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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266화 (1,023/2,000)
  • 1266화. 목족대전 (2)

    *

    “농담이시지요? 세 마존들의 수행이 한 형보다는 못해도 셋이 힘을 합치면 녹록하지 않을 겁니다.”

    목족 거한이 놀라 만류했다. 비소석도 이상하다는 눈으로 한립을 쳐다보았다.

    “자신이 있으니 드리는 말씀입니다. 해 형, 이제 나오시지요.”

    한립이 미소를 지으며 누군가를 불렀다. 그러자 그 옆에 파동이 일고 하얀 인영이 소리 없이 나타났는데 영기의 압력이 한립 못지않았다.

    “합체 후기?”

    “이분은 한 형 곁에 있던…….”

    초질과 비소석이 해 도인의 기운을 감지하고 눈을 크게 떴다.

    “해 형과 함께라면 안심이 되시겠습니까?”

    “물론이지요! 알고 보니 선배님들께서 진작 기습을 대비해두셨군요. 해 형이 나서주신다면 걱정할 이유가 없을 겁니다.”

    목족 거한은 밝게 웃으며 해 도인을 향해 포권을 했다.

    “한 형과 해 형께서 나서주신다면 저도 이견은 없습니다.”

    비소석도 살짝 한숨을 쉬고 받아들였다. 그들은 해 도인을 연합군의 대승기 수사들이 숨겨 놓은 인물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해 도인은 그저 한립 옆에 서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한립도 굳이 해명할 필요가 없었기에 구슬에 떠오른 모습으로 시선을 돌렸다. 일곱 마족들은 험상궂은 거구를 주축으로 뇌전을 이겨내고 산맥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초 수사, 즉시 전도환형오악금제(顚倒換形五岳禁制)를 발동해 주세요. 저들을 떨어트려 놓은 후에 계획대로 처리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한 형! 일단 출발하시지요. 저는 금제를 발동하고 있겠습니다.”

    한립의 명령에 목족 거한이 경천거목 앞 진법 중심으로 향했다. 그는 그곳에 가부좌를 틀고 두 손으로 수결을 맺고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진법 사방에 앉은 백여 명의 목족인들도 영기의 빛을 반짝이면서 그를 보조하기 시작했다.

    “가십시다!”

    한립과 해 도인 그리고 비소석이 세 개의 빛줄기로 변해 마족들이 다가오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그의 동시에 산봉우리 곳곳에서 십여 개의 둔광들이 날아올라 바짝 그들을 쫓았다.

    한립이 전음으로 불러낸 연허기 병사들이었다.

    * * *

    일곱 마족은 검은 바람을 일으켜 서서히 앞으로 나아갔다. 가장 앞서가는 험상궂은 마족 거한은 아까 사용하던 거울을 아직도 손에 들고 이곳저곳을 비추고 있었다. 거울은 금제를 파훼하는데 현묘한 신통을 발휘하는 보물이었던 것이다.

    “흠? 모두 조심하십시오!”

    거울이 어딘가를 비춰 눈부신 은빛을 터트리자 마족 거한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이에 뒤쪽의 마족들도 신속히 보물을 꺼내 들었다.

    그러나 행동을 취하기 전에 아래쪽 수풀에서 녹색 빛이 밀려나와 거대한 빛의 진법을 만들었다. 벌써 진법은 오색 빛을 머금고 있었다.

    “피해야 합니다!”

    “이런!”

    그러나 마족들은 순식간에 무수히 많은 푸른 주술문자에 둘러싸였다.

    “깨져라!”

    “사상동기(四象同氣)!”

    오색 기운 속에서 험상궂은 거한과 연허기 수사들의 외침이 동시에 들렸다. 마족 거한은 거울을 높이 들어 그 안에서 검은 빛기둥을 방출했고 연허기 마족들은 몸에서 핏빛을 발산했다.

    쿠르릉!

    검은 빛기둥이 오색 기운을 뚫고 한 사람이 비틀비틀 튀어나왔다. 험상궂은 얼굴의 거한이었다. 나머지 마족들은 빛의 진법 안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강제로 이동시키다니!”

    붕괴하기 시작한 빛의 진법을 본 거한이 분노에 차 소리를 내질렀다.

    “진법에 정통한가 봅니다. 일행들이 여기까지 무사히 도착한 것도 수사의 보물 덕분일 테지요.”

    아주 멀리서 사내의 목소리가 유유히 들려왔다. 하늘 끝에서 푸른빛이 번득이고 푸른 빛줄기가 날아들었다.

    험상궂은 마족은 거울을 높이 던지고 입에서 핏물을 뿜었다. 핏물이 핏빛 안개로 흩어져 거울 속으로 스며들었다.

    우웅!

    거울은 격렬히 진동하며 흐릿해져 누각 크기의 악귀 얼굴을 만들어냈다. 거한의 손짓에 두 눈을 감고 있던 악귀 얼굴이 눈을 부릅떴다. 모골이 송연해지는 웃음소리에 악귀 얼굴은 입을 쩍 벌려 시꺼먼 화염을 마구 뿜어냈다.

    쾌속으로 다가오던 푸른 둔광이 화염에 휩쓸리고 말았다.

    “으하하하, 염도마염(閻都魔炎)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통천령보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험상궂은 마족은 계속해서 악귀 얼굴을 조종했다. 시꺼먼 마염이 한 덩어리로 뭉쳐져 굵직한 불기둥을 이뤄 푸른 둔광을 활활 불사르고 있었다.

    “그런가요? 다른 수사라면 얼마 버티지 못했겠지만 제 경우에는 벗어나기 어렵지 않겠습니다.”

    사내의 말을 끝으로 검은 불기둥 속에서 새의 지저귐이 들려왔다. 은빛이 폭발적으로 일어나 검은 화염 안에서 은색의 거대 새가 날아올랐다.

    은빛 찬란하게 반짝이는 새의 등장에 온도가 급상승해 대기가 지글지글 끓었다. 검은 불기둥 위에 은색 태양이 뜬 것만 같았다.

    “이게 아닌데…….”

    흠칫 놀란 험상궂은 마족이 서둘러 다른 법결을 발동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은색 불새는 맘껏 지저귀다 고개를 숙이고 숨을 들이마셨다. 괴이하게도 불기둥이 무수히 많은 검은 실로 갈라져 은색 불새의 입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불기둥이 얇아지고 그 안에서 푸른 인영이 등장했다. 푸른 인영은 별다른 보물을 불러내지도 않고 그저 자신의 영력으로 이뤄진 보호막을 둘렀고 마염 속에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그 모습에 험상궂은 마족이 헛바람을 들이켰다. 자신이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헉! 대승기?’

    염도마염의 위력은 그가 가장 잘 알았다.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을 살아온 대승기 노괴들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승기 노괴든 아니든 내가 감당할 상대가 아니다.”

    얼굴이 창백해진 마족 거한의 등 뒤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거한은 돌연 몸을 돌려 악귀 얼굴을 가리키고 자신의 두 팔뚝을 마구 흔들어 떨구었다.

    퍼펑!

    그러자 두 팔이 핏빛으로 터져 그를 감쌌고 고공의 악귀 얼굴도 갈라져 폭발했다. 가느다란 검은 실타래들이 튀어나와 하늘을 뒤덮었다.

    마염 속 푸른 인영은 서둘러 달려온 한립이었다.

    “혈둔술(血遁術)!”

    거한의 모습에 한립은 한 손바닥으로 고공을 내리치고 다른 쪽 소매를 털었다. 금색 거대 손 허상이 나타나 검은 실타래들이 이룬 그물을 잡아챘다.

    츠츠츳!

    검은 실들은 금색 거대 손을 이기지 못하고 손쉽게 찢겨나갔다. 한립의 소매 속에서 금색 뇌전이 날아가 번득하고 사라졌다.

    다음 순간, 핏빛 안개 속 사내 앞에서 천둥소리가 울리고 금색 뇌전이 불가사의한 속도로 떨어져 내렸다.

    핏빛을 머금고 튀어나가려던 마족 거한은 혈둔술이고 뭐고 다급히 뒤로 물러나 입에서 노란 비도를 뿜었다.

    쾅!

    굉음과 함께 금빛 뇌전이 사라지고 노란 비도도 빛을 잃고 고꾸라졌다. 한립의 수행에 벽사신뢰를 사용했으니 마기(魔器)를 제압하는 위력이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비도와 의식이 연계되어 있던 마족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피를 토하면서도 검은 빛줄기로 변해 주저 없이 내뺐다. 노란 비도는 안중에도 없는 모습이었다.

    “과감한 결정은 좋았습니다만 겨우 그 정도로 달아날 수는 없을 겁니다.”

    한립은 말을 마치고 허공에서 한 걸음 내디뎠다.

    콰릉!

    발바닥에서 은색 뇌전들이 빠져나와 놀랍게도 은백색 뇌진을 형성했고, 한립은 그대로 뇌진 속으로 사라졌다.

    그때 꽤 멀리 달아난 검은 빛줄기 속의 마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는데 그때 앞쪽 허공에 천둥이 치고 은백색 뇌진이 소리 없이 떠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한립이 뇌진에서 튀어나왔다.

    “안 돼!”

    이에 대경실색한 마족은 재빨리 둔광의 방향을 틀려 했지만 한립 등 뒤로 삼두육비의 거대 법상이 나타나 동시에 여섯 개의 팔을 휘둘렀다.

    금빛이 번뜩이고 여섯 개의 금빛 거검들이 마족 거한을 향해 쇄도했다. 거한은 단말마의 비명을 남기고 방어 보물들과 함께 금색 검기에 두 동강이 났다.

    그때 잔해에서 급히 노란 빛이 빠져나왔지만 나머지 검기들로 인해 산산조각이 나 완전히 소멸되고 말았다. 한립이 나타난 후 마족이 보물과 두 팔을 자폭해 돌아가다 죽기까지 채 몇 호흡밖에 걸리지 않았다.

    험상궂은 마족 거한은 귀한 보물을 지니고 있어 실력이 평범한 합체 후기 마존과 비등했지만 운 나쁘게 한립을 만나 목숨을 잃고 말았다.

    * * *

    오색 기운으로 둘러싸인 기이한 공간에 털이 길게 자라나 대성성(大猩猩)을 닮은 마족들이 일렬로 서있었다. 그들이 발산하는 핏빛에서 희미하게 피비린내가 풍겨왔다.

    네 명의 마족들을 녹색 피부의 목족인 십여 명이 포위하고 있었고 그들 위쪽에 냉랭한 얼굴을 한 여인이 팔짱을 끼고 떠있었다.

    그녀의 등 뒤에는 새빨간 날개가 자라나 있었고 얼굴에는 금은색의 주술문자가 흐릿하게 반짝였다. 여인은 야차족의 비소석이었다.

    “혈가무량마공(血柯無量魔功)! 마계에서는 진작 실전될 줄로만 알았는데, 그 악독한 사술을 익히는 자가 아직도 있었구나.”

    비소석이 냉랭히 입을 열었다.

    “그걸 알았으면 이런 변변치 못한 녀석들은 물러나라 하시지요. 공연히 정혈만 바치는 꼴이 아니겠습니까.”

    네 마족 중 한 명이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하하, 너희가 합체 초기만 되었어도 저들이 아니라 나도 당장 자리를 피했을 것이다. 그런데 겨우 연허기 수행을 지닌 자들이 혈가무량마공을 익혔다 한들 동급 수사 십여 명을 이길 수 있겠느냐? 전부 쳐라!”

    비소석이 냉소하며 연허기 목족인들에게 명을 내렸다. 목족인들은 네 마족들이 꺼려졌지만 명령을 듣고는 주저 없이 행동에 들어갔다.

    일부는 두 팔을 벌려 수많은 푸른빛들을 날렸고, 나머지는 입에서 진득한 푸른 기운을 뿜어 밧줄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특수한 공법을 익히지는 않았지만 여러 번 합을 맞춰보았기에 물샐틈없는 공격을 가할 수 있었다.

    휘이잉-

    마족들은 서로 등을 맞대고 서서 한 손을 뻗었다.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은 가벼운 손짓에 광풍이 일어 핏빛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폭풍 속에는 검은 주술문자들이 빽빽하게 들어찼고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가 풍겼다. 그러나 괴이하게도 푸른 밧줄이 핏빛 기운에 닿는 순간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이에 목족인들이 놀라 각종 비검과 보물들을 불러내 여러 가지 색깔의 기운 덩어리로 만들어 핏빛 기운을 내리누르려 했다.

    그러자 마족들은 마치 한 사람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한 손을 뻗었다.

    우웅!

    그러자 피비린내가 한층 깊어지고 품고 있던 주술문자들도 크기를 더욱 키웠다.

    콰콰콰쾅!

    핏빛 기운에 부딪힌 모든 보물들이 무언가에 부딪힌 것처럼 힘없이 튕겨나갔다. 이에 연허기 마족들의 코웃음 소리와 함께 핏빛 기운이 더욱 강해졌고 검은 주술문자들은 빙글빙글 돌아 하나씩 새까만 소용돌이로 변했다.

    이참에 목족인들을 일망타진하려는 듯했다.

    “막으려 들지 말고 피하라!”

    허공에서 이를 지켜보던 비소석이 표정이 달라지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녀의 손에서 작은 비도가 떠올라 거침없이 아래쪽을 갈랐다.

    거대한 하얀 도기가 분출되어 핏빛 기운을 베려 했다. 목족인들이 그녀와 같은 종족 수사들은 아니었지만 몰살당하면 돌아가 할 말이 없었다.

    목족인들도 비소석의 경고를 듣고 기겁해 뒤쪽으로 물러섰다.

    그러나 가장 느리게 움직인 목족인 두 명이 결국 핏빛 기운에 따라 잡혔고, 놀랍게도 보호막과 방어용 보물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고 끔찍한 울부짖음이 들린 후 몸이 터져나갔다.

    연허기 수사들이 남긴 두 줄기 정기(精氣)가 스산하게 핏빛 기운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걸 본 나머지 목족인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다행히 이때 거대 검기가 도착해 핏빛 기운이 갈라졌다. 이에 준비하고 있던 후속 공격이 무력화되었다. 핏빛 기운이 아무리 현묘해도 수행의 차이를 버텨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네 마족이 펼친 혈가무량마공은 무시무시했다.

    “이제야 직접 나설 마음이 드셨나 봅니다. 진작 그러셨어야지요. 이러나저러나 어차피 당신도 우리에게 흡수당하게 될 테지만! 사상합일(四象合一)!”

    연허기 마족 중 하나가 광소를 터트렸다. 그들은 똑같은 수결을 맺고 등 뒤로 눈부신 핏빛을 방출해 그 안으로 몸을 숨겼다.

    그 모습에 눈살을 찌푸린 비소석은 고민하지 않고 비도를 던지며 양 소매에서 선홍색 빛 구슬 두 덩이를 날려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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