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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302화 (1,059/2,000)
  • 1302화. 충해격전(蟲海激戰)

    *

    주변의 다른 대승기 수사들도 공격에 나섰다.

    어떤 수사는 한 손으로 수결을 맺어 광풍을 일으켰고, 또 다른 수사는 천둥소리와 함께 뇌전 뱀들을 마구 분출했다.

    나머지 수사들도 거대한 바람의 칼날, 남색 불덩이, 보검 등을 만들어내 거대 괴충들을 죽여 나갔다.

    파공음이 울리고 번쩍 번쩍 빛나는 공격들이 하늘을 가득 매웠다. 대승기 수사들이 나서자 단단한 거대 괴충도 갈기갈기 찢기거나 재로 변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모습에 마족 정예병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절대 멈추지 말고 앞으로 전진 하라!”

    흑갑 마족 성조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명을 내렸다. 이에 고계 명충들의 공격으로 느려졌던 무리의 속도가 한층 빨라졌다. 일반 명충들이 죽음을 불사하고 달려들어도 그들을 붙들어 둘 수는 없었다.

    그때 한립은 거대 선박의 선실에 앉아 의식으로 주변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그는 거대 괴충들이 대승기 수사들에 의해 소탕되는 순간 입 꼬리를 끌어올리기도 했다.

    거대 괴충들이 입에서 분출하는 빛기둥은 합체기 수사의 전력을 다한 일격과 맞먹었지만 방어력은 훨씬 떨어졌다. 거대 괴충들은 진정한 최상급 존재는 아니었던 것이다.

    선박의 앞쪽과 뒤쪽에 8명의 대승기 수사들이 예상치 못한 사고에 대비하고 나머지는 대청에 모여 있었다.

    보화도 대청 한가운데서 손바닥만 한 거울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바로 소환천경이었다.

    다른 대승기 수사들은 두세 명씩 모여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거나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한립의 시선이 창가에 앉은 여인에게 향했다. 그를 이곳으로 안내해준 사련성조였다.

    보화와 퍽 닮은 그녀는 바깥에서 벌어지는 병사들과 명충 사이의 격전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와 가까운 곳에서 동아 노인을 포함한 천아계 대승기 수사들이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들의 몸에 흐릿하게 흐르는 노란 기운으로 보아 무언가 공법을 수련 중인 듯했다.

    한립도 잠시 살펴보다 빠르게 의식을 회수하고 명상에 잠겼다. 그의 곁에는 해 도인이 우두커니 서있었는데 어쩐 일인지 은월은 보이지 않았다.

    이번 임무는 굉장히 위험했기에 그녀를 일부러 사막의 임시 거처에 두고 왔던 것이다.

    은월은 그가 없는 동안 망정결의 영향을 받을 테지만 너무 오래 떨어져 있지만 않으면 크게 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한립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보화가 돌연 입을 열었다.

    “모두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것들이 옵니다.”

    보화의 말에 대승기 수사들의 표정이 굳었다. 일부는 바로 의식을 퍼트렸는데 한립도 그 중 하나였다.

    잠시 후, 사방의 충해가 출렁이고 불타오르는 화염 덩어리 같은 적홍색 괴충들이 등장했다.

    금색 모양으로 뒤덮인 괴충은 초록색 눈에 희미하게 오색 기운이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적홍색 명충의 출현에 뱃머리에 선 대승기 수사들이 고민할 것도 없이 보물과 공법을 발동했다. 검빛과 불덩이, 검은 기운 등이 엄청난 기세로 날아갔다.

    주변에 있던 명충들은 맹렬한 공격에 재로 변해 사라졌지만 적홍색 괴충들은 두 날개를 이용해 흐릿하게 사라졌다가 돌연 대승기 수사들 가까이에서 나타나 뒷다리를 뻗으며 돌진했다.

    이에 대승기 노조들의 안색이 급변하며 손끝을 튕겨 날카로운 빛을 뿜거나 여러 가지 방어용 보물을 불러냈다.

    심지어 한 명은 팔을 뻗어 직접 명충을 상대하려 한 이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공격이나 방어도 이 명충들을 막지는 못했다. 적홍색 명충들은 무형의 몸을 지닌 것처럼 대승기 수사들 지척에 나타나 몸에서 붉은 화염을 일으켰다.

    대승기 노조들이 기겁해 단단한 육체로 자폭의 위력에 대항하려 할 때 허공에서 보화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저것들은 제게 맡겨주시면 됩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 하얀 빛기둥이 거대 선박의 대청을 뚫고 나와 무수히 많은 작은 빛으로 변해 자폭명충들을 쳐냈다.

    놀랍게도 적홍색 명충들은 멀리 튕겨나가 잇달아 폭발했다.

    폭발로 붉은 태양 여러 개가 허공에 나타나 진동하며 공간을 찢어냈다. 명충들이 폭발하면 얼마나 위력적인지 알려주는 광경이었다.

    그 모습에 대승기 노조들도 깜짝 놀랐다. 이야기는 들었지만 자폭명충은 굉장히 위험했다. 이 정도 폭발이면 그들을 죽일 수는 없어도 중상을 입힐 수도 있을 것이다.

    이때 선박 위로 분홍색 거대 꽃 허상이 스치고 보화가 무표정하게 나타났다.

    배의 앞과 뒤를 지키고 있던 대승기 노조들이 그녀에게 감사를 표하기도 전에 파공음이 들리고 십여 마리의 적홍색 명충들이 등장했다.

    명충들은 순간이동을 해 보화 가까이로 접근해 바로 폭발 직전의 화염을 분출했다. 보화를 겹겹이 에워싸고 단번에 끝내겠다는 심산 같았다.

    그러나 보화는 몸에서 수많은 은색 별들을 불러내 끝없이 넓은 은하수를 펼쳐 명충들을 휘감았다.

    콰콰콰쾅!

    낮은 폭음과 함께 몇 개의 태양들이 떠올랐지만 은하수 안에서 연기처럼 사라져 주변에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은하수의 별들은 한 곳으로 밀집해 기다란 깃발로 변했다. 그것은 은빛으로 영롱하게 빛나는 낙성번이었다.

    선실 속에서 둔광들이 날아올랐다. 불안한 마음에 십여 명의 대승기 수사들이 대청에서 나온 것이다. 그 중에는 한립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팔짱을 끼고 보화가 두 보물로 어떻게 명충들을 해결하는지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앞서 일부 적홍색 명충들이 자폭에 실패하자 곤충 떼 전체가 요동쳤다. 충해 속의 명충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거의 천 마리에 가까운 적홍색 명충들이 날아들었다.

    수많은 자폭명충의 출현에도 보화는 얼굴 하나 찌푸리지 않고 깃발을 은하수 허상으로 만들어 손끝으로 고공의 작은 거울을 가리켰다.

    손바닥 크기의 거울이 웅! 진동하며 바람을 타고 커져 둥그런 달처럼 떠올랐다. 안에서 금색 기운이 흘러나와 백여 개의 빛다발로 변해 적홍색 명충들을 꿰뚫었다.

    이에 백여 마리의 적홍색 명충들이 폭발했고 그 여파로 생겨난 붉은 화염 때문에 대량의 명충들이 죽어나갔다. 하지만 남은 자폭명충들은 날개를 털고 흐릿하게 사라졌다.

    보화가 눈을 빛내며 의식으로 보물을 조종했다. 그러자 평온해 보이던 은하수 허상이 돌연 거세게 출렁이더니 공간 파동을 뿜어냈다.

    이에 거대 선박 주변에서 순간이동을 하던 적홍색 명충들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그 모습에 보화는 입 꼬리를 끌어올리며 체내의 막대한 법력을 고공의 만월(滿月)로 불어넣었다.

    둥근 달은 눈부신 빛을 발하며 금빛 다발을 분출해 은하수에 갇힌 적홍색 명충들을 폭파시켰다.

    금빛이 비처럼 쏟아져 자폭명충들을 멸하자 둥근 달도 영기의 빛을 잃고 작은 거울로 변해 떨어져 내렸다.

    보화는 손을 뻗어 거울을 받고는 아직 남아 있는 자폭명충들을 보고 수결을 맺었다.

    쿵!

    은하수 허상 속 은색 별들이 중심부를 향해 흐르다 폭발해 은빛 광풍을 만들어냈다. 기이하게도 그 속에서 하얀 균열들이 깜빡 거렸다.

    “시공폭풍(時空暴風)!”

    대승기 노조 한 명이 놀라 소리쳤다.

    다음 순간, 은색 광풍에 휘말린 적홍색 명충들이 강제로 빙글빙글 돌다 하얀 균열에 잡아먹혀 전부 자취를 감추었다.

    그제야 보화는 작게 한숨을 쉬며 손짓을 했고 은색 광풍 대신 은색 깃발이 나타나 그녀의 손에 들어왔다.

    굉장한 신통을 사용했으니 낙성번의 영성도 큰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시공폭풍 같은 역천의 신통은 낙성번 자체의 손상을 감수하고 비술을 썼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폭명충들은 모두 처리했습니다. 이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보화가 두 보물을 거두고 선박으로 서서히 내려왔다. 그러자 대승기 노조들은 선실 속 대청으로 돌아갔고, 보화도 대청 한 구석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노조들이 두 보물의 위력에 수군거리는 동안 한립도 미소를 띠고 제 자리로 돌아갔다.

    자폭명충과 고계 명충들의 방해가 사라지자 정예병 무리는 순조롭게 충해를 뚫고 앞으로 나아갔고, 반나절 후에는 멀리 시인의 땅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인의 땅이 보이기 시작하자 대승기 수사들은 대청을 나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인의 땅 외곽은 황량한 구릉 지대였고, 간혹 다층건물과 전각이 보이기는 했지만 사람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더욱 괴이한 일은 바짝 뒤쫓던 명충 떼가 이곳을 경계해 더 이상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상고봉인의 힘이 명충을 억제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병사들은 명충 떼를 감시하도록 여기 놔두고 우리들만 시인의 땅으로 향하지요.”

    동아 노조가 냉랭히 말했다.

    “알겠습니다. 원래 계획대로 작 수사와 봉 형께서는 이곳에 남아 외부 금제를 복구하는 일을 맡아 주십시오. 이곳의 금제들도 상고봉인과 연결되어 있으니 약간이라도 복구할 수 있으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보화도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했다.

    * * *

    마족 성조 남녀가 앞으로 나섰고, 나머지 대승기 노조들과 그들의 문하 제자들은 보화를 따라 시인의 땅 속으로 들어갔다.

    시인의 땅은 강력한 금공금제가 작동해 대승기 노조들도 문하 제자들을 데리고 저공비행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반 시진 후, 앞쪽에 협소한 협곡이 나타났다. 옅은 보라색 안개가 흘러나와 하늘 위 구름까지 쌓여 있었다.

    “저건…….”

    몇몇 노조들이 안개를 훑고 미세하게 표정이 달라졌다.

    “안개에 닿지 않도록 다들 주의해 주세요. 명충모가 배출한 사기(邪氣)입니다. 사기에 감염된 성계의 마충들이 명충으로 변한다는 것은 들어 알고 계시겠지요.”

    보화가 경고했다. 놀란 노조들은 보호막을 더욱 두껍게 만들거나 방어 보물 몇 가지를 더 발동하기도 했지만 그 밖의 수사들은 자신의 신통에 자신이 있는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협곡 상공에 도착한 이계의 노조들은 무의식중에 헛바람을 들이켰다. 보라색 안개로 가득 찬 협곡은 끝없이 이어졌고 가끔 불어오는 사악한 기운이 담긴 악풍(惡風)에 소름이 돋았던 것이다.

    “이곳이 상고봉인이 있는 장소란 말인가…….”

    눈을 가늘게 뜨고 한립이 중얼거리는데 보화가 가볍게 웃음 지으며 답했다.

    “상고봉인은 지하 깊은 곳에 있습니다. 상고시대 때 성족들이 봉인 주변 만 리를 파내 거대한 지하 궁전을 만들고 층층이 현묘한 금제를 설치해 두었지요. 명충모는 지하 궁전 중심부에 있고요. 원래는 명충모가 상고봉인 일부를 장악해 지하 궁전으로 들어가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마침 천지원기가 주기적으로 대폭발을 일으키는 때라 상고봉인이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평소였으면 무사히 지하로 잠입했어도 명충모가 눈치 채고 깨어났을 겁니다.”

    “명충모가 그렇게 예민하단 말입니까? 강대한 곤충류는 원기를 크게 상하면 깊은 수면에 빠져 힘을 회복하는 터라 누군가 가까이 접근하거나 생명에 위협이 될 만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 도중에 깨어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던데요.”

    삼각형 눈에 은실로 짠 도포를 입은 노인이 물었다.

    “누가 곤충류 흉수에 대해 이리 잘 파악하고 있나 했더니 독 도인이셨군요. 명충모는 평범한 흉충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을 명충모에게 적용하려 들면 착오가 생길 것입니다.”

    “흥, 어디 정말 그런지 보겠습니다.”

    “못 믿으시겠다면 지금 당장 시험해보셔도 좋습니다.”

    보화는 독 도인의 대꾸에 흥미가 없다는 듯 더는 그를 상대하지 않고 협곡만을 쳐다보았다. 보화의 대꾸에 안색이 변한 독 도인도 삼각형의 눈을 번뜩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때 한립은 독 도인을 살피고 있었다. 보화에게 저렇게 말할 수 있는 자라면 나름 내력이 있는 자일 것이 분명했다.

    “한 수사, 독 도인은 성격이 옹졸한데다 고독술(蠱毒術)을 익혀 저도 직접 맞붙으면 골치 아픈 상대입니다. 멀리하는 것이 나은 인물이지요.”

    이를 어떻게 알았는지 보화가 전음으로 말해주었다. 한립은 무표정한 얼굴로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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