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1261화 (1,018/2,000)

1261화. 마운(魔雲)

*

막간리는 한립이 마계에서 살아 돌아왔지만 정말 세령지와 정령련을 취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몇 만 년 동안 여러 계면의 수사들이 도전했지만 성공한 자는 극소수였고, 한립이 아무리 인요족에서 손꼽히는 인재여도 다른 계면의 역천의 능력을 지닌 실력자들과는 거론할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한립이 평범한 합체 후기 수사를 한껏 넘어설 뿐 아니라 육신의 강도와 의식이 성조 급이라는 사실을 몰라서 내린 판단이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마족 대겁이 임박해 마족들이 그를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는 것도 한몫했다. 여러 성조 본체들이 힘을 합쳐 그를 제거하려 들었다면 제아무리 한립이라도 마원해까지 무사히 도착하지 못했을 것이다.

“과연 굉장한 소식입니다. 한 수사의 자질에 세령지와 정령련으로 환골탈태까지 하였으니 우리 둘이 이후 도움을 주면 대승기에 이를 확률이 못해도 3, 4할은 될 것입니다

“흥, 인족 수사를 본 좌가 도와야할 이유라도 있습니까?”

막간리가 신이나 중얼거리는데 오소 노조가 코웃음을 쳤다.

“인요족은 영계에서 결국 하나의 세력입니다. 한 수사가 대승기에 이를 수 있다면 요족에게도 수만 년 동안 든든한 힘이 되어줄 텐데 요족 수사인지 아닌지를 따질 필요가 있습니까? 바꿔 생각해서 요족 수사 중에 대승기에 이를 희망을 지닌 자가 있었다면 노부도 최선을 다해 지원을 했을 테고요.”

“진심입니까?”

오소 노조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묘한 표정으로 물었다.

“물론 진심입니다. 설마 요족에도 그런 자가 있단 말입니까?”

“허허, 여기 내 손녀는 몇 번 보셨을 겁니다! 칠성월체를 타고 난 아이라 합체 후기를 대성하기만 하면 한 수사보다는 못해도 엇비슷하게 대승기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지요.”

오소 노조의 얼굴에 자부심이 떠올랐다.

“영롱이 수사와 마찬가지로 칠성월체를 타고났단 말입니까? 오소 노괴! 그간 노부를 속이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어찌 이런 큰일을 오랜 세월 동안 감쪽같이 속일 수 있단 말입니까.”

깜짝 놀란 막간리가 조금 불쾌한 내색을 했다.

“막 형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손녀의 칠성월체가 뒤늦게 발현되어서 노부도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막 수사를 속여서 뭐하겠습니까?”

오소 노조가 손을 휘휘 저으며 차분히 해명했다.

“흥, 그렇다고 해도 지금 그 이야기를 꺼내는 목적이 있을 테지요?”

“하아, 그렇습니다. 손녀의 수련에 약간에 문제가 생겨 수사의 도움이 필요하지 뭡니까.”

“어떤 문제인지 모르지만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돕겠습니다. 말씀해 보시지요!”

“그게 사실은…….”

막간리가 돕겠다고 하자 오소 노조는 몇 글자를 내뱉다 입술을 달싹였다. 전음으로 사정을 설명하는 듯했다. 신중하게 귀를 기울이던 막간리의 표정이 시시각각 달라졌다.

“무슨 말인지 이해했습니다. 오소 형께서 원하는 물건들을 모두 내드리지요! 그 대신, 앞으로 한 수사가 대승기 고비를 넘기기 위해 필요한 일에도 최선을 다해주셔야 합니다.”

침묵하던 막간리가 결심을 굳혔는지 이렇게 말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한 수사든 영롱이든 대승기에 이르기만 하면 앞으로 인요족의 미래를 책임질 인물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번에는 오소 노조가 미소를 지었다.

“두 분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대승기에 이르는데 실패해 두 분을 크게 실망시킬까 걱정입니다.”

줄곧 조용히 대승기 수사들의 대화를 경청하던 한립이 헛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

“이런 일을 누가 장담할 수 있겠나. 당년 노부가 대승기에 이를 때에도 8할은 운에 의지해서였네. 나보다 자질이 더 뛰어났던 벗들은 결국 대승기에 이르지 못했고 말이야. 너무 부담 갖지 않아도 되네.”

막간리가 수염을 쓸어내리며 그를 다독였다.

“하하, 우리 둘이 앞으로 자네와 영롱의 수련을 돕는 것은 첫째 둘의 잠재력이 가장 크고, 둘째로 이것이 관례이기 때문일세. 전통적으로 인요족 중 대승기 수사가 수명이 다해갈 쯤에는 전력으로 후배들을 양성하곤 했지.

자네들뿐 아니라 성도에도 자질이 뛰어난 후배들을 몇 명 양성 중이었는데 확실히 그들보다 자네들이 더욱 희망이 있어 보이는군. 성도의 건립 목적 중 하나가 인재 양성일세.

지금이 전쟁 중만 아니었더라도 진작 성도에서 자네들을 불렀을 것이네. 한 수사, 이후 성도에서 수련할 생각이 있는가? 자네가 그러고 싶다면 보내줄 수도 있네.”

오소 노조가 옆에서 부연 설명을 했다.

“성도가 그런 사명을 지니고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다만 저는 줄곧 홀로 수련을 해온 터라 나중에 기회가 되면 성도를 찾아가 보겠습니다.”

한립이 재빨리 머리를 굴려 순식간에 결정을 내렸다.

“좋네, 한 수사의 생각이 그렇다면 우리도 강요하지는 않을 것이야. 그런데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네. 자네와 같이 마계로 간 농 가 노조와 엽 가 아이는 전부 목숨을 잃은 것인가?”

“농 형 등 다른 수사들은 마계에서 화를 당해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이렇게 안타까울 데가! 진령세가 중에서 농 가와 엽 가의 세력이 가장 강했는데 그 둘이 죽었으니 진령세가에 큰 변동이 생기는 것은 물론 인족 세력도 크게 줄겠구만. ……그래도, 이제 해 형이 있으니 그나마 안심일세.”

막간리는 아쉬워하다 해 도인을 보고 또 힘을 냈다.

“인족의 진령세가에서 배출한 고계 수사들이 동급 수사들보다 강하기는 했지만 일반적으로 고계 수사가 나오는 비율은 평범한 가문보다 떨어지지 않았습니까. 그리 신경 쓸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오소 노조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리 말씀할 일은 아닙니다! 어찌 되었든 상고 진령을 연원으로 하는 가문들이라 합체기 수사를 배출해 양족의 큰 전력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요족의 몇몇 왕족들보다 중시할 까닭은 없지요. 역대로 왕족 중에 출현한 합체기 수사의 비율이 훨씬 높으니까요.”

“이제와 그런 것을 따져 무엇 합니까. 한 수사 외에도 다른 수사들도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랐건만 다 틀렸네요.”

막간리가 고래를 절레절레 저었다.

“왜 그러십니까? 동원할 고계 수사가 부족해서 그러십니까?”

오소 노조는 뭔가를 눈치 채고 얼굴을 굳혔다.

“목족이 야차족 상 노괴의 지지를 얻어 마족에게 반격을 가할 계획을 짜고 있습니다. 잃은 영토를 되찾으려는 것이지요.”

“미친 것 아닙니까! 그게 그렇게 쉬웠으면 우리가 마족들과 이리 오래 대치하고 있었겠어요? 목족인들은 그렇다 치고 상해 그 늙은이는 정신이 나가기라도 했답니까?”

“오소 수사가 한동안 군영을 떠나 있느라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석 달 전 우리 양족과 야차족은 물론 영족 등에 마족들이 갑자기 대량의 병사들을 이끌고 각 종족의 영토를 공격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대승기 수사들이 연합군 쪽으로 빠져 있는 터라 상황이 좋지 않고요. 속전속결로 목족의 일을 해결하고 떠나야지 두 계면이 분리될 때까지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열 받은 오소를 보고 막간리가 진지하게 말했다.

“마족 병사가 더 늘어났다고요? 정확한 정보가 맞는지 확인은 하셨습니까? 허장성세일 수도 있습니다.”

“성도에 연락을 취해 보니 병사들이 늘어난 것은 물론이고 마족 3대 시조의 화신까지 발견되었답니다. 시조들의 본체는 영계로 강림을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고요.”

막간리가 쓴웃음을 지으며 모두의 안색이 급변할 이야기를 했다.

“말도 안 됩니다. 평범한 마족 성조면 몰라도 3대 시조가 어찌 영계로 본체 강림을 한단 말입니까? 우리가 오래 고심해서 이런저런 수를 써놓은 것도 다 그런 일을 예방하기 위해서였는데요.”

오소 노조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부정하려 들었다.

“마족들이 우리가 예상치 못한 방법을 쓸 수도 있습니다! 만일 시조 본체가 강림했는데 우리가 본족에 머물고 있지 않다면 어찌 될지 생각해 보세요.”

“막 형의 말을 들으니 신중을 기해야할 문제 같습니다. 하루빨리 본족으로 돌아가려면 목족의 일은 시간을 끌 수 없겠어요.”

막간리의 걱정에 오소 노조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선배님들, 저는 시조 본체가 강림할 확률은 크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본체가 강림한다고 해도 세 명 중에 한두 명에 불과할 테고요.”

가만히 있던 한립이 돌연 입을 열었다.

“한 수사, 이에 아는 바가 있는가? 하긴 마계에서 막 돌아왔으니 그곳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겠구만.”

막간리가 관심을 보였다.

“두 분께서는 마계 대겁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신지요?”

“마계 대겁? 마계의 영계 침략이 시작되기 전부터 소문은 들었네. 구체적인 정보는 아직 수집하지 못했지만.”

“나도 마계에 침입했을 때 어느 마존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네만, 마계 대겁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성조 급만 알고 있는 것 같더군. 한 수사, 마계 대겁에 대해 알아낸 것인가?”

오소 노조가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고, 막간리도 희색을 드러내며 물어왔다.

“운이 좋아 마계 대겁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선배님들께서는 ‘명충모’라는 이름을 들어보셨는지요?”

“명충모라……. 조부는 처음 듣는 소리일세. 오소 수사는 아십니까?”

“귀에 익기는 한데 아주 오래 전에 들은 것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막간리와 오소 수사가 고개를 저었다.

“두 분이 모르실 만도 합니다. 이 흉악한 벌레는 상고시대 때 선계 선인이 친히 마계로 내려와 봉인했기에 이 사실을 아는 자가 아주 드물다고 합니다.”

“자네의 말을 들으니 생각났네! 명충모라면 전설 속의 일계(一界)를 갉아 먹는다는 상고마충이 아닌가! 명충모가 마계 대겁과 관련이 있단 말인가?”

드디어 기억을 떠올린 오소 노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헉, 일계를 갉아 먹을 수 있다고요? 진령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아닙니까. 자세히 설명해 보시지요.”

헛바람을 들이킨 막간리도 안색이 좋지 않았다.

“진령과는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상고시대 때, 열 마리는 못 되어도 명충모가 잡아먹었다는 진령이 일고여덟 마리는 되니까요. 대승기에 이르기 전 다른 대륙을 유람하다 구한 경전에서 읽은 내용인데, 명충모는…….”

오소 노조가 명충모에 대해 설명하는데 자령에게 들은 것과 비슷했다. 유일한 차이는 영계 경전에는 명충모가 상계 선인과의 싸움 후 어찌 되었는지 적혀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제가 듣기로는 명충모가 실종된 것이 아니라 선인에 의해 마계 어딘가에 봉인되어있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그게 깨어나 봉인을 뚫고 나오려 하고 있고요. 마족들 대부분이 그 마충을 막는데 힘을 쓰고 있어 3대 시조의 본체가 전부 영계로 강림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립이 숙연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상고마충이 봉인을 깨고 나오면 마계만 화를 입지 않을 걸세. 영계도 피해를 입게 되겠지.”

“한 수사, 정확한 소식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오소 노조는 몇 마디를 중얼거리고 생각에 잠겼고, 막간리 역시 고민하다 신중하게 물었다.

“정보의 출처를 고려하면 사실일 겁니다.”

“그래도 만일을 대비해 사람을 마계로 보내 진위를 확인해 봐야겠네. 오소 형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중대한 사안인 만큼 반드시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제가 믿을 만한 수하를 마계로 보내 알아보겠습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마족들이 어째서 필사적으로 영계를 마화시키고 있는지 설명이 되겠지요.”

“영계로 넘어온 마족들의 수로 보건데 마족 3대 시조들은 명충모를 억제하는 것을 포기하지는 않은 듯합니다. 포기했다면 전력으로 영계를 공격했을 테지요. 그들이 인근 종족들의 영토를 노리는 것도 대책 중 하나에 불과할 거예요.”

“마족들이 더 많은 병력을 파견했다는 것은 아직 명충모 봉인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소리이고요! 마족이 전력으로 영계를 공격하면 우리 몇몇 종족들의 힘으로는 막아내지 못할 겁니다. 어서 본 족으로 돌아가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겠어요.”

“하하,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마족들이 명충모 때문에 영계를 대피처로 삼으려는 계획이라면 이제는 주변 몇몇 종족들의 문제라 할 수 없지요. 이 소식을 영계의 거대 종족의 대승기 수사들이 알면 과연 가만히 있을까요?”

막간리가 문득 웃음을 터트렸다.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