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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243화 (1,000/2,000)

1243화. 무우

*

한식경 후 한립은 금포 여인의 배웅을 받으며 채헌각 대문을 나섰다. 그는 마차를 타고 또 다른 상점으로 이동했다.

이렇게 하루 종일 대여섯 개의 대형 상점에 들려 이마금을 전부 쓸어왔지만 혈아미 쪽은 전혀 수확이 없었다.

다들 이구동성으로 대량의 혈아미 거래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한립은 낙담하지 않고 객잔을 찾아 하루를 묵은 다음 중급 규모의 상점들을 일일이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가 남폭호에 온지 이레가 지났을 때 거의 모든 크고 작은 가게에서 이마금을 구입해 엄청난 수량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마금을 사느라 엄청난 마석이 들어갔지만 그가 지닌 것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저 그렇게 많은 이마금을 사들였는데 어느 것 하나 신비한 수정 구슬을 품고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의 등장에 남폭호에 갑자기 대량의 이마금을 사들이는 외지인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대부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남폭성을 오가는 외지의 마족 상인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몇 이들에게는 아주 흥미로운 소식이었다.

여드레째 되는 날 한립이 막 거처에서 나와 마차를 잡으려는데 갑자기 팔(八) 자로 콧수염을 기른 마족 사내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선배님께서 이마금을 대량으로 구입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습니다. 저와 동료의 수중에 마침 좋은 물건이 있어 보여드리고자 하는데 관심이 있으신지요?”

“난 대량으로만 구입하네. 가진 이마금이 열댓 개 정도라면 날 귀찮게 하지 않는 게 좋을 걸세.”

상대가 원영기 수사라는 것을 알아본 한립이 무심히 말했다.

“제가 겨우 그 정도 이마금을 가지고 대인을 성가시게 하겠습니까? 제 동료가 보유한 이마금의 수량이면 선배님도 아주 흡족해 하실 겁니다!”

“호오, 자네 동료라는 자는 어디 있는가? 성 밖으로 나가야 한다면 거래는 되었네.”

한립은 마음이 동했지만 동시에 의심스런 생각도 들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제 동료는 성 안에서 가장 유명한 선거루(仙居樓)에서 선배님이 들려주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허언은 아닌 듯하구나. 그래, 한 번 가보자.”

마족 사내의 말에 한립이 굳은 얼굴을 풀자 마족 사내는 미리 준비해둔 마차를 불러왔다. 그들이 탄 마수 마차가 거리를 질주했다.

* * *

몇 시진 후, 꽤나 한적한 대청 안에서 한립은 낯선 마족 남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저는 무우라 합니다! 며칠 전부터 수사를 청하려 했는데 요 며칠 바쁜 일이 생겨 오늘에서야 뵙게 되었습니다.”

그들 중 미간에 붉은 문양이 있는 청년이 우두머리인지 한립을 향해 먼저 포권을 해왔다.

‘연허 후기를 대성한 자.’

한립은 마족 수사들을 훑고는 보물로 수행을 가린 청년의 수행을 확인했다. 청년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화신기이거나 연허 초기였다.

“듣자니 대량의 이마금을 지니고 있다던데 사실입니까?”

한립은 예의 차릴 것 없이 곧바로 마족 청년 맞은편에 앉아 물었다.

“사실입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수사를 모셔올 이유도 없었지요.”

“그렇다면 이마금이 얼마나 있는지 가격은 어떻게 되는지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그렇게 서두르지 마시고 제 말씀을 먼저 들어주시지요. 조건이 맞으면 거래할 것이지만 아니면 그냥 빈손으로 보내드리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청년 무우가 진지한 얼굴로 그의 기색을 살폈다.

“무슨 이야기인지 편안히 말씀해 보십시오.”

한립은 심각하게 여지지 않고 가볍게 미소 지었다.

“하하, 알겠습니다! 성격 한번 호방하십니다. 너희는 나가서 내가 귀빈과 대화를 마칠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거라.”

무우가 박장대소를 하고 다른 수사들을 물렸다. 대청에 있던 남녀 마족들은물론 한립을 이곳으로 데려온 콧수염 사내도 예를 올리고 물러났다.

파앗.

무우는 소매 속에서 검은 영패를 꺼내 허공을 비추었고 새까만 빛의 장막이 펼쳐져 외부와 대청 안을 격리시켰다. 한립은 내심 상대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흠, 우스운 꼴을 보였습니다. 중요한 일이라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어서요.”

무우가 민망한 듯 헛기침을 했다.

“상관없습니다. 이제 말씀하시죠.”

“제가 이렇게 조심하는 것은 거래할 이마금의 출처가 그리 떳떳하지 못해서입니다. 그래서 낮은 가격에 전부 팔고 싶은데, 그 전에 수사께서 심마를 걸고 거래 후에 무슨 일이 생겨도 저희를 언급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해주셔야 합니다.”

“그 말은 일단 물건을 챙기면 그 후 무슨 일이 생기든 여러분을 끌어들이지는 말라는 소리십니까?”

한립은 무표정하게 반문했다.

“하하하, 그렇습니다. 만일을 대비해 이런 조건을 거는 것이지 수사께서 거래한 후 성을 떠나면 별 문제 없을 겁니다.”

“제가 너무 빨리 뒤를 밟혀 수사가 화를 입을까 걱정하시는 거겠지요.”

“어찌 생각하시든 저는 물건의 내력에 문제가 있고 다양한 일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미리 말씀드렸습니다. 구체적으로 설명을 드릴 수는 없고요. 거래하기 싫으시면 그냥 가시면 됩니다.”

무우가 웃음기를 거두었다.

“제가 거래를 안 한다고 하면 무우 수사가 그냥 보내주실 것 같지 않은 데요?”

“그건 괜한 우려십니다. 절대 수사에게 불리한 일을 저지를 생각이 없고 일종의 비술을 이용해 이곳에서 나눈 대화를 기억에서 지울 예정입니다.”

“기억을 지우는 건 좋은 생각입니다. 하지만 남을 함부로 의식에 들였다 비술로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르는 일이고 더욱이 저는 누군가의 금제를 품고 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어서요.”

“그 말은 거래를 하지 않겠다는 뜻입니까?”

한립의 냉랭한 언사에 마족 청년도 눈빛이 싸늘해졌다.

“허허, 좋은 물건을 대량으로 싸게 살 수 있는데 안 할 이유가 있나요? 수량과 가격을 말해보시지요. 전부 구입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거래를 하신다면 기억을 지울 필요는 없지요. 하지만 심마를 건 맹세는 해주셔야 합니다.”

한립이 얼굴을 풀자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졌고 무우도 내심 기뻐했다.

“맹세는 일단 거래가 확실해 지면 이야기 하십시다. 수사가 지닌 물건의 수량이 충분치 않으면 거래를 안 할 수도 있는 일이니까요.”

“이마금 2천 개면 어떻습니까?”

“2천 개요.”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놀라운 수량이었다. 그가 며칠간 대형 상점들을 돌며 구입한 이마금보다 많은 수량을 겨우 연허기 수사가 지니고 있다는 것이 이상했다.

“가격은 어떻게 됩니까? 또한 품질이 눈에 차지 않으면 전부 구매하지는 않을 겁니다.”

“하나같이 최상품 이마금이고 절대 품질이 떨어지지 않을 겁니다. 가격은 이만큼만 쳐주시면 됩니다. 바깥 가격의 3분의 2밖에 안 한다는 것은 아시겠지요?”

마족 청년이 호언장담하고 다섯 손가락을 쫙 펼쳤다.

“이런 위험을 감수하는 것 치고는 가격이 높습니다.”

한립은 눈을 가늘게 뜨고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얼마를 원하십니까?”

“정상가의 절반이면 받아들이겠습니다. 안 된다면 거래를 고려해 보겠습니다.”

“좋습니다! 수사의 말씀대로 딱 절반 가격에 드리겠습니다. 수사께서 심마를 걸고 맹세해주시고 거래를 신속하게 이행하기만 하면 됩니다. 말이 나온 김에 내일 이 시각, 이곳에서 교환을 하시죠! 믿을 만한 동료분들을 같이 데려오셔도 무방합니다.”

한립의 예상과 달리 마족 청년은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가격을 받아들이고 교환 장소와 시간까지 정했다. 상대가 너무 조급해 하는 것이 의아했으나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무우 수사의 말대로 내일 거래를 진행하지요. 다만 믿을 만한 동료는, 그때 가서 이야기 하십시다.”

“과연 시원시원하십니다! 내일 이 자리에서 뵙기를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마족 청년이 들뜬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한립을 향해 포권을 했다. 이에 한립도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우가 빛의 장막을 거두고 그를 공손히 대청 밖까지 안내했다.

“큰형님, 거래는 성사된 것입니까?”

무우와 닮은 마족 사내가 대청으로 들어오자마자 큰소리로 물었다.

“셋째야, 안심 하거라. 내일 바로 거래하기로 이야기를 마쳤다.”

“정말 다행입니다! 드디어 그 처치 곤란한 것들을 전부 팔아넘기게 되었습니다. 거래를 마치는 대로 바로 남폭성을 떠나야겠지요?”

“그야 물론이다. 철호, 너는 광부들을 깨끗하게 정리해 후환을 남기지 말거라.”

무우가 셋째에게 답하고 또 다른 청년 사내에게 물었다.

“내막을 아는 이들은 전부 입막음을 해두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만일을 대비해 광산 입구까지 봉해버렸으니 누군가 요행히 화를 피했어도 단시일 내로 그곳을 빠져나오기는 어려울 겁니다.”

중년 사내가 공손히 대답했다.

“잘했다! 사적으로 남폭성 인근의 광산을 개발해 채굴하는 것은 인근 세력의 금기를 어기는 짓이다. 게다가 우리가 우연히 엄청난 수량의 광석을 발견한 것이 소문이라도 나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것이야. 얼른얼른 물건들을 싼 값에 팔아넘기고 멀리 떠나야 그나마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을 것이다.”

무우는 여전히 근심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그런데 형님, 굳이 성 안에서 거래를 하신 이유가 있습니까? 멀리 들고 달아나면 다른 세력들이 찾기도 어려울 것이고 광석들도 제값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요.”

청순한 이목구비의 여인이 불만스럽게 몇 마디 했다.

“흥, 사람은 재물을 쫓다 죽고 새는 먹이를 구하다 죽는다는 말도 모르더냐! 높은 가격을 받으려고 광석을 갖고 떠나면 현지 세력들이 끝까지 추적할 것이다. 그러나 대충 팔아치우고 마석을 갖고 달아나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야 안 사실인데 우리가 채굴한 광맥에서 그렇게 많은 진귀한 광석들이 발견된 연유가 심상치가 않다.”

“지금 저희 상황보다 더 안 좋은 소식입니까?”

무우와 닮은 마족 청년이 긴장해 물었고 다른 마족들도 귀를 기울였다.

“특수한 경로로 알아낸 것인데……. 우리가 채굴한 광맥 머지않은 곳에 성주부 소유의 광맥이 있다고 한다. 극품 광석이 매장되어있을 가능성이 높아 성주부도 아까워 아직 손을 대지 않고 있었다지.”

“예? 저희가 발견한 진귀한 광석이 실은 성주부 소유였다는 말씀이십니까?”

무우의 설명에 마족 청년이 경악했다.

“그래,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는데 우리가 몰래 채굴하던 광맥이 그곳에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엄청난 극품 광석들이 매장되어 있었겠느냐? 오랜 시간 동안 채굴을 했는데 성주부 병사에게 걸리지 않은 것은 천운이었다.”

무우의 말에 대청 안 마족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남폭성조가 배경에 있는 성주부는 남폭호 최대의 세력이었다. 다른 크고 작은 세력도 성주부에게는 감히 대항하지 못했다.

겨우 연허, 화신기의 그들이 성주부의 분노를 사면 어떤 꼴을 당할지는 뻔했다. 광석을 싸게 넘긴 것을 아까워하던 청순한 여인은 겁이나 하얗게 질려갔다.

“그러니 너희도 살아서 남폭호를 빠져나가고 싶으면 욕심 부리지 말거라. 내가 광석들을 외지인을 상대로만 아주 저렴하게 판매한 것은 모두를 위해서다. 이번 거래로 얻게 될 마석은 안전하게 이곳을 벗어나는 대로 각자의 몫으로 나눠주마.”

무우의 말에 다른 마족들도 연신 찬성했다.

* * *

이때 마차에 앉은 한립은 동쪽 성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몇 시진 후, 마차는 성문을 나서 돌무지 길을 달리다 절벽 근처의 무성한 숲에 도착했다.

마차에서 내린 한립은 숲으로 이어진 구불구불한 오솔길을 내려다보았다. 오솔길 옆 거목에는 노란색 목판이 박혀 있었다.

“광원재(廣源齋).”

그는 검은색으로 목판의 상고 문자를 읽고는 걸음을 옮겼다.

숲 속 길을 따라 한참을 굽이굽이 들어갔을 때, 앞쪽에 체격이 좋은 회색장포 노인이 보였다. 붉은 얼굴에 눈이 길게 찢어진 노인은 나무에 기대서 은색 표지의 고서를 읽고 있었다.

한립은 노인을 훑어 화신기 수사라는 것을 파악하고는 그대로 지나쳤다. 그저 그를 지나는 순간 연허기 기운을 내보였을 뿐이었다.

노인은 책에 깊이 빠져든 것처럼 고개를 처박고 있다가 한립이 사라지고서야 살짝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가득했다.

“이렇게 강력한 영기의 압력이라니 결코 평범한 연허기 수사는 아닐 것이다. 광원재에 발을 들일 자격이 있는 분이니 뒤쪽에서도 길을 막을 것 없다. 얼른 통지 해야겠어!”

노인은 중얼거리다 들고 있던 고서를 손끝으로 건드렸다. 그러자 검은 주술문자가 떠올랐다 사라졌다.

노인은 길게 숨을 내쉬고 몸에서 은빛을 터트려 감쪽같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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