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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288화 (1,045/2,000)
  • 1288화. 경전의 시작

    *

    천연성에서 멀리 떨어진 곳은 벌써부터 선물과 파견할 사자를 고르고 있었다. 결국 겨우 두세 달 만에 인족에 새롭게 나타난 대승기 수사와 관련 경전에 관한 소식이 파다하게 퍼져나갔다.

    심지어 영족과 야차족 등 인근 종족들도 경전에 참가하겠다는 답변을 보내왔는데 이상하게도 유일하게 성도 쪽만 냉담하게 반응했다.

    인근 이종족 외에도 인요족의 유명한 산수들도 일찍 출관하고 천연성에 다녀올 계획을 세웠다.

    이전부터 새로 대승기에 이른 수사는 대승경전에서 공개적으로 자신의 경험과 깨달음을 나누곤 했기 때문이었다. 고비를 넘기 위해 준비 중이거나 합체기 고비에서 많은 시간 정체되어 있는 수사들에게는 엄청난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대승기 수사의 강연을 듣고 갑자기 수련 상 막혔던 부분이 뻥 뚫려 쉽게 고비를 넘는 경우가 종종 있었던 것이다.

    * * *

    한립의 대승경전에 관한 소문이 퍼지고 인근 지역의 수련자들이 개미 떼처럼 성으로 몰려들었다.

    천연성은 나날이 수사들로 붐볐고 멀리서 온 요족 강자들도 수시로 나타났다. 이런 실력자들은 곧바로 천연성으로 진입하지 않고 인근 산맥에 머물며 임시 거처를 마련하기도 했다.

    대승경전을 한 달 앞둔 무렵, 수많은 수사들이 몰려들어 하루에 십만 명 넘게 유입되었다. 이에 수행이 높은 유명 수사와 친분을 맺으려 하거나 아니면 사적으로 교역회를 마련해 지니고 있는 재료와 보물을 거래하는 자들도 많았다.

    이에 천연성 내에서는 닷새나 엿새마다 정식으로 경매회가 벌어지고 있었다. 경매회에는 진귀한 물건들이 쏟아져 들어와 심지어 천연성의 몇몇 장로들도 의외의 수확을 얻어 귀가 입에 걸리기도 했다.

    천연성이 거대하기는 하지만 너무 많은 고계 수사들이 몰려드는 통에 나중에는 머물 곳을 찾지 못하는 자들도 생겨났다.

    천연성 고위층은 서둘러 병사들의 거처인 석탑과 일부 비공개 지하 궁전 등을 개방하는 한편 성 외곽에 임시로 누각과 전당을 세워 머물 곳을 마련했다.

    이렇게 천연성은 간신히 몰려드는 수사들을 감당하고 있었다.

    수사들이 몰려들어 각종 사고가 끊이지 않았지만 영리한 천연성 장로들이 적시에 나서 빠르게 문제를 해결했다.

    모든 사람들이 대승경전에 참석할 수 없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의식을 참관하게 될 수사들은 백 명 중 한 명도 되지 않았다. 대부분은 어떻게든 이 틈에 기연을 얻고자 몰려든 것이다.

    이렇게 많은 고계 수사들이 한 곳에 밀집하는 것은 수천 년 혹은 만 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일이었다.

    수사들은 운 좋게 사부를 만나 거대 종문에 들어가거나 오랫동안 찾아다니던 영단을 구했다.

    * * *

    하늘이 어둑할 무렵.

    천연성 중심에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광장에 언제부터인가 하얀색 높은 탑이 세워져 있었다.

    탑 위에는 정체 모를 무언가가 덮여있었고 그 옆에는 웃통을 벗은 근육질의 거한이 보였다.

    탑 아래로는 수만 명의 갑옷 병사들이 서서 주변을 물샐틈없이 지키고 있었다. 병사들 속에는 은발 노인 등 천연성 장로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합체기 수사들은 이제 막 해가 뜨기 시작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숙연한 얼굴을 했다.

    “시간이 되었다. 종을 쳐라!”

    불그스름하게 올라온 태양 빛을 보고 곡 장로가 눈을 번뜩였다.

    “예!”

    탑 위의 역사(力士)가 덤덤하게 답하고 금색 천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그 안에는 오색 문자로 뒤덮인 은색의 거대한 종이 떠있었다.

    그리고 역사가 한 손을 들어 올리자 금빛이 반짝이고 금색의 기다란 망치가 나타났다. 그는 망치를 단단히 쥐고 부웅! 하고 팔을 회전해 은색 거대 종을 내리쳤다.

    대앵!

    은색 기운이 출렁출렁 퍼져나갔고 거대한 종 표면의 문자들이 번득 날아올라 아름답게 춤을 추었다.

    종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멀리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귀청을 울릴 듯 커졌다.

    천연성 어디에서든 또렷이 종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별 반응이 없던 수사들이 종소리가 잇달아 울리자 안색이 급변해 소리를 높였다. 앉아서 조용히 수련하던 이들이나 지인들과 늦게까지 모여 있던 이들이나 모두 마찬가지였다.

    “진천종(震天鍾)! 대승경전이 시작되는구나!”

    적잖은 이들이 문을 박차고 나와 종소리가 울리는 곳으로 향했다. 종소리는 총 81번을 울리고 나서야 들리지 않게 되었다.

    이때 근처에 머물던 수도자들이 먼저 광장에 도착해 중앙의 천연성 병사들과 장로들을 보고 놀란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은발 노인이 미소를 짓고 입술을 달싹여 누군가에게 전음을 보냈다.

    그리고 광장 사방에서 하얀 빛의 진법이 반짝이고 더 많은 병사들이 쏟아져 나왔고, 병사들은 광장 외곽을 겹겹이 둘러싸 잠시 다가오는 이들을 가로막았다. 이에 수사들은 무턱대고 안으로 뛰어들지 못했다.

    이때 탑 인근의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이동해 열댓 개의 공터를 마련했고 그곳을 중심으로 임시 전송진법이 나타났다.

    “한 선배님께서도 시작하셨겠죠? 시간이 촉박해 말씀하신 대로 준비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은광 선자가 광장 주변으로 몰려드는 인파를 보며 불안하게 말했다.

    “대승기 수사의 능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한 선배님께서 말씀하셨으면 어떤 착오도 생기지 않을 테니 안심하세요.”

    은발 노인이 미소를 머금었다.

    “우리 양족의 세 번째 대승기 수사이신 한 선배님께 이 정도 일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만 평범한 연기 재료들이기는 해도 성에 쌓여 있던 재료의 3분의 1을 가져가신 것은 좀 너무했습니다.”

    옆에 있던 흑포인이 쓴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양이 얼마나 되었든 평범한 재료일 뿐입니다! 충분히 시간을 들이면 언제고 다시 모을 수 있는 것들이지요. 그걸로 한 선배님과 좋은 인연을 시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하하, 곡 형의 말씀이 맞습니다! 보아하니 우리 중에서 수사야말로 가장 멀리까지 내다보는 분이군요.”

    은발 노인의 말에 금월선사는 눈을 반달모양으로 접고 미소 지었다.

    석탑 안에서 눈을 감은 한립 주위로 자금색 광채가 흐르고 있었다. 그는 은은하게 들려오는 81번의 종소리를 듣고 번쩍 눈을 떴다.

    “딱 맞게 시작되는구나. 막 제련을 마쳤으니 그걸 쓰면 되겠어.”

    한립은 입에서 은색 화염을 분출했다.

    화염 속에는 세 가지 색깔을 지닌 작은 산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그는 만족스런 얼굴로 작은 산을 바라보다 손을 뻗어 그것을 가리켰다.

    은색 화염이 반짝이고 작은 산이 화려한 빛을 발하고는 모호하게 사라졌다.

    다음 순간, 천연성의 거대한 광장 위에 공간 파동과 함께 세 가지 색깔을 지닌 작은 산이 나타났다.

    콰르릉!

    삼색 산들에 금색 뇌전들이 미친 듯이 튀어나와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작은 산이 갑자기 거산으로 변해 무시무시한 기운을 내뿜어 수사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한립은 삼색 산봉우리 옆에 나타나 광장 주변에 빼곡하게 모인 수사들을 보고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신비로운 미소를 머금은 그가 훅하고 푸른 정기를 불어냈다.

    삼색 거대 산봉우리가 빙글빙글 회전하더니 삼색의 주술문자를 미친 듯이 뿜어냈다. 이에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울리고 천지원기들이 요동쳐 오색 기운들이 광장을 향해 밀려들었다.

    엄청난 빛과 굉음 속에 거산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나 큰지 거산의 그림자가 천연성 중심부를 전부 가릴 정도였다.

    수사들이 놀라 고개를 들어 고공을 보았지만 새까만 거산의 아랫부분만 보여 눈을 동그랗게 떠야했다. 산봉우리를 처음 본 것은 아니었지만 그게 하늘에 떠있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게다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분명 아무것도 없지 않았던가!

    멀리서 서둘러 경전에 참석하기 위해 모여든 이들은 모두 삼색 거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거산 위에는 빼곡하게 누각과 전각들이 들어서 있었고 정상에는 하얀 안개가 드리워 있어 그 안에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듯했다.

    일부 수사들이 병사들의 만류에도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고공의 거산을 향해 날아올랐다.

    그때 삼색 거산이 은빛을 거둬들이고 움직임을 멈추었다.

    한립은 산봉우리를 향해 솟아오르는 몇몇 수사들을 보고 유유히 한 손으로 수결을 맺었다. 삼색 거대 산봉우리 표면에 투명한 금제가 일어나 주변 공간을 봉쇄했다.

    이에 날아오르던 수사들은 무형의 보호막에 펑! 펑! 튕겨나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렇게 많은 수사들이 제 대승경전을 찾아주시어 영광입니다. 참가 자격을 지닌 수사들은 아래쪽 전송진법을 통해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저는 산 정상의 대승선탑(大乘仙塔)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거대 산봉우리 정상에서 한립의 목소리가 울렸다! 어떤 신통을 사용했는지 수사들 바로 옆에서 말하는 듯했다.

    “한 선배님!”

    “한 노조님의 전음이야!”

    전음을 들은 수사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느라 소란스러웠고, 광장에 모여 있던 병사들은 경전에 참석할 인물들을 열댓 개의 전송진법으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삼색 거대 산봉우리 위의 빼곡한 건물로 통하는 열댓개의 전송진이었다. 처음으로 전송된 수사들은 전송진을 빠져나오며 주변을 살폈다.

    대전 안에는 하얀 장포를 입은 남녀 시종들이 그들을 맞이했다. 시종들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서 예의 바르지만 당당한 어투로 말했다.

    “선배님들, 이쪽으로 가시지요. 저희가 정상의 경전 장소로 안내하겠습니다.”

    백의 시종들은 결단기 혹은 원영기 수행을 지녔는데 이를 본 수사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대전을 나서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올라갔다.

    백의 시종들은 기령자 문하의 자제들도 있었고 한립이 곡 장로에게 말해 잠시 데려온 시종도 있었다.

    전송진은 계속해서 빛났고 수사들은 끊임없이 몰려나왔다. 대전 안에 수사들이 모이면 시종 하나가 그들을 이끌고 산길을 올라갔다.

    산길을 따라가면서 수사들은 아름다운 정자와 옥으로 만든 누각 그리고 정교한 조각과 온갖 신비한 화초를 볼 수 있었다.

    또한 아름다운 풍경 속에 짐승들이 뛰놀고 새들이 날아다녔는데 그중에는 전설 속에서나 들어봤을 법한 기이한 짐승도 많았다.

    일부 수사들이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자세히 보려고 산길을 벗어나자 주변 풍경이 모호해지며 하얀 안개로 둘러싸였다.

    수사들은 대경실색하며 그 자리에서 꼼짝 못하거나 당황한 나머지 법결을 날려 금제를 깨고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어떤 행동을 하던지 사방에 하얀 안개가 밀려들어 모든 공격을 무력화시켰다.

    하지만 산길에 서있는 다른 수사들이 보기에는 길을 벗어난 이들이 몸이 뻣뻣하게 굳어 꼭두각시처럼 서 있는 것으로 보였다.

    “환술.”

    수사들 중에 진법에 조예가 깊은 자가 있었는지 풍경을 보고 대번에 얼굴색이 달라졌다. 맨 앞에서 걷던 백의 시종이 바로 품에서 은색 영패를 꺼내 오색 빛 한줄기를 뿜어냈다.

    오색 빛줄기는 환술에 제압된 수사를 이끌어 원래의 길로 되돌아왔다. 그들은 찰나의 순간 하얀 안개가 걷히고 주변의 풍경이 되살아 난 것 같다는 착각을 했다.

    그때 백의 시종이 수사들에게 당부했다.

    “선배님들, 이 산의 풍경은 노조께서 막대한 법력을 들여 환상으로 만들어낸 것입니다. 제가 안내하는 곳을 제외하고는 곳곳에 금제가 있으니 저를 잘 따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만일 제가 뒤늦게 발견해 구조가 늦어지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요.”

    그 말에 수사들은 쓴웃음을 지었다. 대승기 수사가 펼쳐 놓은 환술이라면 절대 그들이 깰 수 없을 것이 확실했다.

    그 뒤로도 줄줄이 다른 무리의 수사들이 전송되어 왔고 소수의 경솔한 자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얌전히 시종을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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