색으로 변했다.

“현천영역!”

이에 소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놀랍게도 소녀 주변의 분홍기운이 덜덜 떨리며 언제라도 구속이 풀릴 듯했다.

“한 수사, 어서요!”

보화가 다급하게 외치고 아끼던 꽃나무 가지 하나를 꺾어 아래 쪽 소녀를 향해 휘둘렀다. 가지에 맺힌 꽃송이에게서 오색 주술문자가 분분히 샘솟았다.

현천영역 중심에 있던 소녀는 별안간 팔 한쪽이 사라져 비명을 질렀다. 동시에 보화가 쥐고 있던 나뭇가지도 무(無)로 돌아갔다.

그러나 곧바로 소녀의 어깨에서 검은빛이 뭉쳐져 잘려나간 팔이 복구되었고 보화도 지체 없이 가지 두 개를 더 꺾어 허공을 그었다.

쇄액! 쇄액!

이번에는 아이의 두 팔이 사라졌다. 소녀는 이를 악물고 표독스런 눈길로 어깨를 털어 팔을 자라나게 했다.

우드득, 우드드득!

이때 금빛으로 물든 한립의 체내에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피부가 자금색 비늘로 뒤덮이고 머리에 짧은 뿔이 솟아올랐다. 또한 겨드랑이 밑으로 각각 두 개의 팔이 자라나고 양쪽 어깨에 머리통이 생겨나 삼두육비의 괴물이 되었다.

세 머리가 미간에 제3요목을 뜨고 괴성을 내질렀다. 열반성체를 극성으로 펼친 것이다.

한립은 이전보다 열 배는 강한 기운을 발산하며 여섯 개의 손으로 현천참령검을 굳게 쥐고 소녀를 향해 힘껏 휘둘렀다.

쿠앙!

반짝이는 녹색 검기에 한립 앞 허공이 무너지며 천지원기가 마구 밀려들었다. 하늘도 무너트릴 수 있을 것 같은 엄청난 기운이었다.

대승기에 이른 후로 처음으로 전력을 다해 현천참령검의 위력을 펼치는 순간이었다.

반월 모양의 녹색 기운이 무너진 허공을 지나 표면에서 보석가루와 같은 주술문자들을 내뿜었다. 그러자 사람을 현혹시키는 아름다운 오색의 광채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주술문자와 출렁이는 녹색 기운이 거의 투명한 수정실로 변해 번득 사라졌다.

수정 실은 평범해 보였지만 그 영향으로 공간자체가 암담해져 겹겹이 왜곡되고 있었다. 모든 힘이 수정 실을 향해 빨려 들어갔다.

“법칙의 선! 말도 안 돼!”

보화의 현천영역에 갇혀 있던 소녀가 날카롭게 소리치고 몸에서 검은 화염을 일으켜 가시가 수북하게 박힌 뼈 갑옷을 형성했다. 매끈한 뼈 가시에는 수많은 은색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소녀 바로 앞에서 파동이 일고 수정 실이 소리 없이 떠올랐다. 영역의 구속을 당하고 있기에 법칙의 선이 날아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검은 화염과 뼈 갑옷이 수정 실을 잠시 막아내다 버티지 못하고 잘려나갔다. 소녀는 비명을 지르며 허리부분이 횡으로 잘려 두 동강이 났고 사지가 수많은 조각으로 흩어졌다.

“바로 그겁니다!”

보화가 기쁨에 차 수결을 맺어 거목을 축소했다. 이에 일곱 빛깔 광채가 주위로 퍼져나갔다.

작은 나무를 쥔 그녀는 재빨리 아래쪽을 훑었다. 꽃나무에서 몇몇 나뭇가지와 꽃송이들이 말라비틀어지며 소녀의 잔해 주위로 혈홍색 꽃이 피어났다. 소녀의 잔해들을 감싼 꽃잎들은 스스로 폭발했다.

보화가 든 작은 나무도 마지막 힘을 다한 듯 가지를 바르르 떨며 소실되고 현천영역도 꽃잎 허상들로 붕괴했다.

텅 빈 하늘에는 한립과 보화만 남게 되었다.

“법칙의 선을 사용할 정도로 현천의 보물을 장악하고 계신 줄은 몰랐네요. 정말 감탄스럽습니다.”

보화가 한립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게 법칙의 선이었군요. 과연 듣던 대로 위력이 강력합니다.”

손끝으로 비취색 장검을 쓸어내린 한립이 자신도 놀랍다는 듯 말했다.

“설마 법칙의 선을 처음 응결해 내신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전력을 다해 현천의 보물을 발동했더니 그렇게 되더군요.”

“정말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한 형께서 그 검을 몸에 품어 만들어내기라도 한 것 같습니다. 보통 현천의 보물을 얻은 이들은 수만 년에서 십여만 년을 제련과 배양에 공들이고도 법칙의 선을 응결하지 못한답니다.”

보화는 얼떨떨하게 웃음 지었다.

“큼,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저는 오히려 수사의 현천영역에 더욱 관심이 가는데요. 이후 서로 깨달음을 교류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립이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돌렸다.

“현천영역을 익히기 위해 저도 고생 좀 했지요. 완전하지 못한 상고경전에서 겨우 연구해내긴 했지만 진정한 현천영역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수준입니다. 한 수사께서 흥미가 있으시다면 시간이 나는 대로 서로 의견을 나눠 봐도 좋겠군요.”

“저도 바라던 바입니다. 그런데 명충모 화신을 제거했는데 왠지 마음이 놓이지가 않습니다.”

“이론적으론 명충모 화신은 진정한 명충모 보다 약할 테니 두 가지 법칙의 힘으로 제거가 되었어야 맞을 겁니다. 하지만 저도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기는 마찬가지네요.”

한립의 말에 보화도 동의했다.

“상대가 중상을 입고 아직 살아있을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군요.”

“하아, 그럴 지도요.”

“어찌 되었든 상대에게 중상을 입힌 것만으로도 다행입니다. 이 틈에 명충모 본체를 처리하는 것이 시급하겠지요. 물속으로 내려간 수사들에게 소식이 없는 것을 보니 아직 성공하지 못한 듯합니다.”

“네, 당연히 그래야…….”

보화가 대답하려는데 소녀가 사라진 지점에서 날카로운 음성이 들려왔다.

“아주 가소롭구나. 명일을 죽였다고 끝인 것 같더냐? 나 명이가 너희를 상대해 주마!”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거대 손이 나타나 한립과 보화를 내리쳤다. 활짝 펼쳐진 다섯 개의 손가락은 하늘을 절반이나 가렸고 날카롭게 자라난 손톱은 웬만한 거목처럼 굵고 컸다.

손톱이 허공에 하얀 흔적을 남기고 하늘을 갈라내고 있을 때 또 다른 음산한 목소리가 울렸다.

“잊은 것이냐, 명이! 내게도 가지고 놀 것을 남겨 줘야지!”

음산한 목소리에 한립은 자기도 모르게 멍해져 두 눈이 풀렸다. 그의 움직임이 둔해졌을 때 거대한 회백색 뇌전이 떨어져 내렸다.

강대한 의식을 지니고 연신술까지 익힌 한립은 순식간에 단전에서 맑은 기운이 머리로 몰려 정신을 차렸다.

“살뢰(煞雷)!”

그는 회백색 뇌전을 보자마자 황급히 비취색 장검을 회수하고 날아드는 거대손도 무시한 채 열댓 개의 허상으로 변해 각기 다른 방향으로 튀어나갔다.

콰릉!

회백색 뇌전은 살아 있는 것처럼 허상과 같은 수로 갈라져 계속해서 그를 뒤쫓았다. 보화 역시 기합을 넣어 토황정을 거산처럼 거대화시켜 거대 손을 막으려 했다.

거대 손의 날카로운 손톱 다섯 개가 푸른 칼날로 변해 거리낌 없이 거대 못을 향해 나아갔다.

콰콰쾅!

거대 못과 푸른 거대 칼날 다섯 개가 눈부신 기운 속에서 접전을 펼쳤다. 다른 쪽에서 거머리처럼 한립 허상들을 쫓는 회백색 뇌전들은 목표를 죽이기 전에는 결코 멈출 것 같지 않았다.

“겨우 살뢰로 나를 어찌 해보려 했다면 오산입니다!”

열댓 개의 허상이 동시에 분노에 차 소리를 지르고 각자 손에서 금색 뇌전 교룡을 뿜어냈다.

퍼퍼퍼펑!

회백색 뇌전은 훨씬 어둑해 졌지만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한립 허상을 뒤쫓았다.

대부분 허상들이 회백색 뇌전에 맞아 폭발했다. 금색 주술문자들이 회백색 뇌전을 감싸 어떻게 돌아가는 지 상황을 알 수 없었다. 유일하게 한 허상만 또렷하게 변해 자금색 기운이 감도는 주먹을 뻗었다.

쿠쿵!

빛기둥이 뻗어나가 회백색 뇌전과 충돌했다. 뇌전은 천적을 만난 것처럼 산산조각 나 하얀 빛에 잡아 먹혔다.

이 공격으로 한립의 몸에 흐르던 자금색 기류도 조금 어둑해졌다. 체내의 진원을 상당히 잃은 탓이었다.

“몸이 단단하기도 하구나. 명이와 비교해 누가 더 셀까나?”

한립은 해수면 위에 투명한 몸의 하늘소 모양 괴충이 떠있는 것을 발견했다. 전신에 크고 작은 눈알이 다닥다닥 붙어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 끔찍한 모습이었다.

하늘소 괴충의 기다란 촉수 사이에서 회백색 뇌전이 번득거렸다. 한립이 크게 당할 뻔한 뇌살이었다.

괴충과 회백색 뇌전을 번갈아 살펴보던 한립은 보화 쪽을 살폈다.

그녀는 지금 양손으로 수결을 맺고 토황정이 변한 거대 기둥으로 거대 손과 격투를 벌이고 있었다.

거대 손의 주인은 고공의 회색 구름 속에 몸을 숨기고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한립은 거대 손을 보고 진안이 있던 전당에서 본 잘려나간 병기를 떠올렸다. 크기가 다를 뿐 분명 저 거대 손이 남긴 흔적일 것이다.

게다가 점점 창백해지는 보화의 얼굴로 보아 아직은 토황정이 근근이 버티고 있어도 오래가지 못할 듯했다.

“해 형, 아래쪽을 맡아 주셔야겠습니다. 저는 보화 수사에게 가서 한 녀석을 해결하고 오지요.”

한립이 고민하다 허공을 향해 말했다.

“수사의 말대로 하겠습니다. 상대의 의식비술과 살뢰술(煞雷術)은 제게 위협이 되지 않을 테니까요.”

허공에서 천둥소리와 함께 은색 뇌전으로 둘러싸인 해 도인이 나타났다. 이 위선뢰는 한립에게 무슨 명을 받았는지 줄곧 은신해 있다가 지금에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해 도인은 제자리에서 한 바퀴 굴러, 쿠릉! 하고 거대 금색 게로 변해 두 집게 발을 들어올렸다.

콰르릉 콰쾅!

수많은 뇌전구슬들이 뭉쳐져 폭우처럼 투명한 하늘소 괴충 위로 쏟아져 내렸다. 뇌전구슬은 크기도 컸고 안에 은백색 뇌전 문양을 잔뜩 품고 있어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괴충도 그것을 보고 두 더듬이를 떨며 회백색 뇌전들을 방출했다. 두 뇌전 빛이 중간에서 격돌했고 회색과 은색 뇌전이 주변 공기를 뜨겁게 달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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