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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238화 (995/2,000)

1238화. 반격

*

현천의 검을 봉인한 팔의 암녹색 문양은 사라졌지만 옅은 검의 흔적은 이전보다 또렷해져 있었다.

그는 황금 게의 일격에서 목숨은 건졌지만 원기를 크게 상한 듯했다. 금포인이 그를 발견하고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허공에서 사라졌다.

황금 게는 두 번의 공격이 끝나자 바로 다시 잠에 들지도 공격을 계속하지도 않았다.

한립은 몸을 가누면서도 금포인의 거동을 주시하고 있었기에 허공에서 빙글 돌아 사람 크기의 작은 오색 채봉으로 변신했다. 날개를 펄럭인 오색 채봉은 오색 기운과 함께 사라졌다.

콰쾅!

다음 순간 채봉이 사라진 빈자리를 새까만 거대 주먹 두 개가 강타했다. 검은 기운이 넘길 거리는 가운데 마신(魔神)과 같은 커다랗고 시꺼먼 육체가 나타났다. 검은 비늘로 뒤덮인 인물은 마화를 한 금포인이었다.

몸이 수십 배로 불어나고 검은 비늘로 뒤덮인 금포인의 머리에는 푸른 뿔이 솟아 있어서 한립이 이열변신을 할 때와 엇비슷했다.

금포인은 원기가 크게 상한 한립이 자신의 공격을 피한 것이 의외인지 코웃음을 쳤다.

“채봉으로 변신했다지만, 그 지경이 되고도 허공을 가르고 달아난 것은 노부도 대단하다 인정하지.”

그의 시선 끝에는 황금 게가 있었다. 금포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황금 게 상공에 오색 기운이 번뜩이고 한립이 변한 채봉이 나타났다.

변신을 강행한 탓인지 그의 기운이 또 줄어 있었다.

“귀하의 어투로 보아 마계에서 최상급 존재로 예상됩니다. 마계의 시조 중 육극과 열반 선배만을 만난 적이 없는데 육극은 여인이라 했으니 수사의 신분이 대충 짐작은 갑니다. 합체 후기 수사보다 강할 뿐 아직 대승기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아 열반의 화신에 불과하겠군요.”

“노부 외에 열반성체를 이열변신까지 익힌 자가 있을 줄은 몰랐구나. 게다가 겨우 합체기 수사가 말이지. 성해(聖蟹)의 공격을 두 번이나 받아 중상을 입은 채로 노부의 손에서 빠져나가 수 있을 성 싶더냐?”

말을 마친 금포인의 몸에서 검은빛이 일고 육신이 불가사의한 속도로 커져갔다.

한립은 무표정한 얼굴로 소매 속에서 검은 고리를 꺼내 쥐었다. 서금충이 가득 담긴 영수환이었다. 아직 의식의 힘은 남아 있었으니 서금충 떼와 영충왕 후보들을 부리기에는 충분했다.

발밑의 황금 게만 다시 나서지 않으면 표린수와 더불어 열반 성조 화신과 붙어볼 여력은 남아있었다. 황금 게를 살피던 한립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영수환의 서금충들을 방출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열반 성조가 조화로를 바친 대가로 저를 두 번 공격한 것으로 압니다. 그렇다면 저도 상응하는 물건을 바치면 당신의 도움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 가능합니다. 선인과 마인을 따지지 않고 본 성이 필요로 하는 제물을 바친다면 그 자를 도울 것입니다.”

황금 게는 고민도 없이 답했다. 그 말에 한립은 크게 안심이 되었다. 신비한 병의 녹색 액체가 참천조화로 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시도를 해봐야했다.

그때 아래쪽에서 마화된 금포인이 광소를 터트렸다.

“네까짓 게 무슨 수로 성해(聖蟹)가 원하는 물건을 바치겠느냐! 노부가 네 놈을 죽여 그런 망상을 거두게 해주마!”

마화된 금포인이 한쪽 소매를 털자 한립 앞에 송곳 모양의 검은빛이 나타나 쇄도했다. 그러나 한립은 피하지 않고 삼두육비의 금신을 불러내 앞을 막게 했다.

금신의 여섯 팔이 빠르게 움직여 금빛을 토해냈다.

콰르릉!

금신의 팔이 부르르 떨다 조각나고 검은 송곳도 순간적으로 뒤로 튕겨나갔다. 한립은 명청령안을 일으켜 송곳 모양의 검은빛이 실제로는 팔뚝 크기의 새까만 손톱 절반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나머지 손톱 절반은 다른 방향에서 그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한립 앞의 금신 법상에 금색 기운이 흐르고 여섯 개의 팔이 다시 복구되어 주먹을 날렸다. 금색 주먹 허상들이 보호막을 이루어 검은 손톱을 막아냈다.

그 모습에 얼굴을 굳힌 금포인은 소매 속의 손을 튕겨 다른 손톱들을 쏘아 보냈다. 하지만 그 틈을 타 한립이 손을 뻗어 황금 게를 향해 소리쳤다.

“제물이니 잘 받으시지요!”

비취색 액체 한 방울이 빛구슬을 이루어 쏘아져나갔다.

커다란 눈으로 액체를 본 황금 게가 입을 벌려 금빛 기운으로 그것을 휘감아 삼켰고, 녹색 액체를 음미한 황금 게의 눈이 커졌다.

이때 여러 개의 검은 손톱들이 바람을 가르고 한립을 공격했다.

한립은 녹색 액체를 튕겨낸 동시에 녹색의 영체를 불러냈다. 곡아가 영체를 조종해 녹색 거대 손 허상을 만들어냈지만 딱 보기에도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멀리 금포인이 뼛조각이 잔뜩 박힌 백골 깃발을 꺼내 공격하려는데 한립이 소리를 높였다.

“당장 공격해 주시지요! 저를 도와 열반 성조의 화신을 죽여주시면 됩니다.”

“제물이 요구에 부합하여 세 번의 공격을 하겠습니다. 제1격!”

황금 게가 차분하게 답하며 두 개의 집게발로 마화된 금포인을 바라보았다.

“설마!”

금포인은 황금 게의 말과 행동에 당황해 어쩔 줄을 몰랐다. 그가 봐온 바로는 황금 게, 위선뢰의 위력은 겨우 화신이 맞설 수준이 아니었다.

금포인은 당장 손에 들고 있던 거대 백골 깃발을 투척하고 허공을 박차고 뒤로 물러났다.

파사삭!

그가 자리를 피한 순간, 거대한 금빛 네 개가 사방에서 백골 깃발을 갈라 부숴버렸다.

“제2격!”

황금 게는 전혀 서두르는 기색 없이 이번에는 입을 벌려 금색 빛기둥을 분출했다. 굵은 빛기둥이 한립 마저도 놀랄만한 속도로 뻗어나가 마기의 바람에 몸을 숨긴 금포인을 관통했다.

마기 속 금포인이 참혹한 비명을 지르고 복부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마치 살점과 피가 전부 사라진 듯 텅 빈 구멍이었다.

그러나 이번 공격도 금포인의 생명을 취하기에는 모자란 듯했다. 그는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트리고는 한 손으로 복부의 상처를 쥐고 검은 기운을 뿜었다.

상처를 회복하려는 속셈 같았다. 그런데 구멍에서 금빛이 반짝이고 빛의 입자들이 떠올랐다.

“안 돼!”

금포인이 비명을 질렀지만 빛 입자들이 눈부신 빛과 함께 금색 광선으로 변해 터져나갔다.

파공음이 들릴 때마다 마화된 금포인의 몸에 혈흔이 생겨났다. 결국 금포인은 엄청난 양의 피를 뿌리며 살점 조각으로 변해 떨어져 내렸다. 황금 게는 세 번의 공격을 다 사용하지도 않고 열반 성조 화신을 격살했다.

한립은 영목 신통을 발동해 금포인의 잔해에 잔혼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는 복잡한 시선으로 황금 게를 내려다보았다.

“두 번 공격을 했으니 아직 수사에게는 한 번의 기회가 남아 있습니다. 지금 도움이 필요치 않다면 이후에 나를 찾아와도 되지만, 나는 이곳에만 머무르기 때문에 상대할 자를 뇌해 인근까지 데려와야 합니다.”

“어째서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것입니까?”

“충분한 선령력(仙靈力) 없이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없습니다.”

“선령력이란 것은…….”

“바로 수사가 제공한 제물이 함유한 천지 역량을 이릅니다. 그 중 절반은 공격에 사용하고 남은 것은 보수로 남겨 놓는 것이고요. 본 성은 괴뢰의 몸이라 움직일 때마다 선령력을 소모해야 합니다.”

“당신이 위선뢰라 해도 지능을 지녔으니 응당 ‘수사’라 칭해야 옳겠지요. 제가 조금 전 내어드린 노화로로 수사는 얼마나 활동할 수 있는 것입니까?”

“본 성은 상계에서 제련된 위선뢰로 원주인이 하계에서 뜻밖의 죽임을 당하는 바람에 아주 오래전부터 이곳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부지불식간에 지능이 계발된 것이고요. 당신이 내준 조화로가 정품은 아니지만 그간 이곳에서 보아온 어떤 액체보다 정순한 편에 속했습니다. 정품의 5할의 효과를 내는 위선로 한 방울로 나는 자유롭게 두 달을 활동할 수 있습니다. 물론 강적을 만나거나 전투를 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말입니다.”

황금 게가 눈을 반짝였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항상 잠들어 있어야 하는 것은 충분한 힘이 부족해서군요.”

“그렇기도 하지만 이곳이 이 계면에서 가장 영기가 정순한 지역이라 잠을 자는 동안에는 역량을 소모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언젠가 충분한 선령력을 모으면 다시 상계로 올라갈 날이 올지도 모르지요.”

“수사가 이야기 하는 상계가 진선계를 이르는 것이 맞습니까?”

“하계인들이 진선계 혹은 선계라고 부르는 곳이 맞습니다. 그저 우리 같은 선계인들은 상계라 부르는 것이고요.”

“수사의 주인께서 진선의 존재였기에 수사처럼 강력한 꼭두각시를 지닐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만일 제가 충분한 힘을 제공한다면 한 동안 저를 따라 다닐 수도 있습니까?”

한립이 잠시 생각하다 놀라운 제안을 했다.

“당신을 따라서요? 매월 위조화로(僞造化露)를 한 방울씩 제공할 수 있다면 가능합니다. 하지만 당신을 도와 힘을 쓰길 바란다면 그 보수는 따로 계산해야할 것이에요. 그리고 충분한 힘을 모으면 내가 떠나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됩니다.”

이번에는 황금 게도 심사숙고를 하다 답했다.

“선령력이 충분해 지려면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내부 부품의 손상이 심해 조금 전 위조화로라면 한 달에 한 방울을 연화시키는 것이 고작입니다. 당신이 매달 한 방울씩 줄 수 있다면 대략 천 년이면 되겠군요.”

“천 년! 하하, 그거면 충분합니다. 좋습니다. 매달 위조화로 한 방울을 드릴 테니 그동안 수사께서는 저를 따라 다니시지요.”

“알겠습니다. 하지만 한 달이라도 제물을 내놓지 못하면 계약을 위반한 것으로 간주해 그 자리에서 당신을 죽일 것입니다.”

황금 게가 거침없이 답했다.

“그건……. 알겠습니다. 약속하지요.”

“그렇다면 수사와 임시 계약을 맺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의 대답에 황금 게가 입을 벌리고 암녹색 석판을 분출했다. 한립은 조금 경계했지만 녹색 석판이 그저 가만히 떠있기만 해서 마음을 놓았다.

석판 위에 적힌 반짝이는 은색 문자는 놀랍게도 은과문이었다. 그는 석판 내용이 황금 게와 나눈 이야기와 동일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문제가 없다고 여기면 그 위에 정혈을 뿌리면 됩니다.”

“정혈이면 됩니까? 알겠습니다.”

그 말에 한립은 안심했다. 만일 분혼을 요구하거나 하면 혹시 모를 음모가 있지는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다.

한립이 그 자리에서 정혈을 한 모금 뱉자 석판과 닿은 핏방울들이 정체 모를 핏빛 주술문자로 변해 스며들었다.

웅!

석판이 진동하며 녹색 빛에 감싸여 황금 게의 입 안으로 돌아갔다.

“임시 계약을 맺었으니 앞으로 수사를 따라다니겠습니다. 언제 출발할 예정입니까?”

“하하, 성격이 시원시원하십니다! 괜찮으시면 바로 출발하시지요. 그런데 수사의 지금 모습으로는 먼 여정을 떠나기 어려울 텐데요. 모습을 바꾸실 수 있습니까?”

한립이 황금 게의 방대한 육체를 훑었다.

“몸을 줄이는 거야 간단합니다.”

금빛이 가득한 황금 게의 몸이 신속하게 줄어들더니 빛이 가신 자리에 녹색 도복을 입은 맑은 인상의 청년이 서있었다.

청년은 키가 크고 눈동자가 은은한 금빛이었는데 꼬리가 올라간 두 눈썹만이 암녹색을 띠고 있었다. 젊은이가 무심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변신 후에는 날 ‘해 도인(蟹道人)’이라 부르면 됩니다.”

한립은 의식으로 상대를 살피려다 거부당하고 깜짝 놀라 포권을 했다.

“해 선배님께서 너무 겸손하십니다. 저는 한 씨 성을 쓰는 영계인이니, 잠시 저와 동행하시다 편할 때 떠나시면 됩니다.”

“…….”

해(蟹) 도인은 이렇다 할 대답이 없었다. 그들은 곧바로 각각 푸른색과 금색의 둔광을 일으켜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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