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3화. 문제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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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쿠쿵!
반나절 후 사막 모래 언덕. 굉음이 울리고 언덕에 세워진 삼각형 건물이 폭삭 내려앉았다. 돌조각들이 이리저리 튀자 녹색 화염 덩어리가 날아올라 빠르게 달아났다. 그 속에서 사슴 머리 마수가 끙끙거리고 있었다.
휘릭!
그때 아래쪽에서 은빛이 번개처럼 나타나 녹색 화염 속 마수를 휘감았고 고통스런 울음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녹색 화염은 비틀거리다 번득이며 이동해 하늘 끝으로 사라졌다.
엄청난 피가 흩날리고 보라색 뿔 조각이 쿵! 하고 사막으로 떨어져 깊은 구덩이를 만들었다. 육중해 보이는 뿔이었다.
무너진 삼각형 건물에서 누군가 유유히 날아올랐다. 푸른 장포를 입은 청년은 한립이었다.
한립은 핏덩이 속의 보라색 뿔 조각을 보고 묘한 얼굴을 했다.
휙!
보라색 뿔이 날아올라 가볍게 그의 손에 떨어졌다. 곧 그가 날아오른 구덩이 속에서 백 가의 자발 여인이 나타났다.
“마수를 잡으셨습니까? 못 잡으셨어도 상관없습니다. 중상을 입은 탓에 앞으로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을 테니까요.”
여인은 그를 보며 미소 있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달아나기 전에 제게 당해 부상이 심해졌으니 수백 년 동안 요양하지 않고서는 원래 수행을 되찾을 수 없을 겁니다.”
“이제야 대충 해결이 되었네요! 오라버니와 다른 수사 분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서 앞으로의 일을 상의하시죠.”
“알겠습니다.”
한립이 먼저 구덩이로 되돌아가고 괴수가 남긴 웅덩이를 보던 자발 여인은 손바닥을 펼쳤다.
쿵!
웅덩이가 있던 자리가 모래로 뒤덮여 가려졌다.
* * *
얼마 후, 격전이 펼쳐지던 동굴 안에 다섯 마존들이 모였다. 그 중 난룡천군과 황발 거한은 안색이 창백했지만 한기자는 여전히 얼음장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복천 선자의 말씀대로면 마령은 광맥에서 나타난 것일 테니 절대 이곳을 떠나려 들지 않을 겁니다.”
난룡천군이 작은 눈을 깜빡거렸다.
“순식간에 연허기 제자들을 여섯이나 죽인 것을 보면 이미 이곳을 떠나 자립할 능력을 지녔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자발 여인은 확신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렇기는 합니다. 백 형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마수를 쫓아냈어도 마령이 남아 있으면 광물을 채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송구하지만 여러분의 힘을 빌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저와 누이의 힘만으로 마령을 처리할 수는 없으니까요.”
난룡천군의 물음에 황발 거한이 솔직히 말했다.
“백 형, 그건 아니지요! 미리 약속한 바에 따르면 우리가 상대해야 할 것은 마존 후기의 마수 한 마리였습니다. 복천 거사가 당할 뻔했으니 오히려 마수보다 마령이 더 위험한 존재일 수 있고요. 마수를 처리하며 마령까지 견제하느라 약속한 것 이상의 위험을 감수했는데 또 나서 달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입니다.”
난룡천군이 헛기침을 하며 달갑지 않은 기색을 했다. 한기자도 말은 없었지만 같은 생각인 듯했다.
황발 거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내심 기분이 상하기도 했지만 그는 평온하게 입을 열었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저희 백 가의 잘못입니다. 마령의 존재를 미리 알아챘다면 적합한 특수 마기를 구해왔을 텐데요. 만일 여러분이 마령을 처리하도록 도와주신다면 지불하기로 한 보수를 두 배로 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어차피 한 형의 마염으로 마령의 화신을 처리해서 상대도 적잖은 타격을 입었을 테니 걱정하시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말을 마친 황발 거한이 한립을 향해 고맙다는 듯 미소를 보내고 남몰래 전음을 보냈다.
“마령을 처리하는 것을 도와주시면 한 형께는 약속드린 팔족마석을 한 마리 더 드릴 뿐 아니라 저희 가문의 보물 창고에서 무엇이든 세 가지 보물을 가져가실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확실히 구미가 당길만한 제안이라 한립은 티 나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본 거한은 크게 안심했다. 마령을 제압하는데 상극인 한립의 은색 화염이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두 배의 보수라면 혈아미도 포함인 것입니까?”
눈에 띄게 얼굴이 밝아진 난룡천군이 재빨리 물었다.
“죄송합니다만 말씀드린 대로 혈아미는 없습니다. 수사에게는 혈련정금(血煉精金)으로 보수를 대신하고자 하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혈련정금……. 큼, 혈아미보다는 못해도 필요로 하던 것이니 알겠습니다.”
고민하던 난룡천군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한기자 수사와 한 형도 동의하시는 것입니까?”
거한의 질문에 한기자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한립도 웃으며 제안을 수락했다. 이후 그들은 바로 움직이지 않고 동굴에서 마석을 쥐고 휴식을 취했다.
며칠 후, 그들은 어느 정도 법력을 회복하고 둘로 나뉘어 움직였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한립과 자발 여인이 한 조, 황발 거한 및 난룡천군, 한기자가 한 조로 광맥의 두 입구를 따라 수색을 개시했다.
이틀 후, 한립은 광산 어딘가에서 원반을 쥔 자발 여인을 따라가고 있었다.
“쇄령반으로 마령의 위치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마령을 위해 전문적으로 제작된 마기는 아니지만 상대가 100장 내로 접근하면 반응을 보일 겁니다. 마령은 광맥과 융합할 수 있어 의식으로는 찾기 힘이 드니 다른 방법도 없고요.”
한립의 물음에 여인이 빙긋 웃으며 답했다.
“지능이 높은 마령이 우리에게 접근하려 할지 모르겠습니다.”
“도저히 못 찾겠으면 마령의 근원이 무엇인지 찾아봐야겠죠. 광맥에서 영성을 얻은 마령이니 근원을 찾아 없애면 힘을 못 쓸 겁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광맥이 이렇게 넓어서야 그 방법도 쉽지 않을 텐데요.”
“한 형, 어찌 그러십니까? 설마 백 가에서 드리기로 한 대가가 부족해서 그러시는지요?”
여인은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물으며 웃음 지었다.
“하하, 글쎄요.”
한립의 의미심장한 답에 눈을 빛낸 자발 여인이 무어라 말하려는데 무언가 웅웅 진동했다. 그녀는 얼른 허리춤에서 영패를 꺼내 들었다.
“어서 돌아오거라. 이쪽에서 마령을 찾아 해치웠다! 예상했던 대로 아주 허약해져 있더구나.”
법결을 던져 넣자 영패 안에서 황발 거한의 말소리가 울렸다. 그 말을 들은 자발 여인은 어쩐지 묘한 얼굴을 했다.
“보아하니 이곳에 오래 머물 필요 없이 곧 환야성으로 돌아갈 수 있겠습니다.”
곁에 있던 한립이 웃으며 말했다.
* * *
한 달 후 환소사막 외곽. 도마뱀 마수들이 회색 모래 바람을 뚫고 나타났다. 백 가의 광산에서 돌아오는 길인 한립 일행을 태운 마수들이었다.
당초 한립은 황발 거한이 마령을 제거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과 합류해 마령의 근원을 찾아냈다. 마령의 근원은 회백색으로 변해 버린 거대한 수정돌이었다.
마령이 죽었기에 영성을 잃기는 했지만 보기 드문 제련 재료라 황발 거한이 챙겨갔다. 한립은 마령을 죽인 상세한 과정은 묻지 않았고 난룡천군이나 한기자도 먼저 떠벌리지 않았다.
마령이 죽은 다음 날 한립이 이야기를 꺼내 일행은 바로 광산을 나섰고 오늘에서야 사막을 나설 수 있었다.
한립은 사막을 나선 순간 신비한 힘이 흩어지며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억눌려 있던 9할의 법력도 예전처럼 회복되었다. 넘쳐나는 힘을 만끽하며 그는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환소사막에서 몇 달을 머무는 것도 이리 답답했는데 앞으로 이곳에서 수십 년을 보내야 하다니!’
그래도 팔족마석을 두 마리나 확보했기 때문에 이제 농 가 노조 등 다른 이들이 오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물론 백 가에서 따로 약속한 보물 창고의 세 가지 보물도 은근 기대가 되었다.
법력을 회복한 합체 수사들의 둔술은 놀라울 정도로 빨랐고 겨우 반나절 만에 멀리 환야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몇 시진 후 한립과 난룡천군 그리고 한기자는 백 가 안의 고풍스럽게 장식된 대청 안에서 자발 여인과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황발 거한은 처리할 일이 있는 듯 얼굴을 비추지 않은 지 오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백 가 전체에 마존이라고는 딱 두 명이었는데 몇 달을 떠나 있었으니 밀린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한식경이 지나 대청 안으로 황발 거한이 들어섰다. 백 가의 노조는 좋은 일이라도 생겼는지 싱글벙글했다.
“백 형, 급한 일은 다 마치셨습니까?”
난룡천군이 거한을 보고 물었다.
“하하, 잡다한 일을 처리하고 왔습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있기는 해도 약속드린 보수를 먼저 드려야겠다 싶어 이리 서둘러 온 것입니다.”
거한은 소매 속에서 검은 고리를 꺼내 한립과 난룡천군 그리고 한기자에게 각각 날려 보냈다. 이에 난룡천군과 한기자는 흡족한 얼굴로 저물탁을 챙겨 넣었고, 한립도 푸른빛을 일으켜 저물탁을 넣었다.
“이번 여정으로 원기를 좀 상해 어서 돌아가 쉬어야겠습니다. 저는 먼저 일어나지요!”
난룡천군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룡 형께서 떠나시면 저도 가봐야겠습니다.”
한기자도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한립만이 그 상황에 가만히 앉아 별말이 없었다. 난룡천군과 한기자는 이상하게 생각해 그를 쳐다보았지만 어떤 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황발 거한과 자발 여인은 예의상 조금 더 머물다 갈 것을 권하다가 문밖으로 배웅하고, 백 가 제자들을 불러 안내하고 나서야 대청으로 돌아왔다.
한립은 대청에 앉아 유유히 차를 즐기고 있었다.
“한 형, 어찌 보물 이야기가 없으십니까! 난룡 수사와 한기자 수사도 없는 마당에 저희가 보수를 떼먹으려 들면 어쩌시려고요?”
“백 형께서 그리 속 좁은 인물이었으면 백 씨 가문이 이렇게 번창할 수 있었겠습니까?”
한립은 그런 말을 듣고도 화내는 기색 없이 웃으며 반문했다.
“하하하! 맞는 말씀입니다. 겨우 보물 몇 개 때문에 약속을 저버린다면 환야성에서 명망을 잃는 것도 한순간이겠지요. 누이가 가서 한 형께 보물 창고를 보여 드리게. 어떤 보물이든 원하시는 대로 내드리면 될 것이야.”
“알겠어요! 한 형 저를 따라 오시지요.”
자발 여인도 머뭇거리는 기색 없이 곧바로 일어났다. 한립은 황발 거한에게 포권을 하고 여인을 따라 대청의 쪽문으로 걸어 나갔다.
이제 대청 안에는 황발 거한만이 남아 있었다.
“쯧, 아까워 죽겠군. 진작 마령을 그리 쉽게 처리할 줄 알았으면 보수를 두 배나 부르지 말 것을! 그래도 광산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이 정도 손실은 금방 채울 수 있을 거야.”
거한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 * *
반각 후, 한립은 금제로 겹겹이 둘러싸인 누각 앞에 도착했다. 누각 밖을 열 명이 넘는 백 가 정예병들이 지키고 있었다.
한립은 자발 여인의 안내를 받아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1층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 안에는 악귀의 모습을 한 청동 조각상 8개가 양쪽으로 늘어서 있었다.
조각상에서 느껴지는 기운으로 보아 내부에서 누각을 지키는 수비병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각상들 중간에는 열댓 개의 나무 선반들이 놓여 있었고 그 위로 다양한 형태의 마기와 재료들 그리고 크고 작은 함과 병들이 보였다.
자발 여인은 양측의 청동 조각상들을 향해 수결을 맺고 법결을 던져 넣은 다음 입에서 보라색 옥패를 꺼내 던졌다.
우웅!
대청 전체가 울리고 금제의 파동이 흩어졌다.
“이곳이 백 가의 비밀 창고 중 하나입니다! 이곳에서 아무 보물이나 세 가지를 고르시면 됩니다.”
“그럼 사양하지 않고 둘러보겠습니다.”
한립은 강대한 의식과 풍부한 견문을 바탕으로 금제가 사라지자마자 이곳의 보물 중 8할의 내력과 용도를 파악했다. 나머지 것들은 자세히 감별을 해야 하거나 처음 본 것들이었다.
그는 가까운 선반으로 가서 마치 불에 그을린 목재를 들었다. 한립은 목재를 잠시 살펴보다 내려놓고 다음 선반으로 가서 부적이 덕지덕지 붙은 옥함을 들어올렸다. 옥함 위에는 어떤 특수한 표식이 있었고 희미하게 은빛이 새어 나왔다.
표식을 본 한립은 의식으로 내부를 살피고 바로 저물탁에 그것을 집어넣었다.
‘아, 역시 저걸…….’
멀리 서서 그를 지켜보던 자발 여인은 살짝 속이 쓰려왔다. 다음으로 한립은 손바닥 크기의 병을 들어 냄새를 맡고는 잠시 머뭇거리다 그것을 내려놓았다.
이후로는 계속 대부분의 선반을 그냥 지나쳤다. 자발 여인은 의외였다. 그녀의 생각에 그가 지나친 여러 선반에는 옥함 안에 든 것 못지않은 보물이 꽤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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