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4화. 정령련(淨靈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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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성체의 삼열변신은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진령에 버금가는 힘을 낼 수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처음 깨어났을 때는 그렇게까지 강하지 않았는데 어찌된 것입니까?”
“이상하게 생각할 일도 아닙니다. 진짜 그것의 실력이 이게 다라고 여기는 것은 아니겠지요? 봉인의 힘이 약해질수록 그것도 진정한 힘을 회복해 가고 있습니다. 다음번에 깨어났을 때는 상계 진선에 맞먹는 실력을 발휘할지도 모르지요.
그것이 수많은 자손들을 데리고 봉인의 땅을 벗어나면 무서운 속도로 번식해 성계를 잠식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영기든 마기든 죄다 먹어 치우는 통에 얼마나 많은 계면이 그것들의 손에 멸망했냐 이 말입니다. 상고 시대 때 선계에서 사람을 보내 그것을 봉인해두었지만 세월이 흘러 봉인이 느슨해졌습니다.
그러니 일이 터져 성족들의 터전이 발붙일 곳 없이 사라지기 전에 영계에 기반을 마련하려는 것 아닙니까. 혼란을 막기 위해 시조들과 소수의 성조들만이 알고 있지만 오래지 않아 모두가 알게 될 겁니다.”
흑포 청년은 착잡한 표정이었다.
“지금까지 정보가 새어나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입니다. 게다가 수사와 뜻을 같이 하지 않는 자들도 있을 텐데요?”
“그렇기는 합니다. 수존전을 지지하는 것들도 있고요.”
원염 성조는 코웃음을 치며 가볍게 말했다.
“오, 그것 참 신기한 일입니다. 열반은 요양 중이라도 수사와 육극이 있는데 그런 것들을 지금까지 내버려 두었다는 말입니까? 언제부터 그리 우유부단해 지셨는지 모르겠군요.”
“다른 성조였다면 저와 육극이 진작 제압했을 겁니다! 하지만 수존전을 지지하는 성조들 중에는 천읍과 학안도 있습니다. 수사와 당시 성조 자리를 놓고 다투었던 자들이니 그들의 실력은 이미 알고 계시겠지요? 저와 육극도 굳이 정면대결을 하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천읍과 학안!”
그들의 이름에 보화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그것을 본 원염성조가 나지막이 웃음을 흘렸다.
* * *
그 시각 한립은 방원형의 작은 공간 속에 떠서 직경이 백 장에 이르는 연못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도처에는 거목들이 자라나 있었고, 연못가에는 이름 모를 관목과 다양한 화초가 거목 주변에 자라며 은은하게 오색 기운을 분출했다.
또한 허공에는 오색 빛구슬들이 둥둥 떠다녀서 선경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한립이 내려다보는 연못의 수면은 은빛으로 반짝였고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은색 수면을 살피다 꽤나 놀랐다. 연못은 정순한 영력이 농축해 있는 것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한 힘들이 섞여 있었다. 세령지가 환골탈태의 효과를 지니는 이유는 바로 이 신비한 힘 덕분이었다.
‘그런데 정령련(淨靈蓮)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연못을 꼼꼼히 살폈지만 연못 위에는 아무 것도 떠다니지 않았다.
“설마 연못 아래에!”
그는 의식으로 연못 안을 탐색하려다 수면 위의 이름 모를 힘에 의해 밀려났다. 침음하던 한립이 눈동자에 눈부신 남색빛을 번득였다.
그러나 전신의 영력을 다 쏟아 명청령안을 발동해도 하얀빛에 막혀 연못 깊숙이까지는 알 수 없엇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차분하게 소매 속에서 푸른빛을 불러냈다. 푸른빛 속에서 사람 크기의 청동 늑대 괴뢰가 나타났다. 한립은 늑대 꼭두각시의 미간을 손끝으로 가리켰다.
파앗!
손끝에서 분출된 하얀빛은 모호하게 한립의 형상을 띠고는 늑대 괴뢰의 몸 속으로 스며들었다.
“가라.”
그의 명에 늑대 괴리가 낮게 으르렁 거리더니 푸른 둔광으로 변해 연못으로 뛰어들었다.
퐁당!
작은 파문이 일고 은색 수면은 다시 잔잔하게 변했다.
한립은 뒷짐을 쥐고 허공에서 소식을 기다렸다. 그의 의식을 품은 늑대 꼭두각시가 그를 대신해 연못 안을 살폈다.
은색 연못의 물은 보던 것보다 더욱 진득했고 늑대 괴뢰는 얼마 내려가지 못하고 곳곳에서 괴이한 압력을 느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져갔다.
꼭두각시의 몸에서 수시로 빠드득 거리는 소리가 나 언제든 압력을 견디지 못해 폭발할 듯했다.
그러나 주변을 살펴도 역시 은색 물 말고는 아무것도 감지할 수 없었다.
이에 한립은 미간을 좁혔다.
늑대 괴뢰는 네 다리를 움직여 약간 떠오른 다음 연못을 천천히 헤엄쳤다.
속도가 빠르지는 않았지만 연못이 넓지 않아 일다경 만에 연못 전체를 돌아볼 수 있었다.
쉭!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한 한립은 늑대 괴뢰를 불러들였다. 의식을 회수에 몸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소매 속에 넣어두었다.
웽웽!
이번에 그는 새까만 영수환을 꺼내 수백 마리의 커다란 딱정벌레들을 불러냈다. 금색의 딱딱한 몸에 날카로운 이를 드러낸 성체 서금충들이었다.
한립은 한 손으로 수결을 맺어 미간에서 하얀빛을 반짝였다.
쉬익!
백여 가닥의 반짝이는 실들이 그의 미간을 빠져나와 금색 영충들 속으로 스며들었다. 이후 수백 마리의 딱정벌레들은 일사분란하게 연못 속으로 뛰어들어 빠른 속도로 깊은 물속으로 들어갔다.
서금충의 단단한 몸과 괴력이면 연못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잠시 후 수백 마리 서금충들이 깊은 물속으로 내려갔지만 아직도 호수 밑바닥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상한 느낌에 한립이 서금충왕 후보들을 내려 보낼까 고민하는데 열장 깊이까지 도달한 서금충에게서 희소식이 들려왔다. 드디어 하얀 모래와 자갈이 깔린 땅이 보인다는 것이다.
한립은 기뻐하며 서금충으로 하여금 각기 다른 방향으로 수색하게 했고 연못 구석에서 총 7개의 연꽃을 발견했다.
그 중 3개는 아직 주먹 크기의 꽃봉오리였고 2개는 꽃잎이 절반 정도 피어났으며 단 한 송이만이 활짝 피어있었다.
아직 피지 않은 연꽃들은 평범한 옅은 노란색을 띄었지만 활짝 핀 연꽃은 살아 있는 사람처럼 혈맥이 흘러 기이하기 짝이 없었다.
‘정령련(淨靈蓮)!’
한립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세령지(洗靈池)와 정령련(淨靈蓮)에 관한 자료는 영계에서는 거의 찾아 볼 수 없었지만 마계에 오기 전 대략적인 내용은 파악해 두었다.
그가 알고 있는 바에 따르면 정령련은 세령지에서만 탄생할 뿐만 아니라 완전히 개화하기 전에는 평범한 영초와 다름없다고 했다.
그러나 일단 활짝 피어나면 그 상태가 천 년을 지속되다 점점 연못과 동화되어 정순한 영기로 돌아가게 되고, 다시 꽃이 피려면 수천 년을 기다려야 했다.
세령지(洗靈池)에 직접 오기 전에는 농 가 노조 등도 활짝 핀 정령련을 찾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어 운이 좋아 한 두 송이를 얻게 되면 각자 꽃잎 두세 개씩을 나누어 가질 심산이었다.
이제 다른 일행들은 변고를 당해 아무도 없으니 정령련 한 송이는 온전히 그의 몫이었다. 한립은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서금충들을 시켜 연못의 구석구석을 돌아보게 했다.
그러나 정령련 외에 다른 영약은 찾을 수 없었다.
세령지의 물은 굉장한 압력을 지녀서 평범한 영초는 그 안에서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력이 너무 과해 평범한 영약의 종자는 우연히 연못물에 들어간다고 해도 터져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연못 바닥에 가라앉은 서금충들이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서둘러 영충에 심어 놓은 의식과 연계해 의식을 움직였다.
웽!
서금충 한 마리가 마지못해 수면 위로 떠올라 그에게 날아들었다. 자세히 보니 큰 변화는 아니었지만 기운이 조금 변했다. 단순히 기운이 강해지고 약해지고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체질이 변한 것이다.
한립은 명청령안을 발동하고는 눈에 이채를 띄었다. 영충들의 금색 껍데기 위에 눈으로는 구분하기 어려운 하얀 실 같은 것이 어려 있었다. 그는 재빨리 머리를 굴리고 영충환에서 서금충 한 마리를 손바닥 위에 불러냈다.
역시 영충환 속의 서금충의 껍데기는 매끈하고 하얀 실이 없었지만 세령지에 들어갔다 나온 서금충은 달라져 있었다.
의심할 여지없이 세령지가 성체 서금충을 다시 변이시킨 것이다. 그저 이번 변화가 영충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한립은 기뻐하는 기색 없이 연못 속의 서금충들을 소환해 거두었다. 서금충의 변이는 분명 연못의 신비한 힘을 흡수한 결과일 테니 그가 연못에 몸을 담그기 전까지는 신비한 힘을 되도록 많이 남겨 놓아야 했다.
아무리 서금충의 위력이 강해도 그가 대승기에 이르지 않고서는 의미 없는 일이었다. 한립은 생각을 마치고 다른 영수환에서 금색의 표린수를 불러냈다.
“누군가 침입할 가능성은 적지만 만일을 위해 네가 호법을 서줘야겠다. 만일의 상황이 생기면 전력을 다해 막도록.”
“최선을 다할 테니 안심하세요. 주인님!”
작은 여자 아이는 명랑한 어투로 답하고 잔영으로 변해 사라졌다. 한립은 고개를 끄덕였고 몸에서 즉시 녹색 인영이 빠져나왔다. 그와 똑같이 생긴 용모에 푸른 장포를 걸친 지선 영체였다.
이어 그는 뒤통수를 때려 새까만 원영을 불러냈다. 바로 그의 제2마영이었다. 마영이 영체 속으로 들어가자 눈을 감고 있던 영체가 눈을 번쩍 뜨며 미소를 머금었다.
녹색 눈을 번득인 영체는 바로 인근의 수풀로 뛰어들었다.
우웅-
게다가 한립은 진법 깃발과 원반들을 잔뜩 꺼내 연못 주변에 현묘한 임시 진법을 세 개나 펼쳤다. 혹시 마계 시조들이 기습할 것을 준비해 대비한 것이다.
표린수와 마영이 조종하는 영체의 힘으로 성조급 수사를 막을 수는 없어도 시간은 끌 수 있을 것이다.
퐁당!
한립은 푸른 보호막을 일으킨 채 천천히 연못에 몸을 담갔다. 몸이 가라앉을수록 수중의 압력이 점차 거세져 푸른 보호막에 미세한 변형이 생겼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바로 활짝 핀 정령련이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그는 보호막 속에서 연꽃을 바라보다 옥함을 꺼내들고 한 손을 뻗었다.
휘릭!
푸른 실이 쏘아져나가 연꽃 줄기를 가볍게 휘감자 커다란 살색 연꽃이 떨어져 나왔다. 연꽃은 빠르게 떠올랐지만 미리 준비하고 있던 한립은 옥함을 들어 금빛 기운을 뿜어냈다.
금빛이 연꽃을 끌어오자 옥함 뚜껑이 닫혔다. 드디어 정령련을 손에 넣은 것이다.
그러나 한립은 정령련을 바로 복용하지 않고 세령지에 몸을 씻은 다음 연못물과 함께 복용할 예정이었다. 그는 옥함을 저물탁에 넣고 두 손으로 수결을 맺었다.
콰릉!
천둥소리가 울리고 금색 뇌전은 온몸을 휘감아 입고 있던 장포를 재로 만들었다. 그는 이제 맨몸으로 물속에 떠있었다.
투명하게 빛나는 피부에 상아빛 광택이 흘렀다. 그가 보호막을 향해 두 팔을 뻗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보호막이 터져나갔다. 주위의 은색 물들이 그에게 밀려들어 그를 감쌌다.
한립은 어쩔 수 없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연못물이 피부에 닿는 순간 정순한 영력이 모공을 타고 경맥으로 세차게 흘러들었다. 그 맹렬함은 그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는 정신을 집중하고 범성진마공을 운용해 미친 듯이 밀려드는 기운으로 운공을 했다. 기운이 소주천을 돌때마다 경맥의 영력이 그의 법력으로 바뀌고 있었다.
법력이 늘어나는 속도가 신비한 수정 구슬보다는 못했지만 굉장히 빨랐다. 이렇게 3일 내내 영력을 흡수한다면 법력이 크게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법력의 증가는 부차적인 요소였고 가장 중요한 것은 세령지의 신비한 힘이 그의 몸에 가져올 변화였다. 그 변화야 말로 그를 대승기로 이끌어 줄 테니 말이다!
영력의 빠른 유입과 함께 그는 경맥 곳곳에서 미약한 간지럼을 느꼈고 물에 닿은 피부는 껍질이 벗겨진 것처럼 따끔거렸다. 그는 눈을 감고 연못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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