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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226화 (983/2,000)
  • 1226화. 원염 시조

    *

    네다섯 배로 커진 농 가 노조가 도끼를 단단히 쥐자 도끼 역시 커다랗게 변했다. 농 가 노조는 멀리 구슬이 떠있는 산봉우리를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쿠콰쾅!

    엄청난 폭음이 귀청을 때렸다. 도끼에서 금빛이 날아가 거대한 도끼 허상을 만들어 그대로 산봉우리를 갈랐다.

    산봉우리 위로 금색 빛무리가 떠올랐고 강력한 파랑이 일어 인근의 다른 산봉우리들이 재로 변해 사라졌다.

    그런데 놀랍게도 파동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산봉우리들 뒤로 두 개의 높다란 비취색 봉우리가 나타났다. 두 산봉우리 사이로 녹색 빛의 장막이 펼쳐진 산골짜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멀리서 보니 산골짜기에서 굵은 은색 빛기둥이 허공으로 솟아오르는 중이었다.

    “영소천주(靈霄天柱)입니다! 세령지는 틀림없이 이곳에 있어요!”

    은색 빛기둥을 본 농 가 노조가 광소를 터트리고 기다란 빛줄기로 변해 쏘아져나갔다. 휘 장로도 웃음 가득한 얼굴로 그 뒤를 쫓았다.

    그것을 본 천추 성녀는 얼굴을 굳히고 소매 속에서 슬쩍 기괴한 수결을 맺었다. 그러자 그녀 뒤에 서있던 지수의 눈에 돌연 광채가 돌고 창백한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곧 천추성녀의 귓가에 백척의 냉랭한 말소리가 울렸다. 그의 전음에 놀란 그녀는 수결을 풀었고 영족 청년도 원래의 얼굴로 돌아갔다.

    일을 마친 천추 성녀는 무언가를 감지하고 고개를 돌렸다. 한립이 뒷짐을 쥐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천추 성녀가 소스라치게 놀라 무어라 변명을 하려는데 백척이 옆에서 입을 열었다.

    “한 형께서는 안 가십니까? 농 수사가 먼저 보물을 취할까 걱정도 되지 않으시나 봅니다.”

    “하하, 전혀 걱정하지 않습니다. 세령지를 찾는다 해도 그리 쉽게 들어갈 수는 없을 테고요.”

    한립은 웃는 듯 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도 어서 가서 농 형을 도와 보물을 취할까요? 어쨌든 이곳도 마계인데 한시라도 빨리 목적을 이루고 돌아가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엽 수사가 웃음 지었다.

    “물론입니다. 세령지에 들어가고 싶다면 앞으로도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여야겠지요.”

    백척은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천추 성녀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한 순간에 영족 수사들의 우두머리가 성녀에서 백척으로 바뀐 듯 했다.

    그들은 둔광을 일으켜 산골짜기로 날아갔고 금방 녹색 빛의 장막 속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한립의 예상과 달리 녹색 빛의 장막은 그들을 막아서지 않았다.

    내부로 들어선 순간, 눈앞이 밝아진 한립은 오색(五色) 빛의 점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알록달록한 세상과 마주했다.

    그가 안색이 변해 손을 뻗어 빛 알갱이들을 끌어와 살폈다. 콩알만 하게 응결된 오색 수정들이었다. 수정에서 정순한 영기가 흘러나와 그의 몸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이건 영기정화(靈氣晶化)? 천지영기가 다른 곳보다 열 배 이상 정순하구나!”

    그도 이번만은 놀란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이때 일행이 산골짜기 중간에 위치한 비취색 연못으로 모여들었다. 오색 빛 알갱이들이 다른 곳보다 조밀하게 모여 있는 연못가에서 농 가 노조와 휘 장로가 얼굴을 굳히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저것이 세령지?’

    * * *

    같은 시각, 산골짜기에서 조금 떨어진 또 다른 산 속. 하얀 치마를 입은 절색의 여인이 청석 바위에 앉아 산골짜기 방향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눈동자에서 신비로운 은빛이 반짝이는 여인 뒤로 흑갑 거한이 손을 모으고 서있었다.

    “대인, 저들이 이미 연못에 이르렀는데도 처리하지 않으십니까?”

    흑갑 거한이 산골짜기로 진입한 한립 일행을 보고 눈을 굴렸다.

    “급할 것 없네. 내가 아니라도 저들을 막을 자가 곧 도착할 것이야.”

    “예? 또 누가 옵니까?”

    “내가 이번에 위험을 무릅쓰고 성계로 온 이유는 예전의 법력을 회복하기 위해서지만 이 자를 만나볼 생각도 있었네.”

    백의(白衣) 여인이 가볍게 웃음 짓는데 주변 공기가 팽팽하게 당겨진 것처럼 응결되었다. 흑갑 사내는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여인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감지하고 더는 입을 나불거리지 않았다.

    잠시 후 여인의 주변 공기는 정상으로 돌아갔다.

    파앗.

    그녀가 손끝으로 허공을 긋자 이상한 액체가 떠올라 거울로 굳어져 무언가를 비춰주었다.

    뇌해 바깥에 파문이 일고 거대한 검은 빛덩이가 등장했는데 그 안에 삼두 교룡이 떠있었다. 광채가 도는 검은 비늘을 지닌 교룡은 세 머리만 해도 누각처럼 커다랗고 몸에서 검은 마염이 어른거렸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 흉악한 마룡의 중간 머리 위에 맨발의 흑포 청년이 서있다는 것이었다. 은은한 보라색 눈동자를 지닌 청년은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눈빛은 무척 매서웠다.

    청년은 벼락들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뇌해를 보고는 냉소하며 한 손을 들어올렸다. 검은 주술문자들이 흘러나와 검은 장창으로 변했다.

    검은 창에 새까만 주술문자와 문양이 가득해 보기만 해도 위압감이 느껴지는 보물이었다. 청년은 가볍게 창끝으로 뇌해를 가리켰다.

    촤르륵!

    창끝에서 검은 천이 빠져나와 뇌해 속으로 파고들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검은 천이 가는 곳마다 벼락이 왜곡되어 뇌해 속에 통로가 뚫리고 있었다. 강대한 힘에 의해 무수히 많은 뇌전들이 통로 바깥으로 밀려났다.

    푸쉭!

    손바닥을 뒤집어 검은 창을 다시 주술문자로 되돌린 청년은 교룡 머리를 지그시 밟았다. 그가 막 뇌해 속으로 들여가려다 갑자기 안색이 달라지며 보랏빛이 반짝이는 눈으로 어딘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감히 누가 본 성조를 염탐하는 것이냐!”

    무형의 파동이 공간을 넘어 거울 속에 나타났고 쨍! 하는 소리와 함께 거울이 터져나갔다. 흑갑 거한이 겁을 먹고 창백한 얼굴로 눈치를 보다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원염, 원염 시조가 아닙니까? 설마 대인께서 기다리시는 분이 원염시조셨습니까!”

    “그렇다네. 난 원염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지. 어찌, 두려운 것인가?”

    백의 여인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물었다.

    “아닙니다! 보화 대인께서 계시는데 제가 두려울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저 아직 수행을 회복하지 못하셨는데 원염 대인을 상대하셔도 되겠습니까?”

    냉기를 머금은 그녀의 눈빛에 흑갑 거한이 진땀을 흘렸다.

    “원염과 꼭 싸울 필요는 없네. 그보다 자네가 잠시 후에 해줘야 할 일이 있어.”

    “분부만 내려주시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일만 잘 마치면 무슨 일이 발생하든 자네를 안전하게 지켜주지. 잘 듣게.”

    백의 여인이 조용히 입술을 움직여 전음을 보냈다. 고개를 숙이고 귀를 기울이던 흑갑 거한의 추한 얼굴에 이채가 돌았다. 이제야 보화 대인이 왜 자신을 데리고 다녔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해주면 되네. 이제 나는 점괘가 가리키는 자가 저들 중 누구인지 지켜봐야겠군.”

    백의 여인이 말을 마치고 손끝으로 허공을 그어 은빛 속에서 또 거울 속을 비추었다. 이번에는 뇌해 밖이 아니라 녹음이 푸른 산골짜기였다.

    거울 속에서 한립 일행은 연못을 둘러싸고 각자 다양한 보물을 방출해 무형의 금제를 공격하는 중이었다.

    울긋불긋 영기의 빛이 난무하고 사방팔방으로 뇌전과 불길이 튀었지만 금제는 태산처럼 버티고 있었다.

    “마족성조들이 펼쳐 놓은 금제가 분명합니다. 이런 식으로는 뚫을 수 없겠어요. 강력한 방법이 필요한 때입니다!”

    공격을 멈춘 농 가 노조가 크게 소리쳤다.

    “이렇게 합시다. 제게 금제를 뚫는데 특별한 효과를 발휘하는 만년 후주(朽珠)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으니 다른 수사들도 협조를 하시지요. 농 형이 아까 보여주신 금색 도끼의 위력도 대단하던데요?”

    백척도 열댓 개의 하얀 검빛을 거두고 신중히 입을 열었다.

    “금사부(金沙斧)가 위력적이기는 해도 한번 사용할 때마다 막대한 법력을 필요로 합니다. 그런 것을 연달아 사용하다가는 수행에 손상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노부는 금제를 파훼하는데 유용한 다른 신통으로 보조하겠습니다.”

    농 가 노조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알겠습니다! 한 수사께서도 관련된 방법이 한가지쯤은 있으시겠지요?”

    백척이 이번에는 한립을 돌아보았다.

    “제게도 최상급 법보 이상의 위력을 내는 보물 두 가지가 있습니다.”

    “잘 됐습니다. 세 분이 공격을 하시고 나머지 수사들이 전력을 다해 보조하면 되겠군요. 금제가 아무리 대단해도 분명 허물어 버릴 수 있을 겁니다.”

    천추 성녀가 미소 지었다.

    백척이 허리춤의 가죽 주머니를 내리쳐 회색 구슬을 불러냈다. 물의 기운이 새어나오는 구슬은 고약한 썩은 냄새와 향기로운 냄새가 섞여 있었다.

    농가 노조와 한립도 각자 할 일에 돌입했다. 한명은 손바닥 위로 송곳 형태의 보물을 꺼냈고 다른 한명은 두 손을 올려 푸른색과 검은색의 작은 산봉우리를 불러냈다.

    다른 합체기 수사들도 서둘러 보물에 법력을 불어넣어 기세를 높였다.

    “공격!”

    백척이 먼저 구슬을 가리켰다. 회색 구슬에서 물기가 응결해 십여 가닥의 하얀 실을 이루어 금제로 파고들었다.

    연이어 농 가 노조의 손에서 송곳 형태의 금빛이 번개처럼 쏘아져 나갔고 한립은 두 산봉우리를 투척했다. 산봉우리들은 금방 거대하게 불어나 회색 기운과 푸른빛을 머금었다.

    “역시 이종족들이 농간을 부리고 있었구나! 한 놈도 살려두지 않겠다!”

    그때 연못 위로 검은 빛이 반짝이고 방대한 물체가 고리를 흔들며 나타났다. 머리가 셋 달린 검은 교룡이었다. 교룡 위 허공에 선 흑포 청년은 무표정하게 한립 일행을 향해 손을 저었다.

    쿠릉!

    새까만 거대 손이 나타나 금제를 깨려던 모든 공격들을 거품처럼 터트리고 엄청난 압력으로 일행을 짓눌렀다.

    꽈드득!

    그들은 온몸이 굳어 하반신이 연못가의 진흙에 박히고 말았다.

    피부가 황금빛으로 반짝인 한립도 잠시 버티다 두 발이 진흙 속으로 파고 들었는데 지수라는 청년은 뜻밖에도 잠시 몸을 떨기만 했을 뿐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지수가 고개를 쳐들며 두 눈에서 눈부신 은빛을 뿜었고 동시에 피부에서 은색 문자들이 겹겹이 떠올랐다.

    하지만 수사들은 영족 청년에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온몸이 저리고 뻣뻣하게 굳어 두 발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본 성조의 일격을 막다니 재미있는 녀석들이구나. 허나 거기까지다.”

    한립과 지수를 본 흑포 청년이 의아한 얼굴을 하다 섬뜩한 미소를 짓고 두 손을 뻗었다.

    휙! 휙!

    흑포 청년의 손끝에서 검은 점이 튀어나가 공간을 가르고 한립과 지수 코앞에 나타났다.

    한립은 서둘러 명청령안을 발동했고 검은 점을 똑똑히 보았다. 그것은 콩알 크기의 윤기가 흐르는 새까만 단약이었다. 특별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방심할 수는 없었다.

    한립이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푸른 검기를 힘껏 방출해 검은 단약을 갈랐다.

    콰릉!

    둘로 갈라진 단약이 폭발하며 검은 화염으로 그를 뒤덮었다. 마염(魔炎)이 한립을 둘러싸고 불기둥으로 활활 타올랐다. 아무도 그 안에 갇힌 한립의 생사를 알 수 없었다.

    흑포 청년은 마염에 굉장히 자신이 있는지 한립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지수에게 집중했다. 지수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에게 날아드는 검은 단약을 향해 손바닥을 펼쳤다.

    콰릉!

    그의 손가락에 닿은 검은 단약이 저절로 폭발해 한립과 마찬가지로 마염이 치솟았다.

    “안 돼!”

    그것을 본 천추 성녀가 다급히 소리치고 체내의 법력을 어떤 법기 속으로 마구 불어넣었다.

    쿠쿵!

    법기는 그녀의 몸속에서 엄청난 파동을 일으켰다. 여인은 몸을 부르르 떨더니 땅 속에서 튀어나와 금색 문양으로 가득한 피부를 드러냈다. 지수와 똑같이 생긴 문양이었다.

    농 가 노조를 비롯한 다른 수사들은 별별 시도를 다 해봤지만 거산에 깔린 것처럼 꼼짝할 수 없었다. 법력이 얼어붙은 것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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