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7화. 거대 게의 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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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는 아직도 그 일에 대해 모르고 있군요.”
보화가 흑포 청년을 향해 묘한 눈빛을 보냈다.
“그게 또 무슨 소리입니까?”
“예전에 저와 열반이 힘을 합쳐 이계의 이종족 대승기 수사를 죽인 적이 있습니다. 그가 지닌 보물이 상당해서 희석한 참천조화로(參天造化露)도 두 방울이나 있었고요. 영왕이 지니고 있던 것보다 강력해 진정한 선로(仙露)의 3분의 1에 상당하는 위력을 낼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공평하게 한 방울씩 나눠가졌는데 저는 진작 써버렸지만 열반은 아직도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진품의 3분의 1의 위력을 내는 위조화로(僞造化露)!”
원염이 경악해 소리쳤다.
“열반 화신이 농염한 위조화로를 지니고 있다면 한 가 녀석을 붙들어 둘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열반이 그걸 깨우지는 않겠지요? 아니지, 깨울 수도 있겠습니다. 직접 인족 녀석을 만나지는 않았지만 우리 면전에서 태연히 섬을 빠져나갔으니 얕보지는 않을 겁니다.”
“알다시피 성계에서 고령도를 없애지 않는 것은 한 가 녀석에게 말한 이유도있지만 그것의 존재를 우려한 까닭도 있습니다. 그렇게 강력한 위선뢰를 깨우려면 전설 속의 보물이 있어야 하는데 마침 참천조화로(參天造化露)도 그 중 하나고요. 한 방울이 진품의 3분의 1의 효과를 내는 위조화로라면 위선뢰가 두 번의 공격을 하게 만들 수도 있겠지요.”
난색을 표한 원염을 보고 보화가 조용히 설명했다.
“인족 녀석이 방심해 현천의 보물로 방어하지 않으면 죽임을 당하기 충분한 일 아닙니까!”
“왜요, 그리도 걱정이 되십니까?”
“흥, 그럼 수사는 그 녀석이 죽기 직전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의식을 폭파시킬까 걱정도 되지 않으십니까?”
“위선뢰가 깨어나면 한 가 녀석은 의식을 자폭시킬 틈도 없을 겁니다. 위험을 깨닫는 순간에는 어찌 살아남을 지에만 온 정신을 쏟겠지요. 손을 쓸 틈도 없이 죽거나 현천의 보물을 써서 살아남을 테니 우리는 기다려보지요.”
보화가 아주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 * *
한립은 뇌해 속을 쾌속으로 지나며 72자루의 푸른 비검과 금색 뇌전 그리고 두 개의 산봉우리를 띄우고 있었다. 그 덕에 홀로 뇌해를 헤치고 나아가는데도 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농 가 노조 등과 진입할 때는 실력을 감춰 둔 탓도 있었지만 세령지에서 육체의 강도와 법력이 크게 상승한 탓도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외해 가장자리에 이르렀고 그의 얼굴에는 희색이 떠올랐다.
그가 체내의 법력을 끌어올려 단번에 뇌해를 벗어나려는데 고공에서 잇달아 떨어지던 벼락이 그치고 뇌전이 불가사의하게 위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맨 눈으로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에 한립은 깜짝 놀라 멈추고 은빛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에 뇌해의 이상한 천기현상이 천천히 걷히고 방대한 물체가 나타나는 것이 포착되었다. 그것은 은색 뇌전들을 휘감은 거대 황금 게였다.
그리고 황금 게 집게 발 위로 금색 장포를 입은 중년인이 나타났다. 은은한 금빛 피부에 녹색 눈을 지닌 중년인은 상대에게 위압감을 주는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한립은 의식으로 상대를 훑고는 진정한 수행을 파악할 수 없자 경계심을 키웠다. 상대의 수행이 자신을 월등히 초월하거나 특수한 신통이나 보물로 수행을 가리고 있다는 소리였다.
거기다 뇌해의 뇌전들이 돌연 사라지고 황금 게가 등장한 것은 더욱 가슴이 서늘해질 일이었다.
“넌 영계인이더냐?”
금포인이 냉랭히 물었다.
“그렇기는 한데 수사께서는 누구신지요?”
“영계 것들은 전부 죽어야 한다!”
한립의 대답에 금포인의 눈빛이 흉악해졌다.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한립이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지만 금포인은 더 이상 대화를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는 금색 병을 꺼내 녹색 액체를 황금 게의 집게발로 떨어트렸다.
“참천조화로!”
한립이 눈을 가늘게 뜨고 액체를 살피다 놀라 중얼거렸다.
“네가 이것을 어찌 아느냐!”
금포인도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이때 황금 게의 몸에서 황금색 문자들이 떠올라 방대한 껍데기를 뒤덮었다. 그리고 작은 눈을 서서히 뜨자 황금색 눈동자가 드러났다.
“나를 깨운 것이 또 열반 수사십니다. 이번에 바친 물건이 제법이니 규칙에 따라 수사를 돕겠습니다.”
황금 게의 거대한 입이 달싹이고 큰 목소리가 하늘을 쩌렁쩌렁 울렸다. 황금 게는 놀랍게도 영성을 가득 지닌 존재였다. 그것을 본 한립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저 영계 녀석을 죽여 주시지요!”
금포인은 거두절미하고 한립을 가리켰다.
“좋습니다. 수사가 바친 선로의 대가로 성공 여부에 상관없이 딱 두 번의 공격을 할 것입니다. 이의 없으십니까?”
상대의 의사를 확인하고는 황금 게의 눈이 한립에게로 향했다. 한립은 순간 모골이 송연해졌다.
“허허, 수사의 실력에 전력을 다한 두 번의 공격이면 평범한 대승기 수사도 죽일 수 있을 겁니다. 어서 공격해 주시지요.”
“알겠습니다.”
황금 게가 즉시 집게발을 들어 올리자 한립은 양쪽에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날카로운 가위 날을 발견했다.
황금 게가 나서면 위력적일 거라 예상했지만 이렇게 빠르고 매서운 공격을 가할 줄은 몰랐다. 심지어 공간 파동도 일지 않고 금색 가위 날이 지척에서 나타나 비술을 펼칠 시간도 없었다.
한립도 즉시 현천의 검을 봉인한 팔을 들어 올려 암녹색 주술문자들을 방출했다. 주술문자들이 검의 형상을 취하고 한쪽의 가위 날을 향해 푸른 검기를 날려 보냈다.
그리고 나머지 금빛 가위 날을 향해서는 자금색 손바닥에서 오색 한염을 분출했다. 한염이 오색 얼음 방패로 변하는 동시에 회색 기운이 체내에서 용솟음쳐 원자신광이 보호막을 이루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입에서 은색 불덩이가 날아갔다.
콰르르릉!
굉음이 울린 후 가위 날이 맞닿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쪽의 금빛이 푸른 검기를 갈랐지만 암녹색 주술 문자로 뒤덮인 팔뚝에 이르러서는 튕겨나갔다.
그리고 나머지 금빛은 오색 얼음 방패, 회색 보호막을 파죽지세로 가르고 은색 빛구슬에서 잠시 머뭇거리다 한립의 허리를 잘라버렸다. 한립의 두 동강난 시체가 피를 뿌리며 떨어져 내렸다.
금빛 속에서 시체가 산산조각 나 핏물로 변해 사방으로 튀기까지 했다.
“하하, 얼마나 대단한 놈인가 했더니 성스러운 게의 일격에 죽고 말았구나! 보화와 원염은 어째서 저 놈을 그냥 보낸 것이야? 못 본 사이에 아주 폐물들이 다 되었어!”
“첫 번째 5성의 힘이 담긴 공격으로 목표를 사살하지 못해 12성의 신통을 개방합니다.”
금포인이 웃음을 터트리자마자 거대 게의 말이 들려왔다.
파앗!
황금 게는 두 집게 발을 번쩍 들어 올려 금색 주술문자를 마구 일으켰고 광풍 속에서 거대 주술문자 구슬이 응결되었다.
구슬의 면적이 커진 것은 물론이고 금빛이 휘황찬란해 제대로 눈도 뜰 수 없을 정도였다.
바로 그때 핏물이 낭자하던 허공에 파동이 일어 푸른 인영이 소리 없이 나타났다. 창백한 얼굴로 금색 주술문자 구슬을 올려다보는 청년은 죽은 줄 알았던 한립이었다.
금포인이 움찔했다가 상황을 파악하고 교활하게 웃었다.
“죽음을 대신하는 보물을 지니고 있었다니 운이 좋았구나. 그러나 다음 공격은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보잘 것 없는 목숨을 조금 더 연명한 것에 불과하겠지.”
한립은 금포인이 뭐라 하던 황금 게의 머리에 떠오른 구슬만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 일격의 절반은 현천의 검의 신통으로 막았지만 나머지는 방어막을 마른 장작처럼 쪼개고 날아들었다.
서둘러 정혈을 격발해 읍령혈목(泣靈血木)으로 제련한 화겁괴뢰(化劫傀儡)를 발동하지 않았으면 죽지는 않았어도 몸이 잘려나갔을 것이다.
그런데 황금 게가 불러낸 거대한 금색 구슬은 이전 공격보다 더욱 강력할 것이 틀림없었다. 한립은 심호흡을 하며 자신의 가장 강력한 필살기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수결을 맺자 금빛 속에서 거대한 금털 원숭이로 변했고 등 뒤로 금색 삼두육비의 범성법상이 등장했다.
거대 원숭이가 자신의 뒤통수를 때리자 팔뚝 절반 크기의 금색 원영이 날아올라 긴장한 얼굴로 주문을 외웠다. 주변에 반짝이는 기운이 몰려들고 진룡, 채봉, 뇌붕 진령 법상이 연달아 모습을 드러냈다.
쿠쿵.
범성법상을 포함한 진령 법상들이 빙글 돌아 원영 속으로 흡수되었고 금빛이 찬란하게 반짝였다.
거원의 육체가 즉시 줄어들어 정상인과 다름없는 체구가 되었지만 금색 비늘 갑옷으로 온몸이 뒤덮이고 머리에는 푸른 뿔이 그리고 미간에는 새까만 요목이 자라났다.
금색 비늘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한립의 얼굴에 금색과 남색 빛줄기가 번득였다.
다음 순간 한립의 어깨에 또 다른 머리가 튀어나오고 어깨 밑으로는 금색의 팔뚝 두 개가 솟아났다. 순식간에 이열변신을 마치고 마화(魔化)를 한 것이다.
“열반성체!”
익숙한 광경에 금포인은 자신의 두 눈을 믿지 못했다.
열반성존의 3대 화신인 그는 고령도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한립이 열반성체를 수련한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립이 그의 본체나 가능한 강력한 신통을 펼치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황금 게는 집게발을 모아 거대 구슬을 쥐고 힘껏 한립을 향해 투척했다. 이에 한립은 현천의 검이 봉인된 팔을 들어 올렸고, 무수히 많은 암녹색 주술문자들이 흘러나와 암녹색 검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검 그림자를 쥔 한립은 날아드는 금색 구슬을 주저 없이 베어냈다. 수행과 시간의 한계로 진정한 현천의 검은 발동할 수는 없었지만 위력의 일부로 형성한 검 그림자에게서 엄청난 기운이 느껴졌다.
후우웅!
주변 하늘이 어둑해지고 천지원기가 뭉친 오색 빛구슬들이 떠올라 암녹색 검 그림자를 향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검 그림자에서 녹색 검기가 빠져나와 천지원기의 주입으로 거대해졌다.
푸른 뇌전들이 휘감은 검기의 기세는 대단했다!
거대 금색 구슬도 거대 검기와 충돌한 순간 천여 개가 넘는 커다란 주술문자 허상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각각이 금빛을 흩뿌리며 빠르게 회전했다.
쿠쾅쾅쾅!
녹색과 금빛이 한립과 거대 게 중간에서 폭발해 파랑이 주변을 휩쓸었다. 허공이 수직으로 갈라진 것처럼 절반은 녹색 검기로 가득하고, 나머지는 금빛 찬란한 주술문자들이 꿈틀거렸다. 그러나 양자 간의 대치는 오래가지 못했다.
주술문자 허상들이 중간에서 응결해 열댓 개의 거대한 금색 문자 허상들을 만들어냈다. 각각이 떨어질 때마다 천지법칙이 느껴졌다.
극심하게 떨리던 푸른 하늘은 여덟 번째 금색 문자 허상에 당하고는 철저히 붕괴되기 시작했다. 그 뒤에 있던 한립은 안색이 급변해 암녹색 검 그림자가 갈라지는 것도 무시하고 네 개의 팔을 뻗었다.
네 개의 금색 주먹 허상이 날아가 허물어지는 푸른빛을 받쳤고 간신히 금빛과 균형을 이루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순간이었다.
남은 거대 주술문자 허상이 호되게 푸른 하늘을 내리치자 금색 주먹 허상마저 부서져 버렸다.
금빛이 거침없이 한립을 향해 들이닥쳤지만 그 사이 그는 이미 허공을 굴러 거대 붕새로 변한 지 오래였다. 거대 붕새가 금은색의 빛의 실로 변해 허공을 가르자 금빛은 한립이 있던 자리를 뒤덮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이 금빛으로 물들었다.
황금 게가 힘껏 숨을 들이마셔 엄청난 양의 금빛을 회수하고서야 하늘이 다시 맑아졌다. 이때 금포인은 황금 게의 상공에서 주위를 둘러보는 중이었다.
멀리서 공간 파동이 일었다.
“컥!”
누군가 휘청거리며 금빛에서 튀어나왔다. 열반성체를 거둔 한립이었다. 그는 핏기 하나 없는 얼굴로 푸른 장포는 넝마가 돼 있었고 피부에는 타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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