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4화. 황금해(黃金蟹:황금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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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립이 빙긋 미소를 짓더니 손을 뻗어 뇌해 상공의 먹구름 하나를 가리켰다. 다들 의아한 눈빛을 하고 있을 때 백척이 영목 신통으로 그것을 살펴보다 소리쳤다.
“무슨 마물이 저렇게 크담!”
그 소리에 다른 이들도 놀라 자세히 살폈지만 먹구름 속에서 벼락이 내리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것을 보고 한립이 한숨을 쉬고는 푸른 장검으로 허공을 갈랐다.
우웅!
푸른 검이 맑은 소리를 내며 거대하게 변해 전방의 먹구름을 갈랐다. 그러자 먹구름이 갈라지고 그 안에 숨어 있던 거대한 금색 마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엄청난 몸집에 전신이 금빛으로 반짝이고 굵은 뇌전을 잔뜩 두르고 있어 휘황찬란하기 그지없었다.
농 가 노조는 딱딱해 보이는 금색 껍데기와 불쑥 솟은 가시를 보고도 한동안 마수의 정체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저 갈라진 먹구름 사이로 흘러나온 거대 마수의 기운에 경악했을 뿐이었다.
주변을 둘러싼 마기가 의식을 모조리 흡수해 수행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지만 희미하게 느껴지는 위압감만으로도 합체기 수사들의 가슴이 철렁했다.
강대한 기운에 여러 수사들의 머리에 동시에 ‘진령’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금색 거대 마수는 한립이 이렇게 소란을 피웠는데도 고공에 떠서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깊은 잠에 빠져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선박 위의 수사들도 벌써 지체 없이 뱃머리를 돌려 달아났을 것이다. 선박 위에 침묵이 흐르고 다들 얼굴이 창백해진 가운데 백척이 먼저 입을 열었다.
“모두 긴장하실 것 없습니다. 생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이 이미 명을 다한 유해에 불과한 듯합니다.”
“그냥 유해라고요? 백 형께서 잘못 보신 것은 아니겠지요.”
“생령(生靈)의 흔적을 감응할 수 있는 신통을 익혔는데 제가 미처 저것을 발견하지 못한 것도 유골에 불과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반신반의하는 엽 수사를 향해 백척이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안심이네요. 유골이 지니고 있는 기운이 이리 강하다니 십중팔구 진령 유골이겠습니다!”
엽 수사는 그제야 마음을 놓고는 이전과 다른 눈빛으로 올려다보았다.
다른 건 몰라도 유골에 정기나 진원 같은 것이 약간이라도 남아 있다면 합체기 수사들도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유골 본체 자체도 진귀한 재료였다. 극히 일부만 나와도 연기종사나 연단종사들이 미친 듯이 달려들 보물이었다.
다들 가슴이 두근거리는 얼굴로 바라보는데 한립은 무슨생각을 하는지 짐작할 수 없는 표정으로 턱을 쓸었다.
검기가 만들어낸 거대한 균열이 주변 먹구름에 의해 덮여 금색 거대 짐승은 다시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백 형, 어느 진령이 남긴 유골인지 보셨습니까?”
천추 성녀의 눈길이 백척을 향했다. 다들 합체기 수사라지만 한립과 백척만이 영목 신통을 지녔기에 물은 것이다.
“금색의 거대한 게였고 집게발이 네 개나 달려 있더군요.”
한참 먹구름을 올려다보던 백척이 그다지 확신에 차지 않은 어투로 답했다.
“거대한 금색 게라고요? 세상에 그런 진령도 있던가요?”
이번에도 다들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엽 수사가 의문을 제기했다.
“영계에 알려진 수많은 진령들 중 그런 모습을 한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계면에서 탄생하는 진령 중 우리가 알지 못하는 종류가 있다한들 이상한 일도 아니겠지요.”
“농 수사의 말씀이 일리가 있습니다. 저게 어떤 진령이 남긴 것인지는 몰라도 어차피 이미 죽었다면 우리에게는 크나큰 기연이 아니겠습니까.”
농 가 노조의 말에 휘 장로가 흥분한 기색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렇지요. 이런 기연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겠지요.”
“이렇게 큰 진령이라면 공평하게 나눠 가져도 충분할 것입니다. 세령지와 정령련을 찾지 못해도 이번 마계행이 허탕은 아니니 다행입니다.”
수사들이 연달아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의 말을 늘어놓았다. 대부분 의외의 수확에 격동한 모습이었다. 그때 한립이 그들이 당황할 만한 질문을 했다.
“여러분 생각에는 저 유골이 이곳에 언제부터 있었을 것 같습니까?”
“잘은 몰라도 긴 세월동안 이곳에 있었을 겁니다.”
천추 성녀도 미간을 찌푸리고 무언가를 떠올린 듯했다.
“우리야 낯선 바다에서 이곳을 찾아내기가 어려웠지만 고계 마족에는 힘든 일도 아닐 겁니다. 유골을 가져가기가 그렇게 쉬웠다면 고계 마족들이 가만히 두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그의 평온한 물음에 휘 장로를 비롯한 수사들의 안색이 달라졌다.
“그 말씀은 유골에 뭔가 비밀이 있어 이곳에 남겨져 있다는 뜻이군요.”
농 가 노조가 이상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하하,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요.”
“뭔가 발견이라도 하신 것입니까?”
그의 의미심장한 웃음에 천추 성녀가 의아해했다.
“제 추측이 맞다면……. 금색 거대 짐승은 진령 유골이 아니라 마정괴뢰일 겁니다.”
“꼭두각시라고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세상 천지에 저런 무시무시한 꼭두각시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마정괴뢰는 또 무엇이고요?”
잔뜩 기대에 차있던 휘 장로는 고개를 저었고, 농 가 노조와 천추 성녀 역시 믿기지 않는 기색이었다. 백척 만이 넋이 나간 얼굴로 얼른 뇌해 위를 영목 신통으로 훑었다.
영족의 늙은 유생 장형도 ‘마정괴뢰’라는 말에 내심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마정괴뢰는 마계의 괴뢰 비술 중 하나로 영계에는 비슷한 것이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도 환야성에 머물며 알게 된 사실이니 모두 제가 모방해 제작한 마정괴뢰를 보시면 사실인지 아닌지 아실 수 있을 겁니다.”
한립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소매 속에서 녹색 빛을 분출했다. 그러자 청록색 거대 늑대가 배 위로 내려섰다. 그가 얼마 전 직접 제련한 저계 마정괴뢰였다.
“흠, 아무래도 한 수사의 말이 사실인 듯싶습니다. 금색 게가 지닌 무늬와 이 마정괴뢰에 새겨진 문양이 아주 흡사합니다. 어떻게든 양자가 관련이 있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제가 생명의 기운을 감지하지 못한 것이 괴뢰였기 때문이군요. 모두 제 불찰입니다.”
백척은 이마에서 내뿜은 하얀 빛을 거두고 민망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게 사실입니까!”
“꼭두각시라 해도 이곳에 버려져 있다는 것이 말이 안 됩니다. 꼭두각시가 저런 무시무시한 기운을 품고 있다니요.”
“세상에 정말 진령급 꼭두각시가 존재했다니 믿기지가 않네요.”
일행들이 웅성이기 시작하자 백척이 입을 벌려 남색 구리거울을 불러냈다.
우웅!
거울이 빙글 돌며 허공에 떠오르자 백척의 이마에서 하얀빛이 흘러나와 그 안으로 스며들었다.
다음 순간, 탁자 거울 위로 먹구름 속에 가려진 금색 거대 게가 또렷이 보였다.
“영족의 영광회소술(靈光回溯術)! 술법을 펼치는 자가 오래 전 보고 들었던 것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다 들었는데 사실이었습니다.”
눈을 빛낸 농 가 노조가 흥미를 보였다.
“다들 한 형의 말이 맞는지 직접 살펴보시지요.”
백척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며 거울을 가리켰다.
일다경 후, 비술을 흩어 거울 속 모습이 사라지고 농 가 노조가 쓴웃음을 지었다.
“보아하니 한 형의 말씀대로입니다. 거대 게가 정말 꼭두각시라면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취하려 들 필요는 없겠어요. 저렇게 강력한 괴뢰를 이곳에 버려둘 정도면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훼손되었다는 소리가 아니겠습니까.”
“그렇군요. 기연을 만난 줄 알고 괜히 좋아했습니다. 이제 어떻게 뇌전을 뚫고 섬으로 진입할지나 고민하시죠. 그게 이번에 우리가 여기까지 온 진짜 목적이니까요.”
천추 성녀도 정색하고 말했다.
“광포한 뇌전의 힘으로 형성된 뇌해는 분명 허공의 마정괴뢰와 관련되어 있을 겁니다. 뇌해를 지나다 꼭두각시에 남아 있는 어떤 금제라도 건드리게 된다면 큰 위험에 처할 게 분명합니다. 원래 위력의 1, 2할만 남아 있다하더라도 말이지요.”
한립은 차분히 한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
“영족의 대인께서 경고한 위험이 뇌해와 저 괴뢰인가 봅니다. 안전하게 통과할 방법도 일러주셨다면 좋았겠지만 아닌 바에야 위험을 무릅쓰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대승기 수사보다는 못하겠지만 이렇게 많은 수사들이 힘을 합치는데 겨우 뇌해를 지나지 못하겠습니까? 다만 원기를 상하는 것은 각오해야겠지요.”
농 가 노조가 진지한 얼굴로 모두의 의지를 북돋았다.
“예,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갈 수도 없는 일입니다. 다들 뇌해로 진입할 준비를 하시지요.”
천추 성녀도 고개를 끄덕이며 야무지게 답했고, 다른 수사들도 반대하지 않았다. 이에 일행은 선박 위에서 바삐 움직이며 진법을 발동하고 보물들을 불러냈다.
암녹색 선박 위로 다양한 색깔의 보호막이 겹겹이 떠오르고 열댓 개의 보물 허상들이 보호막 속에서 솟아올랐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쿵! 쿵!
선박 앞머리와 말미에 동시에 눈부신 푸른빛이 일고 청석 거인 두 마리가 나타났다. 거대한 석괴뢰의 몸에는 노란 문양이 가득했고 움푹 들어간 커다란 눈 외에는 코나 입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더욱 놀라운 일은 멀리서도 오래된 상처들이 가득한 청석괴뢰들이 내뿜는 만황의 기운이었다. 바로 농 가 노조가 말한 상고 괴뢰들이었다.
“과연 범상치가 않습니다. 평범한 합체기 수사에 밀리지 않는 기운이에요. 이런 귀한 꼭두각시들을 내놓으시다니 아깝지 않으십니까? 뇌해의 뇌전을 막다 손상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엽 수사가 동공을 수축하며 가까이에 있는 농 가 노조를 향해 말했다.
“위력적이긴 해도 꼭두각시를 얻을 당시 이미 손상이 심해 기껏해야 한 번 밖에 사용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사용하기 십여 일전마다 제련을 해둬야 해서 그다지 실용적이지도 않고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농 가 노조도 아까운 기색이 가득했다.
“딱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다니 아깝게 되었네요.”
엽 수사가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립은 이때 선박에 심어둔 깃발들을 발동하는 중이었다. 깃발에서 검은 기운이 흘러나와 거대한 사슬 그물로 변해 선박을 보호했다.
그리고 선박 앞머리에서는 천추 성녀가 은색 옥패를 들어 올려 한수서들을 향해 주문을 외웠다.
휘익! 휘휘휘휘휙, 휙.
옥패에서 은빛 덩이 여덟 개가 날아가 한수서들의 몸에 흡수되었고 영수들의 몸에 은빛 찬란한 갑옷이 생겨났다. 은색 갑옷을 입고 즐거운 듯 울부짖는 한수서들의 몸집이 약간 불어나 있었다.
“호오, 수갑(獸甲)이로군!”
휘 장로가 그것을 보고 무척 신기해했다. 이름 그대로 수갑(獸甲)은 영수를 위해 제련된 갑옷이었는데 인족의 평범한 갑옷과 달리 방어력도 뛰어나고 일시적으로 영수의 잠재력을 깨워 능력을 대폭 상승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수갑(獸甲)을 사용할 수 있는 영수가 제한적이고 영족에서만 전수되는 제련법이라 외부 종족은 구경하기도 어려웠다.
수갑을 구경하던 휘 장로도 서둘러 핏빛 우산에 연달아 법력을 불어넣고 피비린내가 풍기는 보물을 고공으로 쏘아 올렸다.
잠시 후 모두가 술법을 마치자 천추 성녀가 한수서들을 재촉해 빠르게 뇌해를 향해 나아갔다.
옆쪽 난간에 기대선 한립은 선박이 뇌해로 진입하려는 데도 여전히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천추 성녀와 그 옆의 영족 청년 지수는 영수들이 뇌해로 들어선 순간 멍한 얼굴에 작게 경련이 일어났다. 동시에 소매 속에 숨겨진 그의 손바닥에 금색 주술문자가 나타나 반짝였다.
같은 시각, 먹구름 속 금색 게의 집게발이 떨리더니 영족 청년과 똑같은 금색 주술문자가 떠올랐다. 그러나 선박에 탄 수사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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