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9화. 목족대전 (5)
*
“뭘 하려는 것이냐!”
날개 달린 마족 여인이 소리치며 고공을 향해 날개를 털었다.
휙! 휙!
두 줄기의 검은 빛이 한립을 향해 솟아올랐다. 범성법상이 등장한 순간 장포 노인도 보라색 기운이 흐르는 손바닥을 펼쳤다.
펑!
보라색 거대 발톱 허상이 한립 아래 나타나 호되게 그를 덮치려 들었다. 성조 화신들답게 한립이 뇌둔술을 이용해 순간이동을 한순간 맹공을 펼친 것이다.
나머지 셋은 고공의 공간 파동을 감지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장포 노인과 날개 여인을 믿고 굳이 나서지 않은 것이다.
그 모습에 한립은 오히려 희색을 드러내며 전신의 법력을 범성법상으로 마구 밀어 넣었다.
쿵!
금빛을 크게 뿜은 삼두육비 법상이 빛구슬을 냅다 집어 던졌다.
여섯 개의 금색 빛구슬이 한데 모여 회전하더니 금빛 찬란한 거대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소용돌이 속에는 금은색 주술 문자들이 흩날렸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커져 강력한 흡입력이 발생했다. 이에 두 줄기의 검은빛이 거대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 잘게 부서져 사라졌다.
또한 보라색 거대 발톱 허상은 금은색 주술문자들에 막혀 몸을 떨었고, 그 사이 소용돌이 속에서 불경소리가 울리고 소용돌이는 더욱 커졌다.
거대 발톱 허상은 태산과 같은 압력에 부들부들 떨며 아래쪽으로 밀려 내려갔고, 보라색 허상은 표면이 암담해져 언제라도 허물어질 듯 위태로웠다.
그 순간 다섯 마족의 어깨가 돌연 묵직해지고 무형의 압력에 속박되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에 그들은 노기를 드러내며 고함을 터트리고 각종 기운과 마기를 뿜어내 금제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들의 신통에 간단한 금제의 구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리 없었다. 하지만 두 손으로 수결을 맺고 있던 한립이 괴이한 미소를 짓고 날개를 펄럭였다.
날개에서 은백색 뇌전들 미친 듯이 쏟아져 나와 두 개의 거대한 뇌전구슬을 형성했다. 그리고 그가 장포 노인과 날개 여인을 가리키자 쿵! 하고 사라진 뇌전구슬들이 그들 아래에 나타나 두 개의 뇌진(雷陣)을 만들었다.
“엇, 전송진법!”
단번에 뇌진을 알아본 장포 노인이 놀라 소리를 높였다. 보라색 화염을 일으켜 순식간에 무형의 힘을 태워버린 그는 뇌진 밖으로 벗어나려 했지만 고공에서 서늘한 코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헉!’
그의 코웃음 소리를 듣는 순간 혼백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 같은 극심한 두통이 몰아쳤다. 이에 장포 노인은 머리를 부여잡고 비틀대다 고꾸라질 뻔했다. 그 순간 뇌진이 발동해 노인은 뇌전 속에서 사라졌다.
그뿐만 아니라 날개 여인도 뇌진에 의해 어딘지 모를 곳으로 전송되었다.
한립은 웃음을 터트리며 또 한 번 날개를 펄럭여 뇌전으로 은빛의 뇌진을 만들고는 허공에서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자 금색 소용돌이는 둔중한 폭음을 내고 흩어졌다.
금제의 구속이 사라지자 세 마족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올랐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그리 멀리 전송된 것이 아니라 금방 다시 모일 수 있겠어요.”
왜소한 여인이 안심하며 말했다.
“그렇습니까? 오 선자께서 비술로 다른 이들에게 연락을 취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금갑 마족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삼목 마족도 그들의 대화를 듣고 마음을 놓았다. 그런데 그때 인근에서 엄청난 폭음이 들려왔다.
공격을 막기만 하던 금색 보호막이 폭발하며 수많은 금빛들로 변해 도끼 허상을 꿰뚫어 쪼개고 그대로 두 무리의 독봉들 속으로 파고든 것이다.
이에 선홍색 독봉들이 추락해 겨우 백여 마리만이 목숨을 건지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금빛 안에서 엄청난 기운이 몰아치고는 황금 거대 게가 나타났다.
“저, 저건 마원해의 성해!”
“성조급 수행을 지닌 위선뢰가 어찌 이곳에!”
아담한 여인과 금갑 거한이 해 도인의 본체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쳤다. 그들은 마기로 겹겹이 보호막을 만들고는 다급히 뒷걸음질 쳤다. 황금 게가 공격을 할 낌새를 보이면 달아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삼목 마족은 달아날 준비를 하지 않고 세 번째 요목에 화려한 빛을 일렁이며 황금 게를 주시했다.
“수사들도 예전에 나를 본 적이 있나 봅니다. 긴말하지 않겠습니다! 당신들이 얌전히 이곳에 머문다면 한 수사가 승부를 내고 돌아올 때까지 나도 공격하지 않겠습니다. 허나 내 말에 따르지 않겠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를 원망하지 마십시오.”
거대 황금 게가 담담히 경고했다. 그 말에 달아나려던 아담한 여인과 금갑 거한이 가슴이 철렁해 멈춰 섰다.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본체를 드러내기 전보다 법력이 증폭되었지만 아직도 대승기 경지에는 이르지 못해 마원해에 있을 때보다 훨씬 못 미치는 기운입니다. 저 위선뢰에게 뭔가 문제가 생겨 수행이 크게 줄어든 듯하니 우리 셋이 힘을 합치면 해볼 만합니다.”
삼목 마족이 눈동자에 어른거리던 빛을 거두고 허리춤의 가죽 주머니를 때렸다.
파앗!
가죽 주머니에서 일곱 빛깔 기운이 흘러나와 반짝이는 세 개의 해골들을 불러냈다. 한 손에는 뼈 방패를 들고 다른 손에는 검은 기운이 꿈틀거리는 뼈 망치를 든 해골들이 일렬로 늘어섰다.
해골들은 전부 합체 중기의 기운을 지니고 있었다.
“저 황금 게에게 문제가 생긴 것은 확실하겠지요?”
아담한 여인이 급히 확인했다.
“보륜법목(寶輪法目)을 익힌 명 수사의 말이 맞을 겁니다. 어차피 우리가 이곳을 벗어나려 해도 성해가 보내주려 하지 않을 테니 싸움은 피할 수 없을 겁니다.”
금갑 마족이 눈을 데구루루 굴리며 도끼를 그러쥐고 살기를 드러냈다.
“황금 성해가 인족에게 잡혀갔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정말 영계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두 분이 그렇게 말하시니 저도 남아서 힘을 보태겠습니다!”
침음하던 아담한 여인이 결정을 내렸다.
“우리들이 성해의 적수가 못되어도 시간을 끄는 것은 가능할 겁니다. 다른 수사들이 인족 녀석을 죽이고 돌아오면 다섯이 함께 위선뢰를 상대하면 될 거예요.”
삼목 마족이 침착하게 말했다.
“그러기만을 바라야겠죠.”
아담한 여인은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어렴풋이 황금 성해를 데려간 인족 수사의 소문이 기억났지만 영계에서 전쟁을 치르는 중이라 자세한 소식을 접하지는 못했다. 그녀는 소문이 과장됐을 거라며 마음을 다독였다.
“으하하, 싸우기로 결정했으면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이시지요. 다 같이 칩시다!”
금갑 거한이 광소를 터트리며 입에서 정혈을 뿜어 도끼에 흡수시켰다. 그가 주문을 외자 도끼가 웅웅 울며 선홍색으로 물들어 고공으로 날아올랐다.
핏빛 도끼가 사라지자 바람이 몰아치고 천둥소리가 울렸다. 어디서 몰려왔는지 알 수 없는 먹구름들이 짙게 드리워 하늘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그리고 그 먹구름 소에서 굵은 은색 뱀이 번득이며 핏빛 도끼가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 모습에 삼목 마족과 아담한 여인도 시선을 마주치고 공격을 개시했다.
삼목 마족 앞의 세 해골들이 흐릿하게 사라졌다가 황금 게를 사이에 두고 삼각형 형태로 나타나 방패로 앞을 막고 망치로 힘껏 내리쳤다.
그러자 망치에서 검은 기운이 꿀렁꿀렁 빠져나와 열댓 개의 거대 촉수로 변해 거대 게를 갈겼다.
아담한 마족 여인은 입을 벌려 은색 호리병박을 분출했는데 호리병박 속에서 분홍색 기운이 날아올라 까마귀들로 응결했다. 분홍색 몸에 금색 부리와 은색 눈동자를 지닌 마조(魔鳥)였다.
까악!
여인의 명이 떨어지자 까마귀 무리가 사납게 울부짖으며 날아갔다. 황금 게는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다 두 집게발을 쾅! 하고 오므렸다. 그러자 은색 뇌전들이 끝도 없이 분출되어 거대한 그물을 이루고 황금 게를 보호했다.
콰르릉!
동시에 집게발 바깥에서 집채만 한 거대 뇌전 구슬이 하나씩 응결되어 굉장한 빛을 발했다.
드디어 해 도인과 세 마족의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 * *
만 리 밖, 두 산봉우리 사이.
한립이 미소를 머금고 고공에 떠있었다. 그의 뒤로 실체화된 삼두육비의 금색 법상이 금빛을 반짝였고 발아래로는 72개의 푸른 비검들이 맴돌았다.
그리고 그 앞에 장포 노인과 날개 여인이 한립을 노려보고 있었다.
“우리 둘을 강제로 전송시키다니 평범한 합체기 수사는 아니었구나. 허공에 바로 전송진법을 만들어내는 신통은 거의 보지 못했는데 말이야! 허나 홀로 우리 둘을 어쩌겠다는 것이냐!”
장포 노인이 한립 등 뒤의 거대 법상을 보고 진중히 물었다.
“하하, 당신들이 성조 본체도 아닌데 홀로 두 명을 상대한들 어떻습니까?”
“입으로만 떠들어대 봐야 소용없다. 그 대가는 목숨으로 치러야 할 것이다.”
장포 노인이 분노 어린 웃음을 흘리고 한 손으로 수결을 맺자 등 뒤로 핏빛이 치솟아 커다란 곤충 허상으로 변했다.
곤충 허상은 전신이 핏빛이었고 살집이 투실투실해서 거대한 애벌레를 닮았지만 머리에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진 커다란 입이 있었다.
푸확!
곤충 허상이 바로 입을 벌려 핏빛을 뿜어냈다. 핏빛은 날아가며 여러 개의 핏빛 실로 갈라져 한립을 향해 날아들었다.
한립의 미소가 짙어지고 등 뒤 법상이 여섯 개의 팔을 움직였다. 파공음과 함께 금색 주먹 허상들이 떠올라 핏빛 실들을 맞이했다.
콰르릉!
주먹 허상들이 폭발해 엄청난 파랑을 일으켰다. 이에 핏빛 실들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 모습에 장포 노인은 콧김을 내뿜고 두 손으로 빠르게 수결을 맺어 핏빛 실들을 가리켰다.
놀랍게도 핏빛 실들이 살아 움직이듯 꿈틀거리더니 허공으로 스며들었다. 다음 순간, 한립 앞에 파동이 일고 핏빛 실들이 지척에서 날아들었다.
이에 한립의 안색이 달라지며 뒤로 물러나자 발아래에서 날아다니던 푸른 비검들은 빙글 돌아 연꽃 문양의 푸른 보호막으로 변했다.
푸른 보호막 속으로 파고든 핏빛 실들은 무수히 많은 칼날에 가루가 되었다. 수많은 핏빛 실들 중 한 가닥도 보호막을 통과하지 못하고 핏빛 안개로 흩어졌다.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그러나 이상한 일은 장포 노인은 공격이 실패했는데도 실망한 기색 없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는 것이다.
“……!”
이때 한립도 뭔가를 알아차리고 훽 하고 고개를 돌려 날개 여인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서둘러 남색빛을 일렁여 방대한 의식으로 재빨리 사방을 훑었다.
으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두 배로 굵어진 그의 팔이 번개처럼 뒤쪽을 공격했다. 주먹이 순식간에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금색 주먹이 뻗어 나간 허공에 미미하게 파동이 일고 날개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금색 주먹이 여인의 머리를 노렸다. 멀리서 보면 괴이한 인영이 주먹을 맞기 위해 그 자리에 나타난 것처럼 보였다.
여인은 예상치 못한 공격에 안색이 창백해져 몸을 비틀어 다시 흐릿하게 변했다.
후웅!
주먹이 정확히 날개 달린 인영의 머리를 가격했지만 허공은 텅 비어있었다. 그제야 흐릿해진 인영이 거품처럼 터져 사라졌다.
“달아났다…….”
한립은 몸을 돌려 어딘가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그가 바라본 곳에 파동이 일고 날개 달린 인영이 나타나 차갑게 그를 쏘아보았다.
분명 마족 여인이었는데 장포 노인 옆에도 또 다른 날개 달린 여인이 고요히 떠있었다.
“합체기 수사 중 환술과 은신술을 이 정도 경지까지 익힌 자는 처음 봅니다. 영목신통을 익혔고 의식이 강대하지 않았으면 당했겠어요.”
한립이 담담히 말하며 손끝을 튕겼다.
콰릉!
손끝을 빠져나간 금색 뇌전이 사라졌다가 날개 여인 앞에 나타났다.
퐁!
장포 노인 옆에 나타난 여인은 뇌전이 닿자마자 산산이 부서졌다. 환영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걸 본 날개 여인과 장포 노인의 표정이 달라졌다.
“이번 공격은 피했다 해도 다음번에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으냐!”
날개 여인이 싸늘하게 외쳤다.
“똑같은 수법을 쓰시려고 그러십니까? 과연 통할지 모르겠습니다.”
“통하는지 안 통하는지는 직접 보거라!”
여인은 예쁘장한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날개를 펄럭여 흐릿하게 변해 사라졌다.
쉬익!
곧 한립 옆에서 여인의 인영이 나타나 새까만 손톱으로 공격해왔다. 이에 한립은 고민하지 않고 소매 속에서 푸른 검기를 뿜었다. 예기가 번득이자 날개 여인이 두 동강이나 떨어졌다.
그러나 시체는 추락하지 않고 눈앞에서 사라졌다. 이번에도 환영에 불과했던 것이다.
쉬익!
이때 다른 쪽에서 파동이 일고 날개 여인이 손톱을 휘둘렀다. 한립은 입을 벌려 뇌전을 쏘아 보냈다. 뇌전은 날개 여인을 그대로 투과해 지나갔다. 이것도 본체가 아니었다.
이번에는 그의 머리 위로 날개 여인이 나타나 날개를 펄럭였고 검은빛들이 떨어져 내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