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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262화 (1,019/2,000)
  • 1262화. 임무

    *

    “그거 참 묘책입니다!”

    말귀를 알아들은 오소 노조도 박수를 치며 웃음을 터트렸다.

    “모든 일은 명충모 일이 사실로 확인된 후에 실행해야 합니다. 또한 눈앞의 목족에 관한 일도 쉽게 포기할 수 없어요. 우리가 본 족의 안전을 위해 돌아가 버리면 겨우 결성한 연맹이 와해될 겁니다. 그럼 마족들이 각 종족을 각개 격파해 순식간에 전쟁이 끝나겠지요.”

    “목족의 의사에 따라 마족들을 공격하는 수밖에 없다는 말씀이군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마족 대군에 치명적인 손상을 가하면 우리도 돌아갈 명분이 설 겁니다! 야차족 노괴도 실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르고요.

    야차족에 대승기 수사라고는 그 노인네 한 명인데 걱정이 되지 않을 턱이 있겠습니까? 마계에서 소식이 오기 전까지 분산된 힘을 모아 마족 대군의 대규모 진공에 대비하고 있으면 될 것입니다.”

    “오소 수사의 말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이번 전투는 무조건 승리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한 수사와 해 형의 도움이 필요하겠지만, 전투가 끝나는 대로 본 족으로 돌아가 수련하게 하지요.

    노부가 보니 법력이 깊고 정순한 것이 막 합체 후기에 이른 수사라고는 믿어지지 않는군요. 폐관수련에 들어가 정진하면 머지않아 후기를 대성할 수 있을 겁니다. 하루 빨리 새로운 대승기 수사가 나와야 인요족도 그 혜택을 누리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영롱 수사도 마찬가지고요.”

    막간리의 말에 오소 노조가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한립도 생각 끝에 그들의 말대로 따르기로 했다. 목족 영역에 마족 시조의 본체가 강림하지 않는 한 두려울 것이 없었다.

    “목족이 감히 반격을 하겠다고 나선 데는 그 늙은이의 지지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을 겁니다. 막 수사, 성 안에 머물며 들은 소식이 있습니까?”

    오소 노조가 미심쩍은 부분에 대해 물었다.

    “벌써 알아보았지요. 마족 병사들이 증원되었다는 정보를 목족 대장로라고 입수하지 못했겠습니까? 우리를 오래 붙들어 두지 못할 것을 알고 죽기 아니면 살기로 마족과 결전을 펼칠 생각인가 봅니다.

    36그루의 예비용 성수를 전부 내놓아 목족 최고의 진법인 목계(木界) 삼십육천절진(三十六天絶陣)을 펼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 강력한 진법에 우리와 상해가 나서주면 마족 병력이 그대로라는 가정하에 승산이 7할은 되니까요.”

    “목계삼십육천절진에 대해서는 저도 들어 보았습니다. 상계 선인의 현천영역이라는 강력한 신통을 모방해 만들어낸 것이라지요? 대승기 수사도 멸살할 수 있다던데요. 목족에서 절진을 만들어내고 단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예비용 성수마저 내놓은 것을 보면 목족도 결의가 대단한 듯싶습니다. 마침 시간이 필요했으니 우리 양족을 위해 시간을 끌 좋은 기회입니다.”

    “하하, 맞는 말씀입니다!”

    막간리와 오소 노조가 웃음을 흘렸다.

    그 후 오소 노조와 막간리는 마족과의 전투를 대비한 구체적인 대책을 논의했고 수시로 한립에게도 의견을 물었다.

    한립은 대화의 내용이 군사 기밀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두 대승기 수사의 대화에 함부로 끼어들지 않고 그들이 질문할 때만 신중히 생각하고 의견을 밝혔다.

    해 도인과 은월도 대청 안에 있었으나 차분히 이야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렸고, 주과아 역시 한쪽에 얌전히 서있었다.

    * * *

    막간리의 동부에서 거의 반나절을 보낸 오소 노조가 먼저 일어나 은월과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한립은 막간리와 단독으로 한담을 나누다 노인이 불러준 중년 수사의 안내를 받아 임시 거처로 향했다.

    중년 사내는 아주 친절하게 그를 막간리의 동부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거목의 가지 부분에 세워진 누각으로 안내했다. 그의 거처는 막간리 동부보다는 못해도 영기가 짙어 퍽 만족스러웠다.

    이후 보름 동안 한립은 누각의 밀실을 나서지 않고 오소 노조에게 얻은 의식 비술을 수련했다. 어서 비술을 대성해 은월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였다.

    주과아는 영계의 성에 온 것이 처음이라 하루가 멀다 하고 목면성 곳곳을 나돌아다녔다. 꼬마 계집이 무슨 말로 해 도인을 구슬렸는지 뜻밖에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같이 돌아다녀 한립을 놀랍게 했다.

    소녀가 매일 돌아와 떠드는 이야기를 통해 한립은 목면성에 폭풍전야와 같은 긴장감이 맴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보아하니 연합군 고위층이 마족들과 대규모 전투를 벌이기로 합의를 보았나 보구나.’

    이는 그가 한가롭게 보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며칠 후, 갑자기 막간리가 그의 거처로 찾아왔다. 의식으로 대승기 수사가 찾아온 것을 감지한 한립은 직접 나가 그를 맞이했다.

    막간리는 예의상 몇 마디 안부를 묻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마족을 공격할 각종 책략이 드디어 정해졌다네! 연합군 중 나와 오소 형 그리고 야차족의 상해 셋의 수행이 가장 높아 마족 측에 성조가 몇 명이든 우리가 맡아 상대하게 될 것이야.

    목족은 이전 전투에서 대패하는 바람에 합체급 수사가 얼마 남아있지 않아 각종 전략을 수행하기 어려워 다른 종족에서 고계 수사가 지원하기로 했네. 한 수사도 막중한 임무를 맡아줘야 할 듯싶어.”

    “이번 전쟁이 인요 양족에게 중요하다면 인족의 일원으로 힘을 보탤 것입니다. 분부를 내려주시지요.”

    한립이 빙긋 웃으며 공손히 답했다.

    “우리 세 늙은이 다음으로 수행이 높으니 자네가 책임질 일도 많겠지. 그보다 해 도인의 수행은 얼마나 회복되었는가?”

    “안타깝게도 해 형은 과도하게 힘을 소모해 반년은 지나야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듯합니다.”

    막간리의 의도를 알아챈 한립이 신속히 대답했다.

    “아쉽게 되었군. 해 도인의 실력이면 승산이 1할은 높아졌을 것인데.”

    “아……. 해 형이 전력을 다하면 평범한 대승기 수사에 버금가는 위력을 발휘하지만 공격의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저도 아무렇게나 공격을 요청할만한 능력은 되지 않습니다.”

    “해 도인의 규칙에 대해서는 들어 보았네. 어떤 대가를 치렀든 그를 마계에서 영계로 데려온 것은 잘한 일일세. 직접 나서지 않아도 대승기 위선뢰의 위명이면 적들을 긴장하게 만들기에 충분할 게야.”

    “저도 그러기를 바랍니다.”

    한립은 그저 쓴웃음을 지었다.

    “해 도인의 몸 상태가 그렇다면 자네를 최전방으로 보낼 수는 없겠어. 이렇게 하지, 목족이 이번에 펼치는 목계삼십육천절진에는 세 개의 진안(陣眼)이 있어 진법 운용의 주축을 이룬다네.

    어느 곳이든 파훼당하면 진법 위력 전체가 떨어지고, 전부 뚫리면 절진 자체가 붕괴될 걸세. 연합군이 이번 전투에서 최선을 다해 보호해야할 곳일세.

    거꾸로 생각하면 세 곳의 진안은 전부 금제로 겹겹이 둘러싸여 있어 비교적 안전하다고 볼 수도 있지. 노부가 오 형과 상의해 그 중 한 곳을 자네에게 맡기고 싶은데 어떠한가?”

    “맡겨만 주신다면 절대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하겠습니다.”

    한립은 오래 고민하지 않고 답했다.

    “아니지, 아니지. 진안을 지켜내느냐 마느냐가 이번 전투의 승패를 가를 수도 있네만 한 수사 자신의 안위가 우리 인족에게는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명심하게! 감당하기 어려운 적이 들이닥치면 주저 말고 물러나도 좋다는 말일세! 자네가 화를 당하면 이번 전투가 어찌되든 인족의 손해가 막심할 테니 말이야.”

    막간리가 고개를 저으며 거듭 당부했다.

    “선배님의 보살핌에 감사드립니다. 어찌 처신해야 할지 알아들었습니다.”

    잠깐 놀라 멍해졌던 한립이 표정을 가다듬었다.

    “알아들어 다행이구만. 이번 전투에서 자네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이고, 그 다음이 진안을 지키는 일일세. 해 형이 있으면 마족 성조 본체가 나타나는 경우 말고는 해결할 수 있을 것이야. 오소 형의 말을 들으니 둘이 힘을 합쳐 원살 그 마두와도 대등하게 싸웠다고 하던데?”

    진지하게 말하던 막간리가 빙긋 웃음 지었다.

    “오소 선배님께서 과찬을 하신 것입니다. 저와 해 형이 간신이 버티고 있는데 오소 선배님께서 와주신 덕분에 원살이 물러난 것입니다.”

    한립은 아주 겸손한 태도를 유지했다.

    “그래도 자네와 해 수사가 힘을 합치면 대승기 아래로는 감히 넘볼 수 없다는 소리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번에 진안을 지키는 임무에는 자네 말고도 목족과 야차족 합체기 수사가 함께 할 것이야. 나와 오소 수사는 자네와 해 도인의 실력을 믿네만 다른 종족에서는 사정을 모르니 걱정이 되는 것이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야차족과 목족의 합체기 수사들과 같이 임무를 수행하면 누가 주도를 해야 할지요?”

    “허허, 동급 수사들 간에 우열이야 자연히 실력으로 가름이 나지 않겠는가? 목족과 야차족에서 누굴 보낼지 모르지만 절대 자네보다는 못할 것이야. 다만 목족 고계 수사는 목계절진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 테니 관련 문제는 상의해가며 결정을 내리면 될 것이네.”

    “명심하겠습니다! 언제 출발하면 되겠습니까?”

    “목족에서 36그루의 예비 성수들을 내놓아 절진 설치가 간단해 졌다지만 여전히 시간이 꽤 걸릴 것이네. 노부와 막 수사가 대군을 이끌고 먼저 출발해 마족 병사들을 유인하면, 한 수사가 진법을 펼칠 두 번째 부대를 이끌고 출발하면 되네. 약속한 장소에 목계절진을 설치하는 대로 즉시 진안으로 들어가 그곳을 지켜주게.”

    한립의 질문에 막간리가 차분히 설명을 해주었다. 모든 설명이 끝나자 막간리는 한립의 거처에서 오래 머물지 않고 바로 몸을 일으켰다.

    문밖까지 인족 대승기 수사를 배웅한 한립의 얼굴에서 웃음이 가셨다.

    * * *

    쿠르릉!

    보름 후, 목면성에서 각종 파동이 일어나 다양한 빛줄기들이 솟아올랐다. 전차와, 전함들이 성을 떠나는 것이었다.

    거대 비행 보물 위에는 무장한 병사들이 가득 타고 있었는데 인족과 요족, 목족과 야차족 그리고 영족까지 여러 종족의 병사들이 섞여 있었다.

    목면성에서 쿠르릉 거리는 소리가 잇달아 들리고 전차와 선박들이 줄지어 떠올라 족히 수만 개의 검은 점들을 이루었다.

    우웅!

    이때 목면성 전체가 흔들렸다. 백여 개의 방대한 물체가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다.

    방대한 물체들은 거대 전각도 있었고 산봉우리 모양을 한 섬도 있었으며 녹색 기운이 뭉친 거대한 구름덩이인 경우도 있었다.

    연합군 병사들을 가득 태운 방대한 물체들이 잠시 성 위에 멈추었다가 다른 비행 보물들을 이끌고 출발했다.

    목면성에 결집한 연합군의 절반에 해당하는 병력과 세 명의 대승기 수사가 마족 대군을 공격하기 위해 가고 있었다.

    * * *

    한립은 그들과 떠나지 않고 누각 상공에 올라 멀리서 막간리 등이 출발하는 것을 확인한 후 차분히 거처로 돌아왔다.

    닷새 후, 조용하던 목면성이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목족인들을 위주로 연합군들이 뭉쳐 목면성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이때 누각 최상층에 앉아 수련하던 한립이 운공을 마치고 눈을 떴다.

    잠시 후, 주과아가 계단을 올라왔다.

    “한 선배님, 목족에서 누가 오셨습니다.”

    “알았다. 너는 수행이 너무 낮으니 이번 전투에는 목면성에 남아 있거라. 전투가 끝나는 즉시 돌아와 인족으로 데려갈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주과아는 당황했지만 한립의 분부에 감히 대꾸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한립이 1층 대청에 이르자 해 도인이 구석에 무표정하게 앉아 있었고, 청록색 피부의 녹색 청년이 안절부절 하며 우두커니 서있었다. 목족 청년은 겨우 원영기 수행을 지닌 데다 원영을 응결한지 얼마 되지 않은 듯했다.

    “한 선배님을 뵙습니다! 대장로님의 명을 받아 출발을 알리러 찾아뵈었습니다.”

    청년이 한립을 보고 서둘러 예를 취했다.

    “대장로? 귀 족의 대장로께서는 성수 안에서 요양 중인 것으로 아는데?”

    “선배님께 아룁니다. 현재 자한 장로님께서 대장로직을 임시로 대리하고 계십니다.”

    “알겠다, 길을 안내하거라. 해 형, 함께 가시지요.”

    한립이 해 도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에 해 도인은 대꾸도 없이 신형이 모호하게 변했다가 소리 없이 한립 옆에 나타났다.

    목족 청년은 화들짝 놀라 몸을 떨었다. 그러나 한립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보고 허둥지둥 밖으로 나섰다.

    청년의 안내를 받아 누각을 나선 한립은 하늘에 뜬 열댓 개의 거대한 푸른 구름덩이들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위에는 희미하게 누각과 정자들이 세워져 있었고 수많은 병사들이 일사분란하게 그 안을 드나들며 푸른 구름 위로 물자를 나르는 중이었다.

    그는 시선을 거두고 둔광을 일으켜 목족 청년이 향하는 대로 가장 큰 푸른 구름으로 향했다. 해 도인이 그들의 뒤를 바짝 쫓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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