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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287화 (1,044/2,000)

1287화. 오랜만의 회합

*

그 시각, 은월이 한립을 따라 대전을 걸어 나오다 빙긋 웃음 지었다.

“한 형, 성도사자들을 그냥 보내주실 건가요? 앙심을 품고 나중에 무슨 일을 저지르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요.”

“내 신분에 저들을 찾아가 괴롭히지 않는 것만으로도 천지신명께 감사를 드려야할 판에 그들이 감히 내게 무슨 짓을 할 수 있단 말이냐.”

“성인(聖人) 법상을 불러낸 두우라는 녀석은 평범한 합체 후기 수사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그 자가 대승기에 이를까 걱정되지 않으세요?”

“그가 매우 희박한 가능성으로 대승기에 이른다 해도 상관없다. 내게는 약간 성가신 일이 생기는 것뿐이니.”

한립은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합체 후기일 때도 대승기 수사들을 상대로 목숨을 부지했던 그였다. 이제 대승기에 이르러 그 신통이 몇 배로 늘어났는데 평범한 대승기 수사를 염려할 이유는 없었다.

“하긴 한 형의 신분에 후배에게 잔인하게 손을 쓰는 것도 합당하지 않겠네요. 오히려 체면이 상할 테니까요.”

“하하, 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구나.”

한립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지만 정말 그의 안위에 양향을 끼칠 인물이었다면 어떤 이유로든 화근을 살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 * *

몇 시진 후, 한립은 그가 머물던 거처로 돌아와 있었다. 대청 안에는 해대소와 기령자가 십여 명의 제자들을 데려와 감격스런 태도로 대례를 올리는 중이었다.

“일어들 나거라. 그동안 게으름을 피우지는 않았구나. 다들 수행이 조금 늘었어.”

“스승님, 대승기 수사가 되신 것을 감축드립니다! 인족 전체의 광영입니다.”

기령자가 몸을 일으키며 지극히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 성도사자 일로 걱정이 많았는데 성도사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불쑥 스승이 돌아와 스스로 대승기 경지에 이른 사실을 밝힌 것이다.

기령자와 해대소는 미친 듯이 기뻤다. 수백 년 사이 기령자는 화신 후기에 이르러 연허기를 한 걸음 앞두고 있었고, 해대소는 막 화신기에 이른 듯했다.

두 사람이 빠른 진보를 보인 것은 자질이 뛰어난 덕도 있었지만 한립이 떠나기 전 막대한 양의 단약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한립은 단약을 남겨둘 때 일상적인 수련에 도움이 되는 것 외에도 수행의 고비를 넘길 때 필요한 보조 영약들도 미리 준비를 해두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문하의 제자들이 순조롭게 지금의 경지에 이르렀을 리 없었다.

“내 대승기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기연이 따라주었기 때문이다. 각 종족에 대승기 수사가 나타나면 대승경전(大乘慶典)을 주최하는 것이 관례가 아니었다면 떠들썩하게 소문을 내지 않을 것이다. 공식적으로 관련 소식을 선포하기 전에 괜한 일을 벌여서는 안 된다. 그저 각 종족의 거대 세력에 미리 통보하고 경전은 1년 후에 천연성에서 치르면 될 것이다.”

“존명!”

기령자와 해대소가 허리를 굽히고 동시에 명을 받들었다.

“그렇지. 너희의 빙봉 사고와 백과아는 어딜 간 것이냐?”

한립이 대청 안을 훑으며 물었다.

“스승님께 아룁니다. 백 사매는 마겁이 끝나고 문중으로 돌아갔다가 몇 년 전부터 벗과 함께 경험을 쌓고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수시로 연락을 전해오기는 합니다. 또한 빙봉 사고께서는 수십 년 전 홀로 만황세계로 가셔서 소식이 없습니다. 떠나시기 전 원신등(元神燈)을 남기셨으니 아직까지 무사하신 것은 확실합니다.”

기령자가 자세히 대답했다.

“드넓은 만황세계에서 수백 년 정도 머물러도 이상할 것이 없지. 빙봉 사고가 내린 결정이라면 걱정할 것 없다. 그런데 과아 녀석이 그 정도 수행으로 다른 수사와 먼 길을 나선 것은 경솔한 듯싶구나. 사매의 빙수지체(氷髓之體)를 노리는 이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바로 연락을 취해 돌아오라 전하라.”

“예! 제자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바로 연락을 취하겠습니다.”

한립이 미간을 좁히자 기령자가 화들짝 놀라 말했다. 이어 기령자는 뒤쪽에 서있던 직전 제자 중 한 명에게 명을 내렸다.

“스승님, 잘못했습니다. 어떤 일인지는 자세히 말씀드리지 않아도 아실 테지요?”

해대소가 민망한 얼굴로 먼저 잘못을 실토했다.

“내가 전에 뭐라고 했더냐? 은뇌영근은 가벼이 떠들 일이 아니니 절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하라지 않았더냐. 쯧쯧, 그런 이야기를 술에 취해 떠들고 다녔다니! 내가 제때 돌아오지 않았으면 그 입 때문에 큰 화를 입을 뻔했다. 심지어 네 사형과 문하의 제자들까지 연루가 되었을 것이고.”

한립이 얼굴을 굳히고 서늘하게 훈계했다.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대승기 수사의 신분으로 내가 성도 수사들을 쫓아주었다. 허나 네 은뇌영근은 여전히 천겁을 약화시킬 수 있는 수단 중 하나이다. 이후 다른 종족의 대승기 수사가 너를 원하면 스승으로서 내가 어찌해야겠느냐?”

“전부 제 잘못입니다. 또다시 그런 일이 생긴다면 스승님께서 저를 그냥 보내셔도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저지른 일에 책임을 지겠습니다.”

해대소가 창백한 얼굴로 더욱 고개를 조아렸다.

“너를 내주라고? 스승의 체면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더냐! 이렇게 하자. 너는 대승경전이 끝나는 대로 잠시 신분을 숨기고 내 곁을 떠나 있거라. 소문이 가라앉고 이 일을 언급하는 이들이 없어지면 다시 불러들이겠다.”

침음하던 한립이 천천히 해결책을 내놓았다.

해대소는 한립이 모든 것을 홀로 책임지려는 것을 알고 감격해 크게 절을 올렸다. 한립이 눈짓으로 해대소를 일으켜 세우고는 은월과 해 도인을 가리켰다.

“너희의 은월 사고와 해 선배시다. 앞으로는 나를 대하듯 웃어른으로 정중히 모셔야 할 것이다.”

“은월 사고님과 해 사백님을 뵙습니다!”

“은월 사고조(師姑祖)님과 해 선배님을 뵙습니다!”

진작 은월과 해 도인을 눈여겨보고 있던 기령자가 재빨리 선창하자 나머지 제자들도 공손히 예를 올렸다.

은월이 미소를 머금고 손을 저어 인사를 받아주었고 해 도인은 무표정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이 아이는 주과아다. 하하, 너희 백 사매와 이름이 같지! 아는 사람이 드문 곳에서 온 아이인데 어찌 된 일인지는 앞으로 차차 설명해주겠다. 앞으로 주 사매와도 잘 지내거라.”

마지막으로 한립은 옆의 주과아를 소개했다.

“주 사매,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가워. 백 사매가 보았다면 진짜 좋아했을 텐데.”

기령자가 눈에 이채를 띠고 주과아를 향해 친근히 미소를 지었다.

“한 선배님 곁에 한동안 머물 것 같은데 제가 실수하는 부분이 있더라도 사형들께서 너그럽게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주과아도 고분고분 기령자와 해대소에게 예를 올렸다.

그 후 한립은 제자들에게 그가 폐관수련하며 벌어졌던 일에 대해 물었다. 특히 마족들이 뜬금없이 영계에서 철수한 것에 대해서는 아주 상세하게 알고자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기령자와 해대소는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

어느 날 천연성 장로회에서 마족들과 휴전 협정을 맺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족 거점의 마족 대군이 썰물처럼 통로를 통해 마계로 돌아갔다고 했다.

인요족은 마족대군들이 버리고 간 땅을 손쉽게 수복했고 일부 떠나지 않은 소수의 마족들만 남아있었다. 그동안 인요족은 마겁으로 인한 손실을 회복하는데 주력해 꽤 번영된 예전의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한립은 주의 깊게 기령자의 말을 듣다 입을 열었다.

“그 말은 막간리와 오소 대인들이 마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식이 끊겼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스승님. 저희가 평소에 천연성 장로들의 제자들과 친분이 있어 듣게 되었습니다. 성도에서 대놓고 천연성에 사제를 내놓으라고 압박을 가한 것도 두 선배님들의 실종과 관계가 있을 겁니다. 안 그랬으면 두 선배님들과 스승님의 관계를 알고도 이런 일을 벌일 수 있었겠습니까!”

기령자가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흠, 성도에 한 번 다녀와야 할 듯싶구나. 네가 따로 해줘야할 일이 있다.”

“무엇이든 분부만 내려주시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여기 목록이 있으니 문하의 제자들을 데려가 수집하고 관련 정보를 모아 오거라. 영계에서 아주 귀하고 보기 드문 물건들이니 행방만 찾아와도 된다.”

“예, 스승님!”

한립의 명에 기령자가 곧바로 답했다. 옆에서 해 도인이 사제지간의 대화를 듣고 안색이 미미하게 달라졌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이제 물러가 쉬거라. 난 은월 사고와 상의할 일이 있다.”

한립의 말에 기령자와 해대소가 우렁차게 답하고 제자들을 이끌고 물러났다. 주과아도 눈치 있게 그들과 같이 대청을 빠져나갔다.

이제 대청 안에는 한립, 해 도인 그리고 은월뿐이었다.

“은월, 너도 오소 선배님께 들은 말이 없느냐?”

“없어요. 목숨이 걸린 큰일이 있다면 직계 혈육인 제게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을 리 없고요.

은월이 어두워진 얼굴로 답했다.

“그렇다면 오소 선배님과 막 선배님의 실종은 마족과 연관되어 있다는 소리인데. 천연성에서도 그 이유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니 성도에 가야 자세한 정보를 접할 수 있겠구나.”

한립이 턱을 쓸어내리며 생각에 잠겼다.

“한 형, 일단 너무 걱정 마세요! 조부님과 전 같은 혈맥이라 무슨 일이 생겼다면 분명 뭔가를 느꼈을 것입니다. 조부님이 무사하시면 막간리 선배님도 무탈하실 테고요.”

“대승기 수사인 두 분을 쉽게 위험한 상황에 몰아넣을 수는 없겠지. 내가 걱정하는 것은 마족들이 계략을 꾸며 벗어나기 어려운 곳에 두 분을 가둬두었을지 모른다는 점이다. 두 대승기 수사를 죽이는 것보다야 가두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일 테니.”

“생각이 깊으신 분들이잖아요. 그분들을 함정에 빠트리는 것도 쉽지 않을 거예요.”

한립의 말에 은월의 안색도 어쩔 수 없이 굳었다.

“그래, 내가 괜한 생각을 하는 것일지도 모르지. 내일 천연성 장로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마.”

한립은 얼굴을 풀었지만 은월의 얼굴은 여전히 어두웠다. 그때 한립이 해 도인에게 고개를 돌렸다.

“해 형, 제자들에게 요구하신 물건들에 대해 알아보라 명을 내렸습니다만 일을 완수하기 전에도 도움을 구할 수 있을지요?”

“수사가 시험을 통과하기 전까지는 곁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해 도인이 무표정한 얼굴로 한립이 만족할 만한 답을 했다.

이후 한립과 은월은 마족이 물러난 이유와 두 대승기 수사의 실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 밀실로 돌아갔다.

* * *

이튿날 아침, 천연성 합체기 장로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한립이 머무는 석탑 밖에 모여들었다. 기령자의 보고를 받은 한립이 미소를 머금었다.

다들 지난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다 새벽같이 달려온 것이 틀림없었다.

한립은 기령자를 시켜 모두 대청으로 들이고 홀로 천연성 장로들과 마주했다.

그들은 이른 아침부터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고 각기 다른 표정으로 대청을 나섰다.

오래 지나지 않아 천연성은 한립이 대승기에 이르렀다는 소식을 전했다.

엄청난 소식에 성 안의 있는 인요족 수사들은 축제 분위기가 되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새로운 대승기 수사의 등장은 영계에서 양족의 미래가 보장된다는 소리였다.

이 소식은 성 안에 숨어있던 정탐꾼들에 의해 엄청난 속도로 각 지역으로 전달되었다.

물론 한립이 1년 후 대승기 진입을 축하하는 대승경전을 거행한다는 소식도 함께 퍼졌다.

이에 크고 작은 세력들이 사람을 파견해 정보의 진위를 파악했고,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 겉으로는 반드시 대승경전에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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