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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303화 (1,060/2,000)

1303화. 인면충(人面蟲)

*

대승기 수사들은 협곡 위에서 조용히 무언가를 기다렸다. 보라색 안개 때문인지 아니면 지하의 봉인의 힘 때문인지 의식으로 내부를 살피려 해도 얼마 진입하지 못해 흩어지고 말았다.

다들 어두컴컴한 협곡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보화가 은색 진법 원반을 꺼내 법결들을 던져 넣었다.

영성을 지닌 것처럼 그녀의 손바닥 위에서 어두워졌다 밝아졌다하던 진법 원반이 한식경 후 웅- 하고 진동하며 은빛의 주술문자들을 뿜어냈다.

“지금입니다! 모두 서둘러 들어가시지요.”

보화가 희색을 드러내며 얼른 외치고 분홍빛으로 변해 협곡 안으로 몸을 던졌다. 이에 대승기 수사들도 둔광을 일으켰고 한립도 금빛으로 보라색 안개를 밀어내며 하강했다.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아득해 보이던 협곡도 얼마 내려가지 않아 끝이 났다.

두 발이 지면에 닿자 한립은 자신이 부드러운 빛을 머금은 대형 광장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광장 바닥에는 일정 거리마다 빛을 내는 수정돌이 박혀 있어 대낮처럼 환했다. 그러나 광장 사방으로 연결된 8개의 구불구불한 길들은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 수 없었다.

“흉충이 깊이 잠들어 있어 우리가 이곳까지 별 탈 없이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계획대로 바로 움직이시죠! 저는 같은 조의 수사들과 함께 상고봉인의 영(靈)과 소통을 해볼 것이니, 동아 수사께서는 천아계 수사들을 이끌고 지하궁전으로 내려가 갇혀 있는 수사들과 연락을 취해주십시오.

흑야계에서 오신 분들은 지하궁전 깊숙이 들어가 명충모가 잠들어 있는 곳을 찾아가 감시해주시고요. 흑야계의 은신 비술이면 흉충에게 들키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나머지 수사들은 몇 조를 이뤄 지하궁전 곳곳의 진안(陣眼)으로 가 중요한 금제들을 복구해 주시면 됩니다.

명충모의 후예들이 지키고 있을 테니 모두 조심하셔야 합니다! 명충모의 후예들은 바깥에서 본 명충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고 우리 같은 대승기 수사들도 신중하게 상대해야 합니다.”

보화가 각자 해야 할 일을 다시 정리해 주었다.

“하하, 알겠습니다.”

“노부는 먼저 출발하지요.”

“보화 수사도 조심하십시오!”

미리 충분히 논의한 터라 다들 반대하지 않았고 여러 무리로 나뉘어 광장을 떠났다.

* * *

한립과 해 도인, 그리고 보화의 여동생인 사련과 녹색 기운에 휩싸인 이계 수사 녹석은 광장을 따라 이어진 길 중 하나를 골라 멀어져 갔다.

그들은 다른 조와 마찬가지로 지하궁전 어딘가의 금제를 복구하는 임무를 맡았다. 사련이 손에 옥간을 쥐고 앞장섰고 한립과 해 도인이 중간, 그리고 녹석이 맨 뒤에서 조용히 따라갔다.

수사들은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지면에서 살짝 떠올라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갔는데 전부 의식을 퍼트려 주변을 경계했다.

평온한 얼굴의 한립도 수시로 좌우를 살폈다. 그들이 가는 길을 따라 탑들이 빼곡하게 서있었다. 사각 기둥 모양의 탑들은 양식이 고풍스럽고 간결한 상고 문자들이 잔뜩 새겨져 있어 아주 오래된 건물들 같았다. 말없이 이동하던 한립이 갑자기 눈썹을 끌어올리고 움직임을 멈추었다.

“왜 그러시죠?”

사련이 고개를 돌려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녹석 노조도 속도를 늦추고 그를 보았다.

“저기 재미있는 게 있는 것 같은데 괜찮으시면 가서 살펴보시지요.”

“저렇게 멀리까지 의식을 퍼트리신 것입니까?”

사련은 그가 바라보는 방향을 훑었지만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한 수사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무슨 일인지 한 번 가봐야겠습니다.”

의식으로 탑들을 훑고 아무런 소득이 없자 녹석 노조도 조금 놀란 기색으로 답했다. 이에 한립은 미소를 짓고 먼저 탑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해 도인은 무표정하게 그의 뒤를 쫓았고 사련과 녹석도 서로 시선을 마주치고 그들을 따라갔다.

벽돌 길을 벗어나자 사련과 녹석 노조도 뭔가를 발견했다. 눈앞이 밝아지며 움푹 파인 구덩이가 나타난 것이다.

구덩이 주변으로 일고여덟 채의 석탑들이 부서져 있었는데 격렬한 전투의 흔적 같았다. 게다가 구덩이 한 가운데에는 새까맣게 탄 곤충 시체가 너부러져 있었다.

곤충 시체는 흉악하기 그지없어서 사련과 녹석 노조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몸통은 평범한 명충들과 비슷했지만 기다란 목에 추하기 짝이 없는 사내의 머리가 붙어있었다. 깨진 머리통에 눈, 코, 입은 온전했고 두피에 녹색 머리카락이 덕지덕지 엉켜 있었다.

“이게 명충모 후예인가요? 보기만 해도 끔찍하네요.”

사련이 약간 창백해진 얼굴로 말했다.

“그럴 겁니다. 흉충의 후예가 이런 모습일 줄은 몰랐습니다. 명충모도 보나마다 혐오스런 몰골을 하고 있을 테지요. 한 수사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녹석은 혀를 내두르며 한립을 보았다.

“그럴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실제로 명충모를 만나보기 전에는 섣불리 판단을 내릴 수는 없지요.”

한립이 미소를 지으며 소매를 펄럭였다.

펑!

무형의 힘이 엎어져 있던 곤충 잔해를 뒤집었다.

복부에 열댓 개의 다리가 붙어 있었는데 대부분은 검은 털이 달린 곤충 다리였으나 일부는 하얀 피부를 지닌 사람의 손과도 비슷했다. 다섯 손가락 대신 하나는 두껍고 두 개는 가느다란 세 개의 손가락이 달려있었다.

그 모습에 녹석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손가락을 튕겼다.

쿵!

손바닥에서 남색 불덩이가 튀어나갔다. 불덩이의 강한 위력에 주변 공기가 이글거렸다. 불덩이에 닿자 곤충 잔해가 화르륵 타올랐다.

잠시 후 녹석이 수결을 맺어 남색 화염을 거두었는데 곤충 잔해는 이전보다 더욱 시커멓게 변한 것 말고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깜짝 놀란 녹석 노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사련도 난색을 표했고 해 도인도 무표정하게 눈을 반짝였다.

“재미있군요. 제가 한 번 시도해 보겠습니다.”

한립이 나서서 세 손가락을 튕겼다. 신기하게도 금속끼리 맞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핑! 핑! 핑!

푸른 검기 세 개가 뻗어나가 곤충 잔해를 갈랐다. 첫 번째 검기는 튕겨나갔고, 두 번째 검기는 곤충 껍데기에 한 줄기 실금을 만들어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검기가 번득 날아들어 곤충 잔해를 두 동강냈다.

한립이 턱을 쓸어내리며 생각에 잠겨 있는데 사련이 입을 열었다.

“한 형, 조금 전 검기들의 위력이 다 달랐습니까?”

“그렇습니다. 첫 번째 검기는 5할의 법력을, 두 번째 검기는 10할의 법력을 불어 넣었고, 마지막 세 번째 검기에는 의식까지 불어넣어 효과를 볼 수 있었습니다.”

한립은 숨김없이 답해주었다.

물론 사련과 녹석은 몰랐지만 그가 청죽봉운검에 불어넣었다는 법력의 양은 일반적인 대승기 수사를 기준으로 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대승기 수사의 진원을 훨씬 넘어서는 그의 기준으로는 첫 번째에는 2할, 두 번째에는 4, 5할의 법력을 불어 넣었을 뿐이었다.

“녹석 수사의 진염(眞焰)도 통하지 않고 한 수사의 검기도 대부분 막아낼 정도라니 명충모의 직계 후예들이 예상보다 더 강한 것 같습니다. 마주치게 되면 대책이 있으신지요?”

사련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걱정할 게 무엇입니까! 마주치면 각자 전력을 다해 상대하면 그만인걸요. 노부는 우리 넷이 힘을 합쳐 겨우 벌레 한 마리를 잡지 못할 거라 생각지는 않습니다.”

녹석 노조가 냉소했다.

“한두 마리라면 그렇겠지만 일고여덟 마리, 아니 열 마리 이상이 달려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래도 자신이 있으십니까?”

사련이 탄식하듯 말했다.

“그럴 리가요?”

애써 센 척하던 녹석 노조의 얼굴이 굳었다.

“제 생각에도 그렇게 많은 직계 후예들을 한 번에 마주칠 가능성은 적다고 봅니다. 명충모가 강력한 후대를 마구 낳을 수 있었다면 진작 상고봉인을 벗어났겠지요.”

한립이 곰곰이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두 분의 생각이 맞았으면 좋겠네요. 남아 있는 흔적으로 보아 이 흉충은 이전에 지하궁전으로 잠입한 수사들에게 공격을 당해 죽은 듯합니다. 아무래도 급하게 자리를 뜬 것 같은데 앞으로 이런 것들을 얼마나 더 마주치게 될까요.”

사련이 쓴웃음을 지으며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되었든 여기까지 와서 돌아갈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이곳에서 상당한 시간을 지체했으니 어서 출발 하시죠. 우리 때문에 보화 수사의 일을 그르치게 된다면 상황이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한립이 몸을 돌려 서둘러 원래 왔던 길로 돌아갔다. 해 도인은 아무 말 없이 한립을 바짝 뒤쫓았고 사련과 녹석도 각기 다른 표정으로 구불구불한 벽돌 길로 돌아갔다.

사련과 녹석은 해 도인이 한립의 말만 따르고 그가 자신들보다 훨씬 강대한 의식을 지녔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무의식중에 그를 결정권자로 여기고 있었다.

그들은 길을 따라 지도에 표시가 된 곳으로 향하는데 이번에는 여러 구역을 지나도록 어떤 흉충의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에 사련과 녹석은 한결 마음이 놓였다. 솔직히 그들이 대승기 수사라 해도 그런 끔찍한 괴충과 굳이 싸우고 싶지는 않았다.

곧 그들은 드넓은 화원에 도착했고 길 양쪽으로 은빛 찬란한 작은 꽃나무들이 심어져 있었다. 꽃나무에는 은색 꽃송이들이 가득 맺혀 있었는데 향기가 전혀 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은색 꽃나무들을 경계하던 녹석 노조는 사련에게 이 꽃나무들이 마계 특유의 식물로 저계 단약을 제련하는데 사용되며 특별한 작용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서야 안심했다.

“한 형, 지도에 따르면 앞쪽의 금제 전당이 바로 진안이 있는 곳입니다. 저것만 복구하면 임무를 완수할 수 있겠네요.”

화원 밖으로 보이는 회백색 전당을 보고 사련이 작게 미소 지었다.

“정말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꽤 순조롭게 일이 풀리는 것 같은데, 다른 수사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지 모르겠군요.”

한립은 일부러 무표정한 얼굴로 답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화원에 들어온 이후로 누군가 그들을 주시하고 있는 것 같은 괴이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런 이상도 발견할 수 없었고 그의 강대한 의식으로도 상대를 찾아 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상대가 역천의 신통을 지니고 있거나 아니면 그가 지하궁전의 여러 금제와 봉인의 힘에 영향을 받아 착각하고 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극도로 주위를 경계하던 한립은 화원 출구를 빠져나오자 괴이한 느낌이 싹 사라진 것을 느꼈다.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같은 시각, 지하궁전의 깊숙한 동굴 안에서 흐릿한 인영이 음산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연신술……. 게다가 2성까지 익혔군. 하계의 인간이 말이야! 하하, 하늘이 나를 버리지 않았구나. 노부가 오랜 세월 버텨온 것이 헛고생이 아니었어…….”

처음에는 흐릿했던 웃음소리에 점차 광기가 어렸다.

* * *

한립은 지하궁전 깊은 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랐지만 그저 괴이한 느낌이 사라지자 마음이 편해졌다.

수사들은 화원을 빠져나와 작은 광장에 이르렀다. 그 안에 세워져 있는 전당 은 겉보기에는 아주 평범했고 안에서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이상하게 의식으로 내부를 살필 수 없습니다. 금제가 아직 작동하고 있는 걸까요?”

녹석이 신중하게 물었다.

“이건 금제 때문이 아니라 전당 자체가 성계 고유의 특수한 재료로 건축되어서입니다. 명하사(冥河沙)라는 재료로 의식을 차단하는데 효과가 좋지요.”

사련이 전당을 자세히 살피고 설명했다.

“이런, 안에서 명충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녹석 노조는 사련의 말에도 안심하지 못하고 코를 킁킁 거리다 한 손을 펼쳤다. 녹색 기운이 뭉쳐 단검이 만들어졌다.

“명충이라고요? 착각하신 것 아닙니까?”

사련이 놀라 서둘러 손끝으로 허공을 그어 은색 고리 세 개를 불러냈다.

“노부는 백생무망대법(白生无妄大法)을 익혀 수십 리 내에 있는 인물들의 기운을 분명히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 정도 거리면 착각할리가 없습니다!”

녹석 노조가 자신감 있게 외쳤다. 그 말에 한립이 미간을 좁히고 돌연 두 손을 마주쳤다가 펼쳤다.

콰릉!

굵은 금색 뇌전 두 줄기가 커다란 구렁이들로 변해 전당 안으로 들어갔다. 뇌전들이 폭발해 천둥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벽사신뢰!”

사련이 엄청난 기세의 뇌전을 알아보았다. 보통 벽사신뢰는 그녀와 같은 마족 성조에게 큰 억제 효과가 있었지만 한립과 같은 대승기 수사가 펼치면 누구에게 쓰던 굉장히 위력적이었다.

그때 전당 안에서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리고 다섯 개의 검은 그림자가 튀어나와 한립 일행을 마주보고 일렬로 섰다.

“과연 그 흉충들입니다!”

녹석이 검은 그림자들을 보고 서늘하게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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