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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249화 (1,006/2,000)

1249화. 자광수(磁光獸)

*

한식경 후, 그는 붕괴된 통로를 지나 반대쪽으로 빠져나와 주위를 둘러보았다. 앞으로 나 있는 길은 이전보다 좁았고 네 벽이 거칠어 뚫어 놓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했다.

그는 땅에 떨어진 작은 돌조각에 시선이 닿자 그것을 끌어와 자세히 살펴보았다.

“역시 이마금이야. 이곳이 그들이 채굴하던 곳이 분명해.”

이마금 잔해를 던져버린 그의 얼굴이 밝아졌다. 한립은 의식을 퍼트려 주변을 샅샅이 뒤지려 했다.

“엇, 통로가 이렇게 길다니……. 게다가 자연적으로 금제가 형성되어 있어 의식이 나아가지 못하잖아. 호오, 주변에 아직 사람이 남아 있구나. 수행이 낮은 것을 보니 광산 노예들이군.”

한립이 서둘러 통로의 어둠 속으로 튀어나갔다.

잠시 후 그는 대충 만들어 놓은 작은 동굴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앞에는 허름한 옷을 입은 새까만 피부의 광산 노예들이 겁에 질려 엎드려 있었다.

그들은 머리에 두 개의 뿔이 달리고 추한 외모를 지닌 것이 한 눈에 보기에도 같은 종족 출신의 마인들이었다.

“너희 셋만 남고 나머지는 죽임을 당한 것이더냐?”

“예예, 대인! 저희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채고 먼저 숨어 있었기에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중년의 늙은 광부가 몸을 떨며 얼른 답했다.

“살인멸구라. 그들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겠지. 이마금은 너희가 직접 캐낸 것이더냐?”

“그렇습니다! 저희가 캐낸 것입니다.”

“좋다. 몇 가지 질문을 할 텐데 내가 만족할 만한 답을 준다면 너희를 구해주겠다. 어차피 이곳 통로가 붕괴되어 내가 나서지 않으면 죽은 목숨이란 것을 잘 알고 있겠지.”

“저, 저희를 구해주신단 말입니까? 그래만 주신다면 소인들이 아는 것을 전부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질문에나 답하거라. 이마금은 언제 발견했지? 채굴하며 이상한 점은 없었느냐?”

“이마금은 두 달 전에 발견했습니다. 이곳의 흙이 강철처럼 단단해서 거의 백여 명이 오랜 시간 작업한 끝에 겨우 이마금 채굴을 마쳤지요. 그런데 채굴을 마쳐갈 무렵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며, 몇몇 동료들이 채굴하다 갑자기 쓰러져 모두가 보는 앞에서 가루가 되었습니다.”

잠시 기억을 더듬은 중년 광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쓰러져 가루가 되었다. 이렇게 말이더냐?”

한립이 바닥의 검은 돌멩이를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녹색 빛이 번득인 순간 그의 손끝에서 녹색 실이 빠져나가 돌멩이를 관통하고 다시 되돌아갔다.

그러자 단단해 보이던 돌멩이가 쿵! 하고 하얀 먼지로 변해 땅에 소복하게 쌓였다. 그걸 본 세 광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맞습니다! 이렇게 갑자기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일로 상부에서 조사를 하지는 않더냐?”

“그러기는 했습니다만 가루가 된 동료들이 채굴하던 곳에서는 아무런 이상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후에 다른 이들이 파낼 때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고요. 몇 명이 조사를 하다 귀찮아졌는지 더는 그 까닭을 알아내려는 하지 않았습니다. 저희 같은 광노의 목숨이야 하찮은 것 아니겠습니까.”

중년 광노가 쓴웃음을 지었다.

“딱 한 번뿐이었고 이후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 흥미롭구나. 이야기를 마치면 그곳이 어디였는지 안내하거라.”

“예, 대인!”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세 광노가 거절하지 못하고 공손히 머리를 조아렸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다. 이곳의 이마금은 전부 채굴해 하나도 남지 않은 것이더냐?”

한립의 마지막 질문은 세 광노들의 예상을 벗어났다. 그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 결국 중년 광노만 쳐다보았다.

“통로가 허물어지기 전에는 이마금을 전부 파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갇혀 있는 동안 살 길을 찾으려 이곳저곳을 들쑤시다 이마금 광맥을 하나 더 발견했습니다. 저희 실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곳이라 일단은 돌 더미로 막아 놓았는데 관심이 있으시면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머뭇거리던 광노가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하하, 역시 이마금이 남아 있었어! 이전 녀석들도 이 일을 알았을 지도 모르나 시간이 없어 포기했을 것이다. 그 덕을 내가 보겠구나. 어서 그곳으로 가보자!”

한립이 웃음을 흘리며 명을 내렸다.

“예, 대인.”

중년 광노는 이상하다가 생각했지만 명령을 거스를 수 없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길을 안내했다.

한립은 그곳을 전부 둘러보고 그들이 가려 놓았다던 새로운 광맥도 확인했다.

“잘했다. 너희 말이 모두 사실이니 살 길을 열어주마!”

한립은 소매를 펄럭여 대량의 푸른 기운을 뿜어냈다. 이에 세 광노는 뭔가에 휩쓸려 무너져 내린 통로 인근으로 이동했고 한립도 소리 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깨져라.”

그가 손을 뻗자 손바닥에서 금빛 구슬이 떠올라 휘황찬란한 빛기둥을 분사했다.

콰릉!

무너진 돌 더미가 새빨갛게 녹아 한 명만 겨우 지나갈만한 통로를 만들어냈다.

“길을 뚫어 주었으니 이제 알아서 나가거라.”

그 말을 마지막으로 한립의 신형이 모호하게 사라졌다. 그 말에 세 광노는 미칠 듯이 기뻐하며 한립이 사라진 방향으로 절을 하고는 앞 다투어 통로로 뛰어나갔다.

* * *

한립은 그들이 안내한 곳을 돌며 바닥과 그 주변에 퍼져있는 가느다란 녹색 기운을 추출해 작은 병에 담고 이마금 광맥으로 돌아갔다.

녹색 기운은 변이된 지살음기로 광노들의 정혈을 남김없이 취하고 주변에 깃들어 있었다.

무우 일행이 이마금 광맥에만 관심을 두고 살폈기에 다행히 녹색 기운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만약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면 무슨 일이든 벌어졌을 것이다.

그곳은 말이 새로운 광맥이지 원래 이마금을 채굴하던 곳 바로 옆이었다. 세 광노들은 원래 파던 곳에서 열댓 장 거리를 파다 우연히 광맥을 발견했다.

한립은 음살의 기운이 나타난 위치를 바탕으로 결론을 내렸다.

‘음양대오행진광이 존재한다면 새로 발견한 이마금 광맥 아래에 있을 가능성이 높아.’

그는 지체 없이 푸른 원숭이 꼭두각시 열댓 마리를 꺼냈다. 사람과 비슷한 체구에 흉악한 용모를 지닌 꼭두각시들이었다.

한립이 의식으로 명을 내리자 꼭두각시들은 손에서 하얀 빛을 뿜어 광맥을 마구 파내기 시작했다.

그는 연이어 표린수를 불러냈는데 영수환에 잠들어 있다 잠결에 눈을 깜빡이는 모습이 굉장히 귀여웠다.

“꼭두각시들을 잘 감시하고 외부인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거라.”

그는 노란빛을 일으켜 지하로 스며들었다. 이에 표린수는 눈을 크게 뜨고 푸른 꼭두각시들을 감독하기 시작했다.

결단기 수행을 지닌 열댓 마리 꼭두각시들은 순식간에 그 안에 숨겨진 이마금들을 확보했다. 백여 명의 광노들이 한 달은 걸려야 할 일을 겨우 두세 시진 만에 마친 것이다.

표린수는 이마금들을 전부 저물탁에 넣고 동작을 멈춘 꼭두각시들과 함께 자리를 지켰다.

쿠르릉!

얼마 후 바닥에 엎드린 표린수가 지루함에 몸을 비트는 데 땅이 맹렬히 흔들렸다. 통로 천장과 벽에서 돌가루가 우수수 떨어지는 것이 당장 붕괴될 것 같았다.

표린수가 움찔하며 곧바로 몇 개의 그림자로 변해 쏘아져나갔다. 금빛이 번득인 곳마다 열댓 마리 꼭두각시들이 사라지고 그림자들이 하나로 합쳐져 눈부신 둔광으로 변해 갈라진 석벽 틈으로 뛰어들었다.

표린수가 그곳을 빠져나가고 쿠쿵 하는 굉음과 함께 통로가 무너져 내렸다. 사방팔방을 먼지가 뒤덮고 엄청난 굉음이 울리며 산봉우리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휘익!

떨어지는 암석들 사이로 금빛이 솟아올라 고공에서 작은 짐승으로 변했다.

표린수는 무너져 내리는 산봉우리를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콰르릉 콰쾅!

아래에서 연달아 날벼락 같은 폭음이 들리고 화산 폭발처럼 돌덩이들이 튀어 올랐다가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그러나 표린수는 발톱을 휘둘러 돌덩이들을 가르면서도 눈도 깜빡이지 않고 아래쪽을 주시했다.

곧 울음소리 같은 긴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푸른빛이 번뜩이고 거대한 푸른 검기가 지하에서 솟아올라 대량의 바위와 돌덩이를 가루로 만들었다.

푸른빛 속에서 한립이 창백한 얼굴로 나타났는데 한 손에는 비취색 돌멩이를 들고 나머지 한 손에는 금빛의 장검을 들고 아래쪽을 겨누고 있었다.

이에 표린수가 반색하며 펄쩍 뛰어 한립 옆으로 다가와 그의 다리에 털이 북슬북슬한 얼굴을 비볐다.

“아래에 있는 저 녀석은 상대하기 쉽지 않으니 조심해야 한다.”

한립은 짐승을 쓰다듬으며 신중하게 말했다.

표린수는 적이 있다는 말에 두려워하기 보다는 기뻐하며 울부짖었다. 그리고는 전신에서 금색 문양을 반짝여 엄청난 크기로 몸을 키웠다.

끼룩끼룩.

땅속에서 분노에 찬 기이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땅이 흔들리고 무너진 산봉우리를 헤치고 누런 괴물이 나타났는데 머리에 눈이 열 개나 넘게 달려 있었다. 게다가 엄청난 몸집에 피부에는 크고 작은 다양한 광물들이 박혀 있었다. 하나같이 진귀한 것들이었다.

“자광수(磁光獸). 들어보기는 했지만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군. 손에 넣은 음양대오행진광의 본체가 아직까지 이곳에 남아 있던 것은 저 녀석의 공이 크겠어. 오랜 세월 음양대오행진광 본체와 함께 했던 녀석이니 몸에 위력을 품고 있겠지. 잡아다 연화를 시키면 극산 재료가 될 수 있겠구나.”

한립은 손에 쥔 녹색 돌멩이를 살피다 괴수를 보고 미소 지었다.

그때 아래쪽 괴수가 먼저 두 팔로 허공을 쳐 공격했다.

퍼펑!

귀를 찢을 듯한 폭음이 터지고 하얀 파문이 한립을 덮쳐왔다. 한립은 피하지 않고 회색빛 속에서 새까만 원자극산을 불러내 앞을 막았다.

쿠르릉!

하얀 파문이 파도처럼 연달아 밀려왔지만 검은 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동시에 표린수의 다리가 움직였고 열댓 개의 허상으로 변해 자광수를 덮치려 했다.

찰나의 순간 열댓 마리의 표린수 허상이 거대 괴수 주변에 나타나 마구 발톱을 휘둘렀다. 그러자 금빛으로 반짝이는 발톱 허상들이 빽빽하게 날아들었다.

거대 짐승의 몸에서 몇몇 광석이 굴러 떨어지기는 했지만 자광수는 멀쩡했다. 오히려 괴수는 열을 받았는지 여러 개의 겹눈으로 표린수 허상들을 노려보고 눈에서 오색 빛을 머금었다.

피피피피핑!

십여 개의 오색 빛기둥이 괴수의 눈을 빠져나와 금색 허상들을 감싸 안았고, 오색 빛기둥이 허상들을 휘감고 휘리릭 돌았다.

표린수 허상들은 오색 빛기둥에 닿자 꼼짝할 수 없었고 무수히 많은 칼에 난도질당한 것처럼 조각나 흩어졌다.

그러나 허상들이 모두 사라진 후에도 피 한 방울 남지 않았다. 다행히 그곳에는 표린수의 본체가 없었던 것이다!

자광수는 더욱 두꺼운 빛기둥을 발사해 도처를 마구 공격했다. 이에 오색 빛기둥 중 하나가 희미하게 흔들리더니 표린수가 비틀거리며 튀어나왔다.

괴수는 기쁨을 드러내며 고개를 돌렸고 모든 눈은 표린수를 향했다. 오색 빛기둥들이 하나로 모여 작은 짐승을 향해 날아갔다.

놀란 표린수가 몸을 날려 달아나려 했지만 오색 빛기둥이 도달하기 전에 주변 공기가 강철처럼 단단하게 응결해 그를 붙들어 두었다.

작은 짐승은 두꺼운 빛기둥이 자신의 보호막 앞까지 들이닥치자 겁에 질려 낑낑 울어댔다.

“이제야 무서운 것을 알겠느냐? 자광수의 공격을 맞으면 나도 부상을 입을 텐데 네가 적수가 될 수 있겠느냐.”

위기의 순간 한립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거대한 금색 검기가 날아들어 금색 빛기둥을 잘라냈다. 그러자 표린수를 억누르던 압력이 사라졌다.

표린수는 기뻐하며 허상으로 변해 한립을 향해 쏘아져나갔다. 그의 곁으로 돌아온 짐승은 퍽 의기소침한 모습이었다.

한립은 여전히 한 손에는 녹색 돌멩이를 다른 손에는 금색 장검을 쥐고 있었다. 그는 표린수의 가련한 표정을 보고 웃음 지을 뿐 별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래쪽에선 자광수가 그의 공격에 불같이 화를 내고 있었다.

끼룩끼룩!

괴수는 몸을 바르르 떨며 눈에서 열댓 개의 오색 빛기둥을 분출하고 동시에 몸에 박힌 방대한 광물들을 한립을 향해 힘껏 내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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