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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253화 (1,010/2,000)

1253화. 현천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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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깃발에서 푸른 뇌전 하나가 튀어나가 통로를 허물자 뇌전 세계는 다시 이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보화 언니, 간사한 말로 인족 녀석을 꼬여내려 했는데 실패해서 어쩐 답니까? 하긴 저 같아도 위험을 무릅쓰지 않았을 겁니다. 아무래도 오래 버티려면 힘들 텐데 저희 두 사람이 얼른 저승길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여인이 웃음을 흘리며 고운 손으로 들고 있던 은색 불상을 내리쳤다. 불상에서 은빛이 터져 나오며 커다란 은빛 허상이 나타났다. 그리고 남폭 성조는 입에서 정기를 뿜어 나머지 다섯 깃발에 불어넣었다.

웅웅!

다섯 깃발들이 진동하며 불어나 굵은 뇌전 교룡으로 변해 보화를 향해 달려들었다. 통로를 열었던 푸른 뇌전 교룡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흑악이 변신한 거대 악어가 검은 안개를 더욱 힘껏 불러내 검은 촉수들을 열댓 마리의 거대 구렁이로 만들었다.

검은 구렁이들이 푸른 뇌전 교룡과 충돌해 연달아 찢겨나가자 거대 악어는 비명을 질렀고 검은 짐승은 몸부림을 쳤다. 조금 전 교전으로 크게 당한 것이다. 걸림돌이 사라지자 여섯 뇌전 교룡들이 노란 기운으로 들이닥쳤다.

이에 보화가 얼굴을 굳히고 들고 있던 각진 막대기를 휘둘렀다.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노란빛의 고리들이 흘러나와 푸른 뇌전 교룡들을 막았다.

교룡들은 갑자기 움직임이 아주 느려져 거의 허공에 멈춰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것을 본 육극 화신이 수결을 맺자 은색 불상 허상이 우웅! 진동하며 한 손을 뻗었다. 거대 손이 공간을 뛰어넘어 노란 기운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거대 손이 직접 닿기도 전에 강력한 기세에 눌려 노란빛의 고리들은 다시 각진 막대기로 변했다.

쉭!

노란 기운 속 보화가 들고 있던 각목을 고공을 향해 높게 던졌다.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은 것 같았는데 각목은 정확히 은색 거대 손에 도달해 콰콰쾅! 하고 폭발했다.

폭발의 여파로 노란 돌풍이 일고 거대 손바닥은 물론 주변의 푸른 괴전 교룡들과 뇌전 구슬도 가루가 되어버렸다.

“진원간(震元鐗)을 스스로 터트리다니!”

“절박하기는 한가 봅니다. 오랜 세월 제련해온 보물도 포기하고요!”

남폭 성조와 육극 화신은 어쩔 수 없이 뒤쪽의 안개 속으로 물러났다. 열을 받기는 했지만 당황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보화가 보물들을 터트려도 육절청뢰진을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콰르르릉!

진원간의 자폭의 위력이 걷히기를 기다리는데 고공에서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고 무시무시한 기운이 쏟아져 내렸다.

남포 부인과 육극 화신조차 그 기운에 접촉하지 않기 위해 둔광을 일으켜 멀리 물러날 정도였다.

푸른 뇌해의 세계에 극렬한 파동이 일고 금색 태양이 떠올라 두 줄기의 굵직한 빛기둥을 분사했다.

빛기둥들은 남포 부인과 육극 화신이 있던 자리를 지나 허공에 하얀 구멍 두 개를 남기고 사라졌다.

노란 기운 속 보화가 입 꼬리를 끌어올리고 남은 법력을 끌어 모아 분홍 기운을 일으켰다. 그녀의 등 뒤로 분홍 꽃나무 허상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보화와 흑악도 자취를 감추었다.

초대형 진법 밖 고공, 비차 위에선 한립이 무표정하게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옆에는 커다란 금색 거대 게가 천천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한립의 요청에 해 도인이 거대 게로 변해 공격한 것이었다.

주과아는 작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넋이 나가있었다. 한립이 진법을 빠져나오자마자 황금 거대 게를 이용해 공격을 가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해 형, 나서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수사였다면 일격으로 효과를 보지 못했을 겁니다.”

“육절청뢰진이 완전했거나 내가 진법 안에 갇혀 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별 것 아니니 앞으로도 영액이나 빼먹지 않고 주면 됩니다.”

“하하, 언제든 부족함 없이 사례할 것이니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후 얼마나 많은 영액을 주든 간에 이전에 바친 영액으로 할 수 있는 공격을 채우면 즉시 공격을 멈출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 해도 일전에 드린 공물로 한동안은 전력을 다해 싸워주실 수 있겠지요.”

한립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쓴 웃음을 지었다.

이때 황금 게가 맑은 눈으로 아래쪽 어딘가를 응시했다. 진법에 생긴 구멍이 빠르게 메꿔져 멀리서 보면 쪽빛 하늘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잠시 후 비차 옆에 분홍빛이 반짝이고 창백한 얼굴의 보화가 나타났다.

한립이 그녀에게 말을 걸려고 하는데 하늘색이 확 달라져 환술 금제가 걷히고 하얀 안개의 바다가 되었다.

그 속에서 육극 화신과 남포 부인이 튀어나와 한립을 향해 매서운 눈길을 보냈다.

“살려 보내주려고 했더니 제 발로 죽을 길로 들어서는구나!”

육극 화신이 표독스럽게 외치며 은색 불상을 던져 거대 불상 허상으로 만들고 등 뒤로 검은 화염을 불러냈다. 화염이 응결해 소 같기도 하고 말 같기도 한 검은 괴수를 만들어냈다.

검은 화염으로 만들어진 짐승은 머리에 굽은 뿔이 두 개 솟아 있었고 목에는 새까만 수염이 길게 자라나 아주 위풍당당해 보였다.

그리고 남포 부인은 차가운 얼굴로 한립을 노려보고 조용히 두 손을 교차했다. 남색 기운 속에서 그녀를 중심으로 거대한 빙산이 떠올랐다.

그녀 발밑의 남색 거북도 신속하게 불어나 빙산 못지않게 방대해졌다. 새빨간 눈을 번득이는 마수는 합체 후기의 기운을 품고 있었다.

그들의 변신에 한립도 기합을 넣으며 금빛을 터트렸다. 언덕 크기의 금털 원숭이로 변신한 그의 두 손에는 푸른색과 검은색 산봉우리가 들려 있었다.

동시에 양쪽에서 금색과 비취색이 번득이고 그와 똑같이 생긴 이들이 나타났다. 금빛 찬란한 법상금신과 암녹색 장포를 입은 지선 영체였다.

정령련을 취하고 세령지에 들어가 환골탈태를 한 한립은 두 화신의 도움이 있으면 시조 화신을 상대하기에 충분했다.

거기다 황금 게의 전신에 은색 뇌전들이 일어났고 두 집게 발을 앙 다물어 금색 빛구슬 두 개를 만들어냈다.

금색 빛구슬은 멀리서도 굉장한 위력이 느껴져서 남폭 성조와 육극 화신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두 분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저와 여기서 대대적으로 싸워 이기셔도 보화 선배님을 붙들어 두기는 어려울 겁니다.”

거원이 소리치며 고개를 돌려 보화를 보았다. 보화는 무슨 단약을 삼킨 것인지 창백하게 질렸던 얼굴에 붉은 기가 돌아오고 법력도 안정되어 있었다.

“백분의 일의 확률이라 해도 해봐야겠다면? 괜히 우리의 싸움에 끼어 희생양이 되지 말고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갈 길을 가게. 지금이라도 분수껏 행동한다면 원염에게도 추살령을 거두라 말해줄 것이야. 당장 물러나지 않으면 요행이 살아남아도 이후 본 시조도 추살령을 내릴 것이네!”

육극 화신은 눈을 치켜뜨고 협박했다.

“기왕 나섰는데 중간에 그만둘 수는 없습니다. 추살령이야 원염 선배님이 이미 내리셨는데 선배님의 명이 추가 된다고 뭐 별다를 것이 있겠습니까.”

한립은 두 눈에 남색빛을 번득이며 답했다. 어차피 영계로 곧 돌아갈 생각이라 상대의 말이 전혀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실력에 본체가 강림해도 달아날 기회가 있을 텐데 화신을 두려워할 까닭은 더더욱 없었다.

“좋다. 기어이 고집을 부리겠다면 내 이 화신을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널 죽여주겠다! 남폭 수사가 황금 성해를 맡아주시면 제가 술법을 펼쳐 저들을 잡아 두겠습니다. 잠시 후 수사의 화신들이 돌아오면 어렵지 않게 저들을 격살할 수 있을 겁니다.”

순간 험악한 빛이 스친 육극 화신이 남폭 성조에게 말했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일다경이면 화신들이 수하들과 합류할 테니 시간을 끌도록 합시다.”

남폭 성조가 머뭇거리지 않고 황금 게를 향해 빙산을 밀었다.

쨍강!

빙산이 남색 빛으로 점점이 갈라지더니 허공에서 사라졌다. 다음 순간 황금 게 사방에 남색 빛의 점들이 떠올라 빙산을 이루고 황금 게를 그 안에 가두었다.

남폭 성조 발밑의 거대 거북도 하얀 기운을 뿜었다. 기운들이 밧줄처럼 응결해 빙산 주위를 꽁꽁 묶었다. 그녀는 해 도인과 정면충돌하지 않고 잠시 속박만 한 채 시간을 벌 셈이었다.

육극 화신의 은색 불상 허상도 한립이 변한 거대 원숭이와 보화를 향해 두 팔을 뻗었고 등 뒤의 화염 괴수도 입을 벌려 거대한 화염 벽을 만들어냈다.

한립이 피식 웃으며 양쪽의 화신들과 방어하려는데 무표정하게 떠있던 보화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헛고생들 하십니다.”

백의 여인이 한 손을 뻗어 입에서 분홍 입김을 불어냈다. 무수히 많은 주술문자들이 분홍색 꽃잎처럼 나풀거리고 손바닥에서 비취색 싹이 피어나 팔뚝 크기의 작은 나무를 이루었다.

순식간에 보화의 손바닥 위로 비취색 나무가 자라나 그녀의 법력을 부단히 빨아들였다.

비취색 나무가 점점 흐릿해지고 가지마다 분홍색 꽃봉오리가 맺혀 꽃나무 전체가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짙은 꽃내음이 공간 전체를 맴돌았다.

멀리 그윽하게 불경소리가 들려오고 꽃나무 허상들이 어른거리자 주변 천 장 정도가 분홍 세계로 변했다.

더욱 불가사의 한 것은 빙산, 하얀 기운, 은색 손바닥, 불의 벽이 보화의 ‘흩어져라’는 한 마디에 모두 없어졌다는 점이다.

“현천영역!”

육극 화신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네 글자를 내뱉었다.

“이게 현천영역이란 말이지요. 심지어 내 빙봉천지(氷封天地)마저 가볍게 파훼하고 확실히 신묘합니다. 허나 이럴 힘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인데, 설마 방금 먹은 단약 때문에…….”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남폭 성조가 중얼거렸다.

“남 수사 말대로 단약을 복용해 수행을 증폭한 덕에 현천영역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보화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그래 봤자 현천영역을 이용한 공격은 한 두번이 다일텐데 어쩌겠다는 거죠!”

육극 화신이 서늘하게 외쳤다.

“그 한두 번에 당신들이 무사할지 모르겠습니다. 중상을 입은 두 분을 해 형과 한 형께서 온전히 돌려보낼지 무척 궁금하군요.”

“허튼 소리! 보화 언니의 몸 상태가 풍전등화나 마찬가지란 걸 내가 모를 줄 아나요? 그 몸으로 무리해서 공격하면 법력이 고갈되는 것은 물론이고 원기를 크게 상해 회복하는데 몇 배는 더 시간이 걸릴 겁니다.

우리와 양패구상이라도 할 것처럼 떠벌리는데, 마족 성조의 일원인 언니가 저항할 힘도 없이 인족 수사 녀석의 수중에 떨어진다면 무슨 꼴을 당할지 두렵지도 않습니까?”

“그 말이 내가 하고 싶었던 말입니다. 육극이야 화신에 불과해서 큰 피해가 없다지만 남폭 수사는 본체인데 내가 현천영역으로 전력을 다해 수사를 공격하면 3, 4할의 확률로 이 자리에서 죽을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런 위험한 도박을 하겠다니 의외인데요?”

미소를 머금은 보화가 남포 부인을 향해 물었다.

“지금 협박하는 겁니까?”

“그렇다고 해두죠. 선택은 수사에게 달렸습니다. 본체가 죽을 지도 모르는데 육극 화신과 함께 싸울 것이냐, 아니면 수사와 나 모두 무사히 이곳을 벗어날 것이냐 둘 중에 선택하세요.”

“남폭 수사, 보화의 허세에 속아 넘어가는 것은 아니겠지요? 현천영역으로 공격한다고 우리가 그걸 막을 만한 방법이 없겠습니까!”

육극 화신은 남폭 성조가 흔들리자 다급히 끼어들었다.

“황금 성해와 인족 녀석이 끼어드는 바람에 승산은 5할로 떨어졌습니다. 이제 보화가 현천영역까지 펼쳤는데 승산이 얼마나 될까요? 육극 수사가 본체만 되었어도 같이 싸워보겠지만, 지금이야 뭐…….”

고민을 마친 남포 부인이 물러나고 싶은 뜻을 전했다.

“이건 호랑이를 그대로 돌려보내는 짓입니다! 보화가 원기를 회복하고 마계로 돌아오면 그때 가서 후회하지 말라고요!”

“흥, 어차피 성계도 대겁을 앞두고 있습니다! 거기다 전 다음 천겁이 머지않아 그때까지 살아있을 지도 확신할 수 없고요. 멀리까지 생각할 처지가 아니라 이 말입니다. 요행이 저들을 전부 죽인다고 쳐도 얼마나 많은 화신들과 원기를 소모할지 모르는데 나 혼자 그 위험을 감수하란 뜻입니까?”

“그래도 보화만 죽이면 약속대로 현천영역의 구결과 여러 보물들이 손에 들어올 테니…….”

“나도 성공할 가능성이 조금만 높았어도 그런 막대한 이득을 포기하지 않았을 겁니다. 됐어요! 결정은 내려졌고, 이미 화신들에게도 서둘러 올 것 없다고 연락을 취했어요. 육극 수사, 그렇게 싸우고 싶으면 죽든 살든 혼자서 알아서 해봐요 어디. 보화 수사, 나를 현천영역에서 내보내 주시지요.”

남폭 성조가 손을 휘휘 저어 보화를 향해 당당히 요구했다. 이에 육극 화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현명한 선택이십니다.”

빙긋 웃은 보화의 손바닥에서 나무가 웅! 하고 진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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