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2화. 육절청뢰진(六絶靑雷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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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얼마가 지났을 까. 돌연 눈을 뜬 한립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한 선배님,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요?”
비차가 멈추자 주과아가 깜짝 놀라 물었다.
해 도인은 가부좌를 튼 채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우연히 초대형 진법에 걸려든 것 같다. 진법을 은밀하게 펼쳐 놓은 데다 나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놓치고 말았어.”
“초대형 진법이요? 저희를 잡으려고 펼쳐 놓은 걸까요?”
한립의 설명에 주과아가 불안해했다.
“해 형, 진법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한립이 그녀의 말에 답하지 않고 해 도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에 해 도인이 가만히 눈을 뜨고 덤덤히 주위를 살폈다.
“부족한 점이 있기는 하지만 육절청뢰진(六絶靑雷陣)입니다. 내가 수사라면 계속 전진해 진법의 눈으로 갈 겁니다. 그곳이 진법의 위력이 가장 강한 곳인 동시에 유일한 탈출구이니까요.”
말을 마친 해 도인은 다시 눈을 감았다.
“육절청뢰진? 저는 처음 들어보는 진법이지만 해 형의 말씀이 맞을 겁니다. 앞으로 계속 나아가 봐야겠군요. 우리를 노리고 펼친 것이든 아니든 일단 걸려들었으면 진법을 파훼하고 나가는 것 말고는 길이 없으니까요.”
침음하던 한립이 결단을 내리고 손끝으로 비차를 가리켜 회색 보호막을 씌웠다.
우웅!
비차가 기다란 빛줄기로 변해 빠르게 허공을 갈랐다. 이전보다 두 배는 빠른 속도였다. 주과아가 두리번거렸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볼 것 없다. 주위의 환술 금제 때문에 제대로 실체를 파악할 수 없을 것이야.”
한립은 소매 속에서 금색 검기를 날려 보내 허공을 종잇장처럼 찢어냈고 텅 빈 하늘이 끝없이 펼쳐진 하얀 안개의 바다로 바뀌었다.
“아, 이건…….”
주과아가 멍하니 쳐다보다 눈이 동그래졌다.
“우리가 길을 되돌아가려 했다면 진법 속의 강력한 금제를 건드려 이렇게 평온하게 이동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얼마 못가 육절청뢰진의 금제가 공격을 해올 것이니 미리 대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한립이 주과아에게 설명을 해주는데 해 도인이 눈을 감은 채로 덧붙였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심하겠습니다.”
한립은 두 손을 펼쳐 수십 개의 빛덩이를 비차 사방으로 날려 보냈다. 깃발과 원반 등 진법을 펼치기 위한 도구들이었다.
수십 개의 주술문자가 솟아올라 진법을 이루었다. 비차의 네 벽에 달라붙은 주술문자들은 마치 그곳에 새겨진 것 같았다.
잠시 뒤 한립이 명청령안을 발동해 하얀 안개 너머를 바라보더니 수결을 맺고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비차 네 벽의 검은 문양이 빛을 발하고 회색 보호막 밖으로 검은 주술문자 그물을 형성했다.
콰릉!
그러자 고요하던 안개 속에서 천둥소리가 들려왔고 하얀 안개가 꿈틀거리고 푸른 뇌전이 번득였다. 동시에 안개가 찐득하게 변해 비차의 속도가 점점 줄어들었다.
한립은 입에서 푸른 정기를 분출해 비차에 흡수시켰고 비차는 진동하며 하얀 안개를 떨치고 화살처럼 앞으로 쏘아져나갔다.
콰르릉 콰쾅!
안개 속 푸른 번개가 수많은 뱀처럼 달려들어 검은 주술문자 부적에 내리꽂혔다.
뇌전이 떨어지자 검은 주술문자 그물도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지만 한립은 아랑곳하지 않고 비차의 속도를 높였다.
푸확!
검은 주술문자 그물이 드디어 푸른 뇌전에 의해 찢겨나가고 있었다. 이에 한립은 금색 뇌전들을 쏘아 보내 푸른 뇌전들을 공격했고 그 잠간 사이에 검은 주술문자들이 다시 빛을 발하며 그물을 견고하게 만들었다.
강력한 푸른 뇌전도 한립이 펼쳐 놓은 진법의 힘과 벽사신뢰는 어쩌지 못했다.
비차가 앞으로 나갈수록 안개는 옅어지고 푸른 안개는 많아져 진법의 중심에 가까워졌다.
이제는 아예 뇌전들이 주먹만 하게 뭉쳐져 푸른 뇌전 구슬들이 쏟아지는데 전방에서 여인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보화 언니, 이래도 계속 할 건가요? 어차피 무슨 수를 써도 이곳을 벗어날 수는 없을 겁니다. 얌전히 군다면 나도 옛정을 생각해 윤회할 수 있게 혼백을 곱게 보내주겠어요.”
그들의 대화에 한립은 안색이 급변해 뭔가를 하려 했으나 순식간에 안개가 걷히고 푸른 뇌전의 세계가 펼쳐졌다.
콰콰콰쾅!
푸른 뇌전과 뇌전 구슬들이 곳곳에 떠있었고 그것들 중 일부가 중앙의 노란빛을 미친 듯이 공격하고 있었다.
노란 기운 속에는 거대한 검은 짐승이 입에서 안개를 뿜어내고 있었다.
머리에 괴상한 뿔이 나있는 악어 모양 짐승은 새까만 비늘 갑옷을 입고 검은 안개로 열댓 개의 촉수를 뭉쳐 노란 기운 밖 푸른 뇌전들을 가격했다.
적잖은 뇌전들이 검은 촉수에 맞아 연기로 변해 사라졌다.
검은 짐승 뒤에는 백의 여인이 분홍색 꽃나무 밑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한 손으로 수결을 맺고 나머지 손에는 노란 둔기를 들고 꼼짝 않고 있었다.
그녀가 든 각진 몽둥이에서 노란 기운이 계속 흘러나와 뇌전 공격을 막았지만 푸른 뇌전과 뇌전 구슬이 너무 많았다. 깜빡깜빡 거리는 노란 기운은 오래 버틸 수 없을 듯했다.
한립은 백의 여인의 모습을 보고 동공을 수축했고 곧바로 다른 두 명을 살폈다.
남색 장포를 입은 부인과 마른 몸매의 묘령의 여인이 뇌전 세계 양쪽에 서있었다.
한 명은 남색 거대 거북의 머리를 밝고 6개의 푸른 깃발들에 둘러싸여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은색 법상을 들고 금색 수레바퀴에 서 있었다.
방금 말을 한 이는 금색 수레바퀴 위의 묘령의 여인이었다. 그들을 본 한립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남포 부인은 몰라도 묘령 여인의 얼굴은 자령이 심복을 통해 보내온 육극 화신의 모습과 똑같았다. 아무리 합체 후기의 수행을 지녔어도 보통의 후기 마존과는 같을 수 없었다.
거기다 마족 성조로 보이는 남포 부인까지 있으니 해 도인의 도움이 있어도 우습게 볼 수 있는 상대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립의 등장도 두 여인이 바라던 바는 아닌 듯했다.
묘령의 여인이 그를 훑고 인상을 찌푸렸다.
“남폭 수사, 육절청뢰진을 펼치면 외부의 간섭을 차단할 수 있다더니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수사의 호신은 어찌 저들을 막지 않은 것이에요?”
“이렇게 큰 진법을 유지하는 게 그리 쉬워 보입니까? 제 화신들이 다른 수하들의 보조를 받아 간신히 진법을 발동하는 중입니다. 그래도 진법의 힘이 강해 보통의 수사는 여기까지 오기 쉽지 않았을 텐데 저도 저들이 누군지 궁금하군요.”
남포 부인도 불쾌한 내색을 했다.
“어찌 되었든 우리 둘 다 저들이 침입하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 것은 이 육절청뢰진이 온전하지 못한 탓이겠지요.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겠습니다.”
묘령의 여인이 한립과 해 도인을 훑고 뭔가를 눈치 챘는지 탄식했다. 남포 부인과 묘령 여인은 미리 공모한 남폭 성조와 육극 화신이었다.
그들은 수하들을 풀어 보화의 행방을 수색한 후 며칠에 걸쳐 육절청뢰진을 설치했다.
치밀한 계획으로 인근에서 부상을 치료 중이던 보화와 흑악을 끌어냈고, 육절청뢰진으로 그들을 가둘 수 있었다.
보화는 원기를 크게 상해 단시일 내로 현천화수(玄天花樹)를 발동하기 어려워 진법의 눈을 찾아내고도 남폭 성조와 육극 화신의 협공에 여러 보물로 겨우 버티는 중이었다.
나중에는 아직 부상이 낫지 않은 흑악까지 부득불 원형을 드러내고 필사적으로 싸워야 했다.
“겨우 합체 후기 수사가 변수가 될까요?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해결할 수……. 어, 낯익은 얼굴인데?”
냉소하던 중년 부인이 해 도인을 자세히 살폈다.
“이제야 알아보셨습니까? 저쪽이 마원해의 해 형이고 그 옆이 최근에 마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한 수사일 겁니다.”
“뭐라고요?”
묘령 여인의 설명에 남포 부인의 안색이 달라졌다.
한립의 소문이 아무리 요란해도 대승기 수사인 남폭 성조에게 위협이 되지 않았지만 황금 게의 위선뢰는 상대하기 꺼려졌다.
“저도 이곳에서 두 분을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그저 지나가는 길이니 두 분이 길만 열어주시면 조용히 이곳을 떠나겠습니다.”
한립이 두 여인에게 태연히 포권을 했다. 게다가 해 도인은 누가 쳐다보든 말든 멍한 얼굴로 비차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남폭 성조와 육극 화신은 최근 떠돌던 소문을 떠올렸다. 황금 게가 눈앞의 인족 녀석에게 굴복해 따라다닌다는 내용이었다.
안 그래도 반신반의하고 있었는데 해 도인이 모든 것을 한립의 결정에 맡기겠다는 태도를 보여 소문이 사실임을 확신했다.
“이렇게 외진 곳에서 수사를 만날 줄은 나도 몰랐네. 지나는 길이었다니 떠나게 해주지. 남폭 수사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재빨리 이해타산을 마친 육극 화신이 빙긋 웃었다.
“흥, 해 도인만 아니었으면 절대 너 같은 인족 꼬마를 살려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감히 우리 성계를 마음대로 종횡무진해? 다음번에 내 눈에 띄면 결단코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한립과 해 도인을 번갈아 보던 남포 부인도 살기등등하게 경고하고는 눈길을 돌렸다. 제 발로 찾아온 인족 수사를 살려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보화의 일이 더 중요했기에 동의한 것이다.
“감사합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선배님들!”
한립은 마음이 편해져 미소로 답했다. 두 마족과 보화의 싸움에 말려들 생각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남포 부인이 여섯 깃발 중 하나를 가리켜 거대하게 만들었다.
“열어라.”
그녀의 낮은 목소리에 거대 깃발이 부르르 떨고 푸른 뇌전을 교룡처럼 일으켜 고공에 누각만한 푸른 주술문자를 응결했다.
파앗!
주술문자가 허공으로 스며들자 한 사람이 지나갈만한 구멍이 뚫렸다. 그 안으로 바깥의 쪽빛 하늘이 보였다.
한립이 막 비차를 출발시키려는데 수많은 뇌전에 둘러싸인 노란 기운 안에서 보화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한 수사는 소령천을 찾고 있겠지? 내가 죽으면 이 세상에서 소령천의 위치를 아는 자가 없을 텐데…….”
“제가 소령천을 찾는 것을 어찌 아셨습니까?”
“한 수사 옆의 아이를 내가 잠시 데리고 있었던 것을 잊은 것인가? 비록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주 중요한 일로 소령천을 찾는 것이겠지.”
그 말에 한립의 시선이 저절로 주과아에게 향했다.
“서, 선배님 저는 몰랐던 일입니다. 잡혀 있는 내내 기절해 있었는걸요.”
“상대의 신통에 부지불식간에 네게 손을 쓰는 것이 뭐가 어렵겠느냐. 탓하지 않을 것이니 두려워 할 것 없다.”
한립은 고개를 저으며 소녀를 다독이고는 어두운 얼굴로 보화를 향해 물었다.
“소령천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을 어찌 믿겠습니까. 제가 나서기를 원하신다면 증거를 보이셔야 할 겁니다.”
그는 일부러 남폭 성조와 육극 화신이 있는 곳을 힐끗 쳐다보았다. 보화가 그들이 보는 앞에서 대놓고 한립과 거래를 하려들자 난색을 표하고 있었지만 결론이 나기 전까지 움직이지 않을 심산이었다.
“증거라면 당연히 보여줘야겠지. 이걸 보면 스스로 진위를 판단할 수 있을 걸세.”
보화가 아름다운 눈을 반짝이며 이번에는 전음으로 말했다.
한립 앞에 홀연히 공간 파동이 일고 분홍 기운이 날아들었다. 그는 의식으로 기운이 감싸고 있는 물건을 살피며 그것을 받아들었다.
“이것은…….”
새까만 작은 나무토막은 은은하게 금빛 광택이 흘렀다.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이런 나무는 본 적이 없었다.
“아! 이건 태현강목(太玄罡木)입니다!”
주과아가 그것을 보더니 반갑게 소리쳤다.
“알아보겠느냐?”
“태현강목은 저희 소령천 고유의 영목으로 백 년에 반촌씩 자라 천 년이 지나야 잎을 맺고 만년 후에야 열매가 맺습니다. 각종 보물을 만들 수 있는 진귀한 재료라 소령천에서는 신목(神木)이라 불리는 것들 중 하나지요. 예전에 콩알만 한 조각을 보았었는데 이렇게 큰 태현강목은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주과아가 눈을 더욱 크게 뜨고 설명했다.
“고유의 영목이라고? 소령천 바깥에서는 구할 수 없단 말이냐. 네가 착각한 것은 아니겠지?”
“소령천의 인족 선배님께 들은 바에 따르면 태현강목은 소령천의 여러 영목들을 교배하다 나온 변이종이라 절대 외부 세계에 같은 나무가 자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얻기 위해 인족과 소령천의 다른 이종족들이 다툼을 벌이기도 했고요. 그런 중요한 영목을 제가 어찌 착각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구나.”
한립이 영목을 만지작거렸다.
“한 수사, 통로는 그리 오래 열려 있지 않을 것이네 가려면 지금 가야 할 것이야.”
“당장 꺼지든가 아니면 영원히 이곳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말거라.”
바로 그때 육극 화신이 입을 열었고 참고 있던 남포 부인도 살기등등하게 소리쳤다. 동시에 그녀의 푸른 거대 깃발이 웅! 울고 통로가 부들부들 떨렸다.
“가자.”
그것을 보고 한립이 눈을 가늘게 뜨고 발을 굴러 비차를 출발시켰다. 푸른빛줄기로 변한 비차가 통로를 지나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이에 남폭 성조와 육극 화신은 그녀를 비웃었고 보화는 눈을 반짝였을 뿐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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