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8화. 의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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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수사께서 청익족이 계승한 진령혈맥이 무엇인지 몰라 하시는 말씀입니다. 혹시 상고시대 때 가장 유명했던 조류 진령들을 아십니까?”
엽 수사는 직접적으로 답하지 않고 은근한 시선을 보냈다.
“그것이……. 천봉 외에 유천곤붕(游天鯤鵬), 귀구(鬼鳩), 구천청란(九天靑鸞)이 위명을 떨쳤다고 알고 있습니다.”
“청익족이 바로 청란 혈맥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이제 제가 어째서 청란진혈(靑鸞眞血)에 관심을 보이는지 아시겠지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마계에 청란진혈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으면 이번 일에 합류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청란진혈은 엽 가에게 세령지나 정령련 이상으로 중요하니까요. 부디 한 형께서 저를 도와주시기를 진심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어차피 다른 수사들이 개별적으로 이동하자는데 의견을 모은 것도 세령지와 정령련 외에 노리는 것이 있어서가 아니겠습니까.”
“청란진혈이라면 이해가 됩니다! 청란과 천봉은 오랜 옛날에는 같은 종족이었다가 세월이 흐르며 각기 다른 천부적인 신통을 지니면서 갈라졌다고 들었으니까요. 선자께서는 엽 가의 자제들이 또 다른 진령 혈맥을 계승할 가능성을 열어둘 계획이시군요.”
한립은 설명을 듣고 크게 기뻐했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다른 진령의 피라면 몰라도 청란진혈은 경칩결에 기록된 것 중 하나였다. 청란진혈을 얻을 수 있으면 경칩결의 위력이 또 한 번 크게 가할 것이다.
새로운 진혈의 확보는 다른 변신술의 위력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 형의 말씀대로입니다. 엽 가 제자들이 천봉의 피를 계승할 수 있다면 청란혈맥도 매한가지 아니겠습니까? 세월이 흘러 엽 가가 농 가를 넘어서는 것도 당연한 수순일 테고요. 게다가 개인적으로는 천봉과 청란의 진혈을 비술로 융합해 대승기를 노려볼 생각입니다.”
엽 수사는 맑은 눈을 반짝이며 포부를 밝혔다.
“그렇다면 선자와 진혈을 나눠 갖는 것 외에 제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한립이 잠시 고민하다 유유히 물었다. 그 말에 엽 수사가 희색을 드러내며 신속히 답했다.
“평범한 종문이 만 년 이상 걸려야 모을 수 있을 만한 대량의 영석 외에 엽 가에서 한 형에게 큰 신세를 진 셈 치겠습니다! 이후 어떤 일이든 엽 가의 힘이 필요할 때 딱 한번 한 형을 전력을 다해 돕지요.”
“좋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한립이 소매 속에서 손을 들어 올렸고 엽 수사가 주저하지 않고 손바닥을 마주쳤다.
짝! 짝! 짝!
“엽 선자께서 막대한 대가를 치르려는 것을 보면 청란진혈을 얻기가 쉽지 않으리라 예상됩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말해주시지요.”
“역시 명석하십니다. 청란진혈을 얻으려면 부득이하게 마족 성조와 대면해야 해서요!”
엽 수사가 웃음기를 지우고 또 한 번 깜짝 놀랄 말을 내뱉었다.
“농이 지나치십니다! 철사령에 마족 성조가 머물고 있다면 저는 진혈을 포기하겠습니다.”
한립은 표정이 굳어 단호히 말했다.
“괜한 걱정을 하시네요. 마족성조가 철사령에 머물면 농 가 수사들과 영족 성령들이 환소사막을 지나는 노선을 택했겠습니까? 더 멀리 돌아갔겠죠. 제가 알기로 철사령에는 능원(凌源) 성조의 화신이 상주하고 있는 것이 전부입니다.
능원 선조 본체가 예전에 청익족에게 큰 은혜를 입어 보답하는 의미로 남겨둔 것이라고 합니다. 천연성 전투에서 성조 화신을 격살한 적이 있는 한 형이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조심만하면 아예 들키지 않고 넘어갈 수도 있고요.”
엽 수사가 눈을 깜빡였다.
“화신이라도 그리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닙니다. 마족 성조의 화신과 본체는 긴밀하게 감응한다고 들었습니다. 본체가 철사령에서 멀지 않은 곳에 머문다면 화신에게 발각되는 순간 본체를 불러들일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건 안심하셔도 됩니다. 미리 조사한 바에 따르면 능원 성조 본체는 이곳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머물고 생사관(生死關)에 든지 만년이 넘었다고 합니다. 이전에 다른 화신이 죽임을 당했지만 출관하지 않았고요.
그래서 능원 선조 본체가 죽었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더군요. 소문이 사실이든 아니든 능원 성조의 본체가 나설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고려해볼 만합니다. 하지만 영계에서 성조 화신을 죽일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수사들이 도움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저 홀로 화신을 상대하기는 어려울 텐데요.”
한립은 그제야 표정을 풀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계에서 출발하기 전에 친분이 있는 수사에게 혼천주(渾天珠)를 얻어 왔지요! 한번 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소모성 보물이지만 한 형께서 마족 성조 화신을 잠시만 붙들어 주시면 이걸로 반나절은 가둬둘 수 있을 겁니다. 그동안 멀리 달아나버리면 성조 화신이라 한들 어쩌겠습니까. 인족 신분만 들키지만 않으면 약간의 진혈을 위해 무리해서 쫓지 않을 수도 있고요.”
“흠, 이번 일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두셨군요. 성조 화신을 잠깐 붙들어두는 것이라면 할 수 있습니다.”
그가 길게 숨을 내쉬며 답했다. 그 모습에 엽 수사도 한시름 놓았다. 영계에서부터 계획한 일이지만 한립이 도움을 거절하면 그녀 혼자 청란진혈을 얻는 것은 어려웠다.
이제 그들은 선실에서 상세한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그런데 배가 어느 모래 언덕을 지나는 순간 대화를 나누던 한립이 홱 하고 고개를 돌려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놀란 엽 수사가 긴장해 의식으로 주변을 훑었다.
“아닙니다. 그저 흙더미 속에 저계 마수 비슷한 것이 숨어 있어서요. 주변 기운과 하나가 되어 저도 한참 동안 존재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한립이 시선을 거두고 차분히 답했다.
“아, 그랬군요. 마계 환경이 영계에 비해 열악해서 저계 마수라 해도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신기한 신통을 지닌 경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안 그러면 벌써 고계 마수들에게 멸종당했을 테니까요.”
여인의 말에 한립도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배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모래 언덕을 벗어났다.
일다경 후, 모래 언덕에서 고슴도치 모양의 팔뚝만한 마수가 기어 나왔다. 날카로운 가시를 지닌 마수의 머리에 괴상한 촉수가 꿈틀거렸다. 고슴도치 마수는 검은 배가 사라진 방향을 주시했는데 지능이 상당히 높아 보였다.
* * *
한 달 뒤, 황토 고원과 산맥이 맞닿은 곳에 위치한 작은 마을. 습지대 위에 건설된 마을은 제대로 된 성벽도 없이 누런 나무로 된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마을 중심에는 작은 광장이 있었는데 수시로 다양한 색깔의 둔광들이 오갔고, 마을의 네 귀퉁이에는 높은 탑이 몇 개나 솟아 있었다.
탑에는 네다섯 명의 마족 병사들이 커다란 깃발을 펄럭이며 검은 기운을 방출하고 있었다.
또한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점포와 주루 등이 모여 있었고 수만 명의 마족들이 돌아다녀 굉장히 번잡했다. 그중 외곽의 주루에는 두 마족이 창가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거 참, 슬슬 올 때가 되었는데 말입니다!”
짧은 머리를 여러 가닥 땋고 커다란 금색 귀걸이를 찬 짙은 눈썹의 거한이 광장을 살피며 불퉁거렸다.
“목표 무리가 한 달 전 환소사막을 벗어나 지금은 흩어져 이동하고 있답니다. 그래서 우리가 상대할 것은 단 두 명이고 나머지는 다른 이들이 맡을 겁니다. 인근에 쉬어갈 곳은 여기뿐이라 이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반드시 나타날 거예요.”
맞은편에 앉은 점잖게 생긴 중년 도사가 눈을 번쩍 떴다.
“그걸 누가 압니까! 목표가 쉬지 않고 이곳을 지나쳐 가면 우리는 공연히 시간만 낭비할 겁니다.”
짙은 눈썹 거한이 코웃음을 쳤다.
“하하, 여긴 환소사막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마을입니다. 상대가 수십 년 동안 사막을 헤맸으면 단약과 마석을 보충하기 위해 반드시 이곳을 들릴 겁니다. 그런 것들이 필요 없어도 주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무조건 들릴 것이고요.”
“냉 형께서 구구절절 옳은 말씀만 하십니다만 저는 어쩐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하하하! 그러시다면 저와 내기를 하시는 것은 어떠십니까, 낙 형?”
“뭘 걸고 말입니까?”
중년 도사의 제안에 거한이 짙은 눈썹을 한껏 끌어올리고 경계심을 드러냈다.
“이번 일의 보수를 걸고 내기하는 겁니다.”
“이 마을을 지나느냐 마느냐로 말입니까? 됐습니다. 다른 내기라면 몰라도요.”
“그래서 어떤 내기를 원하십니까?”
“음……. 저와 냉 형 중에 누가 먼저 그들을 처리하는지 걸면 어떻겠습니까?”
입 꼬리를 끌어올린 중년 도사를 향해 거한이 눈을 굴리며 답했다.
“제가 수사보다 실력이 떨어지는데 어찌 그런 내기를 하겠습니까.”
도사가 소리 내어 웃었다.
“에이, 제가 상대할 적이 냉 형이 맡은 자보다 훨씬 강할 수도 있습니다.”
“글쎄요, 저는 운만 믿고 행동하는 성격이 아니라 서요.”
“오랫동안 같이 수련을 해왔지만 정말 재미없는 성격입니다! 꼭 이길 내기만 하고 전혀 모험을 할 줄 몰라요!”
거한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중년 도사가 미소를 머금고 대답하려다 두 눈을 크게 뜨고 광장으로 들어서는 검은 선박을 주시했다.
“…….”
“저거 아닙니까! 그림에서 보았던 비행 마기와 똑같이 생겼어요!”
맞은편 거한이 벌떡 일어나 주먹을 쥐자 커다란 주먹에서 치지직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낙 수사,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목표를 발견했으니 임무를 완수해야겠지만 이곳에서 손을 쓸 수는 없습니다. 저들이 마을을 떠나는 즉시 움직이는 것으로 하고 그동안 추영충(追影蟲)으로 감시하지요.”
중년 도사의 손끝에서 쉭! 하고 녹색 빛이 뻗어나가 사라졌다.
“냉 형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크크큭, 이번 목표가 정말 마존급이면 새로 익힌 강력한 신통을 시험해 볼 수 있겠어요.”
거한이 서늘한 웃음을 흘리며 풀썩 자리에 앉았다.
“하하, 그들을 얕봐서는 곤란합니다! 수존전 장로들이 높은 보수를 지불하고 나서주기를 의뢰했다면 그들이 만만치 않다는 뜻이니까요.”
중년 도사가 웃으며 충고했지만 거한은 듣는 둥 마는 둥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것을 본 중년 도사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젓고 다시 광장 위의 검은 선박으로 시선을 돌렸다.
선박은 눈부신 검은빛을 터트리며 모호하게 변해 시야에서 사라졌고 그곳에 젊은 사내와 여인이 나타났다.
“흠…….”
두 눈에 보랏빛을 반짝인 중년 도사는 미간을 좁혔다.
“재미있게 되었습니다! 한 명은 고의로 수행을 낮추었고 다른 자는 아예 경지 자체를 파악할 수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직접 나설 만한 목표예요.”
거한도 이전의 경솔한 모습을 지우고 이상하다는 얼굴을 했다.
“범상치 않은 자들이라 두 번째 계획대로 진행해야겠습니다.”
“여인은 별 것 아니에요. 수행을 감추고는 있지만 잘 살펴보면 평범한 마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옆의 사내가 문제입니다. 직접 부딪쳐 봐야 제대로 된 실력을 파악할 수 있겠어요!”
“그럼 여인은 제가 맡을 테니 수사께서 사내를 맡아주시지요. 괜한 일을 당하지 않게 조심하셔야 합니다.”
뜻밖에도 중년 도사는 거한의 뜻에 따르고 있었다.
* * *
그 시각, 한립은 뭔가를 감지한 듯 주루 방향을 살피고 생각에 잠겼다.
주루의 다른 층은 열댓 명의 마인들이 술을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중년도사와 거한이 있는 곳만 현묘한 금제로 가려져 있었다.
“이상한 점이라도 있는지요?”
“누군가 우리를 주시하는데 수행이 상당한 듯싶습니다.”
“이런 작은 마을에도 마존급 존재가 머문다고요?”
이렇게 작은 마을에 마존이 머무는 일은 그리 흔치 않았다.
“그럴 수도 있고 누군가 우리를 쫓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한 형이 그리 말씀하시니 괜히 불안합니다.”
엽 수사는 한립의 시선을 따라 주루를 살피려다 그곳의 금제에 의식이 막히고 서늘한 표정을 지었다.
“저들이 우리를 노리고 온 자들인지 아직 확실하지 않으나 서둘러 마을에서 청마정(靑魔晶)을 구해 떠납시다.”
한립이 차분하게 그녀를 일깨웠다.
“그러는 게 좋겠습니다. 저도 비행 마기를 이용해 보는 것은 처음이라 소모성 재료가 이렇게 많이 필요할 줄은 몰랐네요. 어쩐지 거래한 마족이 그리 높은 가격을 부르지 않는다 했습니다!”
엽 수사가 미안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러나 한립은 신경 쓰지 않고 서둘러 점포가 밀집해 있는 광장으로 향했다. 그에게 더 나은 비행 마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별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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