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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275화 (1,032/2,000)

1275화. 오행의 겁

*

시간이 지날수록 원영은 점점 밝게 빛났고 육신의 피부에는 광택이 흘렀다. 한식경이 채 되지 않아 원영은 금빛으로 뒤덮였고 육신은 백옥처럼 반짝였다.

이때 분지 상공은 텅 비어있었다.

원영은 소용돌이 속의 오색 기운이 단절되자 얼굴을 굳혔지만 별 다른 행동은 하지 않았고, 거인이 된 금색법상은 수결을 풀고 쟁반크기의 금색 빛구슬들을 만들어냈다.

여섯개의 빛구슬은 고공에서 하나로 합쳐져 금빛 찬란한 거대 빛구슬이 되었다.

콰르릉!

원영이 통통한 작은 손으로 그것을 가리키자 빛구슬이 두세 번 번쩍이더니 터져나갔다. 그곳에서 금색 주술문자들이 미친 듯이 흘러나와 또 다른 소용돌이를 만들고 원래 있던 소용돌이와 하나가 되었다.

삼두육비의 법상은 포효하며 손바닥에서 금색 빛기둥을 분출해 고공의 소용돌이로 흡수시켰다.

웅웅웅!

금색 소용돌이가 울어대며 크기를 키웠다. 원영이 그것을 보고 밝은 얼굴로 손을 뻗었다.

금색 소용돌이에는 진동 대신 천상의 음악과 불경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늘을 찢어낼 듯한 강력한 흡인력이 발생해 그 파동이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갔다.

콰르르!

하늘 끝에서 봇물이 터진 것처럼 엄청난 소리가 들려왔다. 다채로운 빛깔의 영기의 파도가 밀물처럼 몰려들었다. 이에 원영은 안색이 살짝 달라졌지만 눈동자에서 남색빛을 일렁여 영기의 파도의 진면목을 살펴 보았다.

그것은 셀 수없이 많은 오색 빛구슬이 결집되어 몰려오는 놀라운 천기현상이었다.

원영은 희색을 드러내며 숨을 고른 후 다시 금색 빛기둥을 방출해 금색 소용돌이 속으로 흡수시켰고, 이에 소용돌이의 흡인력이 한층 강해졌다.

영기의 조류는 속도를 높여 분지 상공에 도착했고 금색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 아까보다 훨씬 두꺼운 오색 기운으로 흘러내렸다.

은색 문양을 반짝인 한립의 원영과 육신이 그 기운을 남김없이 흡수했다.

그 둘은 밑 빠진 독처럼 대량의 천기원기를 계속해서 받아들였고 고공의 거대 소용돌이는 방원 수만 리의 천지원기를 전부 끌어와 마르지 않는 물처럼 그 기운을 제공했다.

하지만 동급 수사들에 비해 강인한 그들이라도 한계는 있기 마련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운을 머금을 수가 없었다.

이때 가만히 있던 범성법상이 입을 쩍 벌리고 힘껏 천지원기의 기운을 빨아들였다. 거대 법상은 천지원기의 기운을 삼키고 점점 더 커졌다.

한립의 원영과 육신이 더이상 천지원기를 받아들일 수 없자 범성법상이 이어받아 오색기운을 깡그리 흡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삼두육비 법상은 금빛 속에서 폭발적으로 커졌고 한립의 원영과 육신은 가부좌를 틀고 방금 흡수한 천지원기를 연화시켰다.

양이 너무 많아 한립의 능력으로도 일단 강제로 억눌러 놓은 상황이라 연화를 시켜야 진정으로 법력을 늘릴 수 있었다.

하지만 하늘을 떠받칠 듯 거대해져 가는 범상법상은 이런 제한이 없었다. 꿀꺽꿀꺽 기운을 잘도 삼켰고 여전히 평온해 보였다.

일다경이 흘러 금색 거인이 분지 중심에 우뚝 서있을 때 하늘과 땅이 흔들렸다. 사방에서 밀려들던 영기의 흐름이 약화되다 결국에는 힘을 잃고 말았다.

그것을 본 원영이 금빛으로 변해 육신으로 뛰어들었고, 원래 자리로 돌아가 육신과 하나가 되었다. 그 순간 한립이 몸을 떨며 눈을 뜨고 몸 안에서 요동치는 법력을 느꼈다.

“효과가 있었어! 다행히 고비를 넘기는 일이 한결 편해지겠구나.”

그는 수결을 맺고 다시 눈을 감고는 운공에 들어갔다. 금빛이 일어 금색 비늘로 피부를 덮고 머리 위로 푸른 뿔이 자라났다.

고공의 금색 소용돌이가 쨍! 깨져나갔지만 한립의 몸에서는 이전과 비교하면 거의 배에 이르는 기운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한립이 빠르게 수결을 변화시키며 중얼중얼 주술을 읊자 양 어깨에서 금빛이 머리를 만들고, 두 팔 아래로는 네 개의 팔이 보일 듯 말 듯 나타났다.

그의 몸을 뒤덮은 비늘은 색이 진해지다 나중에는 자금색을 띄었다. 범성진마공을 극성으로 운공하며 방대한 법력으로 또 한 번의 고비를 넘어서기 위해 시도한 것이다.

이런 과정은 며칠 내로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승기 고비는 이전 고비들과 비교할 수 없기에 그도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 달 후, 은월이 산봉우리에 서서 분지 쪽을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그 옆에는 아담한 체구의 주과아가 서 있었다.

한립이 고비를 넘기 시작하며 발생한 일들을 근처에서 수련하던 주과아가 알아채지 못할 리 없었다. 그녀는 당장 수련을 멈추고 분지로 날아와 결과를 기다렸다.

분지는 열댓 개의 보호막으로 둘러싸여 있어 그녀가 아무리 안력을 키워도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영롱 선배님, 한 선배님은 어떠세요? 오래 시간이 지났는데 괜찮으신 거겠죠?”

“금제로 겹겹이 가려져 있어 나도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다. 그저 분지 내부에서 발산되는 기운이 내 조부님과 맞먹는 것으로 보아 아직까지는 문제가 없는 듯하구나.”

은월이 냉랭하게 답하고는 바위에 앉아 수련을 시작했다.

그 말에 주과아는 안심이 되면서도 은월의 태도를 보고 멋쩍은 얼굴을 했다. 조금 전 까지만 해도 한립의 안위를 걱정하며 관심을 기울이던 영롱 선배가 돌연 냉담해졌기 때문이다.

수련 중인 공법의 영향을 받아 이런 증상을 보인다는 것을 미리 듣지 못했으면 무척 황당했을 것이다.

또 다른 산 위에서는 해 도인이 눈에서 은빛을 빛내며 무언가를 관찰하고 있었다.

콰르르릉!

경천동지한 폭음이 잇달아 들리고 분지가 흔들리면서 위쪽의 보호막들이 심하게 떨렸다. 열댓 개의 빛기둥들이 보호막 속에서 솟아올라 먹구름을 흩어버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퍼져 나온 무시무시한 기운을 살피고는 해 도인의 동공이 수축되었다.

“기운은 벌써 대승기 경지에 이르렀다. 천겁을 이겨내느냐 아니냐가 성공과 실패를 가르겠지.”

그는 거의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평정을 회복했다. 한립의 상태를 자세히 파악하고 있는 눈치였다.

쿠콰콰쾅!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열댓 개의 보호막이 금빛 속에 갈라지고 거대한 금색 법상 허상이 나타났다. 허상의 발밑에는 자금색 광채로 둘러싸인 한립이 팔짱을 끼고 서있었다.

한립의 마화된 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천천히 상처를 회복하는 중이었다. 키는 이전보다 절반은 더 커졌고 팔뚝이며 다리통이 배로 불어나 힘이 장사인 거한을 보는 듯했다.

언덕 크기의 산은 진작 사라지고 울퉁불퉁 파인 분지 지면에는 탑의 잔해만 가득했다.

자금색 기운 속에서 눈을 감은 한립의 몸에 은색 문양이 흘렀다. 이마에 불룩 솟은 힘줄과 울룩불룩한 근육이 강인한 힘을 품고 있었다.

이때 고공에서 금빛 빛기둥에 흩어졌던 먹구름들이 다시 뭉쳐졌고, 그 안에서 희미하게 오색 뇌전이 번득였다.

“오행(五行)의 겁!”

멀리 산봉우리 위에서 그걸 본 은월의 냉랭한 얼굴에 놀라움이 스쳤다.

주과아는 견문이 짧아 무슨 일인지 몰랐으나 은월의 표정만으로도 천기현상이 비범하다는 것을 파악하고 큰 눈을 더욱 동그랗게 떴다.

그 순간 무시무시한 기운을 발산해 주변 공기를 왜곡시키던 한립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먹구름 속에서 오색 기운이 황금색으로 변해 기다란 금빛들을 수도 없이 떨구었다.

“금강기(金罡氣)!”

그 모습에 한립은 가슴이 서늘해졌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고 열댓 개의 법결을 주변으로 날렸다.

웅! 웅웅! 우웅!

분지 곳곳에 설치된 많은 진법들이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쿠쾅쾅쾅!

금빛들이 가장 바깥 보호막에 떨어져 폭발했다. 이에 보호막 표면이 요동치며 불안하게 반짝거리다 일다경을 버티고 금빛에 잘려 쪼개졌다.

금제를 발동한 진법마저 갈라져 훼손되었기에 더는 사용할 수 없었다.

금빛들이 두 번째 보호막 위로 쏟아져 내렸다.

고공에서 떨어지는 비검, 비도처럼 날카로운 금빛은 무궁무진한 것 같았다. 퍼붓는 금빛들에 의해 다섯 번째 보호막이 부서졌을 때, 한립이 수결을 맺었다.

그리고 거대 법상이 여섯 팔을 들어 올려 고공으로 주먹질을 했다.

후웅! 후웅!

누각 크기의 주먹 허상들이 보호막 밖에 떠올라 고공으로 솟구쳤다. 금빛들은 주먹 허상에 닿자마자 바스러졌고 주먹 허상들은 그대로 금빛 덩어리를 가격했다.

엄청난 충돌음이 귀청을 때리고 주먹 허상이 튕겨 나와 사라지면서 금빛 덩어리도 허물어졌다. 그 순간 쏟아져 내리던 금빛 비가 뚝 그쳤다!

하지만 허물어진 금빛들이 다시 뭉쳐져 푸른 빛덩이가 되었다.

쿠르릉!

푸른 빛덩이 속에서 녹색 기운들이 갈라져 나와 거목(巨木)으로 변했다. 푸른빛을 반짝이는 거목들은 한 눈에 보기에도 강철처럼 단단해 보였다.

추락하는 거목의 모습에 한립의 안색이 달라지며 빠르게 수결을 맺었다.

쉬쉬쉬쉭!

상공에서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푸른 검빛들이 나타났다.

검빛들은 검실로 변해 거대한 그물을 쳤다. 푸른 실들이 예기를 번득일 때마다 거목들은 힘없이 잘려나갔다.

하늘에서 거목이 끝도 없이 떨어져 내렸지만 푸른 검실도 그것들을 그냥 보내지 않았다.

거꾸로 시간이 흐를수록 검실 그물은 거목이 떨어지는 방향으로 서서히 다가가고 있었다.

그러나 허공의 푸른 빛덩이도 팽창해 더 큰 거목을 만들어 떨구었다.

이전보다 더욱 거세게 거목이 쏟아졌지만 검실 그물을 이겨낼 수는 없었고 결국 하늘 끝에 이른 그물이 72자루의 청죽봉운검으로 갈라져 푸른 빛덩이를 마구 베어버렸다.

빛덩이가 폭음을 터트리고 흩어지고 나서야 비검들은 허공을 선회해 돌아와 자취를 감추었다.

자금색 기운 속에서 한립이 고공을 응시했다. 먹구름 아래 흩어진 빛들이 휘-익 뭉쳐져 짙은 남색으로 변하여 남색 빛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이전보다 두 배로 커진 빛덩이는 폭포처럼 물을 흘려보냈다. 마치 수백 수천 마리의 백룡이 뛰어나와 떨어지는 것 같았다.

한립은 곧장 수결을 맺었다. 삼두육비 범성법상의 세 머리가 입을 벌려 은색 화염을 맹렬하게 분출했다. 이에 은색 불바다가 거꾸로 흘러 위로 치솟았다.

치이이익!

물과 불이 만나자 하얀 수중기가 자욱하게 끼어 허공은 운해(雲海)로 변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자 치익 거리는 소리만 끊임없이 들려왔다.

이에 한립이 눈을 번득이며 법결을 재촉해 범성법상이 분출하는 은색 화염의 양을 몇 배로 늘렸다. 이에 화염이 꿀렁거리며 응결해 몇 마리의 화교(火蛟)를 형성하고는 운무 속으로 달려들었다.

다음 순간, 벼락이 내리치며 뇌성이 울렸다!

누각 크기의 은색 꽃이 운해 속에 피어올라 분분히 터지고 은색 화염이 운해를 갈가리 찢어 놓았다. 안개 대부분이 은빛에 휩쓸려 증발하고 그 안의 상황이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은색 화염이 이룬 화교들은 고공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타고 올라가 남색 빛덩이까지 접근했다.

은색 화염의 위력에 남색 빛덩이는 닿기만 해도 허물어 질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고공에서 돌연 은색 뇌전들이 반짝였다.

콰르릉 콰쾅!

벼락이 치고 남색 빛덩이가 수축하면서 물 구슬들을 토해냈다. 투명해 보이는 물 구슬들은 아주 진득했고 표면에 파문이 일어 남색 문양을 이루고 있었다.

물 구슬들을 떨굴 때마다 남색 빛덩이가 분분히 폭발해 무(無)로 돌아갔다. 한립이 그것을 보고 안색이 급변했다.

은색 화교들이 달려들어 물 구슬들을 화염으로 둘러싸려 했지만 물 구슬들은 불바다를 그대로 통과해 떨어져 내렸다. 은색 화염에 전혀 손상을 입지 않은 것이다.

“천하중수(天河重水)!”

한립이 낮게 소리치며 범성법상을 움직였다. 삼두육비 법상이 은색 화염을 뿜어내길 멈추고 여섯 주먹을 그러쥐었다. 빼곡한 주먹 허상이 고공으로 쏘아져나갔다.

쿠르르릉!

물 구슬마다 거의 수십 개의 주먹 허상이 연달아 공격을 가했다. 그런데도 물 구슬들은 계속해서 떨어져 내렸다.

한립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범성법상이 여섯 개의 팔을 움직여 금빛을 강하게 발산해 실체화된 주먹으로 물 구슬들을 강타했다. 굉음이 울려 퍼지며 파동이 일고 금색 태양들이 떠올라 물 구슬들을 휩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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