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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233화 (990/2,000)

1233화. 마계 대겁(大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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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립은 그림과 설명을 기억 속에 새겨두고 다음 문장으로 넘어갔다.

‘태허묘령단(太虛妙靈丹), 합체기 수행을 지닌 자가 복용하면 합체기 고비를 넘길 확률을 높여 주고 합체 후기 혹은 대승기 수사가 복용하면 대승기 고비에 효과가 있다. 세령지에 들어가 정령련을 복용하기 전에 한 알을 복용하면 절반의 확률로 이후의 폐해를 해소할 수 있다? ……태허묘령단이라면, 허령단!’

속으로 태허묘령단이라는 단어를 곱씹던 한립이 번뜩 허령단을 떠올렸다. 그림에 그려진 영단은 그가 광한계 금지에서 얻은 허령단과 꼭 닮아 있었다.

그는 이 단약을 위해 뇌명대륙 합체기 수사들과도 얼굴을 붉힐 뻔했다. 꾀를 써서 한 알을 남겨 놓았지만 지금까지 정확한 용도를 몰라 소중히 보관만 해왔다.

옥간의 그림과 설명을 보니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 합체 후기 수사가 대승기에 이를 때도 효과가 있다니 뇌명대륙 합체기 수사들이 단약을 보고 달려들 만 했다.

그는 옥간에서 의식을 불러들이고 곰곰이 상황을 따져보았다.

‘대승기에 이를 가능성은 1할. 실패해도 후환이 없을 가능성이 다시 5할.’

보화가 그의 표정을 살피고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얼마 후 눈을 뜬 한립은 백의 여인을 향해 또박또박 말했다.

“세령지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선배님께서 원하시는 물건은 세령지에서 나온 후에 바치지요!”

그는 여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원염을 향해서도 말했다.

“원염 선배님께서도 제가 세령지에 들어가 정령련을 찾아 복용하는 것을 막지 않으신다면 똑같이 연마초를 내드릴 것입니다! 두 분이 모두 이 조건에 동의하지 않으시면 두 영약을 이 자리에서 없애고 그 후로는 전력을 다해 대항할 것입니다. 어디, 두 분께서 저를 이곳에 영원히 붙들어 둘 수 있는지 지켜보지요.”

한립의 위협에 원염의 안색이 조금 굳었다.

“섬 안에서는 충만한 영기의 도움으로 열반성체를 이용해 버티겠지만 영원히 이곳을 떠나지 않을 셈이냐. 뇌해에서 벗어난 순간 넌 독 안에 든 쥐다.”

“고령도를 떠나면 두 분의 적수가 되지 못할 것을 압니다. 그러니 영기가 충만한 이곳에서 한 만여 년쯤 수련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저희 같은 수사들에게 그리 긴 시간도 아니지 않습니까?”

예상했다는 듯 한립의 답변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내가 열을 받아 뇌해 바깥에 강력한 진법을 설치해 섬 자체를 성계에서 지워버린다면?”

“제가 아주 위험해 지겠지요. 하지만 선배님도 그런 방법으로는 연마초를 절대 가져가실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무슨 일을 당하기 전에 이것부터 없애버릴 테니까요.”

“뭐라!”

도발에 넘어간 원염 성조가 버럭 화를 내려는데 보화성조가 싱긋 웃고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원염 수사, 괜한 이야기로 시간 끌지 말지요! 저는 한 수사가 지닌 영약이 꼭 필요하고 수사도 연마초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한 수사의 원대로 해주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닙니다. 1할의 가능성이니 그리 높지도 않고 영계에 대승기 수사가 하나 더 늘어난다 해도 크게 신경 쓸 일도 아니고요.”

“맞는 말씀이기는 합니다. 성족이 영계에서 거사를 진행 중이기는 하지만 새로 대승기에 진입한 수사 하나가 상황을 좌지우지할 수는 없으니까요. 게다가 녀석의 경지가 아직 합체 후기 최고봉에 이르지 않아 대승기 이르는 것이 언제가 될 지도 모를 일입니다. ……좋다, 본 좌도 제안을 수락하지.”

보화의 조언에 원염이 고민하다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두 분 다 옳은 판단을 하셨습니다. 두 영약은 제게는 큰 쓸모가 없는 물건들이니 세령지에서 나오는 대로 반드시 내어드리겠습니다. 허나 그전에 두 분이 심마를 걸고 맹세를 해주셨으면 좋겠군요. 제가 안전하게 마계를 떠나기 전까지 어떤 방법으로든 저를 건들지 않겠다고요.”

“욕심이 끝도 없군! 합체기 수사가 감히 본 좌에게 심마를 걸고 맹세할 것을 요구해!”

“맹세는 쉽게 답할 문제가 아닐세. 우리에게 그런 요구를 하려면 자네도 영약의 절반을 주고 세령지에 들어가야 할 것이야.”

원염 성조는 참고 있던 화를 쏟아냈고 보화는 덤덤하게 조건을 걸었다.

“그건 제가 안 됩니다. 두 분께서 필요로 하는 영약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는데 무턱대고 절반을 드리면 그야 말로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격이 아니겠는지요!”

“자네가 위험을 무릅쓰기를 원치 않으니 나와 원염 수사도 심마에 맹세할 마음이 없네. 이곳을 벗어나 거꾸로 자네가 무슨 짓을 벌일 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허나 이 일로 앞으로 자네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겠다고 약속하지.”

“나 역시 마찬가지다. 연마초만 내어주면 절대 먼저 너를 건드리는 일은 없을 것이야.”

보화 성조의 말에 원염 성조도 동의했다.

“두 분이 심마에 맹세하실 수 없다면 저도 강요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럼 제가 세령지에 들어갔다 나오면 약속대로 영약을 드리는 것으로 하지요. 만일 그 후에도 저를 떠나지 못하게 하신다면 실력으로 이야기 나누시지요.”

한립은 전신에서 금빛을 뿜어 두 번째 머리와 두 개의 팔을 없앴다. 이열변신을 풀었지만 경계심은 높아져 조용히 뒤쪽으로 물러나 성조들과 거리를 벌리고 연못을 쳐다보았다.

보화가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세령지는 섬 지하의 신비한 공간 속에 있고 이 진법이 그곳으로 통하는 유일한 입구일세. 진법 가운데 서기만 하면 전송이 이뤄질 것이야. 그곳은 영계보다 영기가 정순해 하루에 평범한 수사들의 1년 수련에 맞먹는 성과를 얻을 수 있네만, 그만큼 공간이 외부에서 들어온 생령들을 배척하지. 당부하건데 수사의 수행이면 3일이 한계일 것이야. 기한을 넘기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네.”

“흥, 그 공간은 우리 같은 마족은 더욱 심하게 배척해서 우리는 들어갈 수도 없다. 그렇지만 않으면 내가 직접 네 녀석을 안까지 데려다 줄 수도 있는데 말이야.”

웃음을 흘리는 원염 성조의 얼굴에서 호의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 말은 두 분도 실제로 들어가 본적은 없다는 말씀이군요?”

한립은 그의 악의적인 농담에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반문했다.

“성족이 이곳을 지킨 지 오랜 세월이 흘렀네만 성족에 속하는 자가 들어간 경우는 한 번도 없었네.”

“그렇군요.”

한립은 곧바로 백의 여인에게 포권을 하고 연못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신중한 그의 성격에 보화의 말을 전적으로 믿지 않았기에 진법 저공에서 또 하나의 그림자가 나타나 먼저 주술문자와 문양을 살폈다.

족히 일다경이 지나 또 하나의 신형을 거둬들인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진법에 내려섰다.

우웅-!

그의 발이 닿자마자 전송이 시작되었다. 오색 빛기둥이 치솟고 공간파동이 퍼져나갔다. 한립이 자취를 감추고 오색 기둥도 흩어졌다.

그러나 보화와 원염은 처음 보는 광경이 아닌 듯 별 반응이 없었다.

“보화 수사, 정말 저 녀석을 보내줄 생각입니까? 현천의 보물을 지녀서 합체기 수행으로도 우리와 대적했던 놈입니다. 만에 하나 정말 대승기에 이르면 평범한 성계의 성조는 상대가 되지 않을 거라고요.”

“그거야 수사와 같은 시조들이 고려할 문제 아니던가요? 저는 오래전 시조의 직위에서 내려와 그저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할 뿐입니다. 어쨌든 저는 영약을 얻는 대로 바로 성계를 떠날 예정입니다.

한 마디 충고하자면, 열반성체에 현천의 보물까지 지닌 인족 녀석이 수사를 이길 수는 없어도 달아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겁니다. 게다가 저 여유로운 태도를 보세요. 아직 비장의 수를 남겨 두고 있다면 도리어 수사가 화를 당할 수도 있을 겁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한단 말입니까?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많이 변하셨습니다. 우리들 중 성족의 일을 가장 걱정하던 분이 아니셨습니까. 설마 성계의 대겁도 나 몰라라 하지는 않겠지요?”

“그랬지요! 그 당시에도 대겁의 일로 노심초사를 하다 육극의 간계에 당했던 것이고요. 이제 와서 제가 걱정할 게 무엇입니까? 그런데 상황을 보아하니 예전에 제가 포기했던 계획을 시행중이더군요. 영계의 영토를 강제로 점령해 천천히 마화시키는 것 말입니다.”

보화가 서늘해진 얼굴로 냉랭히 답했다.

“큼, 원래 더 온당한 방법을 쓰려 했으나 육극이 수사의 자리를 대신하고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어쩔 수 없이 영계 침략을 기회삼아 가장 빠른 수단을 쓸 수밖에 없어졌지요.”

원염 성조가 헛기침을 했다.

“그마저도 그리 잘 진행되는 것 같지 않던걸요? 인족과 다른 인근 종족의 영토도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은 상황 아닙니까.”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여러 종족의 대승기 수사들이 연합하고 외부의 지원까지 불러들여 일시적으로 대치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우리가 진신으로 영계에 강림하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겁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들을 그리 만만히 보아서는 안 됩니다. 영계에서 인족과 요족은 보잘 것 없는 존재지만 그들이 배출한 역대 대승기 수사들은 누구 하나 단순한 인물이 없었어요. 성족의 침략에 몇 년째 대항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지요.

게다가 영족의 늙은이는 더더욱 보통의 대승기 수사가 아닙니다. 줄곧 역대 영왕이 사실은 동일 인물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었는데 진선계와도 뭔가 관계가 있는 것 같더군요. 그렇지 않고서야 약소 종족의 대승기 수사가 위선뢰를 지니고 있을 리 있겠습니까!”

백의 여인은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

“그건 우리도 고려했던 사항입니다. 그들의 배후에 누가 있든 우리 성족에게 대항하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입니다. 영계의 다른 초대형 종족의 이목을 신경 쓰지 않았다면 진작 그들을 박살내놓았을 겁니다.

그리고 그들이 설마 선계와 연관이 있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우리 성족도 상계에 기댈 곳이 없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또한 선계의 규칙에 따라 몇 가지 금기를 위반하지만 않으면 계면 하나가 멸망해도 상계는 그리 신경 쓰지 않을 텐데 무엇이 그리 걱정이십니까?”

원염 성조는 여전히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이었다.

“그리 생각한다면 못 들은 걸로 하시면 그만입니다. 다만 이곳에 오기 전 봉인을 해둔 곳에 다녀왔는데 멀리서 봐도 봉인의 틈이 몇 배로 커져 있더군요. 안에서 빠져나오는 녀석들의 실력도 이전보다 훨씬 강해져서 두 차례의 전투를 지켜보는 동안에도 마존 한 명과 열댓 명의 연허기 고계 수사가 목숨을 잃었고 일반 병사들은 셀 수 없을 만큼 죽어 나갔습니다. 이상한 일은 두 전투 모두 열반 수사는 보이지 않고 육극의 화신 중 하나만 나서던데요?”

“설마 그곳의 육극 화신에게 손을 쓴 것입니까?”

“그럴 리가요. 이제 시조의 신분은 아니지만 아직 성족의 일원입니다. 봉인의 땅은 대겁이 폭발한 곳인데 어찌 그곳에서 경솔한 행동을 하겠습니까. 허나 육극의 본체가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겠지요. 어찌 됐든 저도 수사께서 언급한 성족의 위기가 그냥 해본 말은 아니란 것은 알고 있습니다.”

“흥, 지금이 어느 때인데 말장난을 하겠습니까.”

보화가 그를 떠보자 흑포 청년이 눈을 부라렸다.

“그런데 ‘그것’이 돌연 깨어나 봉인을 뚫고 나올까 걱정도 안 되시나 봅니다. 봉인이 있다지만 겨우 육극의 화신만으론 상대도 안 될 텐데요.”

“뒤늦은 우려입니다. 그것의 본체는 벌써 6천 년 전에 두 번째로 깨어났고 처음 깨어났을 때보다 훨씬 무서운 위력을 보여주었으니까요.”

흑포 청년이 머뭇거리다 쓴웃음을 지으며 털어놓았다.

“6천 년 전에요? 예상보다 너무 이른 것 아닙니까.”

보화도 안색이 달라지며 눈에 두려운 기색이 어렸다.

“당시 저와 육극 수사가 소식을 듣고 달려갔을 때는 열반 수사가 삼열변신(三涅變身)을 발동해 그것과 양패구상한 후였습니다. 어렵사리 그것을 격퇴시켰지만 열반 수사도 원기가 크게 상해 모든 화신들을 회수한 채 반수면 상태로 들어가고 말았지요.

저도 안심이 되지 않아 분신을 봉인 내부로 들여보내 그것 역시 축적한 힘을 거의 다 소모해 깊은 잠에 빠진 것을 확인했습니다. 본체가 직접 나오지 않는 한 봉인을 뚫고 나오는 것들은 그것의 자손들일 테니 육극의 화신만으로도 충분히 방어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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