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7화. 목족대전 (3)
*
콰릉!
비도는 천둥소리를 내며 뇌전에 휩싸여 거대한 백옥 칼날로 변해 떨어져 내렸다. 칼날이 닿기 전부터 무수히 많은 바람의 칼날들과 뇌전이 들이닥쳤다.
두 핏빛 빛구슬은 늑대의 머리에 원숭이의 몸을 지닌 괴물로 변했다.
박쥐 날개를 지닌 괴물이 날카로운 이빨 사이로 혀를 날름거리며 교활하게 주위를 살피는 것을 보니 지능이 매우 높아 보였다.
괴물들은 앞발을 펼쳐 날카로운 발톱을 꺼내고 두 날개를 펼쳐 아래쪽으로 쇄도했다.
쾅!
돌연 아래쪽에서 털이 북슬북슬한 핏빛 주먹이 나타나 거대한 백옥 칼날을 갈랐다. 이에 칼날은 튕겨 나갔고 핏빛 음파가 퍼지며 허공이 벼락이 친 것처럼 진동했다.
달려들던 괴물들이 음파에 말려들어 속도가 느려졌다.
쾅!
바로 그 순간, 또 다른 핏빛 주먹이 나타나 늑대 머리를 한 괴물들을 쳐냈다. 괴물은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맥없이 날아가 몸 절반이 피떡이 되었다.
그리고는 두 핏빛 주먹도 원래 없었던 것처럼 괴이하게 사라졌다. 고공의 비소석이 흠칫 놀라 원래 형태로 돌아온 작은 비도를 회수하며 두 괴물들을 가리켰다.
괴물들은 비틀거리고 일어나 핏빛 기운을 향해 분노에 차 포효했지만 이전처럼 무턱대고 달려들지는 못했다.
쨍강!
핏빛 기운이 아무런 조짐도 없이 깨져나갔다. 그러자 그 안에 온몸이 핏빛 털로 뒤덮인 거인이 서있었다.
거인에게서 합체 후기와 맞먹는 기운이 흘러나왔다. 거인이 살짝 주먹을 쥐자 핏빛 기운이 굵은 광선으로 변해 주위를 맴돌았다.
엄청난 기세로 주변 공기마저 밀려나가 그 무엇도 혈모(血毛) 거인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을 듯했다.
비소석은 비로소 강적을 만났다는 것을 깨닫고 목족인들에게 전음을 보내고 청록색 진법 깃발을 꺼내 세차게 휘둘렀다. 그러자 오색 기운이 출렁이며 강력한 무형의 금제가 뿜어냈다.
연허기 목족인들은 몸이 무거워져 추락하면서도 당황하지 않고 주문을 외워 녹색빛을 발했다. 그제야 그들은 금제의 영향에서 벗어났고, 혈모거인도 잠시 비틀거렸을 뿐 금제에 크게 억압당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크아악!
하지만 야차족 여인의 행동이 심기를 건드렸는지 마족이 합쳐진 거인은 고공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이전보다 훨씬 진득한 핏빛 물결이 혈모거인의 팔에서 빠져나와 교룡으로 변해 날아갔다.
동시에 거인 주변을 맴돌던 핏빛 광선이 날카로운 폭음을 내며 안개 덩어리를 만들어 연허기 목족인들을 노렸다.
이에 얼음장 같은 낯으로 비소석이 날개를 펄럭였다. 대량의 금은색 주술문자가 떠올라 허공에서 검으로 응결해 쏟아져 내렸고, 그녀는 입에서 하얀빛에 휩싸인 작은 탑을 분출했다.
탑은 바람을 타고 엄청나게 커져 그대로 추락했다. 또한 늑대 머리의 두 괴물도 각자 핏빛으로 변해 양옆으로 쏘아져 나갔다.
주변의 목족인들은 아예 오색 기운 속으로 몸을 피해 금제의 힘을 빌려 핏빛 물결을 막았고 각종 보물로 혈모거인에게 맹공을 가했다.
* * *
한립의 몸이 오색 기운 속에서 흐릿하게 변해 사라졌다가 넓은 회색 공간 안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전방을 훑은 그의 표정이 미세하게 달라졌다.
해 도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 허공에 떠 있는 두 구의 시체를 응시하고 있었다. 아래쪽에는 크고 작은 구덩이가 생겨 전투가 벌어졌음을 짐작케 했다.
“훌륭한 솜씨십니다. 이렇게 빨리 마족 존자들을 처리하시고 감탄했습니다.”
한립이 가볍게 미소 지으며 그의 실력을 칭찬했다.
“아닙니다. 내 앞에서 뇌전 신통을 사용한 저들이 죽음을 자초한 게지요.”
“하하, 어찌 되었든 마존들은 처리했으니 이제 비 수사를 도우러 가야겠습니다!”
“한 수사께서 결정할 일입니다.”
한립의 말에 해 도인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얼굴이었다. 이에 한립은 고개를 끄덕이고 마족 시체를 가리켰다.
펑! 펑!
새빨간 화염덩이가 날아가 시체들을 재로 만들었다. 그는 다른 손으로 비취색 진법 원반을 꺼내 주문을 외웠다. 금제를 발동해 해 도인과 같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때 고공에서 경천동지할 소리가 들리고 공간 전체가 부들부들 떨렸다. 한립이 놀라 서둘러 진법 원반을 내던져 하얀빛의 진법을 만들어냈다.
빛이 반짝이고 그와 해 도인의 신형이 모호하게 사라졌지만 그들이 있던 회색 공간은 새하얀 금이 가서 깨져버렸다.
산맥 주변의 이름 모를 산 위에 공간 파동이 일고 하얀빛이 한립과 해 도인을 토해냈다. 한립은 표정이 좋지 않았지만 해 도인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금제가 돌연 효력을 잃은 것입니까?”
한립은 서둘러 진법 원반을 불러들여 법결을 던져 넣고는 나지막하게 물었다.
“큰일입니다, 한 형! 성수가 전하기를 세 번째 진안이 제거되었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목계절진의 일부 금제가 무력화되고 진법 전체의 위력도 줄어들었습니다.”
반짝이는 진법 원반 속에서 초질의 다급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진안이 제거되었다고요? 마족들이 그렇게 빨리 진안을 찾아냈단 말입니까? 찾아내었어도 세 번째 진안을 지키는 합체기 수사들이 있었을 텐데요.”
“잠시만요. 세 번째 진안을 지키던 수사가 죽기 전 보낸 비검전신(飛劍傳訊)이 막 도착했습니다. 이럴 수가, 성조화신 여섯이 동시에 나타나 진안을 지키던 수사들을 죄다 죽이고 세 번째 진안을 부순 거라는군요! 마족 쪽에 목계절진에 대해 잘 아는 인물이 있는 듯합니다. 성조화신들이 세 번째 진안으로 몰려갔기에 이렇게 빨리 파훼된 것이고요.”
잠시 말을 멈췄던 목족 거한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마족이 목계절진에 대해 파악했다면 우리와 첫 번째 진안도 성조화신들의 습격을 피할 수 없을 겁니다. 목계절진의 금제가 일반적인 마족 존자들에게는 통해도 성조화신들은 오래 막지 못하니 그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속전속결 해야겠군요. 초 수사, 진법의 역량을 아낌없이 써서 금제의 감시 범위를 넓혀주시지요. 이쪽도 빠르게 침입자들을 해결하고 적을 맞이할 준비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저도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한립의 명령에 초질이 주저하다 답했다. 진법 원반이 웅! 울고 빛을 거두자 더는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마족들이 진안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하하, 이번 임무가 그리 만만치 않겠는데요. 해 형, 가십시다. 일단 눈앞의 적부터 해결하지요.”
한립은 잠시 고민하다 다시 진법 원반을 짚어 파동을 일으켰다. 이에 오색 기운이 밀려들고 그들은 종적을 감추었다.
오색 기운 속 또 다른 허공, 야차족 합체기 존재인 비소석은 전력을 다해 대여섯 개의 빛구슬로 열댓 마리의 핏빛 교룡들을 막고 있었다. 그러나 교룡들은 핏빛 안개에 둘러싸여 포악하게 발톱을 휘둘렀다.
금제 속에 몸을 숨겼던 십여 명의 목족인들도 절반 가까이 줄어 이제는 아홉 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들은 다양한 보물을 발동해 혈모거인을 필사적으로 공격했다.
그러나 이런 공격들은 거인이 두른 핏빛 광선에 닿자마자 힘없이 사라졌고 상대가 내뿜는 핏빛 기운의 파랑이 끊임없이 밀려들어 주변의 오색 기운에 흩어졌다. 죽은 목족인들은 오색 기운을 뚫고 들어온 핏빛 물결에 당한 것이 틀림없었다.
늑대 머리의 괴물들은 열댓 개의 환영 화신으로 변해 발톱에서 날카로운 빛을 뿌려댔지만 혈모거인에게 가까이 다가서지는 못했다. 간신히 버티고 있기는 해도 비소석 쪽이 열세였다.
이 와중에도 혈모거인은 주먹질을 하며 검은 주술문자를 뿜어냈고 혈교들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비소석은 겉으로는 평정을 유지했지만 내심 초조해하고 있었다. 전설의 마공을 익혔어도 연허기 수행으로 자신을 어쩌지 못할 거라 얕보았는데 겨뤄보니 자신의 판단이 틀렸던 것이다.
혈가무량마공이 만들어낸 혈교 허상들은 진짜 혈교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었고, 강력한 신통을 사용해 한두 마리를 제거해도 혈모거인의 조종에 새로운 혈교가 응결되었다.
혈교를 무시하고 혈모거인을 직접 공격해 보기도 했으나 본체 주변의 광선이 변화무쌍하게 움직여 모든 공격을 막아냈다.
비소석은 진법의 보조를 받고 겨우 상대와 대등하게 싸우고는 있지만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불리해질 것이 뻔했다.
쿠르릉!
여인이 초질을 향해 도움을 구해야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오색 기운에서 두 개의 그림자가 번뜩 나타났다. 바로 한립과 해 도인이었다!
비소석은 얼떨떨해하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과연 연허기 마족들이 한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겨우 합체 초기의 수행으로 중기 수사에게 우위를 점하다니 흥미롭군요. 비범한 마공을 익힌 자들인가 봅니다.”
혈모거인을 훑은 한립이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 형과 해 형이 어찌 오셨습니까? 설마 벌써 마족 존자들을 처리하신 겁니까?”
“예, 존자들은 처리했습니다. 선자께서 어려움을 겪고 계시니 제가 돕지요.”
한립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수결을 맺었다. 찬란한 금빛 속에서 그는 거대한 금털 거원으로 변했다. 거원은 털이 북슬북슬한 양손에 푸른색과 검은색 빛덩이를 불러냈다. 두 개의 산봉우리였다.
크아앙!
괴성을 지른 거원이 전신의 법력을 끌어올리자 두 팔뚝이 맹렬하게 불어났고 있는 힘껏 산봉우리를 투척했다.
쉬이이익!
두 산봉우리가 빛구슬처럼 변해 중간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혈모거인은 갑작스런 한립과 해 도인의 등장에 당황했고 거원으로 변한 한립의 행동에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거인이 그의 공격을 벗어나려 했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갑자기 주변이 어둑해지고 폭음과 함께 두 극산이 나타나 거인을 내리눌렀다.
이에 거인은 기합을 넣어 광선을 앞으로 보냈고 광선은 하나로 뭉쳐져 거대한 핏빛 방패로 변했다.
쿠앙! 쾅!
연달아 두 번의 충돌음이 터져 나왔다. 광선이 응결해 만든 핏빛 방패의 방어력은 강했지만 거원의 괴력이 담긴 두 극산을 막기는 무리였다.
첫 번째 충돌로 미세하게 갈라진 방패는 두 번째 극산이 들이닥치자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죽기 아니면 살기다!”
방패가 사라지고 두 극산이 그대로 날아드는 것을 보고 혈모거인은 생사의 기로에 섰음을 직감했다. 거인은 이를 악물고 두 팔에서 검은 기운들을 불러내 새까만 갑옷을 만들었다.
혈모거인이 두 주먹을 내지른 순간 몸을 뒤덮은 털에서 핏빛 실들이 뿜어져 나와 기운이 거의 배로 세졌다. 비술을 사용해 진원의 힘을 담은 일격을 가한 것이다.
퍽! 퍽!
두 주먹은 극산들과 닿는 순간 핏빛 안개로 터져버렸고 거인도 방대한 힘에 뒤로 나가떨어졌다.
콰르르릉!
두 극산은 잠시 멈칫하다 곧장 혈모거인의 양쪽으로 이동해 사정없이 거인을 뭉갰다. 극산 사이에서 거인의 처절한 비명이 들리다 잦아들었다.
충돌로 인해 눈부신 빛과 파랑의 기운이 넘실거렸고 그 틈에 네 개의 빛구슬이 핏빛 안개를 두르고 빠져나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달아났다.
연허기 마족의 원영들이었다.
“이제와 어딜 가려 하느냐.”
거원이 냉랭히 말하며 큰 손을 펼쳐 허공을 내리쳤다.
우우웅!
극산을 중심으로 거원의 일장에 담긴 괴력이 퍼져 공간을 일그러트렸다. 이에 아직 멀리 달아나지 못했던 원영들은 찍 소리도 내지 못하고 분분히 터져 영기의 빛으로 흩어졌다.
한립은 피식 웃고는 공법을 거두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 모습에 주변 목족인들이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를 경외감 어린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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