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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222화 (979/2,000)

1222화. 진혈을 손에 넣다

*

“……!”

마족 사내는 의식으로 금색 발톱을 훑고는 감히 그 안으로 돌진하지 못하고 새하얀 깃털 부채를 꺼내 세게 흔들었다. 그러자 부채에서 흘러나온 돌풍이 회색 풍룡(風龍)으로 변해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드러내고 날아갔다.

이에 거대 매가 날개를 펄럭여 두 개의 우윳빛 바람의 칼날을 날렸다.

콰르르릉!

엄청난 소음이 귀청을 때렸다! 회색과 하얀색 기운이 금빛과 충돌해 한동안 승부가 나지 않았다.

마족 사내는 마조(魔鳥)의 엄호를 받으며 풍둔술로 달아나려 했지만 표린수가 귀신같이 나타나 그의 앞을 막아섰다.

실력으로는 마족 사내와 마조가 표린수를 능가했지만 둔술로는 표린수가 훨씬 뛰어났기에 끈질기게 그들을 방해했다.

그리고 반대편에서 푸른 치마 부인과 거대 구렁이를 상대하는 한립은 폭풍처럼 쏟아지는 공격에도 무척 여유로웠다.

심지어 상대를 죽이지 않기 위해 적당히 봐줘가며 상대하는 것처럼 보였다. 두 마족이 분노해 아무리 맹공을 퍼부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때마침 한립의 귓가에 기쁨에 찬 전음소리가 들려왔다.

“한 형, 이제 가시죠! 성공입니다!”

그 말에 한립이 밝은 얼굴로 웃음을 터트렸다.

파앗!

그는 재빨리 한 손으로 수결을 맺고 등 뒤로 마기와 함께 삼두육비의 금신 법상을 불러냈다. 법상의 네 손에서 금색 병장기들이 날아가 굉장한 기세로 마족 사내와 여인, 그리고 그들의 마수를 덮쳤다.

그들이 주춤하는 틈을 타 한립은 법상과 은색 불새를 회수하고 눈부신 푸른 빛줄기로 변해 대청을 빠져나왔다. 표린수가 그림자 화신을 거둬들이고 스스로 금빛으로 변해 그 뒤를 바짝 쫓았다.

그 모습에 불길한 직감이 든 마족 사내와 푸른 치마 여인이 전음을 나누고 사내는 마조를 데리고 추격에 나섰고 여인은 서둘러 제자들의 거처로 날아갔다.

“제길!”

잠시 후 편전에 이른 여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편전 대문이 박살나고 인근의 금제들도 파훼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곳을 지켜야할 녹색 갑옷 병사들은 대문 파편 주위에 너부러져 있었다.

상황을 파악한 푸른 치마 여인이 고개를 쳐들고 스산하게 포효했다.

거대한 포효 소리가 훈향채 전체를 쩌렁쩌렁 울리자 수행이 낮은 청익인들은 즉시 문을 걸어 잠그고 몸을 숨겼고, 수행이 높은 청익인들은 놀란 얼굴로 거처에서 튀어나와 포효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향했다.

그 시각 표린수와 합류한 한립은 거침없이 산채 외곽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하얀 매에 올라탄 마족 사내가 필사적으로 그를 뒤쫓고 있었다.

여인의 포효 소리가 들려오자 마족 사내도 길게 숨을 들이마시고 신호를 보내려 했다.

‘어딜!’

그 순간 한립이 수백 장의 금은색 부적을 날리고 번득 허공에서 사라졌다.

쿠쿠쿵!

고공의 천지원기가 부르르 떨리더니 오색 빛 속에서 웅장한 궁전 허상이 등장해 마족 사내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그 모습에 마족 사내가 소스라치게 놀라 신호고 뭐고 일단 하얀 깃털 부채를 미친 듯이 부쳐 강한 돌풍으로 궁전 허상의 기세를 꺾으려 했다.

그때 멀리서 한립이 궁전 허상을 가리켰다. 그러자 궁전 허상이 폭발적으로 눈부신 오색 기운을 발산하며 돌풍들을 억누르고 불시에 마족 사내를 덮쳤다.

그 순간 마족 사내는 자신이 누각과 정자들로 가득한 회색 안개 속에 갇힌 것을 알아차렸고 안색이 변한 마족 사내는 깃털 부채를 던져 회색 풍룡들을 풀어놓았다.

한립은 부적에 갇힌 마족 사내를 보고 한 손으로 수결을 맺었다.

콰릉!

그는 천둥소리와 함께 수정 날개 한 쌍을 불러내 청백색 실로 변해 허공을 파고들었다. 얼마 후, 세 산봉우리 사이의 짙은 안개 속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 거대 검기가 예리한 빛을 번득이며 안개를 갈랐다. 이에 안개가 도처로 퍼져 훈향채의 금제가 일격에 무너졌고 그 안에서 두 줄기의 빛줄기가 날아올라 쏘아져나갔다.

잠시 후 대여섯 개의 둔광들이 안개 속에서 튀어나와 바짝 그 뒤를 쫓았다. 앞서 날아간 빛줄기 속에는 엽 수사와 한립이 있었다.

“한 형, 이제 저들을 떨쳐내죠.”

뒤를 돌아본 엽 수사가 가볍게 미소 지었다.

“알겠습니다.”

한립도 의식으로 뒤쫓는 청익족 수사들을 살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둔광을 멈춘 그는 뇌전들을 뿜어내 은색의 뇌붕(雷鵬)으로 변신했다. 날개를 펄럭인 붕새가 콰릉! 소리를 남기고 은색 뇌전으로 쏘아져나갔다.

곁의 엽 수사도 빙글 돌아 오색 채봉(彩鳳)으로 변해 오색 기운 속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추격하던 둔광들이 속도를 줄이고 분분히 본 모습을 드러냈다.

그 중에는 푸른 치마의 여인도 있었다. 그녀는 텅 빈 허공을 보고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도적놈들이 달아나 버렸습니다. 변신술을 쓰는 것으로 보아 수존전 노괴들 아닙니까?”

붉은 수염을 기른 노인이 열이 받아 발을 동동 굴렀다.

“수존전 인물들만이 변신술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관건은 저들이 산채에서 무슨 짓을 벌였냐는 것입니다. 청 장로께서 가장 먼저 경고음을 보내셨는데 아는 바가 있으십니까?”

새까만 기운으로 가려진 마존이 냉랭히 입을 열었다.

“청령전(靑靈殿)의 진혈 제자 한 명을 납치해갔습니다!”

푸른 치마 여인은 약간 민망한 얼굴이었다.

“역시 청란진혈을 노린 것이었습니다! 한 명만 데려 갔다면 나머지 제자들은 무사한 것입니까?”

마존은 이미 예상했는지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다른 제자들은 기절해 있을 뿐 무사합니다. 그저 납치당한 제자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들던 우수한 아이라는 점이 아쉬울 뿐입니다.”

“그렇다면 가만있을 수 없겠습니다. 돌아가는 대로 성조 대인께 연락을 취해야겠어요. 도적놈들의 실력이 상당했으니 성조 대인께서 친히 나서주셔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여인의 말에 새까만 마존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러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저들을 못 잡으면 본 족의 명예는 땅에 떨어질 게 아닙니까! 지난번에 진혈을 도둑맞은 일이 벌써 수만 년 전이라 다들 능원 대인께서 본 족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까먹었나 봅니다. 이제 그 어리석은 자들을 일깨워 줄 때도 되었지요.”

붉은 머리 노인도 찬성했다. 마존들은 그 자리에서 조용히 논의를 하다 둔광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 시각, 한립과 엽 수사는 반나절을 쉬지 않고 날아 어느 산속 작은 동굴에서 잠시 몸을 피하고 있었다.

“핵심 제자의 몸에 누군가 수를 써놓았을지 모르니 진혈을 취하는 대로 이곳을 떠나야 합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한 형. 제게 반 시진만 주시면 진혈을 채취하지요!”

소녀가 빙긋 웃으며 소매 속에서 남색 비단 손수건에 둘둘 말려있는 청익족 청년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저는 동굴 밖에서 호법을 설 테니 서둘러 주십시오.”

한립은 방해되지 않도록 분별 있게 동굴 밖으로 향했다. 이에 엽 수사가 즉시 진법 깃발과 원반들을 잔뜩 꺼내 현묘한 진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반 시진 후, 한립의 뒤에서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엽 수사가 밝게 웃으며 동굴 입구로 걸어오고 있었다.

“선자의 표정으로 보아 진혈을 얻으셨나 봅니다.”

“청란진혈을 얻은 것은 물론이고 진혈의 순도(純度)가 예상했던 것 이상입니다! 잡아온 마족이 청익족 핵심 제자들 중에서도 자질이 꽤 괜찮은 녀석이었던 모양이에요. 하지만 그럴수록 서둘러 이곳을 떠나야 합니다. 자, 한 형의 몫이니 받으시지요.”

소녀가 우윳빛이 감도는 작은 병을 던져주었고 한립이 눈을 반짝이며 그것을 받아 의식으로 훑었다.

“확실히 청란진혈입니다! 이제 철사령을 떠나면 되겠습니다.”

희색을 드러낸 그는 병을 넣어두고 서둘러 둔광을 일으켰다.

반나절 후, 청익족 마족 부대가 동굴 안에서 의식을 잃은 청년을 발견했다. 숨은 붙어 있었지만 체내의 진혈은 단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았다.

청익족 산채가 이 일로 술렁거렸고 이 소식은 청익족 고위층에도 퍼졌다. 그러나 그들이 믿었던 능원 성조 대인 화신이 얼마 전 원행을 나갔다가 중상을 입고 돌아와 폐관에 들어가 아무도 만나주지 않았다.

전말을 알게 된 마족 존자들은 화들짝 놀라 진혈을 도둑맞은 일에 대해 함구령을 내리고 더 이상 아무도 이 일을 언급하지 않았다.

본래라면 적잖은 마족 세력의 주의를 끌었을 일이 철사령 내에서만 맴돌다 조용히 묻혔다.

* * *

1년 후 어느 날, 마계에서 흉명이 자자한 마원해(魔源海). 고래 해수(海獸)들이 끄는 암녹색 배가 새까만 파도를 가르고 앞으로 나아갔다.

해수면 백 장 위로는 새까만 안개가 꿈틀거리며 수시로 은색 뇌전을 번득였다. 배 앞머리에 선 사내와 여인이 배가 향하는 방향을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마족이 마원해에서 기원했다는 이야기답게 마기가 대단합니다. 그 안에 섞인 혼란한 기운도 얕볼 것이 아니고요. 평범한 마족은 이곳에서 수행할 길이 없겠어요.”

옅은 금빛 얼굴 사내가 무표정하게 입을 뗐다.

“하하, 혼란한 기운은 이전에 비하면 많이 줄어든 것이라 합니다. 그래서 수백 만 년 전에는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금지로 불리다 이제는 마족의 성지로 거듭나게 되었지요.”

작은 체구에 수려한 얼굴을 지닌 소녀가 답했다.

두 사람은 농 가 노조와 엽 가의 엽 수사였다. 한립이 다른 이들과 합류해 함께 배를 타고 마원해로 진입했다는 소리였다.

“허허, 그렇다고 오랜 세월 산전수전을 겪어온 우리가 겨우 그것 때문에 발길을 돌릴 수야 없지요. 단지 이곳의 뇌전의 힘이 너무 강해 저공비행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입니다.”

“아예 저공비행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요. 뇌전 공격이 집중되어 법력이 아무리 심후해도 오래 버티지 못할 뿐이죠.”

“어찌 되었든 세령지가 있는 섬에 도착할 시일이 또 미뤄진 것 아닙니까. 영족 수사들이 제공한 단서가 아주 모호해서 비슷한 특징을 지닌 해역을 발견해야 섬에 이를 수 있을 텐데. 이 넓은 마원해 안에서 그런 곳을 찾으려면 운이 따라줘야 할 겁니다.”

농 가 노조가 탄식했다.

“하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지요. 벌써 몇몇 마족들이 낯선 합체기 존자들의 존재에 주목하기 시작했을 테니 그들이 우리의 정체를 알아내면 사단이 날 것입니다. 이곳에서 시간을 끌수록 정체가 탄로 날 위험이 높아질 테고요.”

엽 수사도 웃음기를 거두고 침음했다.

“저도 알고 있지만 이미 기호지세(騎虎之勢)라 마지막 한 걸음을 앞두고 되돌아갈 수도 없는 일 아닙니까.”

농 가 노조가 단호히 말했고 엽 수사도 한숨을 내쉬고는 더 이상 답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한 형과 선자가 저희보다 한 달이나 늦게 돌아오셨더군요. 선자의 기운이 이전과는 달라진 것 같은데 오늘 길에 무슨 기연이라도 얻으셨습니까? 그렇다면 제가 선자와 한 형에게 축하의 말씀이라도 올려야 할 텐데요.”

그는 문득 의미심장한 말투로 엽 수사가 깜짝 놀랄 만한 말을 했다.

“제 기운이 달라진 것을 바로 알아차리시고, 농 형의 혜안에 놀라울 따름입니다. 허나 저희가 기연을 얻었다 한들 농 형과 휘 수사의 수확만 하겠는지요?”

“허허, 선자가 뭔가를 아는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저도 뭔가를 캐내려던 것은 아니었으니 안심하세요.”

농 가 노인은 허허 웃음을 터트렸고 엽 수사의 얼굴에도 묘한 웃음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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