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1304화 (1,061/2,000)
  • 1304화. 흉충 격살

    *

    거대한 인면충(人面蟲)들은 평범한 사람보다 서너 배는 큰 몸통에 끔찍하게 생긴 사내의 머리가 붙어 있었고 앞다리에는 조잡한 방망이가 들려 있었다.

    그 중, 중간에 선 인면충의 등껍데기가 은은한 남색으로 빛나는 것을 제외하면 다리들은 아주 시커먼 것이 한립 일행이 아까 보았던 인면충 잔해와 비슷했다.

    남색 인면충이 뜻밖에도 사람 말을 하며 괴상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키키킥. 이족인들이라니……. 오랜만에 포식을 하겠구나! 키키키킥!”

    “아, 얼마 만에 보는…… 먹잇감인지 모르겠습니다. 키키킥, 지난번에 피 맛을 본지가 언제였던지…….”

    다른 인면충들도 탐욕스런 눈빛을 보냈다. 이에 사련이 먼저 허공을 짚어 은색 고리 3개를 발동했다. 그러나 한립은 인면충 다섯 마리를 보고도 사련과 녹석에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인면충들을 다섯 마리나 마주쳤으니 아주 순조롭다고는 할 수 없어도 최악의 상황은 아닙니다. 저와 해 형이 세 마리를 맡는 동안 두 분께서 나머지 두 마리를 처리해 주셨으면 합니다.”

    “문제없습니다! 해 도인과 한 형께서 수고를 좀 해주세요.”

    사련이 밝게 답했고 녹석 노조도 반대하지 않고 단검을 휘둘렀다. 녹색 기운이 교룡으로 변해 인면충 한 마리를 향해 날아갔다.

    인면충은 두려운 기색 없이 입에서 회백색 기운을 분출했다.

    콰앙!

    두 기운이 충돌해 회오리치며 고공으로 치솟았다. 그러자 마치 푸른색과 하얀색 교룡이 서로를 휘감고 물어뜯는 것처럼 보였다.

    사련의 은색 고리도 번득 사라져 또 다른 인면충 위에 나타나 떨어져 내렸다. 이에 아래쪽 인면충은 움켜쥐고 있던 방망이 2개를 휘둘러 하얀 기운 두 줄기를 날려 보냈다.

    은색 고리 세 개가 희뿌연 괴력과 부딪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키킥.”

    중간 남색 인면충이 괴상한 웃음소리를 내고 손에 들고 있던 새까만 방망이를 휘두르며 뒷다리를 박찼다. 그러자 거대한 괴충은 흐릿하게 허공으로 스며들었다.

    “내가 맡겠습니다.”

    해 도인이 눈을 빛내고 은색 뇌전으로 변해 사라졌다.

    다음 순간 고공에서 쿠릉, 하는 뇌전 소리가 울리고 해 도인과 남색 괴충이 극렬한 파동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해 도인은 몸집을 키워 두 손에 은색 뇌전이 뭉쳐진 거대한 칼날로 괴충을 머리를 가르려 했다. 이에 남색 괴충도 괴성을 지르며 몸을 부풀려 거대한 방망이를 휘둘렀다.

    채채채챙!

    엄청난 굉음 속에서도 그들은 서로 피하지 않고 미친 듯이 서로를 공격했다.

    해 도인의 은색 칼날 두 개가 수레바퀴처럼 빙글빙글 돌며 적을 아래위로 마구 갈랐고, 남색 인면충은 기괴한 웃음을 흘리며 미친 듯이 검은 방망이를 휘둘렀다.

    파앗!

    이때 사련 등 뒤로 녹색 거대 꽃 허상이 나타나 천여 개의 푸른 검기로 변해 그녀가 상대하고 있는 괴충에게 몰려들었다.

    녹석 노조는 금색 거대 인장을 불러내 산만해진 보물로 자신이 맡은 적을 쾅쾅 찍어대고 있었다. 인면충도 몸이 굉장히 단단했지만 엄청난 힘이 실린 공격에는 함부로 맞서지 못하고 피하기만 했다.

    한립은 수사들이 신통을 발휘해 인면충들을 잡아두는 것을 확인하고 남은 두 마리를 향해 눈길을 돌렸다.

    그의 눈빛에 나머지 인면충도 한가롭게 적을 주시하고 있었다. 한립이 피식 실소하며 한 손으로 수결을 맺어 몸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금색 주술문자를 흩날렸다.

    콰르릉!

    주술문자 하나하나가 눈부신 금빛 뇌전으로 변해 그의 몸을 감쌌다. 그가 법결을 변화해 손을 뻗자 뇌전들이 뭉쳐져 무시무시한 기운을 풍기는 뇌전 구슬로 변했다.

    두 인면충도 위기를 느꼈는지 날개를 털어 잔영을 남기며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중 한 마리는 입에서 코를 찌르는 비린내를 풍기며 검은 액체를 분사했고, 다른 한 마리는 두 팔을 빙 돌려 굵은 방망이들을 던졌다.

    방망이가 닿기 전 거센 바람이 먼저 덮쳐왔다. 한립은 눈썹을 끌어올리며 어깨를 털고 거품처럼 사라졌다.

    검은 액체와 방망이들은 허공에 떨어졌지만 민첩한 인면충들도 날개를 바르르 떨어 그 자리에서 종적을 감추었다.

    곧 광장 양쪽에서 파문이 일고 두 인면충이 소리 없이 나타났는데 괴이하게도 한립이 없어졌던 자리에 서있었다. 눈속임을 했을 뿐 그는 아예 이동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걸 본 인면충들은 분노에 차 울부짖으며 한립을 향해 달려들려 했다. 하지만 한립이 뇌전 구슬을 하늘 높이 던진 후였다. 금빛이 번쩍이고 뇌전 구슬이 자취를 감추었다.

    경천동지할 굉음이 하늘을 울렸다.

    콰르릉 콰쾅!

    고공에 무수히 많은 금색 주술문자들이 퍼져 금색 빛기둥을 형성해 인면충 한 마리를 맞추었다. 한립이 얼마 전 익힌 제뢰술이었다!

    처참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흉충은 제대로 반항도 해보지 못하고 타들어가 재로 변했다. 이에 나머지 인면충이 그것을 보고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방출했다.

    무형의 음파가 한립을 향해 날아들었다.

    한립은 당황한 기색도 없이 손바닥을 펼쳤다. 손끝에서 다섯 개의 금색 빛구슬들이 튀어나가 하나로 뭉쳐져 커다란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후웅!

    소용돌이 중심에서 강력한 흡인력이 발생해 무형의 음파를 전부 빨아들였다. 그러나 인면충은 귀신처럼 번득여 한립 가까이로 이동해 날카로운 앞발을 뻗었고 날카로운 검은 빛들이 한립을 찔렀다.

    한립이 눈을 가늘게 뜨고 한 손으로 앞쪽의 소용돌이를 가리켰다. 소용돌이가 수축했다 늘어났다 하며 화려한 금빛으로 폭발했다.

    쉬쉬쉬쉬쉭!

    금빛 속에서 무수히 많은 푸른 실들이 쏘아져나가 달려드는 인면충을 꿰뚫었다. 그러나 거대 괴충은 섬뜩한 눈빛으로 공격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검은 빛들을 쏘아보냈다.

    한립과 양패구상하려는 심산 같았다.

    ‘내가 그렇게 놔둘 것 같더냐.’

    한립이 동공을 수축하며 한 손으로 허공을 긋자 열댓 겹의 회색 장막이 펼쳐졌다. 검은 빛들이 빛의 장막을 찔러 들어왔다.

    어찌나 예리한지 검은 빛들이 단번에 모든 빛의 장막을 뚫고 한립의 보호막까지 도달했다.

    티티티티팅!

    금속성의 마찰음이 들려왔다. 은색 문양 진법을 품고 있는 자금색 보호막이 검은 빛들을 죄다 튕겨낸 것이다.

    범성진마공에 백맥연보결이 융합되어 만들어진 보호막은 대승기 수사라 해도 어쩔 수 없는데 눈앞의 인면충은 포악하기는 해도 대승기 수사에 비해서는 수행이 떨어졌다.

    반대로 푸른 실들은 비처럼 쏟아져 인면충의 새까만 껍데기를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키에엑!

    인면충이 비명을 질렀고 온몸에서 암녹색 피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사납게 눈을 번득인 괴충의 몸에 회백색 빛이 흐르자 뚫렸던 자리가 메꿔지고 있었다.

    “베어라.”

    한립이 작게 중얼거렸다.

    찰나의 순간 인면충을 통과한 푸른 실들이 비검으로 뭉쳐져 괴충의 머리를 베었다.

    추한 사내의 머리가 데구루루 떨어져 내리고 푸른 검기가 남은 괴충의 몸통을 난도질했다. 이에 인면충은 원신조차 살아남지 못했다.

    사납게 달려든 괴충 두 마리가 눈 깜짝할 사이에 도륙 당했다. 한립은 담담히 웃으며 푸른 비검을 거두고 다른 수사들을 둘러보았다. 그의 눈길이 닿는 곳마다 괴충의 처량한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사련은 괴충을 은색 고리 3개로 잡아두고 흰색 빛을 분출해 토막을 냈다. 보화의 동생답게 일반 대승기 수사보다 실력이 더 대단했다.

    그때 지면이 크게 흔들리자 막 승리를 거둔 한립과 사련이 서둘러 그쪽을 쳐다보았다.

    광장 가장자리에 못 보던 커다란 구덩이가 생겨났고 그 가운데에 새까맣게 탄 남색 인면충의 껍데기가 처참한 몰골로 쓰러져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해 도인이 커다란 은색 칼날을 쥐고 떠있었다. 그가 무표정하게 두 칼날을 맞댔다.

    콰릉!

    칼날들은 은색 뇌전 두 줄기로 돌아가 하나로 융합해 기다란 창으로 변했다. 해 도인이 힘을 주어 던지자 천둥소리와 함께 뇌전창이 사라졌다.

    거대 구덩이 속에서 폭음이 울리고 은색 창에 꽂힌 거대 괴충은 몸을 부르르 떨며 터져나갔다.

    단단한 몸을 지닌 남색 괴충도 해 도인의 전력이 담긴 뇌전 신통에는 버티지 못하고 세상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제야 해 도인이 한 걸음을 내딛어 한립 옆으로 돌아왔다.

    “해 형, 훌륭한 솜씨십니다. 상대하신 흉충은 일반 대승기 수사와도 비슷한 수준이었는데 이렇게 빨리 처리하시다니요.”

    “진정한 대승기 수사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평범한 대승기 수사가 제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을 겁니다.”

    한립의 칭찬에 해 도인이 무표정한 얼굴로 답했다.

    “맞습니다. 실력의 고하는 둘째 치고 죽음을 불사하고 달려들면 부상을 피하기 어려울 테니까요.”

    “녹석 수사는 초반에는 승기를 잡고 있었는데 괴충이 죽기 살기로 달려드는 통에 아직 처치를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가봐야 할까요?”

    사련이 한립과 해 도인을 보고 빙긋 웃음 지었다. 한립이 그러자고 대답하려는데 녹석 노조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그러실 것 없습니다! 제가 겨우 벌레 한 마리를 어쩌지 못할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경천청인(擎天靑印)!”

    녹석 노조는 다른 수사들이 인면충들을 끝장내자 체면이 구겨졌다고 생각해 소리쳤다.

    그의 소매 속에서 이전 것과 똑같이 생긴 아홉 개의 청석(靑石) 인장이 날아올라 금색 거대 인장 속으로 녹아들었다. 수많은 금색 주술문자가 떠오른 거대 인장은 웅웅! 진동하며 법칙의 힘을 발산했다.

    이에 인면충은 몸이 묵직해져 더는 움직이지 못했고 거대 인장에 깔려 순식간에 피와 살이 뭉개졌다.

    그 모습에 녹석 노조는 미소를 되찾고 한 손으로 수결을 맺어 인장을 회수했다. 그를 감싸고 있던 녹색 기운이 약간 옅어지고 기운도 허약해 진 듯했다.

    “이게 바로 경천청인이군요! 현천의 보물은 아니지만 못지않은 위력을 내는 듯합니다. 소문으로만 듣다가 직접 보니 명불허전이네요.”

    사련이 이채를 띠고 가볍게 미소 지었다.

    “아닙니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으면 노부의 실력으로 흉충을 단시간에 제압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녹석 노조가 쓴웃음을 지었다. 직접 전투를 해보니 네 명의 대승기 수사 중 자신이 제일 약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다섯 마리 모두 해치웠으니 더는 명충이 없겠지요. 이제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한립이 전당을 바라보았다.

    “옳은 말씀입니다. 해 형, 녹석 수사, 어서 들어가 살펴보시지요.”

    그들은 서둘러 전당을 향해 몸을 날렸다. 전당 안으로 들어가자 사련과 녹석의 안색이 미미하게 달라졌다.

    문가에 백골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고 그 옆에는 반짝이는 물건들이 보였는데 망가진 갑옷과 병장기들이 대부분이었다.

    “사련 수사, 이건 무엇입니까?”

    “지하궁전을 지키던 병사들일 겁니다. 제때 탈출하지 못하고 흉충들의 먹잇감이 되고 말았군요.”

    녹석 노조의 물음에 사련이 탄식하듯 답했다. 그녀는 붉은 불덩이를 날려 유골들을 전부 재로 만들었다.

    그때 한립은 망가진 갑옷과 병장기가 쌓인 곳으로 가 손을 뻗었다.

    쉭!

    반짝이는 칼날이 그의 손으로 빨려 들어왔다. 단단해 보이는 칼날에 선명하게 손톱자국 같은 것이 나있었다.

    그는 자세히 살펴보다 손끝으로 금빛을 반짝여 칼날을 긁었고 손톱자국과 비슷한 흔적이 남았다.

    “이상한 것이라도 있습니까?”

    “직접 확인해 보시면 아실 겁니다.”

    사련이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묻자 한립이 칼날을 그녀에게 던져주었다. 별 생각 없이 칼날을 받아 살피던 사련이 탄성을 터트렸다.

    “태을백금(太乙白金)으로 만들어진 병기였단 말입니까!”

    “태을백금이요! 단단하기로 각 계면에서도 유명한 재료 아닙니까. 이것보다 더 단단한 재료가 없지는 않겠지만 손에 꼽힙니다. 이런 걸 대량으로 구해 제련하다니 전 주인이 큰 기연을 얻었던 듯 합니다.”

    그 말에 녹석 노조가 관심을 보였다.

    “기연을 얻으면 무얼 하나요. 어차피 흉충의 뱃속으로 들어갔는데요. 그런데 태을백금으로 제련한 병장기 위에 선명한 자국을 남기다니 한 형의 육체가 얼마나 강력한지 알겠습니다. 힘을 어느 정도나 주신 것입니까?”

    사련이 혀를 차며 칼날에 남은 자국을 보고 고개를 돌렸다.

    “저도 꽤 힘을 들여 남긴 자국입니다. 중요한 것은 태을백금으로 제련한 칼을 손톱으로 잡아 부서트릴 정도의 흉충이 있다는 사실이고요. 이전에 맞닥뜨린 인면충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행을 지녔을 겁니다.”

    “직계 괴충들이야 실력이 우리에 미치지 못하니 이런 짓을 할 수 없을 텐데, 설마 명충모가 직접 나선 것일까요?”

    녹석 노조의 얼굴이 조금 창백해졌다.

    “그건 아닐 겁니다. 명충모가 직접 나서서 겨우 지하궁전 병사들이나 상대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사련이 단정적으로 답했다.

    “그 말은 지하궁전에 조금 전 상대한 인면충들과 다른 종의 강력한 흉충이 있다는 뜻이로군요.”

    “아마도 그렇겠지요.”

    “너무 걱정 마십시오. 그런 흉충이 있다고 해도 많지는 않을 겁니다. 이번에 지하궁전에 내려온 수사만 수십 명인데 그깟 흉충 몇 마리가 대수겠습니까!”

    녹석 노조가 얼른 부정적인 생각을 털어버리고 말했다.

    “네, 아마 두 번째 종류의 흉충은 굉장히 드물 거예요. 그렇지 않고서야 보화와 원염 수사가 모르고 있었을 리 없을 테니까요.”

    사련도 일부러 밝은 얼굴을 하고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수가 적다면 확실히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일단 손상된 금제를 살펴보시죠.”

    한립은 말을 마치자마자 해 도인과 함께 먼저 전당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련과 녹석 노조가 시선을 마주치고 그들을 따라갔다.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