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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258화 (1,015/2,000)

1258화. 뜻밖의 인물

*

‘이럴 수가! 여기서 어떻게…….’

돌풍이 지난 자리에 두 명의 인물이 등장했는데 서둘러 그들을 살핀 한립은 마음의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두 명의 인물 중 사내는 은색 장포를 입고 새까만 머리를 허리까지 기른 채 잔잔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여인은 눈처럼 새하얀 피부에 은빛으로 반짝이는 생머리를 늘어트리고 도저히 속세의 것이라고는 할 수 없는 청아하고 아름다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도 한립이 변한 거원을 바라보며 눈빛이 주체할 수 없이 흔들리는 중이었다. 원살은 사내를 보고 깜짝 놀라 소리쳤다.

“오소, 당신 같은 늙은이가 홀로 이곳까지 숨어들었을 줄은 몰랐습니다! 목숨이 아깝지 않나 봅니다.”

사내는 요족 유일의 대승기 수사인 은월랑족 출신의 오소 노조였다! 대승기 요족 수사가 이런 때 목족 영역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확실히 예상 밖이었다.

그 앞의 은발 여인은 한립과 인계 곤오산에서 일별한 후 오랜 세월 만나지 못했던 ‘은월’이자 영계의 ‘영롱 선자’였다!

은월을 발견하고 멍하니 쳐다보던 한립이 기쁜 마음에 입을 열려는 찰나 오소 노조가 웃음을 흘렸다.

“하하, 원살 수사에게 이 늙은이를 어찌할 능력이 있겠습니까? 노부와 저 둘이 힘을 합치면 수사의 승산이 얼마나 될 거라 여기십니까? 지금은 스스로의 안위를 걱정해야할 때입니다.”

원살이 오소의 말에 얼굴이 어두워져 한립이 변한 거원과 황금 게를 훑어보았다. 그녀는 눈을 굴리며 냉소하고는 허공을 쥐어 하얀 망치를 회수하고 금빛과 함께 사라졌다.

거대 늑대 허상도 전각으로 뛰어들었고, 남색 주술문자들을 잔뜩 불러낸 전각은 남색 빛줄기로 변해 하늘 끝으로 멀어져갔다. 그리고 원살의 목소리만이 멀리서 들릴 듯 말 듯 전해졌다.

“오소가 끼어들어 이번에는 물러난다. 하지만 네 운도 여기까지일 게야. 다음번에 내 손에 들어오면 절대 살려 보내지 않겠다!”

이 말을 끝으로 번득이던 남색 빛줄기가 종적을 감추었다.

원살은 오소의 등장으로 위험에 처하자 고민할새도 없이 도망을 택했다. 그 모습에 한립은 안심하며 해 도인에게 이를 알리고 함께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얼음으로 봉인된 두 극산도 그가 날린 은색 화염에 녹아 자유를 되찾았다.

몸을 돌려 잠시 한립을 보던 오소는 거대한 은색 선박을 불러냈다. 총 5층의 거대 선박 위에는 은색 창을 든 병사들이 타고 있었다.

“자네들도 오르게.”

오소 노조가 차분히 명을 내리고 은월을 데리고 선박에 올라 대청으로 들어갔다. 병사들은 묵묵히 양쪽으로 물러나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꼭두각시들!’

한눈에 병사들의 정체를 알아본 한립은 주춤하다 해 도인과 주과아를 데리고 천천히 날아올랐다. 병사들은 오소 노조의 명을 받았는지 그들이 선박에 오르는 것을 막지 않았다.

그러나 한립은 무슨 생각인지 주과아를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해 도인만 데리고 대청으로 들어갔다.

“오소 선배님을 뵙습니다!”

한립은 오소 노조가 금색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씩씩하게 걸어가 예를 올렸다. 오소 노조는 바로 답하지 않고 그를 위아래로 훑으며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을 했다.

“자네가 천년 만에 화신기에서 합체기에 이렀다는 ‘한립’인가? 오늘 직접 보니 그 소문보다 더하는군. 벌써 합체 후기에 이르고 말일세.”

한참 만에 입을 연 오소 노조의 말투는 꽤나 온화했다.

“예, 후기에 이른지 조금 되었습니다. 선배님께서도 저를 알고 계셨는지요?”

평온히 대답을 하던 한립이 힐긋 은월을 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 수사의 이름은 은월 이 아이가 인계에서 돌아올 때부터 알고 있었네만, 자네가 합체기 경지에 이른 후에야 진정으로 노부의 눈에 들었다 할 수 있겠지. 합체기 수사들은 인요족 최상의 전력인 만큼 나도 주의를 기울이는 편이라네. 은월, 어서 인사를 올리지 않고 뭐하는 것이냐? 당시 한 수사가 너를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두 혼백을 합일해 영계로 돌아올 수 없었을 것이다.”

오소 노조가 미소를 짓고는 은월을 불렀다.

“은월이 한 형을 뵙습니다. 인계에서 헤어지고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때 입은 은혜는 아직도 마음 속 깊이 새겨두고 있습니다.”

드디어 고개를 든 은월의 얼굴에는 어떤 감정도 나타나 있지 않았다. 그를 처음보고 어쩔 줄 모르던 모습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한립은 이상하게 생각해 그녀를 진지하게 응시했지만 거짓으로 꾸며낸 표정 같지는 않았다. 정말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제가 선자의 신분을 모르고 무례를 범했다면 양해 부탁드립니다. 영롱 선자를 돕게 된 것도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니 그리 마음 쓰실 것 없습니다.”

한립이 생각을 정리하고 미소를 머금고 답했다.

“하하, 몇 년 못 봤다고 너무 서먹한 것 아닌가? 어찌 되었든 수사가 은월의 목숨을 구한 것은 사실이니 노부가 그 보답은 할 것이야.”

오소가 묘한 눈빛으로 그것을 지켜보다 웃으며 끼어들었다.

“이곳은 이미 마족들이 점령한 것으로 압니다. 선배님께서 이곳에 계신 이유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마족들을 정탐하러 오신 것인지요?”

무슨 생각인지 한립이 화제를 바꾸었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네!”

“그 말씀은…….”

“몇 달 전, 연합군은 마족 성조들의 움직임에 변화가 있고 마화(魔化) 지역을 넓히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네. 다른 수사의 부탁을 받아 그게 사실인지 확인하는 한편 마화모진(魔化母陣)도 몇 개 제거할 수 있을까 하여 와본 것일세.”

“성조들의 동태는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마화모진 이야기는 어떻게 된 것입니까? 인족 구역도 마화의 흔적이 발견된 것으로 아는데요.”

“마족들이 영계에 정착하려면 반드시 마화를 거쳐 인근 영기를 마기로 변환해야 하지. 평범한 수목을 마화식물로 바꾸는 진법을 이용한 것인데, 인요족 구역에서 시험적으로 운영하던 것들은 우리가 미리 발견해 전부 제거했다네.

목족은 보다시피 상황이 좋지 않아서 점령 지역 대부분이 그런 마화진법이 펼쳐져 있고 몇 년 전부터는 아예 마화모진이 만들어졌지. 마화모진은 천여 개의 마화진법을 하나로 연결해 없애기가 아주 골치 아프지만 몇 개라도 제거할 수 있다면 목족 영토의 마화를 늦출 수 있지.”

여기까지 말한 오소 노조가 한숨을 쉬곤 불현듯 한립이 놀랄만한 이야기를 꺼냈다.

“한 수사, 몇 년간 소식이 뜸했는데 진령세가의 인물들과 마계에 갔던 것인가?”

“어찌 아셨는지요? 진령세가 수사들 외에 영족인들과 함께 마계에 다녀온 것이 맞습니다.”

한립은 쓴웃음을 지었다.

“짐작하기 어려운 일도 아닐세. 자네들이 동시에 사라졌고, 세령지와 정령련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으니까! 목적을 이루고 무사히 돌아오는 일은 거의 없어도 마계와 영계가 연결될 때마다 각 종족에서 기연을 찾아 마계로 침입하곤 했지. 자네 홀로 돌아온 것을 보니 다른 이들은 마계에서 목숨을 잃었구만.”

오조 노조는 별 일 아니라는 듯 태연했다.

“선배님 말씀대로입니다. 다른 수사들은 마계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했고 저만 요행히 영계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한립이 한숨을 쉬듯 실토했다. 그들이 고심 끝에 결정한 마계행이 이미 수많은 수사들이 시도했던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마 그들 중 열에 아홉은 마원해 까지 가지도 못하고 화를 당했을 것이다.

“자네 수행으로 마계에 잠입하는 것은 위험했을 텐데 그만큼 수확도 상당하겠지? 다른 건 몰라도 저 ‘수사’의 본체는 마원해의 황금성해겠지. 쯧쯧, 어쩌다 수행이 저리 떨어졌는지 모르겠지만 저 위선뢰가 전력으로 하는 공격은 노부도 정면으로 받아내기 힘을 걸세. 놀랍게도 저걸 데려오다니 어떻게 한 것인지 알고 싶군.”

해 도인을 쳐다보는 오소 노조의 눈빛이 뜨거웠다.

“오소 선배님께서도 해 형을 만나신 일이 있으시군요. 큼, 이미 영성을 지닌 해 도인을 어찌 제가 데려오고 말고 하겠습니까. 그저 거래를 통해 잠시 제 곁에 머물 기로 해주신 것뿐입니다.”

한립이 헛기침을 하고는 모호하게 답했다.

“하하, 그렇군!”

대답은 이렇게 해도 오소 노조는 전혀 믿는 얼굴이 아니었다. 황금 게를 회유하는 것이 그리 쉬웠으면 진작 다른 계면의 강자가 유혹해 데리고 갔지 마원해에 백만 년 이상 머물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소는 황금 게의 위선뢰를 차지한 것이 부러웠지만 빼앗을 마음은 없었다. 그 정도 수행에 이르면 어떤 일들은 외부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게다가 한립이 대승기를 한 걸음 앞둔 모습으로 나타나자 내심 격동하고 있었다. 줄곧 후회하던 일을 되돌릴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오소 노조가 감정이 없는 은월의 얼굴을 보고 표정이 어두워졌다.

“노부가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묻겠네. 자네가 솔직히 대답해 주었으면 좋겠어. 한 수사, 마원해의 세령지에 들어가 정령련을 복용했는가?”

한립은 오소 노조의 질문을 듣고 상대의 눈을 직시했다.

“제가 성공했을 것 같으십니까?”

“세령지와 정령련의 명성은 대단해서 다른 계면의 강자들도 그것을 노린다고 들었네. 하지만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거의 없었지. 자네가 무사히 영계로 돌아와도 그것들을 취했을 거라고는 여기지 않았는데 직접 만나고 생각이 바뀌었네. 아마 성공했을 것이야.”

주저하던 오소 노조가 진지하게 답했다.

“그렇게 여기신다면 선배님의 말씀이 맞는 셈 치지요.”

이전이었다면 이런 비밀을 발설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열반성체를 두 번째 단계까지 익히고 현천의 검에 해 도인까지 있었다. 대승기 수사라 해도 싸워볼만한 힘이 있었다.

또한 그의 답을 들은 요족 대승기 수사의 반응도 궁금했다.

“잘된 일일세! 세령지에 들어가 정령련을 복용했다면 이후 대승기에 이를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 게 아닌가. 진작 이럴 줄 알았으면 은월에게 쓸데없는 공법을 익히라 하지는 않았을 것을! 자네를 만나지 못하게 막는 것이 아니었는데…….”

오소 노조는 안타까운 얼굴로 한립을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무슨 공법을 익히게 하셨단 말씀입니까?”

은월의 얼굴을 보고 대충 짐작 가는 바가 있어 한립이 미간을 찌푸렸다.

“망정결(忘情決)을 익히겠다 선택한 것은 저인데 어찌 조부님을 탓하겠습니까. 그 덕에 심경 상의 허점을 보완해 합체기 경지에 이를 수 있었고요. 공법을 수련하고 감정에 연연해 할 것이 아니라 오로지 대도를 위한 수련의 길에만 매진해야 한다는 것을 더욱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더욱 열심히 수련해서 눈앞의 고비도 넘어 보이겠습니다.”

이때 은월이 고요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망정결이요? 고비는 또 무슨 이야기입니까. 설마 은월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인지요?”

놀란 한립은 서둘러 사태를 파악하려 했다.

“묻지 않아도 설명해 주려던 참이었네. 하지만 이곳은 오래 머물 곳이 아니고 마족 구역에 들어온 목적도 거의 이루었으니 연합군이 머무는 곳으로 가지. 가는 길에 상세히 이야기 해주겠네.”

“선배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오소 노조의 제안에 한립이 마음 속 의문을 억누르고 답했다.

“잘 생각했네! 여봐라, 차를 올리고 즉시 목면성(木棉城)으로 방향을 틀라. 자, 자네들도 그만 앉아서 이야기 하지.”

“예, 주인님!”

바깥에서 괴뢰들의 대답소리가 들려오고 은색 전함이 웅! 진동하며 방향을 틀었다. 한립과 해 도인도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곧 대청 바깥에서 은색의 하늘하늘한 의상을 입은 은발 시녀들이 찻잔을 내와 공손히 내려놓았다. 비취색 영액이 담겨있었다.

한립은 은월의 일로 가슴이 답답해 차를 즐길 기분이 아니었기에 예의상 입만 축이고 내려놓았는데 모두의 예상을 깨고 차를 한입에 털어 넣은 해 도인이 고개를 꺾어 오소 노조를 쳐다보았다.

“차가 지닌 특수한 영력이 제게 도움이 됩니다. 더 있습니까?”

“하하, 해 형께서 참 거리낌이 없는 성격이십니다. 벽룡차(碧龍茶)가 귀하기는 해도 몇 근 정도는 지니고 있으니 노부가 선물로 챙겨 드리겠습니다.”

오소 노조가 밝은 얼굴로 답했다. 황금 게와 좋은 관계를 맺고 싶은 것이 분명했다.

“감사합니다.”

해 도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입을 다물었다. 상대가 위선뢰라는 것을 아는 오소 노조는 개의치 않고 은월을 향해 가련한 눈길을 보냈다.

“너는 망정결을 수련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마음이 불안정하니 먼저 들어가 운기조식을 하고 있거라. 일단은 노부가 두 수사와 이야기를 나눠보겠다.”

“예, 조부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은월은 한립과 해 도인에게 인사를 하고 차분히 대청을 나섰다. 그녀는 한립을 교분이 있는 벗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처럼 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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