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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272화 (1,029/2,000)

1272화. 폐관수련

*

목계절진 한쪽의 높다란 봉우리 위.

임시로 건설된 탑 위에서 목족 임시 대장로가 초조하게 전방의 진법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법 위로 떠오른 빛의 장막에 다양한 색깔의 주술문자들이 어른거리다 웅! 하고 밝은 빛을 터트렸다.

빛의 장막 아래로 진법 곳곳에 여덟 명의 목족 노인이 앉아 두 눈을 감고 있었다. 백발에 쭈글쭈글한 얼굴을 지닌 그들은 풍차처럼 열손가락을 돌려가며 수결을 맺었다.

목족에서 명성이 자자한 목령팔자들이었다.

쿵!

갑작스레 빛의 장막이 암담하게 변해 산산조각이 났다!

여덟 노인이 신음을 흘리며 피를 토하고 인체의 일곱 구멍에서 검붉은 피를 흘리고는 축 늘어졌다. 전신의 영력이 사라져 생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무리한 점술로 천기의 반서를 받아 수명을 다 써버리고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이럴 수가…….”

안 그래도 안절부절못하던 목족 임시 대장로가 슬픈 얼굴로 탑 아래쪽으로 손을 저었다. 열댓 명의 목족 병사들이 올라와 정중하게 목령팔자들의 유해를 가지고 탑을 내려갔다.

그리고 바로 또 다른 목족인 8명이 올라와 목령팔자들이 앉아 있던 곳에 가부좌를 틀었다.

“목령팔자께서는 목족의 미래를 위해 먼저 떠나셨기에 점술의 남은 부분은 자네들이 맡아주어야겠네. 부디 최선을 다해주길 바라네.”

목족 임시 대장로가 그들을 향해 엄숙히 포권을 했다.

“아직 선배님들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지만 전력을 다해보겠습니다!”

여덟 목족인 중 한 명이 진중하게 답했다.

목족 임시 대장로가 고개를 끄덕이자 새로운 목족인들이 수결을 맺고 진법에 법력을 불어넣었다. 그런데 일다경도 지나지 않아 탑 아래에서 고계 목족인이 급히 올라와 옥간을 전했다.

“대장로님, 목면성에서 전해 온 소식입니다! 고계 마족들이 목면성에 잠입했고 성지에까지 침입했다고 합니다!”

“뭐라? 어찌 그런 일이! 성조 세 명은 전부 이곳에 붙들어 두지 않았더냐. 목면성을 지키는 병사들은 일을 어찌한 것이야!”

목령팔자들의 죽음으로 울적해 있던 목족 임시 대장로가 깜짝 놀라 고함을 질러댔다. 그는 옥간을 빼앗듯 받아들고는 의식을 주입했다.

임시 대장로의 말과 행동에 주변 목족 장로들도 대경실색해 긴장된 얼굴로 상황을 주시했다. 오래지 않아 임시 대장로의 얼굴에 사나운 표정이 가시고 시체처럼 핏기가 가셨다.

모든 의지를 상실한 듯 아주 허탈해 보였다.

“저도 좀 보겠습니다!”

목족 장로 중 하나가 참다못해 다가와 무례를 무릅쓰고 옥간을 뺏어 의식을 불어넣었다. 잠시 후, 목족 장로 역시 창백하게 질려 꿈이라도 꾸는 듯 멍하니 중얼거렸다.

“마, 말도 안 돼. 성수가 망가졌다고? 그곳에서 부상을 치유하던 대장로님도 성수와 함께 사망했다니……. 우린 끝났어! 우리 목족은 이렇게 끝이란 말인가!”

다른 목족 장로들이 그 말을 듣고 기괴하게 얼굴을 일그러트리고는 차례로 옥간의 내용을 확인했다. 그중 두 명은 휘청이다 주저앉기도 했다.

“모두 정신 차려야 합니다! 이미 벌어진 일에 넋 놓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앞으로 목족은 영계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하기 어렵겠지만 수백억 족인들의 목숨은 지켜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목족 임시 대장로가 이를 악물고 몸을 꼿꼿이 세웠다. 난색을 표하던 다른 장로들도 목표가 생기자 어느 정도 평정을 되찾았다.

“맞습니다, 우리에겐 예비용 성수가 몇 그루 남아 있어요! 족인들만 몰살당하지 않으면 앞으로 다시 대승기 수사가 나타나 목족의 입지를 공고히 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이 소식이 절대 밖으로 퍼져나가지 않게 하는 겁니다. 안전하게 퇴각하기 위해서 차근차근…….”

장로들이 힘을 내 의견을 내놓았다.

* * *

3일 후.

한 무리가 느슨하게 퍼져 밀림을 지나고 있었고 어두운 얼굴의 한립도 그중에 속해 있었다. 목계 절진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한립과 야차족 여인은 반나절 전에 목족 거한의 입을 통해 목면성에서 성수가 파괴되고 목족 대장로가 사망한 사건을 전해 들었다.

목계절진의 목족대군은 진작 7할 이상 후퇴했고 목족 장로들은 남은 2호 진안의 힘을 총동원해 목계절진 자체를 폭파할 계획이었다. 진법 속에 마족들이 얼마나 남았든 최대한 죽이겠다는 수였다.

늦게나마 목족 장로회가 이 소식을 다른 고계 수사들에게도 알렸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그도 목계절진 폭발에 휘말릴 뻔했다.

성수와 대장로를 잃은 목족은 더 이상 전쟁을 지속할 이유가 없었다. 이에 한립도 2호 진안을 떠나 진법을 지키기 위해 파견된 인족 수사들을 이끌고 철수하고 있었다.

다른 연합군 수사들도 소식을 듣고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해 도인이 그와 가까운 곳에서 날고 있었고, 인족 병사들은 꽤나 기가 꺾인 모습으로 묵묵히 그들을 뒤따랐다.

아득히 먼 곳에서 콰르릉! 소리를 내며 뭔가 폭발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강력한 기운의 파동으로 지면마저 덜덜 떨려왔다. 이에 인족 수사들은 수시로 뒤쪽을 힐끔거렸다.

엄청난 소음은 목족인들이 목계절진을 폭파시켰기에 일어난 현상이었다. 이렇게 먼 거리에서도 그 기운이 느껴졌으니 진법 안에 갇혀 있던 마족들이 어떤 꼴을 당했을지는 뻔했다.

성조 화신급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그곳에 뼈를 묻었을 것이다. 목족의 미래가 암담해진 것이 전부 마족 때문이었으니 이런 악독한 수를 쓸 만도 했다.

이번 전쟁으로 인해 목족인들은 고위층부터 일반 족인들까지 마족에게 뼈에 사무치는 원한을 갖게 되었다.

성수와 대승기 수사를 잃은 목족은 더 이상 인족 등 주변 종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지 못할 테고 다른 종족에 투항하거나 외진 곳으로 이주해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이제 인족과 주변 부족들이 동맹의 자격을 잃은 목족을 위해 마족과 전쟁을 벌일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한립은 고공에서 손을 저어 인족 수사들에게 속도를 높일 것을 지시했다. 목계절진으로 대규모의 사상자가 났으니 마족 성조들이 미쳐 날뛰며 보복하겠다고 연합군을 노릴 가능성도 충분했다.

만일의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어서 목면성으로 돌아가야 했다.

* * *

두 달 후, 목면성 인근의 작은 산 위.

한립과 오소 노조 그리고 막간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립 뒤로는 해 도인과 주과아가 얌전히 대기했고, 오소 노조 뒤에는 은월이 손을 모으고 서있었다.

은월은 냉담한 얼굴로 세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허어, 목족을 돕기 위해 연합군이 나섰건만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목족은 몇 개의 무리로 나뉘어 일부는 여러 종족에 의지해 부속 종족으로 살아가고 일부는 만황으로 들어가 은거하겠다고 하더군요.”

막간리가 탄식했다.

“현명한 선택입니다. 만년 내로 목족에서 대승기 수사가 나와 족인들을 불러들인다면 다시 영계에서 기반을 마련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테니까요. 운 나쁘게 몇 만 년이 지나도록 대승기 족인이 나오지 않으면 목족은 영계에서 정말 사라지게 되겠지요.”

오소 노인이 담담히 말했다.

“목족이 완전히 막다른 길에 몰리지는 않았군요. 허나 목족의 힘이 빠지면 연합군의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겁니다. 선배님들께서는 대책이 있으신지요?”

한립이 조용히 듣고 있다 입을 열었다.

“목족이 빠지면서 연합군 세력이 줄었지만 마족도 그다지 좋은 상황은 아니지 않은가. 두 계면이 분리될 때가 머지않았으니 그때까지 시간을 끌기만 하면 굳이 싸우지 않고도 승리를 쟁취할 수 있을 것이네.

마족들이 간신히 목족 영역에 기반을 마련해도 지속적으로 지원을 받지 않는다면 연합군의 상대가 될 수 없을 게야. 지금 해야 할 일은 서둘러 본 족으로 돌아가 3대 시조가 인계로 강림할 때를 대비하는 것이네.”

오소 노조가 답했다.

“두 분께서 생각이 있으시다니 마음이 놓입니다. 저는 돌아가는 대로 폐관수련에 들어가 한동안은 도움이 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한립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쉽다는 어투로 폐관수련 이야기를 꺼냈다.

“허허허, 자네가 하루빨리 대승기에 이르는 것이 우리 양족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일일세! 자네의 나이에 대승기에 이르면 앞으로 십만 년 동안은 양족에 의지할 곳이 생기는 것 아닌가. 눈앞의 성가신 일들은 전부 우리 같은 늙은이들에게 맡기고 마음 편히 수련해만 전념하게.”

막간리가 웃음을 터트리고 인자하게 말했다. 그는 한립이 목계절진에서 해 도인과 같이 십여 명의 마족 성조화신들을 격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앞날에 아주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천연성으로 가지 않고 다른 은밀한 곳을 찾아 수련할 생각인가?”

오소 노조가 언뜻 생각이 났다는 듯 물었다.

“천연성이 마족 대군을 격퇴했다지만 무조건 안전하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이번 폐관수련은 절대 방해받지 말아야 해서 따로 조용한 장소를 찾을 생각입니다. 또한 어느 정도 수행에 정진이 있을 때까지 쉽게 출관하지도 않을 예정이고요.”

한립이 미소를 머금고 대답했다. 그가 이렇게 자신할 수 있는 것은 마계에서 대량의 ‘이마금’을 얻은 덕이었다. 그 정도 양이면 빠른 시일 내로 법력을 합체 후기의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것도 좋겠지. 인족 내부에도 많은 첩자들이 있을 테니 자네가 폐관수련에 들어갔다는 소식은 되도록 발설하지 않는 것이 좋겠네. 우리도 자네가 어디로 갈지 묻지 않고 그저 순조롭게 수련하기만을 바라고 있겠네.”

막간리가 그의 계획에 찬성했다.

“영롱은 이리 와 보거라. 일전의 약조대로 이 아이를 자네에게 맡기겠네. 조속히 비술을 수련해 주게.”

오소 노조가 영롱을 불러 한립을 향해 온화하게 당부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선배님. 폐관수련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비술을 대성해 영롱 수사에게 탈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이면 되었네! 영롱, 너는 이후 한 수사의 말을 귀담아듣고 내 분부가 있기 전에는 그의 곁을 떠나지 말거라. 그렇지 않으면 날 할아비로 여기지 않는다고 생각할 것이야.”

오소 노조가 고개를 돌려 은월에게도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예, 조부 대인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은월이 맑은 눈빛으로 응답했다.

“시간이 늦었으니 한 수사는 그만 출발해도 좋네. 며칠 후면 우리도 목족 일을 해결하고 돌아갈 것이야.”

막간리가 진지한 얼굴로 한립을 바라보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먼저 돌아가 보겠습니다.”

한립은 어두워진 하늘을 한 번 쳐다보고는 대승기 수사에게 포권을 했다. 그 모습에 오소 노조와 막간리가 웃는 얼굴로 그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한립이 소매를 펄럭여 벽옥색 배를 불러내자 해 도인, 주과아, 은월이 배에 올랐다. 배가 진동하며 푸른빛을 반짝이자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 * *

다섯 달 후, 인요족 구역 접경지에 위치한 산맥.

벽옥색 배가 평범한 산봉우리 위에 멈추었다. 뱃머리에 선 한립은 눈을 감고 의식으로 주위를 샅샅이 탐색했고 은월 등 세 사람은 뒤에 조용히 서 있었다.

“주변에 다른 수사의 흔적이 없으니 이곳에 동부를 만들면 되겠습니다.”

한립이 눈을 뜨고 만족스럽게 말했다. 그의 소매에서 열댓 개의 빛덩이가 날아가 거대 원숭이 괴뢰로 변해 산봉우리로 내려갔다.

날카로운 빛을 뿜는 꼭두각시들 덕에 암석이 손쉽게 잘려나가 한식경 만에 거대한 동부가 완성되었다. 커다란 대청과 약재 밭, 연단실 등 모든 것이 갖춰진 제대로 된 거처였다.

한립은 일행들과 내려가 여러 진법 깃발과 진법원반을 뿌렸다. 그의 손짓에 강력한 금제 여러 개가 동부를 완전히 가려주었다.

대청으로 걸어 들어간 한립은 남은 이들에게 몇 마디 당부를 남기고 가장 깊숙한 밀실로 들어가 석문을 닫고 폐관수련을 시작했다.

밀실에서 그는 오소 노조가 전수해준 비술 구결을 한 구절씩 세심하게 연구했다.

이번에는 비술을 철저히 익혀 은월이 한동안 걱정 없이 수련에 정진할 수 있도록 도와줄 작정이었다.

눈을 감은 그의 피부 위로 오색 빛이 떠올라 흘러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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