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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291화 (1,048/2,000)
  • 1291화. 대승기 수사를 참하다

    *

    한립은 거한이 다른 수를 쓰기 전에 재빨리 아래쪽의 푸른 연꽃을 가리켰다.

    거대한 푸른 연꽃이 폭발해 72개의 푸른 검빛으로 흩어져 고공에서 초대형 검으로 뭉쳐져 흑효왕 거인을 내리쳤다.

    “고작 어린애 장난 같은 기술로!”

    거인이 소리치며 커다란 손으로 푸른 검기를 붙들고 비틀었다.

    쨍강!

    놀랍게도 푸른 검기가 거인의 손에 비틀려 부러졌다.

    “으하하하!”

    거인이 웃음을 터트린 순간 부서진 푸른 검기에서 수정 실이 분리되어 그의 손목을 휘감았다. 피가 솟구치고 거대한 손이 미끄러지듯 떨어져 내렸다.

    거인이 참혹한 비명을 지르며 부채를 내던지고 재빨리 잘려나간 손을 잡으려 했다. 그런데 한립이 모호하게 사라져 잘린 손 옆에 나타나 손가락으로 거대 손을 가리켰다.

    펑!

    잘려나간 손이 터져 핏물로 변해버렸다.

    “내 너를 도륙 낼 것이다!”

    두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흑효의 하나 남은 손에서 은색 손톱이 자라나 다섯 개의 날카로운 칼날처럼 쇄도했다.

    한립은 피하지 않고 가볍게 주먹만 내질렀다. 그러자 그의 몸에 무수히 많은 은색 문양들이 떠올라 자금색 보호막으로 변했다.

    티티팅!

    날카로운 손톱들은 한립을 맞추고 보랏빛을 터트리며 터져나갔다.

    “헉!”

    거한은 믿을 수 없었다. 야차족은 원래도 몸이 단단하기로 유명했기에 대승기 수사인 그의 손톱은 특수한 제련을 통해 영보급의 강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한립이 맨몸으로 튕겨냈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흑효가 불길한 마음에 하나 남은 손을 거둬드리려는데 이미 늦고 말았다.

    한립의 팔뚝이 늘어나 주먹이 모호해지더니 흑효의 손을 강타한 것이다. 빛무리가 터지고 그 안에서 거한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입꼬리를 올린 한립이 뒤로 물러나 멀리서 모습을 드러냈다.

    흑효 거인을 가리던 빛무리가 사라지고 광장의 수만 수사들은 몹시 즐거운 광경을 보게 되었다. 거인의 팔 한쪽이 사라지고 다른 한쪽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연체술! 연체술을 위주로 수행해 대승기에 이르렀단 말인가!”

    자신의 처참한 몰골을 본 흑효는 경계심을 드러냈다.

    “뭐 대충 그렇다고 치지요. 기왕 겨루기 시작했는데 급히 떠나지 마시고 인족에서 며칠 더 머물 다 가시지요.”

    한립이 미소를 머금고 두루뭉술하게 답했다.

    “흥, 고작 이 정도 상처를 내놓고 나를 어쩔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마시지요. 놀이는 이제 시작인데 어딜 간단 말입니까. 이제 막 대승기에 이른 수사가 본 좌의 적수가 될 수야 없지요.”

    흑효가 어깨를 털어 검은 기운으로 전신을 뒤덮었다.

    우드득! 우득!

    폭음이 검은 기운 속에서 울려 퍼졌다. 한립도 의외라는 듯 눈썹을 끌어올렸다. 검은 기운이 가시자 거한의 잘려나간 손과 망가진 팔뚝이 완벽하게 복구되어 있었다.

    “불멸체! 어쩐지 다짜고짜 육박전을 한다했습니다.”

    “어디 수사도 그렇게 신체 능력에 자신이 있으면 본 좌의 신통을 막아 보시지요! 화천위지(划天爲地)!”

    거한이 수결을 맺자 안 그대로 방대한 몸이 더욱 커졌다. 거대한 팔로 앞쪽 허공을 휘젓자 설명할 수 없는 괴이한 파동이 생겨났다.

    “법칙의 힘.”

    한립이 동공을 수축하며 중얼거렸다.

    “으하하, 알면 되었습니다. 이제 막 대승기에 이른 자가 얼마나 천지법칙을 이해하고 있나 볼까요?”

    흑효가 광소를 터트리며 허공을 가른 손가락에서 가느다란 검은 실이 나타났다. 검은 실이 흐릿해지고 천지가 별안간 뒤집힌 것처럼 하늘은 새까맣게 변하고 땅은 밝은 빛을 발했다.

    * * *

    광장 안, 수만 수사들의 어깨가 묵직해졌다. 거대한 바위에 깔리기라도 한 듯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한립은 의식으로 흑백 천지(天地)를 살피고 냉소했다. 등 뒤에서 삼두육비 범성금신이 자금색 빛줄기로 변해 그의 몸으로 뛰어들었다.

    쿠릉!

    금빛을 발산한 한립이 삼두육비의 자금색 거대 원숭이로 변신했다. 여섯 개의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린 거대 원숭이의 표면에는 은백색 문양이 가득했고 체구가 엄청나게 불어나 하늘을 뚫고 나갈 듯했다.

    전신을 맴돌던 은백색 문양이 진법을 응결해 거원 전신에 문신처럼 새겨졌다.

    ‘뭐야 저건!’

    그걸 본 거한은 가슴이 서늘해져 손가락으로 동그란 원을 그렸다. 흑백천지에서 날벼락이 치고 거대한 흑백 고리가 나타나 형틀처럼 거원의 몸을 조이려 들었다.

    거원의 세 머리가 힐끗 그것을 보고 얼음장 같은 눈빛을 보냈다. 자금색 털을 꼿꼿하게 세운 거원의 몸에서 은백색 문양 진법들이 빛을 발했다.

    무형의 어마어마한 압력이 흘러나와 폭풍처럼 거대 고리와 충돌했다. 흑백 고리가 부들부들 떨리며 뒤로 밀려났고 털이 가득한 여섯 개의 손이 나타나 고리의 각 부분을 잡고 힘을 주었다.

    쨍강!

    흑백 거대 고리가 애달피 울다 산산조각나 부서져 내렸다. 이에 술법을 펼치던 거한의 얼굴에 기이한 홍조가 돌고 울컥 은색 정혈을 토해냈다.

    겁에 질린 거한은 법칙의 힘이 되돌아와 들끓는 기혈을 강제로 억누르고 다른 술법을 펼치려 했다. 그러나 삼두육비 거원이 먼저 움직였다.

    거원이 여섯 개의 팔을 들어 올리자 팔뚝의 여러 문양 진법들이 주먹으로 뭉쳐 하나로 융합되었다.

    쿠쿵!

    거원의 주먹이 눈부신 빛을 머금고 노호성을 터트린 순간 허공을 강타했다.

    퍼퍼퍼퍼퍽!

    주먹 허상들이 수많은 은색 빛의 실로 변해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검은 하늘을 공격했고 엄청난 굉음이 공간을 찢고 전해졌다.

    흑백 공간이 불안정하게 깜빡이다 철저히 부서졌다.

    광장과 상공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힘들게 압력 속에서 버티던 수사들은 가벼워진 어깨에 고개를 들고 고공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은색 실들이 고공에 응결되어 은색 거대 손을 이루고 거한을 덮치고 있었다.

    거한이 안색이 급변해 다급히 옥 부채를 끌어와 거세게 부쳤다. 부채에서 일곱 빛깔 기운이 꿀렁꿀렁 퍼져나가고, 그의 입에서도 네모난 새까만 보물이 튀어나가 커다란 벽돌로 변했다.

    일곱 빛깔 기운과 새까만 벽돌은 거의 동시에 거대 손에 도달했다.

    쿠콰쾅!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은색 거대 손이 다섯 손가락을 오므려 새까만 벽돌을 가루로 만들고 일곱 빛깔 기운을 찢어냈다. 그리고 곧장 거한 바로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강렬한 보물 두 개가 나가떨어진 것을 보았기에 거한은 맨몸으로 막을 생각은 하지 못하고 번뜩 신형을 날려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거원의 중간 머리가 냉소하고 주먹으로 허공 어딘가를 두들겼다.

    퍽!

    은색 주먹 허상이 날아가 종적을 감추었다가 수십 장 밖에서 모습을 드러낸 거한의 등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거한이 경악해 다시 공간을 뛰어넘어 달아나려 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펑!

    등에서 끔찍한 고통을 느낀 거한은 검은 갑옷이 쪼개지고 멀리 튕겨나가 원래의 크기로 되돌아왔다.

    겨우 몸을 가눈 거한은 목구멍에서 비린내가 치밀어 올라 정혈을 토해냈다.

    거한은 깜짝 놀랐다. 검은 갑옷은 49가지 진귀한 재료를 이용해 수백 년간 제련한 방어 보물이라 누군가의 일격에 산산조각 날 물건이 아니었다.

    ‘내가 상대할 수준이 아니야!’

    등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참으며 흑효가 결단을 내렸다. 그는 곧바로 둔광을 일으켜 검은 빛줄기로 변해 날아가 하늘 끝에서 나타났다.

    “제 대승경전을 뭘로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소란을 피워놓고 이렇게 쉽게 달아날 수 있을 듯싶습니까? 염검결(念劍決)!”

    거원의 중간 머리가 소리쳤다. 그러자 3개의 제3요목이 미간을 찢고 나타나 세 줄기의 반짝이는 빛기둥을 분출했다. 빛기둥들은 반짝거리는 비검들로 변해 허공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저 멀리, 하늘 끝에서 비술을 사용해 단숨에 이곳을 뜨려던 거한이 화들짝 놀라 몸을 비틀었다. 바로 그때, 인근에서 비검 세 개가 번득 날아들었다.

    미리 알아챈 거한은 그중 두 개는 피했지만 마지막 비검에는 허리를 베이고 말았다.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고 엄청난 양의 핏물이 흩날렸다.

    하지만 거한도 대승기 수사였기에 치명적인 일격에도 상반신에서 검은 인영이 튀어나와 흑효와 똑같이 생긴 소인으로 변했다.

    소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검은 바람으로 잘려나간 시체를 휘감아 도망쳤다.

    “한 가 녀석아! 오늘 받은 수모는 뼛속 깊이 새겨 두었다가 돌려주겠다!”

    멀리서 거한의 격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럴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 영충들의 추살에서 살아남고 다시 말씀하시지요.”

    삼두육비 거원이 자금색 빛을 반짝이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말했다. 그의 소매 속에서 금색 꽃잎들이 날아올라 흉악하게 생긴 보라색 문양의 금색 껍데기를 지닌 거대 곤충으로 변해 유성처럼 하늘을 갈랐다.

    곧 소인과 세 빛줄기 모두 보이지 않게 되었다.

    대충 봐도 영충의 속도는 거한에게 뒤처지지 않았고 합체 후기에 상당하는 실력과 육신이 더해져 중상을 입은 거한의 좋은 적수가 될 것이다.

    한립은 흑효가 가짜 충왕들에 의해 목숨을 잃을 거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반드시 큰 부상을 입을 거라는 것에는 확신했다.

    광장에 모인 인요족 수사들과 이종족 사자들은 한립의 불가사의한 신통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넋이 나가있었다.

    거원으로 변한 한립이 야차족의 사나운 대승기 수사를 마구 밀어붙이다 육신마저 두 동강내 쫓아내는 것을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모든 수사들이 격정에 차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선배님께서는 영계 전체에 위명을 떨치실 겁니다!”

    “한 선배님, 세상에 다시없을 신통이십니다!”

    수많은 인요 양족 수사들이 흥분한 목소리로 외쳐댔다. 한립이 또 다른 대승기 수사를 물리치자 양족이 드디어 부흥할 기회가 왔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인족과 요족 수사로서는 열광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환호성이 어찌나 큰지 금제를 뚫고 천연성 까지 소리가 전해졌다.

    대승경전에 참석하지 못한 이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까맣게 몰랐지만 흥겨운 분위기에 감염된 듯 즐겁게 소리를 내질렀다.

    천연성 전체가 한립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러나 대승경전에 참석한 이종족 사자들은 경외심을 드러내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을 숨길 수 없었다.

    인족에 돌연 대승기 수행을 지닌 엄청난 실력자가 나타난 것은 주변 종족들에게 좋은 일이 될지 나쁜 일이 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대승경전이 끝나는 대로 이 일을 본족에 알려야겠다고 결심했다.

    * * *

    환호성이 잦아들 무렵 한립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허공에서 무수히 많은 푸른 실들이 나타나 그의 발밑으로 거대한 푸른 연꽃을 만들었다.

    “불청객은 떠났습니다. 관례대로 이레 동안은 밤낮없이 강연을 할 것이니 많은 깨달음을 얻고 각자의 기연을 찾아가기를 바랍니다. 다만 이전과는 달리 강연을 공개해 금제를 제거하고 누구나 이곳에 올라와 함께 들을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한립은 아래를 둘러보고 담담히 선언했다.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순식간에 아주 멀리까지 퍼져 산봉우리 밖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천연성 수사들은 놀라서 멍해졌다가 미친 듯이 기뻐했다.

    건물 안에 있던 자들이나 거리에 있던 자들이나 모두 삼색 거대 산봉우리를 향해 밀려들었고 전송진 주변에서 질서를 유지하던 병사들도 희색이 만연해 인파를 따라갔다.

    그 시각, 한립은 푸른 연꽃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수행이 낮았던 연기기 시절부터 자신이 경험한 바와 깨달음을 차분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광장에 모인 수사들은 인족과 요족 그리고 이종족까지 전부 진지한 얼굴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대승기 수사의 강연을 듣는 것은 누구에게나 큰 행운이었고 평소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연기기 시절의 이야기도 한마디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한립의 목소리가 퍼져나가는 동안 더 많은 수사들이 산봉우리로 몰려들어 광장 주변을 가득 채웠다.

    그 뒤로 오는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삼색 산봉우리 곳곳의 산길이나 다른 건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몇 시진 후에는 삼색 거대 산봉우리 위쪽이 수사들로 가득 찼지만 아직도 수사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어느 곳에 있든 거대 산봉우리 위에만 있으면 한립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분명하게 들렸다. 많은 이들이 어떻게든 위로 올라가려다가 귓가에서 울리는 소리를 듣고 자기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곤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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