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1화. 목족대전 (7)
*
한립은 냉랭히 주변을 살피다 아래쪽을 향해 손짓해 저물탁을 끌어오고 은색 불씨를 떨구었다.
화르륵!
마족 여인의 잔해와 싸움의 흔적들이 은색 화염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때 파공음이 들리고 푸르스름한 인영이 한립 옆에 나타나 또 다른 저물탁과 하얀 옥병을 공손하게 건넸다. 마족 노인을 기습하려 방출했던 영체였다. 영체는 곡아가 조종하고 있었다.
같이 기습한 삼두육비 금색 인영은 범성금신이 변한 것이라 열반변신을 거두어 드릴 때 회수했다.
한립은 의식으로 두 개의 저물탁과 함께 하얀 옥병을 챙겨 넣고 금빛으로 곁의 영체까지 휘감아 하늘을 갈랐다.
장포 노인과 날개 여인이 연달아 죽은 순간, 거대 황금 게와 치열하게 다투던 아담한 여인이 대경실색해 소리쳤다.
“사 형과 영 수사와의 연계가 끊겼습니다! 위선뢰와 싸우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어서 가야 합니다!”
여인은 보물들을 불러들이고 소매 속에서 금색 수레바퀴를 방출했다.
웅!
수레바퀴가 진동하며 금빛으로 변해 여인을 감싸고 불가사의한 속도로 하늘 끝으로 날아갔다.
그녀의 말에 금갑 거한과 삼목 마족도 당황해 한 명은 마공으로 천여 덩이의 검은 뇌화를 분사해 다른 방향으로 튀어나갔고, 다른 한 명은 황금 게를 공격 중이던 두 개의 비도를 자폭시키고는 녹색 비검을 꺼내 검과 합일(合一)해 날아갔다.
“세 분은 조금 더 이곳에 남아 계셔야 합니다.”
전신에서 뇌전을 번득여 모든 공격을 가볍게 막아내던 황금 게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게 등짝지에 괴이하게 은색 진법이 떠올라 고공으로 종적을 감추었다.
다음 순간, 하늘에 광풍이 몰아치고 먹구름이 밀려들어 광활한 넓이의 뇌진을 형성해 수천가닥의 벼락들이 마구 내리쳤다.
달아나던 세 마족들은 부득이하게 둔광을 멈추고 다양한 마공과 마기(魔器)를 이용해 벼락을 막았지만 폭우가 쏟아지듯 끊임없이 떨어지는 벼락들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역천의 신통인 만큼 수행이 떨어진 해 도인도 오래 유지할 수는 없었다. 몇 호흡 지나지 않아 거대 뇌진이 반짝거리다 깨져나가고 더 이상 벼락도 떨어지지 않았다.
이에 세 마족은 크게 기뻐하며 재빨리 달아나려는데 고공에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딜 그리 황급히 가십니까?”
흐릿한 푸른 인영이 냉랭한 눈길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 *
반 시진 후. 한립이 비취색 진법원반을 꺼내 들고 법결을 던져 넣었다. 그 안에서 기쁨에 찬 목족 거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형, 아직 잘 버티고 계십니까? 저는 금제를 발동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이제 성조 화신들을 산맥으로 유인해 주시면 진법의 힘으로 그들을 가두도록 하겠습니다!”
“그럴 것 없습니다. 금제는 잠시 놔두었다가 다른 적들이 오면 사용하는 것으로 하지요. 이곳은 제가 처리했습니다.”
한립은 담담하게 답하며 다른 손으로 검은 도끼를 들고 살피고 있었다. 검은 도끼는 금갑 마족이 사용하던 병기가 틀림없었다.
주변에는 상처가 가득한 해 도인과 영체 말고는 아무도 없었고 일대가 초토화되어 있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목족 거한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성조 화신들은 저와 해 형이 힘을 합쳐 처리했습니다. 수사가 준비한 금제는 나중을 위해 남겨두면 됩니다.”
한립이 가볍게 손을 젓자 검은 도끼가 사라졌다.
그는 해 도인과 힘을 합쳐 손쉽게 금갑 거한 등 세 명의 마족을 압도했다. 그저 세 명이 열심히 도망치는 바람에 하나씩 잡아 없애느라 공을 들였지만 말이다.
“하하, 한 형과 해 형의 실력이 제 예상을 월등히 초월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두 번째 진안은 응당 문제없이 지켜낼 수 있겠습니다!”
목족 거한이 희색을 드러내며 공손한 어투로 말했다. 같은 합체기 수사라도 실력 차이가 월등하면 대우를 하는 것이 당연했다.
한립이 미소를 머금고 뭐라 답하려는데 돌연 사방팔방에서 하얀빛이 반짝거리고 폭음과 함께 공간 파동이 퍼져나갔다.
“초 수사, 방금 전 1호 진안이 파괴된 것입니까?”
“맞습니다. 예비 성수가 1호 진안이 파괴된 것을 알려왔습니다. 마족 성조들이 진안을 동시에 공격한 것이 사실이었나 봅니다.”
진법 원반을 통해 목족 거한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전해졌다.
“예상하던 일이지 않습니까. 보아하니 이쪽도 머지않아 또 다른 수사들이 찾아들겠습니다.”
“……한 형, 일단 해 수사와 함께 돌아와 휴식을 취하시지요. 다른 성조 화신들이 몰려들면 그때도 두 분의 도움이 필요할 테니까요. 어서 소모한 법력을 회복해 두는 것이 좋을 겁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바로 가지요!”
한립이 진법을 집어넣고 해 도인을 불러 날아올랐다. 그들이 머물던 지면에 강렬한 푸른빛이 흘러나와 울창한 초목으로 전투의 흔적을 지워나갔다.
* * *
반나절 후, 산맥 멀리서 검은 기운이 날아들었다. 기운 속에는 먹처럼 새까만 전당이 숨겨져 있었다.
전당 꼭대기 탑에 7명의 마족 남녀가 일렬로 서서 낮은 목소리로 무어라 상의하고 있었다.
“사 노귀 무리들은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들이 순조롭게 임무를 완수하는 동안 소식도 없고요. 그 때문에 귀찮게 여기까지 오지 않았습니까!”
몸에서 남색 기운을 발산하는 체격 좋은 마족 사내가 투덜거렸다.
“실력으로는 그들 다섯이 우리 일곱을 합친 것과 비슷할 겁니다. 예상치 못한 강력한 금제에 갇혀 연락이 끊겼을 가능성이 높아요.”
호리호리한 궁장 여인이 웃으며 답했다.
“우리와 상 수사 쪽은 가볍게 해낸 일인데 왜 사 노귀 무리만 문제가 생기냐 이 말입니다. 그들이 쓸모없는 자들이라는 증거 아니겠어요?”
눈을 흘긴 거구 마족은 ‘사 노귀’에게 평소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그들이 정말 갇혀 있는 거라면 다행이겠지만 예기치 못한 강적을 만나 변고를 당했을 수도 있습니다. 모두들 조심하시지요.”
누런 머리카락을 가진 노인이 냉랭히 끼어들었다.
“하하, 그럴 리가요. 그들의 실력에 대승기 수사를 만나지 않고서야 몰살이 웬 말입니까. 강력한 금제에 갇혀 연락이 끊기는 일이 드물지도 않고요.”
궁장 여인은 여전히 대수롭지 않다는 기색이었다.
“어찌 되었든 이곳을 지키는 자들에게 사 노괴 무리를 막을 방도가 있었다는 것이니 주의를 기울이자는 말입니다.”
황발(黃髮) 노인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이 형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따르겠습니다.”
이에 황발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몇 가지 당부를 더 하려라 문득 고개를 들어 올렸다.
“왜 그러십니까?”
거구 마족이 물었다. 그걸 본 다른 마족들도 의아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 물음에 황발 노인이 답하기도 전에 강력한 파동이 고공에 나타났다.
푸르스름한 빛의 장막이 거대한 그물이 되어 그들을 덮치고 있었다.
“어서 피하세요!”
황발 노인이 크게 소리치며 바닥을 굴러 노란 매로 변해 전당 위로 날아올랐다. 다른 마족들도 다양한 둔술을 일으켜 각기 다른 방향으로 솟아올랐다.
푸른 빛 그물은 규모가 대단해서 눈 깜짝할 사이에 검은 기운 속 전당을 뒤덮었고 네 명의 마족까지 가둬버렸다.
이에 노인을 포함한 세 명의 둔광이 허공을 선회하며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공격을 퍼부었지만 빛 그물이 동그랗게 뭉쳐져 빛구슬로 변한 다음 슁! 하고 고공으로 치솟아 사라졌다.
세 마족이 다급히 그 뒤를 쫓으려는데 고공에 파동이 일고 푸른색과 금색 인영이 등장해 앞길을 막았다.
공간을 뛰어넘어 도착한 한립과 해 도인이었다.
“요행히 금제를 벗어났으니 우리가 직접 저승길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당신들을 처리한 후에 동료들도 같은 곳으로 보내드릴 테니 안심하십시오.”
차갑게 말을 마친 그가 자신의 뒤통수를 쳐서 금빛 원영을 불러냈다. 이어서 맑은 울음소리가 들리고 다섯 덩어리의 금빛이 날아올라 거원, 채봉, 붕새, 공작, 금룡 등 다섯 허상을 만들어냈다.
원영은 작은 손가락으로 주저 없이 네 허상을 가리켰고, 다섯 진령 허상들은 분분히 원영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우웅!
눈을 찌를 듯 밝은 금빛을 방출한 원영과 한립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금색 비늘이 피부를 뒤덮고 머리 위로 푸른 뿔이 솟은 새까만 제3 요목을 지닌 인물이 나타났다. 한립이 공법을 발동해 열반성체의 변신술을 펼친 것이다.
그리고 옆의 해 도인은 엄청난 천둥소리와 은빛뇌전 속에서 거대 황금 게로 변신했다.
아래쪽 세 마족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 *
몇 시진 후, 목계대진 첫 번째 진안.
진한 마기가 꿀렁거리며 수많은 마족 병사들이 빼곡하게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마족 대군 위에 고계 마족들이 모여 심각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 수사 무리도 연락이 끊겼습니다! 두 번째 진안에 확실히 뭔가가 있는 듯합니다.”
정교하게 세공된 갑옷을 입은 마족 청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더 이상 수사들을 파견해서는 안 됩니다. 앞서 두 무리가 임무를 완수하지 못할 정도면 2호 진안을 지키는 실력자가 있다는 뜻일 테니까요.”
녹색 기운을 두른 마족이 인상을 찡그렸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마지막 진안을 파괴하지 못하면 목계절진을 파훼할 수는 없겠지만 진법의 위력이 상당히 약화된 상태라 적잖은 고계 족인들이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예병들만 보존하면 나머지 손실이야 어떻게든 보충할 수 있고요. 게다가 이번 군사행동의 진정한 목적은 탄천 대인의 행보를 감추는 데 있지 않습니까. 대인께서 성공하시면 성족이 영계에 제대로 된 거점을 마련하게 될 겁니다.”
마족 청년이 고개를 끄덕여 찬성했다.
“그래도 두 번째 진안을 지키는 힘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이곳을 중심으로 현광마염대진(眩光魔炎大陣)을 펼치시죠? 그 초대형 진법의 방어력이면 대승기 수사의 공격도 어느 정도 막아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는 동안 정예병들을 최대한 결집시켜 생존율을 높이고요. 적을 죽이지는 못해도 탄천 대인께서 대승을 거두기 전까지 버텨 내야지요.”
까만 피부의 마족 거한이 눈을 번득였다.
“괜찮은 생각입니다. 진안이 부서지면서 이곳의 금제 위력이 매우 약화되었습니다. 우리 쪽에서도 초대형 진법을 설치해 충분히 대항할 수 있을 거예요! 이 일은 제가 맡아 진행하겠습니다. 출발 전에 각종 진법관련 재료들을 챙겨 왔거든요.”
녹색 기운 속 마족이 나서서 거들었다.
“진법종사인 금 형이 나서주신다면 우리야 환영할 일입니다. 다른 분들은 최선을 다해 정예들을 이곳으로 대피시키시죠.”
마족 청년은 기쁜 얼굴로 결론을 내렸다. 이에 다른 마족들도 반대 의사를 표하지 않았고 각자 흩어져 맡은 직무를 수행하기로 했다.
이후 마족 대군은 녹색 기운 속 마족의 명령 하에 산맥 곳곳을 뛰어다니며 바삐 움직였다. 반나절이 지나기 전에 거대한 진법이 대략적으로나마 윤곽을 갖추어 나갔고 정예 마족들이 모인 부대가 절진 곳곳에서 모여들었다.
쿠르릉!
얼마 후 드디어 충분한 힘을 모은 목계절진이 두 번째 금제 공격을 개시했다.
다른 지역의 마족들은 미친 듯이 퍼붓는 두 번째 금제 공격에 참혹하게 죽어나갔지만 유일하게 첫 번째 진안에 있는 마족들만은 새로 세운 진법의 비호를 받아 사상자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
이에 진안에 모여든 마족들은 크게 안심했다. 목계대진에 반격하기보다는 진법을 유지하는데 모든 힘을 기울인 결과였다.
그러나 약 이틀마다 목계절진은 충분한 힘을 모아 마족들을 살육했고 다른 곳의 마족들이 거의 전멸하자 진법의 위력이 대부분 첫 번째 진안으로 집중되었다.
몇 차례의 금제 공격이 지나고 진법의 비호를 받는 1호 진안에서도 저계 마족들이 상당수 죽어 나갔다. 보름 후에는 백만 명 이상이던 마족대군 중 겨우 8, 9만 명만이 생존했다.
지금까지 목숨을 부지한 이들은 전부 고계 마족이라 최소한 수행이 화신이 이상은 되었다. 이는 전체 고계 마족 중 절반 이상이 살아남았다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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