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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273화 (1,030/2,000)

1273화. 백맥연보결 대성

*

반년 후 화염처럼 찬란한 오색 빛이 가시고 한립이 눈을 떴다.

“의식을 강화시키는 것 외에 마음을 가라앉히는데도 효과가 있을 줄이야. 오소 노조는 요족에서 수만 년 동안 유일하게 배출한 대승기 수사답게 비술을 창안하는 재능도 뛰어나구나.”

한립은 의식을 방출해 동부 전체를 살폈다.

은월이 그가 가까운 또 다른 밀실에서 수련 중이었다. 그녀는 한립의 의식을 감지하지 못한 듯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는 가만히 은월의 상태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여 의식을 회수했다.

파앗!

그가 손바닥을 뒤집어 검은색과 하얀색이 뒤섞인 광석을 꺼내 들었다.

울퉁불퉁한 표면에 서늘한 광택이 흐르는 광석은 그가 마계에서 구해온 이마금이었다.

쉭!

손끝에서 푸른 실을 날려 광석을 둘로 쪼개자 콩알 크기의 수정 구슬이 떨어졌다. 그는 구슬을 집어 소매를 펄럭여 열댓 개의 오색 깃발을 사면으로 날려 보냈다.

깃발들이 스며들고 오색 보호막이 나타나 밀실을 봉쇄했다. 준비를 마친 한립은 두 손가락을 비볐다.

콰릉!

열댓 줄기의 금색 뇌전이 뿜어져 나와 구슬을 바스러트렸고 파동과 함께 회백색 빛기둥이 떠올랐다.

기다리고 있던 한립은 손바닥으로 허공을 때렸다. 이에 금색 거대 손이 나타나 아래쪽을 치자 쿵 하고 무형의 압력이 생겨났고, 빛기둥은 압력에 눌려 둥그런 빛구슬로 뭉쳐졌다.

한립이 긴장을 풀고 빛구슬을 끌어와 손바닥에 올려두었다. 눈에서 남색빛이 일렁이고 미간에서 수정실이 빠져나와 빛구슬 속으로 들어갔다.

바르르 몸을 떤 빛구슬이 웅웅 울어대다 금빛 주술문자에 감싸여 안정을 되찾았다.

눈을 감은 한립은 묵묵히 운공하기 시작했다.

반나절 후,

그가 눈을 떴을 때는 수정실이 되돌아오고 금색 주술문자에 감싸인 빛구슬도 보이지 않았다. 한립은 체내의 법력이 증가한 것을 확인하고는 미소를 머금었다가 녹색실이 한 줄기 늘어난 것에 살짝 미간을 좁혔다.

그는 수결을 바꿔 몸에서 어두운 회색 광채를 일으켰다. 괴이한 기운이었다.

마계 광원재 남영에게 알아온 지살음기를 연화시키는 방법이었다.

수정구슬의 힘을 흡수할 때마다 불순물처럼 따라오는 지살음기를 연화시켜야 이후에 후환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반 시진이 지나지 않아 한립은 법결을 멈추고 손바닥을 뒤집어 다른 이마금을 꺼냈다.

푸른 실이 광석을 가르고 회백색 수정구슬이 굴러떨어지면서 아까와 같은 작업이 반복되었다.

이마금의 힘을 흡수하고 지살음기를 연화시키면서 그의 법력은 나날이 늘어났다.

* * *

어느덧 2년의 세월이 흘렀다.

밀실 안 그가 앉은 자리 주변에 반으로 갈라진 이마금의 잔해가 사람 키만큼 쌓여 은은한 광택을 내고 있었다. 그가 마계에서 갖고 돌아온 이마금의 9할에 달하는 양이었다.

마지막으로 수정 구슬에서 힘을 흡수했는데도 더 이상 법력이 늘지 않았다. 그러나 합체 후기를 대성해 법력이 폐관수련에 들어가기 전보다 족히 3할은 넘게 늘어났다.

겨우 2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다른 수사들이 이 같은 사실을 알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거나 아예 거짓이라고 치부할 것이다.

한립의 경지에 이르면 성취를 이루는 속도가 더뎌져서 최소한 수백 년 내지는 수천 년이 걸려야 지금의 경지에 이를 수 있었다.

선계의 연단묘약이 있어도 이렇게 빠른 수련 속도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한립은 당장 대승기 고비에 도전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는 다시 1년간 연화한 법력을 안정시키고 저물탁 속에서 하얀 옥함을 불러냈다.

옥함에는 은빛의 반짝거리는 금제 부적 한 장이 붙어 있었다. 그가 푸른 기운으로 부적을 떼어내자 옥함이 열리며 쌀알 모양의 혈홍색 과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한립이 구한 최상품 혈아미 중 하나였다.

한립이 손을 뻗어 혈아미를 끌어오자 은은한 향기가 퍼졌다.

“최상품답게 이전 것보다 품질이 훨씬 좋구나. 이걸 복용하고 백맥연보결을 수련하면 수련 속도가 굉장할 거야.”

그는 손끝으로 가볍게 혈아미를 매만졌다. 백맥연보결 수련에서 소성(小成)을 이루었지만 선계 비술을 진정으로 대성한 것과는 천양지차였다.

만약 다른 수사였으면 수백 년 심지어 천년 이상을 수련해도 겨우 비술을 익히거나 도중에 경맥이 찢어져 육체가 폭발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립은 정령련을 복용하고 세령지에 들어가 환골탈태를 해 경맥이 이전보다 훨씬 강해진 상태였는데 여기에 혈아미의 신비한 효과까지 더해지면서 수련 시간을 훨씬 단축시킬 수 있을 것이다.

몸의 각 부위를 보물보다 더 단단하게 연화하는 강력한 신통을 익히고 나면 대승기 고비를 넘는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한립은 천천히 정순한 기운을 혈아미에 주입했다.

부드러운 하얀빛을 머금은 혈아미가 놀랍게도 점점 더 진한 향기를 품으며 익어갔다.

그는 잘 익은 혈아미를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어 먹었다. 혈아미가 뱃속으로 들어가자 뜨거운 기운이 경맥 곳곳으로 밀려들었다.

숙연한 얼굴로 수결을 맺은 그의 등 뒤로 삼두육비 범성법상이 어른거렸고 비술 구결을 읊는 소리가 밀실을 가득 채웠다.

* * *

계절이 여러 번 바뀌고 부지불식간에 세월이 흘러 어느덧 40년이나 지나갔다. 그러나 한립은 여전히 밀실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어느 날 은월은 밀실에서 용들이 한꺼번에 포효하는 것 같은 소리를 들었다. 또한 바람소리와 천둥소리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와 땅이 흔들거렸다.

은월이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다 고민 끝에 작게 한숨을 쉬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같은 시각, 밀실 하나가 놀라운 천기현상으로 둘러싸였다. 그 아래 가부좌를 한 한립의 몸이 자금색으로 변했고, 피부에 흐르는 은색 문양들은 수시로 진법들을 형성했다가 다시 붕괴되어 흩어지곤 했다.

한립 등 뒤에 떠오른 범성법상의 몸에서도 본체와 똑같은 은색 문양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불가사의한 일은 한립의 몸에서 바람소리와 천둥소리가 들리며 주변에 은색 뇌전이 섞인 광풍이 발생한다는 점이었다.

그는 남색 빛을 일렁이며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몸 구석구석을 살폈고, 흐릿해진 몸으로 홀연히 자리에서 일어나 손바닥으로 허공을 내리쳤다.

파앗!

팔뚝에서 은색 문양이 응결해 현묘한 진법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의 손바닥에서 푸른빛이 번득이고 돌풍이 뻗어 나와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지닌 풍교(風蛟)로 변해 밀실 대문으로 몰아쳤다.

콰르르릉!

석문에서 한바탕 굉음이 들리고 눈부신 오색 빛이 터져 나왔다.

흠칫 놀란 한립은 급히 법결을 멈추고 은색의 문양 진법과 푸른 풍교를 없앴다. 그러자 깜빡거리며 불안정하던 밀실 금제가 안정을 되찾았다.

한립은 더 없이 기뻤다!

백맥연보결로 팔을 대충 움직였을 뿐인데도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 것이다. 백맥연보결의 위력은 그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오랜 수련으로 혈아미는 전부 동이 났지만 백맥연보결을 대성할 수 있었다. 이제 그의 몸은 강력한 보물처럼 변했고 상상을 초월하는 신통을 부릴 수 있었다.

한립이 다섯 손가락을 가볍게 그러쥐었다.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무수히 많은 금실들이 떠올라 그의 주먹을 휘감고 번득이며 눈앞에서 사라졌다.

동시에 몸에서 뭔가 터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리고 이전보다 훨씬 강력한 힘이 경맥을 타고 돌아다녔다.

그는 두 눈에서 남색 빛을 반짝이며 주먹을 석문 방향으로 내질렀다. 석문에서 반짝이던 오색 기운이 콰쾅 하며 터져나갔다.

이에 한립이 소매 속에서 푸른 기운을 날려 보내자 쪼개진 돌조각들이 다시 붙어 멀쩡해졌다.

그는 다시 가부좌를 하고 자신의 몸을 면밀하게 살펴보았다. 몸 곳곳의 현묘한 변화를 찾을 때마다 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이제 연신술 2성을 수련해도 되겠어. 게다가 마계에서 얻은 청란진혈도 드디어 연화시킬 수 있겠구나.’

사흘이 지나 백맥연보결의 다양한 신통을 파악한 그는 청란진혈 한 병을 꺼내 복용하고 연신술 2성 수련에 들어갔다.

수백 년 동안 육체와 의식 강도만 조건에 부합하면 언제든 익힐 수 있게 해놓은 덕에 한립은 고작 십년 만에 연신술 2성을 익혀냈다.

연신술 2성은 1성을 익혔을 때와 달리 천기현상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그러나 연신술 2성을 대성한 그의 의식은 놀랍게 증폭되었다.

의식을 방출하면 주변 7, 8만 리는 손바닥 보듯 살필 수 있었는데 이는 대승기 노괴들도 해내지 못하는 일이었다.

또한 그동안 청란진혈을 연화시켜 경칩술로 또 하나의 조류형 진령으로 변신할 수 있게 되었다.

한립은 시험 삼아 청란으로 변신했다가 다시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와 저물탁에서 크기가 다른 비취색 수정돌 두 개를 꺼냈다.

음양대오행진광을 함유한 정핵(晶核)이었다. 하나는 지하광산에서 얻고 나머지는 자광수 요핵을 연화시켜 얻은 것이었다.

두 가지를 배합하고 미리 준비해둔 진귀한 재료를 더하면 가까스로 세 번째 극산을 제련해 낼 수 있을 것이다.

한립은 정핵을 들고 머릿속으로 묵묵히 원합오극산 제련법 중 필요한 부분을 되뇌었다.

한 시진이 지난 뒤, 한립은 비취색 수정돌과 손목에 차고 있던 저물탁을 던져 올렸다.

저물탁은 대량을 기운을 뿜어내며 지면에 옥함들과 병에 담긴 재료들을 쏟아냈다. 수많은 재료들 끝에는 은색 빛이 튀어나와 은백색 솥으로 변했다.

바람을 타고 커진 솥이 바닥에 쿵! 하고 떨어졌다. 이에 밀실이 미세하게 흔들렸고 바닥에 떨어진 거대 솥의 세 발은 팔뚝 반절이나 깊이 박혀 들어갔다.

한립의 손짓에 허공의 비취색 수정돌이 녹색빛으로 변해 거대 솥 안으로 들어갔다.

후욱!

그의 입에서 은색 불구슬이 빠져나와 불새로 변해 솥 아래로 날아들었다. 은색 화염이 화르륵 타올라 밀실의 온도를 높이자 밀실 전체가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한립은 열손가락을 움직여 옥함과 병 안에 든 재료들을 일사불란하게 솥 안으로 쏟아 부었다.

그의 조종에 은색 불새가 몸집이 배로 늘어가 거대 솥 주변을 날아다녔고, 화염은 거대 솥 절반을 집어 삼키고 거세게 타올랐다.

오색 기운을 반짝인 거대 솥에서 콩알 크기의 아름다운 주술 문자들이 떠올라 주변을 맴돌았다. 신비로운 광경이었다.

한립은 눈을 감고 쉼 없이 수결을 맺으며 법결을 던져 넣었다. 거대 솥 안의 비취색 수정돌들과 진귀한 재료들이 고온 속에서 다양한 빛을 반짝이며 서서히 융화되어 갔다.

재료가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음양대오행극산이 원래 다른 두 극산보다 제련하기 어려워서 인지 한 달이나 지나서야 세 번째 극산 제련이 끝났다.

밀실 바닥에는 거대 솥의 파편이 깔려 있었고 그 위로는 다채로운 빛깔을 지닌 산봉우리가 떠있었다.

산봉우리는 보석처럼 반짝였고 예리한 오색 빛줄기를 발산해 보는 사람의 눈을 자극했다. 마치 눈알이 뜨거워지는 것 같은 느낌을 주어 오래 바라볼 수 없었다.

한립은 그런 산봉우리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정교한 산봉우리가 지닌 무서운 신통들을 그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오랜 기간 제련을 하느라 막대한 심력을 소모해 한립은 천천히 휴식을 취하며 회복해야 했다. 한립의 손짓에 산봉우리가 아주 작게 줄어들어 날아들었고 그가 손바닥을 뒤집자 종적을 감추었다. 그는 극산을 잘 챙겨두고 두 눈을 감았다.

그 후로 이틀이 지났고, 그는 원기 왕성한 모습으로 눈을 떴다. 한립은 한 손으로 수결을 맺어 등 뒤로 삼두육비의 범성법상을 불러내고 다른 손으로는 72자루의 푸른 비검을 방출했다.

이어 푸른 옥간을 꺼내들어 손끝으로 가리키니 하얀 주술문자들이 쏟아져 나와 구결을 이루었다. 이전에 익힌 청원검결이었다.

그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진지하게 그것을 읽어나갔다. 그리하여 고요한 물처럼 평온한 마음으로 주 수련 공법이었던 청원검결을 다시 깨우쳤다.

그러던 중 72자루의 비검들이 한데 모였다 흩어지고 때때로 작은 검진을 형성하거나 날카롭게 울며 음산한 예기를 내뿜기도 했다. 한 자루 한 자루가 생명을 얻은 것처럼 자유롭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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