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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257화 (1,014/2,000)

1257화. 다시 만난 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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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확!

보름이 지나 한립이 푸른 호수를 지날 때, 뜬금없이 호수물이 갈라지고 그 안에서 청록색 거대 손이 솟아올랐다. 거대 손이 어찌나 빠른지 폭발음이 들렸을 때는 비차가 쪼개져 푸른 연기로 변한 후였다.

비차가 있던 허공 위쪽에 파동이 일고 세 사람이 나타났다. 한립과 해 도인 그리고 주과아였다.

비차가 불의의 기습을 당하기 직전 한립이 알아차리고 일행과 함께 바깥으로 탈출한 덕이었다. 그와 해 도인의 이목을 속인 적은 상당한 실력자임이 틀림없었다.

펑!

녹색 거대 손은 다시 물방울로 변해 호수와 섞이고 물속에서 전각 하나가 서서히 떠올랐다. 투명한 남색 건물은 호수 물을 그대로 응결해 만들어진 듯했다.

남색 전각의 대문 앞에 녹색 갑옷을 입은 여인이 서서 냉랭히 한립을 쏘아 보았다. 어두운 살색을 지닌 여인은 미색이 빼어났는데 한립은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소리쳤다.

“본체가 직접 영계로 강림하다니!”

“본 좌도 이렇게 빨리 너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내 일을 망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네 놈을 그냥 보내줄 순 없지! 얌전히 군다면 살 길을 열어줄지 모르나 내가 힘을 쓰게 한다면 곱게 죽이지 않을 것이다.”

“원살 성조, 본체로 강림했다고 해서 저를 어찌 할 수 있을 거란 기대는 마시지요. 귀 족의 성조들을 한두 분 뵌 것이 아니나 저는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습니다.”

녹갑 여인의 협박에 한립이 평정을 되찾고 여유롭게 말했다. 상대는 그와 원한이 있는 원살 성조 본체였다!

본체를 본 것은 처음이지만 그녀의 화신에게 그리 오랜 기간 동안 추격을 당했는데 못 알아 볼 리 없었다.

속으로야 뜨끔했지만 지금은 수행도 크게 늘었고 곁에 해 도인도 있으니 원살을 두려워할 까닭이 없었다. 그는 대화로 시간을 끌며 어찌 대처할지 궁리 하는 중이었다.

원살은 눈썹을 끌어올렸지만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다른 성조들을 만나보았다고? 그렇다면 며칠 전 공간통로로 빠져 나왔다는 자가 너로구나. 겨우 합체기 수사가 어떻게 다른 성조들의 손에서 살아남았는지 궁금한데? 이렇게 빨리 합체 중기에서 후기 경지에 이른 것은 네가 만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기재라는 소리겠지. 허나 오늘 나를 만났으니 네 수련의 길도 이걸로 끝이다.”

말을 마친 여인이 한립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손을 들어올렸다.

쿵!

호수가 거꾸로 흐르는 폭포처럼 치솟아 도중에 청록색 거대 손으로 변했다. 이전보다 열배는 큰 거대 손이 하늘 절반을 가리고 한립 일행을 내리치려 했다.

“물 속성 신통.”

한립은 입에서 은색 화염을 뿜고 수결을 맺었다. 은색 화염이 빙글 돌며 팔뚝 크기의 불새로 변해 맑게 지저귀었다. 그의 손짓에 불가사의한 속도로 커져 작은 산처럼 불어난 불새가 거대 손으로 날아들었다.

콰쾅!

거대 불새와 거대 손바닥이 충돌해 경천동지할 폭음을 내고 터져나갔다. 물과 불의 싸움에 굵은 물기둥과 불기둥이 치솟고 주변이 하얀 수중기로 가득 찼다.

전각의 녹갑 여인이 멸시하는 빛으로 입을 열었다.

“합쳐져라.”

고공에 파동이 일며 남색 입자들이 떠올라 수증기 속으로 스며들었다. 수증기들이 뭉쳐 하얀색 산봉우리를 만들어냈다. 표면에 남색 주술문자를 번득이는 산봉우리는 거침없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하얀 산봉우리는 중량이 전혀 없는 것처럼 나풀거렸지만 한립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바로 금털 거원으로 변한 그가 두 주먹을 위로 뻗었다.

콰르릉!

금색 주먹 허상들이 돌풍처럼 날아갔고 남색 주술 문자들이 언제라도 흩어질 것처럼 흔들렸지만 하얀 산봉우리 본체는 멀쩡하게 하강하는 중이었다.

한립이 거원으로 변해 놀라 다시 두 팔을 뻗었다. 두 손에 들린 푸른색과 검은색 작은 산봉우리가 그의 괴력에 밀려 고공으로 쇄도했다.

검은색과 푸른색 빛덩이가 하얀 산봉우리 하부를 들이받아 눈을 찌를 듯한 광채와 엄청난 소음이 퍼져나갔다. 그 여파로 대량의 파동이 퍼져나가 허공이 웅웅 울렸다.

거원은 머뭇거리지 않고 옆의 주과아를 금빛으로 휘감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고, 우두커니 서있던 해 도인도 흐릿하게 변해 푸른 바람만 남기고 사라졌다.

다음 순간 천지를 부숴 버릴 것 같은 무서운 파동이 그들이 있던 자리를 휩쓸었다.

한편, 원살에게도 충돌의 여파가 날아들었지만 그녀의 주문 소리에 전각에서 부드러운 남색 빛이 일어나 파동을 밀어냈다. 파동은 전각을 중심으로 둘로 갈라져 지나갔다.

빛과 굉음이 사라진 고공에는 세 산봉우리가 남아 있었다. 큰 산봉우리 하나와 작은 산봉우리 두 개가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하얀 거대 산봉우리는 주술문자들이 주변을 맴돌았고, 검은 산봉우리는 회색 기운을 파도처럼 뿜어냈다. 마지막으로 파란 산봉우리는 무형의 검기를 사방팔방으로 분출해 섬뜩한 파공음이 들려왔다.

거원과 해 도인이 파동이 일어났던 곳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가두어라.”

서늘하게 그들을 노려본 원살은 빠르게 손끝으로 허공을 짚었다.

츠츠츳!

하얀 거대 산봉우리 표면의 남색 주술문자들이 폭발했다. 하늘과 땅이 꽁꽁 얼어붙을 듯 갑작스런 한기가 일대를 휩쓸었다. 푸른색과 검은색 산봉우리가 애달피 진동하며 각각 남색 얼음 기둥에 갇혔다.

‘엇!’

헛바람을 들이킨 거원이 손에서 은색 화염을 일으켜 던지려는데 주변 허공에 남색 빛이 번득였다. 여덟 명의 원살과 똑같이 생긴 투명한 얼음조각 인영들이 그와 해 도인에게 달려들었다.

옆의 주과아는 수행이 너무 낮아서 그런지 아예 공격 대상도 아니었다. 이에 한립은 움찔하며 던지려던 은색 화염을 두 개의 밧줄로 변하게 해 그 중 두 인영에게 쏘아 보냈다.

동시에 양쪽의 삼두육비 범성금신과 비취색 영체를 불러내 나머지 두 명을 맡게 했다. 해 도인 쪽으로 달려든 네 명의 인영들은, 그가 입을 벌려 네 줄기의 금빛을 쏘아 보내 공격했다.

두 명의 얼음 인영은 불 밧줄에 꽁꽁 감겨 불길에 잠겼고 얼마 못가 그대로 무(無)로 돌아갔다.

금신과 영체가 다른 인영들을 한 명씩 맡아 싸우는데 맨손으로 한기를 풀풀 날리며 대등하게 겨루는 것으로 보아 실력이 웬만한 마존 못지않았다.

해 도인에게 날아간 네 인영은 빛줄기에 몸이 뚫려 현묘한 힘에 의해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서 있었다. 해 도인이 무심히 손을 들어 올려 허공에 내리치자 얼음이 된 인영들이 파삭! 파삭! 깨져나갔다.

그 모습에 한립은 털이 북슬북슬한 손가락을 금신과 영체가 싸우고 있는 얼음 인영을 향해 뻗었다. 푸른 검기 두 개가 날아가 얼음 인영들을 정확히 맞추어 산산조각 냈다.

전각에서 이를 지켜보던 원살은 화를 내는 대신 피식 실소했다.

그녀가 가슴 앞에서 두 손을 모으자 미친 듯이 남색 입자들이 나타나 또 얼음 인영들을 만들었다. 이번에는 그 수가 백 명이 넘었다.

‘말도 안 돼!’

그걸 본 한립도 기겁하고 말았다. 이전 여덟 인영들과 똑같은 실력을 지녔다면 백 명의 마존급 적을 상대하는 셈이었다. 아무리 원살이 마족 성조라도 이건 말도 안 되는 능력이었다.

이에 거원이 심호흡을 하며 미간에서 새까만 제3의 눈을 번쩍 떴다. 파멸법목은 음산하게 사방의 인영들을 관찰했다.

“역시 이럴 줄 알았지.”

거원이 웅웅 중얼거리고 한 손으로 허공 어딘가를 찔렀다. 공간 파동이 일고 팔뚝 절반이 모호하게 보이지 않았다.

막 응결 되고있던 어떤 얼음 인영 앞에 금빛이 번득이고 털이 북슬북슬한 거대 손이 날아들었다.

괴이하게도 무표정하던 얼음 인영이 당황해 두 손으로 앞을 막고 남색 얼음 방패를 불러내 신속히 뒤로 물러났다. 다른 얼음 인영과 달리 거원의 공격을 직접 상대할 수 없는 듯했다.

크앙!

거원의 괴성에 하늘이 쩌렁쩌렁 울렸다. 금색 거대 손이 더없이 단단하게 변해 남색 얼음 방패를 아귀힘으로 부수고 앞으로 튀어나갔다.

얼음 인영은 가슴에 극통을 느끼며 비명을 내질렀다. 금색 거대 손이 인영의 가슴을 꿰뚫은 것이다.

원살의 얼굴을 한 인영이 뾰족한 귀와 원숭이 같은 얼굴로 변한 순간 금색 거대 손에서 은색 불길이 일어 마물을 덮쳤다. 처절한 비명은 오래가지 못하고 금방 뚝 그치고 말았다.

거원이 천천히 팔을 거두었다. 허공의 마물이 명을 다하자 다른 얼음 인영들은 스스로 남색 빛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이에 아래쪽 원살이 살짝 얼굴을 굳혔다.

그녀가 직접 키운 얼음 마물은 정상수(晶像獸)로 극한의 한기를 다루어 화신을 수없이 만들어내는 능력을 지녔다. 평소에는 절대 본체를 들키지 않아 몇몇 성조와도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마수였다.

그녀를 도와 수많은 적들을 죽인 정상수를 한립이 순식간에 죽인 것이다. 그러나 정상수의 본명 마핵을 그녀의 원신과 일체화 시켜 제련해 왔기에 육신을 잃었어도 어차피 돌아가는 대로 마수를 되살릴 수는 있었다.

원살은 경계심을 높였지만 그다지 분노를 드러내지는 않았다.

“입을 놀리는 것만큼 실력이 없지는 않았어. 하지만 겨우 그까짓 실력으로 성조를 이기려 들다니 참으로 우습구나. 이전에 마주친 성조들이 어떤 제약을 받았는지 모르겠으나 본 좌가 전력을 다하는 이상 네게 승산이란 없다.”

원살이 냉랭히 몇 마디를 하고는 등 뒤로 푸른 빛기둥을 쏘아 올렸다. 거대한 남색 늑대 허상이 전각 위에 나타나 눈에서 보라색 화염을 일렁였다.

거대 늑대에게서 발산되는 기운만으로도 한립 일행은 위압감을 느낄 정도였고, 한립이 변신한 거원마저 강대한 기운에 밀려 쿵쿵! 몇 걸음을 물러나야 했다.

대승기 이하 수사 중에서 적수가 없는 한립이라도 진정한 성조 급의 실력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곁의 해 도인은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장포 자락을 펄럭여 금색 보호막으로 자신과 주과아를 가렸다. 미세하게 반짝인 금색 보호막은 강대한 기운에도 잘 버텨냈다.

“저게 원살의 본명 마상(魔相)인가 봅니다. 해 형, 법력을 어느 정도 회복하셨습니까? 나서 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직 대승기 경지까지 회복하지 못해 홀로 상대를 격퇴시키기는 어렵습니다.”

한립의 물음에 해 도인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해 형은 혼자가 아닙니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제대로 손을 쓰지 않으면 절대 물러날 인물이 아니니 그냥 최선을 다해주시면 됩니다.”

“협공한다면 승산이 있기는 합니다.”

눈을 반짝인 해 도인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보고 조금 마음이 놓인 한립은 망설임 없이 커다란 거원의 주먹으로 가슴을 두들겼다. 그러자 그의 주변으로 오색찬란한 빛덩이들이 나타나 진룡, 채봉, 천붕과 같은 진령 법상들을 이루었다.

이때 범성진신이 거원의 몸으로 뛰어들었다. 거원은 몸집이 열 배로 불어나고 삼두육비의 험악한 모습으로 변신했다.

해 도인도 앞으로 나서 거산만한 황금 게의 본체를 드러냈다. 은색 뇌전을 두른 황금 게의 위용이 대단했다.

원살은 거원과 황금 게를 보고는 동공을 수축하고 하얀 망치를 불러냈다. 망치에는 눈을 형상화 한 금색 문양이 가득 박혀 있었다.

원살이 손에 힘을 주자 부르르 떨며 망치에서 백여 개의 문양이 동시에 눈을 번쩍 떴다. 무척 섬뜩한 광경이었지만 원살은 코웃음을 치며 작은 망치를 던졌다.

콰릉!

하얀 거대 망치 허상이 고공에 나타났는데 바람과 뇌전의 기운을 품고 있었다. 한립은 의외라는 눈빛이었다.

망치 허상이 공격한 것은 그와 황금 게가 아니라 인근의 작은 언덕이었다. 거대 망치 허상에 당하면 언덕은 가루도 남지 못할 것이다. 바로 그때 언덕 위에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족 성조답게 원 수사께서 노부를 빨리도 찾아내셨습니다.”

지축을 흔드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허공에서 은색 빛줄기가 뻗어 나와 망치 허상과 충돌했고 은빛과 하얀빛이 뭉쳐 거대한 빛구슬을 형성하고는 폭발했기 때문이다. 극심한 파동이 돌풍을 만들어 주변을 초토화 시켰다.

작은 언덕은 물론 그 주변의 몇몇 산봉우리까지 무너져 내려 일대가 평지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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