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1274화 (1,031/2,000)

1274화. 준비

*

공법 연구는 장장 5년 동안 이어졌다.

밀실에 작은 한숨 소리가 들리고 72자루 비검들이 물고기 떼처럼 그의 몸속으로 되돌아갔을 때 한립이 눈을 뜨고 옥간을 금색으로 바꾸어들었다. 이번에 옥간에서 흘러나온 주술문자들은 범성진마공 구결이었다.

한립이 형형한 눈빛으로 구결을 연구하는 동안 범성법상이 여섯 개의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수결을 맺었다.

그와 동시에 바닥에 앉은 그의 몸에서 금색 주술문자가 흘러나와 황금색 비늘이 피부를 뒤덮고 머리에는 푸른 뿔이 어른거렸다.

주 수련 공법에서 다시 깨달음을 얻기까지는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지나 겨울에 이르는 일이 11번이나 반복되었다.

* * *

어느 날, 밀실 안에 기쁨에 찬 탄성이 울리고 한립 등 뒤의 흉악한 법상과 금색 비늘 피부 그리고 푸른 뿔이 흐릿하게 사라졌다.

그는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오랜 수련으로 공법을 익히는데 급급해 놓쳤던 부분을 철저히 이해해 여러 가지 새로운 신통을 개발할 수 있었다. 실전에서 그 성과를 톡톡히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막간리와 오소 노조에게서 받은 대승기 고비를 돌파한 경험이 담긴 옥간을 보고 주 수련 공법을 다시 연구하기로 결정해 실행에 옮긴 것이다.

백맥연보결을 대성하고 천겁을 막는데 도움이 되는 세 번째 극산을 제련한데다 이전에 복용한 정령련의 약효가 거의 연화되어 대승기 고비를 이겨낼 확률이 6, 7할이나 되었다.

다른 합체기 수사들이 들으면 혀를 내두를 정도로 높은 확률이었다.

평범한 수사들은 평생 모은 영약과 수만 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대승기 고비에 도전하더라도 성공할 가능성이 1할도 되지 않았다. 심지어 일부는 천겁을 이기지 못해 고비를 넘다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렇게 수만 년 동안 영계에서 누군가 천겁에 죽어나갔다는 소식은 이따금씩 들려왔지만 겁을 이겨내고 대승기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거의 전해지지 않는 까닭이었다.

한립은 육체와 의식 그리고 각종 단약과 보물까지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기에 더는 시간을 끌지 않고 대승기 경지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대승기 고비가 불러일으키는 천기현상은 합체기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천지원기의 폭발적인 반응은 가히 하늘을 무너트리고 땅을 꺼트릴 만 했기에 밀실 안에서 바로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한립은 결연한 기색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석문으로 걸어갔다.

* * *

쿠릉!

해 도인은 석문이 열리자 두 눈에서 은빛을 번득였다. 대승기 수행을 회복한 해 도인의 눈길은 칼날같이 예리했다.

“한 수사께서는 이제 대승기 고비를 돌파할 준비에 들어가시겠군요.”

평소 말이 없는 위선뢰가 드물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해 형이 보신대로 그럴까 생각중입니다.”

“수사의 기운과 육체가 최적의 상태라 절반 이상의 확률로 성공하겠군요. 선계에서도 이렇게 높은 확률을 가지고 대승기에 도전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해 형의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됩니다. 고비를 돌파할 때 소란이 일어 다른 이들의 주의를 끌 것 같은데 해 형께 호법을 부탁드려도 될 지요?”

해 도인의 말에 기뻐하며 한립은 정중히 포권을 해보였다.

“수사의 요청이라면 안전하게 지켜드리겠습니다. 그 때문에 소모된 힘은 수사가 채워주셔야 할 테지만요.”

해 도인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물론입니다. 저는 수사만 믿고 있겠습니다.”

그가 이야기를 마치고 자리를 뜨려는데 또 다른 밀실에서 폐관 중이던 은월이 걸어 나왔다. 여인은 약간 창백한 얼굴로 한립을 살피고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수행에 진전이 있으시다니 정말 축하드립니다. 허나 지금 대승기 고비에 도전하는 것은 성급하지 않을까요? 몇 년 더 수행을 안정화시키고 하시지요.”

그녀는 지금 망정결의 영향을 받지 않는 상태였다.

“은월, 너도 못 본 사이 수행이 크게 늘어났구나. 오소 선배님의 공법이 과연 효과가 있었어. 현재 난 심경이나 기운이 더 이상 개선할 수 없을 정도로 최적이다. 이 상태로도 대승기 고비를 돌파하지 못한다면 백년 천년이 지나도 대승기에 이르지 못할 것이야.”

의식으로 은월을 훑어 그녀의 안위를 확인한 한립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한 형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요. 저도 해 형과 같이 호법을 서겠습니다. 겁 모르는 잡배들이 한 형을 성가시게 하도록 둘 수는 없지요.”

“네가 호법을 서준다니 나로서는 바라던 바다. 그런데 과아 녀석은 어디 갔지? 동부에 없는 것 같던데…….”

“과아는 최근 수련 상에 어려움을 만나 매일 떠오르는 해의 기운을 흡수해야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몇 년 전부터 동부에서 나가 다른 산봉우리에서 따로 수련하고 있어요.”

“그랬구나. 소녀륜회공은 본래 평범한 공법이 아니었지. 알아서 방법을 찾았다니 간섭할 필요는 없겠어.”

은월의 설명에 한립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을 놓았다. 그는 해 도인과 은월을 데리고 동부를 나서서 어딘가로 날아갔다.

일다경 후, 그들은 원래 거처에서 한참 떨어진 분지 위에 도착했다. 한립은 광활한 지형을 내려다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입니다. 제가 거대 진법을 몇 개 설치할 동안 잠시 기다려 주시지요. 이런 외부적인 힘이 천겁을 막아주지는 못해도 천기현상 일부를 가려 외부인이 이곳을 찾아내는 것을 지연시켜 줄 겁니다.”

그의 말에 해 도인과 은월은 각자 다른 산봉우리로 날아가 그곳에 자리를 잡고 한립을 지켜보았다.

한립은 소매 속에서 열댓 개의 하얀 빛덩이들을 분출했다. 빛덩이들은 거대 원숭이 꼭두각시로 변해 양 손에 진법 깃발과 원반 등 각종 진법 재료들을 들고 있었다.

“가라.”

괴뢰들이 사방팔방으로 날아가 지면과 허공에 조심스럽게 들고 있는 물건들을 배치했고, 한립은 분지 가장자리로 날아가 극품영석들을 꺼내 지면에 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분지를 중심으로 진법들이 구색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한립이 분지 중앙으로 가 반짝이는 보물들을 꺼내 진법 곳곳에 던져 넣었다.

마족 존자들과 성조 화신들을 죽이고 얻은 것으로 하나하나가 대단한 내력을 지니고 있었다.

평범한 합체기 수사들이라면 귀히 여길 보물들을 그는 여섯 점이나 꺼내 진안에 두고 진법의 위력을 강화하는데 사용했다.

한립은 저물탁에서 진법 재료들을 수북하게 꺼내 쌓아두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진법 깃발과 원반 배치를 마친 열댓 마리 거원 꼭두각시들이 와서 부족한 재료들을 들고 다시 날아갔다.

거대 진법은 재료도 많이 들었고 배치도 복잡해 반나절이 지나서야 겨우 완성되었다.

거대 원숭이 꼭두각시들이 펄쩍 뛰어올라 한립에게 돌아와 가만히 서서 대기했다.

한립은 푸른 기운으로 괴뢰들을 회수하고 다시 몸에 노란 기운을 일으켜 지면에 현묘한 법결을 적어나갔다.

“일어나라.”

법결이 흙 속으로 스며들자 그가 낮게 소리쳤다.

쿠르릉!

흙으로 이루어진 네모난 탑이 언덕 높이만큼 치솟았다. 한립은 탑 위에 앉아 있었고 입에서 은색 불구슬을 뱉어냈다.

그러자 불구슬이 회전하며 불새로 변해 날개를 펼쳤고 커다란 은색 불새는 맑게 울며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가 흙 탑으로 쇄도했다.

화륵!

흙탑과 가까워지자 불새는 은색 화염으로 돌아가 한립과 흙탑이 불길에 잠기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한립은 꼿꼿이 서서 눈 한번 깜박이지 않았다.

은색 화염은 몸을 투과하듯 모호하게 스쳐가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흙탑은 불길 속에서 빠르게 녹아내려 표면이 수정처럼 변해갔다.

이에 한립은 눈을 빛내고 소매를 펄럭여 돌풍을 일으켰고 은색 화염은 바람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흙탑은 백옥처럼 햇살 아래에서 반짝였다. 평범한 흙탑이 화염으로 제련한 끝에 보통의 제련 재료와 맞먹는 단단한 재질로 바뀐 것이다.

72자루의 푸른 비검들이 한립의 몸에서 날아올라 푸르스름한 검빛으로 변했다.

쉬쉬쉬쉭!

검빛들은 네모난 탑으로 날아가 반짝이는 가루를 흩날리며 문양을 새겨 넣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탑 주변을 돌며 작업을 마친 검빛들은 다시 날아올라 비검으로 되돌아갔다.

이에 탑 표면에 수많은 문양들이 남겨졌고, 신묘한 문양들은 지켜보기만 해도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의식으로 문양을 확인한 한립은 네 개의 깃발을 꺼냈다. 깃발들은 갑자기 사라졌다가 거대한 깃발로 변해 나타났고 붉은색, 초록색, 노란색, 보라색의 깃발에 각기 다른 괴수들이 각인되어 있었다.

“번천대(翻天臺)가 지어졌다. 막 선배님이 알려주신 이 방법이 도움이 돼야 할 텐데.”

그는 혼잣말을 하며 고공의 비검들을 향해 법결을 날렸다.

웅!

흐릿하게 변한 비검들이 천여 개의 푸른 검빛으로 변해 흩어졌다. 검빛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지만 누구든 탑에 접근하면 검빛이 발산하는 예리한 기운에 모골이 송연해질 것이다.

생각에 잠겨 있던 한립이 장포자락을 휘날리며 세 개의 산봉우리를 불러냈다. 산봉우리들은 파공음과 함께 탑 주변으로 떨어져 내렸다.

쿵! 쿵! 쿵!

바닥에 떨어진 산봉우리들은 탑을 에워싸고 보호했다. 그 후로 한립은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그렇게 앉은 자리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멀리서 그를 지켜보던 해 도인과 은월의 표정은 확연히 달랐다. 해 도인은 덤덤한 얼굴이었지만 은월은 걱정스런 기색이 가득했다.

해가 떠오르기 전 하늘에 빛이 번지기 시작할 무렵 한립이 번쩍 눈을 뜨고 천천히 수결을 맺으며 방대한 기운을 일으켜 범성법상을 불러냈다.

그의 기합 소리에 범성법상이 산만하게 불어나 여섯 개의 손으로 각기 다른 수결을 맺었다.

콰르릉!

갑자기 고공에 바람이 몰아치고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탑 위에 앉은 한립은 무심하게 손을 펼쳐 아래쪽으로 법결을 던져 넣었다.

탑 표면에 문양들이 꿈틀꿈틀 움직여 크고 작은 진법을 이루고 반짝거렸다.

인근의 천지원기가 극심하게 떨리고 오색 빛이 빼곡하게 떠올라 끝없이 펼쳐졌다. 하늘과 땅 사이를 천지원기가 가득 채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립은 천천히 눈을 감고 무표정한 얼굴로 정신을 집중했다.

탑의 진법이 반짝임에 따라 그의 기운이 시시각각 늘어났다. 증가하는 폭이 아주 미미해서 신경 써서 살피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어려웠지만 시간이 갈수록 놀라운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한립의 삼두육비법상도 기운이 천천히 부풀어 올라 한 시진 후에는 보통 사람보다 커졌다. 이렇게 하루가 흘러가자 법상이 커지며 허상처럼 보이던 육체가 점점 또렷해졌다.

보름 후에는 합체기 수사라도 기겁할 만큼 기운이 강해진 법상이 한립 뒤에 떠있었다. 그리고 하늘에는 먹구름이 끼어 한 줄기의 햇살도 허락하지 않아 분지는 어두컴컴하고 음침했다.

그저 천지원기가 변한 빛 입자들만이 허공에 떠서 어느새 달걀 크기로 변해있었다. 멀리서 보면 수많은 반딧불이가 빛을 발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제야 한립은 눈꺼풀을 들어 올렸고 두 눈은 어둠 속에서도 영롱하게 빛났다. 그는 말없이 자신의 뒤통수를 내리쳐 금색 원영을 불러냈다. 원영은 긴장한 얼굴로 작은 손을 들어 올려 고공을 가리켰다.

콰릉!

검은 구름 속에서 굵직한 은색 뇌전이 떨어져 내렸다. 그러나 금색 원영은 피하지 않고 입에서 푸른 기운을 내뿜내며 내리꽂힌 거대 뇌전을 작은 입으로 빨아들였다.

이어 두 손을 교차해 뇌전들을 방출했고 뇌전은 커다란 은색 문자로 변해 사방으로 튀어나갔다.

다음 순간 무형의 힘이 폭발해 인근에 떠있던 오색 빛구슬들을 자극했고, 빛구슬들은 허공을 선회해 표표히 날아다녔다.

그때 금색 원영이 허공에 가부좌를 틀고 수결을 맺었다.

탑을 중심으로 거대한 소용돌이가 형성되었고 주변 빛구슬들을 마구 끌어당겨 갈기갈기 찢어냈다. 오색 빛구슬은 가느다란 기운으로 변해 아래쪽으로 쏟아져 내렸다.

한립의 원영과 육체에 동시에 은빛 찬란한 문양이 떠올랐다. 오색 기운은 그들의 피부에 닿자 소리 없이 스며들었다.

분지 상공의 빛구슬들은 끊임없이 거대 소용돌이를 통과해 나팔꽃 모양을 이루어 한립의 원영과 육체로 주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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