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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307화 (1,064/2,000)

1307화.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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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화는 뚫어져라 괴충을 노려보다 단단히 마음을 먹고 토황정을 날려 보냈다. 노란빛이 검은 진법을 아무렇지 않게 통과해 거대한 곤충 위에서 원형으로 돌아갔다.

쿠쿵!

거대 못에서 노란 실들이 빽빽하게 튀어나와 잠들어 있는 괴충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됐습니다! 다들 무엇을 기다리고 계십니까, 공격하세요!”

보화가 날카롭게 소리치자 거대한 꽃나무 허상이 폭발해 분홍색 꽃잎들을 날려 보냈다. 이에 아래쪽에서도 수사들이 공격을 개시했다.

수수한 노인이 옥패를 고공에 비추자 반원형의 하얀 옥문으로 변해 그 안에서 괴수 허상들을 쏟아냈다. 그리고 흑포 부인은 주문을 외며 검은 단창을 던졌다. 단창이 새까만 뇌전으로 변해 하늘을 갈랐다.

붉은 얼굴의 거한은 들고 있던 백골 칼날을 휘둘렀는데 거대 괴충 위쪽에 파동이 일고 산만한 거대 칼날 허상이 호되게 떨어져 내렸다.

그때 천둥소리가 울렸다!

거대한 뇌전 구슬은 순간이동을 해 은색 뇌전 그물로 하늘을 뒤덮고 거대 괴충을 덮치려 했다. 전부 빠르게 움직였지만 한립을 따라가지는 못했다.

그가 현천참령검을 털어내자 녹색 선이 번득 사라지고 천지원기가 진동해 거대 괴충 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놀랍게도 새하얀 거대 괴충의 몸이 순식간에 두 동강이 났다.

이어서 고공의 거대 칼날 허상과 은색 뇌전 그물이 떨어지고 분홍 꽃잎과 영수 허상들이 몰려들어 폭음이 연달아 울렸다.

새까만 진법은 칼날과 은색 뇌전에 갈기갈기 찢겼고 꽃잎 허상이 날카롭게 그 위를 베어냈다.

안쪽으로는 영수 허상이 거대 괴충을 겹겹이 감싸고 당장이라도 자폭할 듯 하얀빛을 발산했다.

파동이 사방팔방으로 퍼지고 공격으로 인한 눈부신 빛이 거대 괴충을 완전히 가려버렸다.

거대 괴충은 시종일관 꼼짝하지 않아 깊은 잠에 빠진 채 죽임을 당한 듯 보였다.

그러나 잠시 후 보화 등 대승기 수사들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고 한립의 표정도 어두워졌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수많은 전투 경험을 지닌 노괴들이었다. 자신의 실력에 자부심이 있어도 명충모가 이렇게 쉽게 죽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각종 빛과 기운이 가시고 거대 괴충의 방대한 몸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고공에 주먹 크기의 새까만 수정돌이 둥실 떠있었다.

수정돌 표면에는 손가락 굵기의 못이 깊이 꽂혀 있었다. 심장이 철렁할만한 광경이었다.

“큰일입니다. 당장 이곳을 떠나야 해요!”

보화가 소리치며 손바닥을 뒤집어 진법 원반을 꺼내 부서트렸다.

깨진 원반 속에서 봉황울음 소리와 함께 오색 기운이 흘러나와 그녀를 감쌌다. 공간파동이 일고 보화는 흐릿하게 허공으로 녹아들려 했다.

하지만 그때 가냘픈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왕 왔으면 더 놀다 갈 것이지 벌써 가려 그러느냐?”

해수면이 갈라지고 바다 속에서 누군가 솟아올랐다.

펑!

보화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감당할 수 없는 힘에 의해 튕겨나갔다. 그녀를 감싸고 있던 오색 기운은 진작 흩어진지 오래였다.

그녀는 한참을 튕겨나가더니 멈추고 붉은 기운이 오른 얼굴로 울컥 피를 토했다. 일격에 원기를 상한 것이다.

영리하게도 괴력이 접근하기 직전 법력을 보호막으로 불어넣지 않았으면 죽을 수도 있었다.

다른 수사들이 대경실색하고 있을 때 한립은 보화가 있던 자리에 나타난 작은 체구의 인물을 주시했다. 열한두 살 정도로 보이는 소녀는 주먹을 거둬들이며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검은 의복을 걸친 아이는 평범한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다만 회백색 눈은 천성적으로 앞을 보지 못하는 것 같았고 대신 미간에 새까만 수정돌이 박혀 있었다.

고공의 거대 괴충이 남긴 수정돌과 흡사하면서도 더욱 아득한 느낌을 주는 진한 먹색이었다. 그리고 조금 전 보화는 소녀의 주먹을 맞고 날아간 것이다.

한립은 소녀와 눈을 마주치고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다른 대승기 수사들도 아이의 회백색 눈동자가 향할 때마다 몸을 떨었다. 신분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주먹으로 보화를 쳐낸 실력을 보니 명충모가 틀림없었다.

그들은 사라진 거대 괴충에 대해서는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고 어린 아이에게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러나 해 도인만이 덤덤하게 은색 뇌전을 일으켜 뇌의(雷衣)로 몸을 감쌌다.

“선괴뢰(仙傀儡)?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 아직도 하계에서 선괴뢰를 볼 수 있을 줄은 몰랐는걸.”

아이는 수사들을 훑다 마지막으로 해 도인을 쳐다보았다.

“당신이 진짜 명충모입니까?”

보화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예상외로 평온하게 물었다.

“뭐가 진짜고 가짜라는 거지? 너희는 내가 십만 년 전에 벗어놓은 껍데기를 부수었다. 원래 다른 곳에 쓰려고 놔두었던 것이었으니 보상을 해줘야겠지?”

“껍데기였다니……. 본체는 물속에 숨겨 두고 껍데기로 눈속임을 했군요. 그런데 봉령반의 대나이술(大挪移術)까지 파훼할 줄은 몰랐습니다. 진정한 봉황의 힘이 깃든 물건인데요.”

“봉령반이라 해봤자 천봉의 법칙의 힘을 손톱만큼 빌려온 것이 아니더냐. 겨우 그런 물건을 이용해 내 앞에서 달아나려 하다니 우스울 지경이다. 진령 천봉과 직접 싸워본 적은 없지만 내게 잡아먹힌 봉족(鳳族) 강자가 못해도 일고여덟 마리는 될 것이야.”

보화의 탄식에 소녀가 어이없다는 듯 입을 비죽였다. 그 말에 몰래 손에 봉령반을 쥐고 있던 흑포 여인이 흠칫 놀라 가만히 있었고 한립도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러나 상대의 말을 믿지 않는 이도 있었다. 붉은 얼굴 거한은 눈을 번득이며 소매 속에 가려진 손으로 봉령반을 부서트렸다.

파앗!

오색 기운이 흘러나와 거한을 감싸고 공간파동을 일으켰다. 고공에 서있던 소녀가 정색하고 검은 그림자로 변해 쇄도했다.

진작 대비하고 있던 거한은 백골 칼날을 휘둘러 검은 그림자를 가르려 했다.

“으하하!”

거한은 웃음을 터트렸다. 적이 백골칼날을 맞았든 맞지 않았든 흐릿해진 그의 몸이 공간 밖으로 전송되기 직전이었다.

다른 이들이 명충모의 위협에 주눅 들어 가만히 있는 동안 봉령반을 쓴 그는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유일하게 목숨을 부지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갑자기 거한의 비명이 웃음소리를 대신했다.

가는 팔뚝이 거한의 등 뒤에서 보호막과 갑옷을 뚫고 들어왔다. 소녀의 팔은 봉령반의 오색 기운에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키득키득 괴이한 웃음을 흘리며 아이가 손바닥을 펼쳐 팔뚝 크기의 적홍색 소인을 집어 들었다.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는 소인은 거한의 원영이었다.

소녀의 입에서 검은 선이 튀어나가 가슴이 뚫린 거한의 몸을 난도질했다. 검은빛이 반짝일 때마다 거한의 육체가 썩은 나무처럼 변해 결국에는 재로 사라졌다.

“크악! 이, 이건 시간법칙!”

겁에 질린 거한의 원영이 소녀의 손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보화는 그가 외친 네 글자를 듣고 깜짝 놀라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을 했다.

원래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했던 노인과 흑포 부인도 어두운 얼굴로 눈길만 주고받았다. 한립은 조금 움찔했을 뿐 크게 겁을 내지는 않았다.

소녀는 손에 쥔 소인을 보고 입맛을 다시며 그 자리에서 거한의 원영을 뜯어먹었다. 중간 부분을 뜯어낸 아이는 맛좋은 음식을 즐기는 것처럼 우물우물 씹다 삼켰다.

이에 거한의 원영이 참혹한 비명을 지르며 정신을 잃고 축 늘어졌다. 흐릿하게 뜯어 먹힌 부분이 되돌아왔지만 전체적으로 빛을 잃고 암담해진 모습이었다.

보화가 안색이 달라져 무언가를 하려는데 늦고 말았다.

소녀가 배시시 웃으며 재빨리 거한의 원영을 통째로 씹어 삼켰기 때문이다.

맛이 좋았는지 혀로 입술을 핥는 소녀를 나머지 대승기 수사들은 어쩔 수 없이 쳐다만 보았다.

수수한 노인과 흑포 부인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리고 보화도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겉으로는 차분해 보이던 한립도 내심 기겁해 해 도인을 옆으로 불러들이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명충모는 한 번의 주먹질로 보화를 날리고 손쉽게 대승기 수사를 잡아 원영을 씹어 삼켰다. 그들이 짐작한 것보다 훨씬 강력했다.

‘흉충은 방금 깨어났을 텐데 어떻게 이렇게 강력한 신통을 부린단 말인가. 봉인의 영이 전력으로 괴충의 실력을 억제해 준다고 하지 않았던가!’

봉인의 힘으로 억제를 당한 상태에서도 이만한 실력을 냈다면 상고시대 때 진선 한 두 명이 제압해 봉인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립은 급박한 상황에도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가 다른 이들과 대화를 나눠보려는데 귓가에 보화의 목소리가 울렸다.

“한 형, 눈앞의 존재는 명충모 본체가 아니라 원신이 실체화한 화신에 불과합니다. 현천의 보물 외에 다른 보물로는 부상을 입힐 수 없을 테지요. 시간의 법칙도 아주 피상적으로만 장악하고 있고, 사용할 때마다 원신의 힘이 쇠약해져 마구 쓸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현천의 보물을 지닌 우리가 괜히 겁먹을 필요가 없지요.”

“어떻게 그렇게 상세하게 파악한 것입니까?”

“봉인의 영이 몰래 알려주었습니다. 수사와 제가 화신을 막고 나머지 수사들이 물속의 본체를 없앤다면, 본체를 잃은 명충모의 원신을 상대하기가 훨씬 수월해 질 것입니다.”

“그건 다른 수사들이 협조해야 가능한 계획입니다. 우리가 싸우는 동안 다들 달아나 버리면 어쩔 생각이십니까?”

한립이 냉소적으로 전음을 보냈다.

“그 점은 안심하셔도 됩니다. 봉령반에 손을 써놔 제가 의식으로 막으면 절대 사용할 수 없습니다. 다른 수사들에게 이것을 알리고 함부로 헛된 시도를 하지 못하도록 하면 될 것입니다.”

보화가 미소를 지으며 한립이 어안이 벙벙해질 만한 말을 했다. 그녀는 미세하게 입술을 움직여 다른 수사들에게 전음을 보냈고 한립이 신중히 수수한 노인과 흑포 부인의 표정을 살폈다.

그들은 보화의 말에 노기가 어린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보화는 여전히 아름다운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목숨이 달린 보물에 수작을 부려 놓았다니 노인과 흑포 부인이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눈앞의 강적만 아니었으면 당장이라도 보화에게 득달같이 따졌을 것이다.

소녀는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크게 개의치 않고 키득키득 웃음을 흘렸다.

“어떻게 보상할지 결정을 했느냐? 못할 것 같으니 이렇게 하자. 너희 원영을 내놓거라! 한두 명만 얌전히 원영을 내놓으면 나머지는 이곳을 떠나게 해주겠다.”

“우릴 너무 무시하시는 것 같은데, 그런 도발이 통할 거라 여기십니까? 한 명이라도 더 줄면 나머지 수사들은 전부 당신에게 도륙을 당할 것 아닙니까.”

보화가 머뭇거리지 않고 손짓을 해 검은 수정돌에 박혀 있던 노란 못을 불러 들였다. 그러자 그녀의 손에 토황정이 소리 없이 들렸다.

“오, 나와 싸워보겠다는 것이냐? 재미있구나. 내 일격을 맞고 살아남은 것 만으로 네가 실력이 있다는 것은 알겠다. 허나 내가 가장 잡아먹고 싶은 원영은 네가 아니다. 바로 저 자의 것이지. 저렇게 강력한 의식의 힘이라니, 다른 원영에 비해 분명 백배는 맛있을 것이야!”

아이가 고개를 저으며 손을 뻗어 누군가를 가리켰다.

‘이런…….’

한립의 표정이 묘해졌다. 아이의 작은 손가락이 정확히 그를 향해 뻗어있었다.

보화와 다른 수사들이 깜짝 놀라 멍해졌다. 명충모의 말은 한립의 의식이 전 마족시조인 보화를 포함해 다른 이들 보다 훨씬 강하다는 뜻이었다.

“하하, 제 원영을 탐내고 계시는군요! 하지만 그만한 실력이 돼야 바람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한립이 빠르게 평정을 되찾고 미소 지었다. 그녀의 협박에 전혀 동요하지 않아 다른 수사들의 감탄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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