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8화. 목족대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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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공의 비소석도 놀라기는 매한가지라 한립을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쉽게 처리할 수 없었던 적을 한립이 등장하자마자 격살해 버린 것이다.
그녀가 심호흡을 하며 무어라 입을 열려고 하는데 한립의 소매 속에서 무언가 크게 진동했다. 한립이 즉시 녹색 진법 원반을 꺼내 들고 손끝으로 몇 군데를 짚었다.
“한 형, 성조화신으로 의심되는 마족 다섯 명이 인근에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있는 산맥으로 빠르게 접근하고 있어 동원할 수 있는 금제를 전부 발동하기는 했는데 기껏해야 반 식경 밖에는 시간을 끌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때까지 그곳 상황이 마무리되겠습니까?”
다급한 목족 거한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비소석과 목족인들이 그 소리에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러나 한립은 차분히 반문했다.
“마족 존자들이 아니라 성조화신들이라고 확신하십니까? 일단 이곳의 마족들은 깨끗이 제거했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다섯 마족들은 합체 후기로 판단되는데 성조화신들이 아닌 다음에야 그렇게 많은 후기 마존들이 몰려다닐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세 번째 진안을 부순 무리와 다른 무리인 듯합니다. 아무래도 화신들이 무리를 나누어 세 곳의 진안을 노리고 있는 듯해요. 한 형, 저들을 붙들어둘 방법이 있겠습니까?”
“시간을 끌면 적들을 격퇴시킬 방법이 있는 것입니까?”
목족거한의 말에 한립이 눈을 반짝였다.
“반시진만 막아주시면 진안의 술법을 역전해 거꾸로 절진의 역량을 불러들일 수 있습니다. 거기다 비술을 발동해 예비 성수의 힘을 합치면 강력한 금제를 발동해 성조화신들도 가둬둘 수 있을 겁니다.”
위급한 상황에 목족 거한은 거리낌 없이 비장의 방법을 공개했다. 힘을 결집해 절진에 힘을 공급하는 진안이 반대로 절진의 힘을 끌어와 쓰게 만드는 비술이었다.
“진안에서 그런 방법을 쓸 수 있었다면 세 번째 진안은 어찌 뚫린 것입니까?”
“성조화신들이 기습해 그곳 수사들이 비술을 펼칠 시간이 없었을 겁니다.”
“그렇군요! 반 시진 동안 시간을 끄는 거라면 가능할 듯싶습니다. 저와 해 형을 성조화신 인근으로 전송해 주십시오.”
한립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한 형이 그들을 붙들어 주시면 이곳 진안을 반드시 지켜내겠습니다!”
목족 거한은 금제 비술에 대한 신뢰를 드러냈다.
“비 선자께서도 초 수사의 이야기를 들으셨을 겁니다. 성조화신들은 저와 해 형이 처리할 테니 진안으로 가서 초 수사의 호법을 서주시지요. 혹시 모를 다른 모종의 기습을 대비해 말입니다. 너희도 돌아가 만전을 기해 경계를 서거라.”
한립이 진법 원반을 거둬들이고 서둘러 비소석과 목족인들에게 말했다.
“한 형께서 생각이 있으신 것 같으니 저는 초 형의 호법을 서기 위해 당장 가겠습니다.”
야차족 여인은 한숨을 내쉬며 답했고, 한립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둔광을 일으켜 날아갔다. 이에 목족인들도 서둘러 비소석의 둔광을 따라갔다.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한립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성조화신이 다섯이라면 성가시기는 하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머지 성조화신들도 올 테고요. 해 형, 출발하시지요. 성조 화신들을 일망타진하면 마족 성조의 기세도 얼마간 꺾이지 않겠습니까?”
한립의 말에 무표정하게 서있던 해 도인이 흐릿하게 변해 그의 지척에 나타났다. 그들 주변에 공간 파동이 일고 오색 기운이 밀려들어 다채로운 빛깔의 빛의 진법을 형성했다.
한립은 그 중앙에 꼿꼿이 서서 법결을 던져 넣었고 웅 하는 진동과 함께 빛에 휩싸여 사라졌다. 허공에 남은 빛의 진법도 곧 둔탁한 폭음을 남기고 허물어졌다.
* * *
산맥 만여 리 밖 허공.
고계 마족 다섯이 막 뜨거운 화염 금제를 깨고 날아가려는데 그 앞에 공간 파동이 일고 한립과 해 도인이 나타났다.
다섯 마족은 순간 움찔했지만 먹이를 음미하는 시선으로 한립과 해 도인을 훑었다. 한립도 담담한 시선으로 그들을 탐색했다.
사내 셋과 여인 둘이었다. 사내들 중 한 명은 암녹색 장포를 입고 두 귀가 기다란 노인이었고, 나머지 둘은 가죽 갑옷을 입은 못생긴 장한들이었다.
반대로 여인들은 꽃처럼 아름다웠는데 한 명은 체구가 작았고, 나머지 여인은 늘씬한 몸에 새까만 날개를 지니고 있었다.
“큼, 합체 후기 두 명이라, 약한 자들은 아니군요. 누가 나서서 처리하시겠습니까?”
암녹색 장포를 걸친 노인이 입을 열었다.
“진법을 파훼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시간을 지체할 때마다 얼마나 많은 족인들이 죽어나갈지 알 수 없으니까요. 저들은 제가 맡을 테니 나머지 수사 분들은 가시지요.”
금색 갑옷을 입고 머리에 뿔이 난 거한이 시커먼 도끼를 불러냈다.
“우 형이 맡아주신다면 차질이 없을 겁니다. 우린 계속 갑시다!”
장포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털고 바람으로 변해 사라졌고 눈이 셋 달린 장한도 허공을 박차고 뇌전으로 변해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에 두 마족 여인도 눈을 마주치고는 마기를 일으켜 날아갔다.
그때 커다란 도끼를 쥔 거한이 광소를 터트렸고, 도끼가 한립과 해 도인 쪽을 횡으로 갈랐다.
도끼에서 새까만 빛이 빠져나와 빠른 속도로 날아들었다. 새까만 빛이 지나는 자리가 웅웅 울리고 하얀 흔적이 남아 엄청난 위력이 담겨 있음을 알려 주었다.
“전부 아무데도 가지 못할 겁니다.”
한립은 눈빛이 서늘해지며 두 손으로 수결을 맺었다. 그의 등 뒤로 삼두육비의 허상이 떠올랐다. 범성법상은 여섯 개의 눈을 번쩍 뜨고는 여섯 개의 손에서 금빛 찬란한 거검을 하나씩 만들어내 양쪽 허공을 빠르게 베어냈다.
휘휙!
여섯 개의 검기가 파공음만 남기고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때 도끼의 검은빛도 지척에 도달해 있었다.
옆에 서있던 해 도인이 가볍게 발을 굴러 한립 앞에 섰고 대수롭지 않게 팔을 뻗어 손가락으로 검은빛을 가리켰다.
그 순간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졌다.
해 도인의 손끝에서 금빛이 주르륵 새어나와 사람만한 빛구슬로 뭉쳐졌다. 검은빛이 구슬을 가르는데도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빛구슬은 반짝이다 스스로 폭발해 금색 파문들로 검은빛을 밀어냈다.
찰나의 순간 검은빛과 금색 파문이 허공에서 교전하느라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물러나지도 못하고 있었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금갑 거한이 놀란 얼굴을 했다.
그리고 한립은 금빛들을 폭발시켜 가느다란 빛의 실로 허공을 할퀴었다. 금빛 실들 속에서 공간파동이 일고 두 명의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족 장포 노인은 희뿌연 기운을 일으켜 광풍으로 금빛 실들을 잘라냈고 삼목(三目) 장한은 뇌전으로 다가오는 금빛 실들을 제거했다.
공간이동을 하다 허공에서 강제로 끌려 나오게 될 줄 몰랐던 그들은 매서운 눈빛으로 한립을 노려보았다. 그것을 본 마족 여인들이 의외라는 듯 서로 시선을 마주쳤다.
“흥, 담도 크구나. 둘이서 우리 다섯을 동시에 상대하기라도 할 셈인가? 자신이 대승기 노괴라 착각한 것은 아니겠지?”
장포 노인이 당황한 표정을 지우고 비웃음을 띠었다.
“저도 대승기 수사가 아니지만 당신들도 성조 본체가 아닌데 두려워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한립이 태연하게 답했다.
“입만 살았구나! 일단 저 녀석들을 죽이고 이동해야겠습니다. 다 같이 공격하시지요.”
장포 노인이 눈을 가늘게 뜨고 다른 이들을 향해 말했다. 한립이 뭘 믿고 저러는지는 몰라도 위험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저들은 제가 상대할 테니 아무도 나서지 마세요. 제가 기껏해야 합체기 수사 둘을 못 죽일 것 같습니까!”
금갑 거한이 화가나 살기등등하게 외쳤다. 막 공격을 개시하려던 삼목 장한과 두 명의 마족 여인들은 서로 눈치를 보았다.
“우 형, 명령을 잊으신 겝니까? 이번 임무에 이번 전투의 승패가 달려 있습니다. 지금은 괜히 성질을 부릴 때가 아니란 말입니다! 계속 이렇게 고집하시면 돌아가는 대로 수사 때문에 임무에 차질이 생겼다고 대인께 고할 것입니다. 그때 가서 뭐라고 해명하실지 잘 생각해 두시지요.”
장포 노인은 정색하고 위협했다.
“아, 그건……. 하하하, 알겠습니다! 저도 충동적으로 해본 말이니 귀담아듣지 마세요, 사 형. 이번 임무의 중요성을 저라고 어찌 모르겠습니까! 다 같이 저 녀석들을 단숨에 죽여 버리십시다.”
놀란 금갑 장한이 뜻밖에도 가식적인 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찌나 빨리 화를 냈다 웃었다 하는지 지켜보는 한립은 어이가 없었다.
장포 노인은 다른 수사들을 불러 한립과 해 도인을 포위했다. 이에 다섯 마족들은 막대한 법력을 끌어올려 무시무시한 기운을 풍겼다.
“전부 성조화신이 맞았습니다. 해 형, 몇 명이나 상대하실 수 있겠습니까?”
“두 명이면 바로 죽여 버릴 수 있고, 세 명이면 붙들어 둘 수 있습니다.”
한립의 물음에 해 도인이 담담히 답했다.
“그럼 일단 세 명을 맡아 주시지요. 나머지 둘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한립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 재빨리 결정을 내렸고 해 도인도 수긍했다.
“크크, 내 도끼나 막아내고 거드름 피우시지!”
그들의 대화에 금갑 거한이 전신의 법력을 끌어올려 등 뒤로 거대한 소머리 허상을 만들어내고 두 손으로 시커먼 도끼를 들어 내리쳤다.
쉐애액!
이번 공격은 이전과 달리 도끼에서 수천 개의 도끼 허상들이 튀어나와 한립과 해 도인을 갈랐다. 다른 마족들도 그것을 신호로 공격을 시작했다.
윙윙윙!
장포 노인은 두 소매를 털어 선홍색 곤충 떼를 불러냈다. 손가락 크기의 선홍색 독봉(毒蜂) 떼였다. 비린내를 물씬 풍기는 선홍색 독봉 떼들이 유성처럼 날아들었다.
또한 삼목 마족은 한 손으로 수결을 맺고 세 번째 요목의 눈동자에서 붉은색과 노란색, 녹색의 화려한 빛기둥을 분출했다. 빛기둥들은 소리소문없이 이동해 해 도인 앞에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아담한 체구의 마족 여인은 두 손바닥을 붙였다가 앞으로 펼쳐 분홍색 실들을 날려 보냈다. 분홍 실들은 거대한 그물을 이루어 아래쪽을 덮쳤다.
그리고 늘씬한 마족 여인은 새까만 날개를 펼쳐 기이한 한기와 함께 검은빛의 점들을 발산했다. 검은 점들은 고공에서 응결해 새까만 얼음송곳을 이루었다.
그물이 떨어지자 한립은 은은한 향기를 맡고 미간을 좁혔다.
콰릉!
적들의 다양한 공격에 한립은 눈썹을 끌어올리며 등 뒤로 수정 날개 한 쌍을 펼쳤다. 그러자 마른하늘에 벼락이 치고 뇌전이 번득이며 그가 종적을 감추었다.
그러나 위선뢰인 해도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한 걸음 앞으로 나서 두꺼운 금빛 보호막으로 몸을 둘렀다.
쿠콰콰쾅!
다음 순간 빛기둥, 도끼 허상, 얼음송곳 그리고 분홍 그물이 연달아 도달해 광채와 한기 등이 섞여 금빛을 가운데 두고 쉼 없이 폭발했다.
빛구슬이 펑펑 터져나가고 돌풍이 몰아쳐 허공이 왜곡되고 파랑이 주변을 휩쓸었다. 마지막으로 두 무리의 선홍색 독봉 떼가 도착했으나 감히 접근하지 못하고 고공을 선회하며 윙윙거렸다.
독봉 무리에서 무수히 많은 핏빛이 쏘아져 나와 혼잡한 폭발 속으로 뻗어 나갔다.
티티팅! 타탕!
금색 보호막은 강철로 만들어진 것처럼 굳세고 단단해 모든 공격을 받아내고도 미세하게 반짝였을 뿐 상처하나 입지 않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해 도인은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그 모습에 마족들은 크게 놀라 난색을 표했다.
콰릉!
그런데 그때 고공에서 은색 뇌전이 번득이고 한립이 다시 나타났다. 그는 아래를 훑으며 수결을 맺어 등 뒤로 삼두육비의 범성법상을 불러냈다.
거대 법상은 바로 여섯 팔로 허공을 쳐 손바닥에서 금색 주술문자들을 뿜어냈다. 주술문자들이 뭉쳐 만들어진 금색 빛구슬이 빙글빙글 회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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