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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212화 (969/2,000)

1212화. 광맥 격전

*

광음보경을 부리던 황발 거한도 비명 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라 의식으로 검은 기운을 훑었다. 비명을 지른 것은 그가 데리고 온 백 가 제자였다.

평소였으면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했겠지만 이곳에서는 수행의 제약을 받았고 진법의 힘 때문에 내부를 살피기가 어려웠다.

그저 원래 여섯 명이던 제자들의 기운 중 하나가 사라졌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황발 거한은 화가 치밀어 튀어 나가려는데 검은 기운 속에서 또 다른 이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선배님, 저 좀 살려주십시오!”

검은 기운 속에서 백 가 제자 하나가 튀어나와 가까이 있던 난룡천군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불바다 속에서 전력으로 비행해봐야 빨리 달아날 수 있을 리 만무했고 난룡천군은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에 백 가 노인이 절망스런 얼굴로 난룡천군을 향해 욕설을 퍼부으려는데 검은 기운 속에서 하얀빛이 튀어나왔다.

하얀빛은 불바다의 기이한 제약을 받지 않는 것처럼 빠르게 백 가 제자를 따라잡았고, 노인을 보호하던 마기가 흩어진 순간 머리통이 데구루루 떨어져 내렸다.

노인의 머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하얀빛 속에서 흐릿한 또 다른 머리가 냉랭히 난룡천군을 응시했다.

“……!”

하얀빛 속 인영과 눈이 마주친 난룡천군은 모골이 송연해져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가 싸늘하게 식는 느낌이었다. 이에 난룡천군은 경악해 소매에서 귀곡성을 흘리는 뼈 방패를 불러내 앞을 막았다.

쉬쉭!

그때 검은 기운 속에서 백운형과 나머지 백 가 제자가 겁에 질린 모습으로 솟구쳐 한 명은 한립을 향해, 다른 한 명은 한기자를 향해 달아났다. 노인 머리 위의 괴이한 머리통은 그 둘을 멍하니 보고 둘로 갈라져 양쪽으로 날아들었다.

“제, 제발 살려주십시오!”

“한 선배님!”

백 가 제자와 백운형이 혼비백산해 도움을 청하며 여러 마기들을 방출해 검은 기운과 여러 광채로 몸을 보호했다. 하지만 하얀빛은 형체가 없는 것처럼 마기나 광채를 투과해 그들 몸으로 달려들었다.

다음 순간 백운형과 백 가 제자의 비명이 울리고 머리통 두 개가 떨어졌다. 하얀빛은 극히 빨라 한립과 한기자도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그들의 표정이 급변했다.

제대로 둔술만 펼칠 수 있어도, 아니면 불바다의 제약만 받지 않았어도 백 가 제자들을 구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들도 어쩔 수 없이 그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지켜보기만 해야 했다.

하얀빛이 떠난 노인의 시체는 피부가 바짝 말라붙어 피와 살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이곳으로 오며 보았던 다른 백가 제자들의 시체와 마찬가지였다.

백 가의 거점을 지키던 수사들도 저 정체모를 괴물에게 당한 듯했다.

그러나 두 괴물도 나머지 인물들은 방금 죽인 여섯 명처럼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지 두 연허기 제자들의 몸을 차지하고 붉은 눈으로 냉랭히 쳐다보기만 했다.

이는 괴물들의 지능이 상당히 높다는 뜻이기에 난룡천군과 한기자 등 노마(老魔)들도 긴장해야 했다.

백가 거한과 자발 여인이 둘로 갈라진 하얀빛을 보고 분노의 눈길을 보내고 전음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한 수사, 누이와 함께 저 괴물을 상대하고 계셔 주십시오! 제가 난룡천군, 한기자 수사와 마수를 먼저 처리하고 돕겠습니다!”

백가 황발거한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자발 여인이 하얀 갑옷에서 빛을 뿜어 인근의 화염을 물리치고 한립에게 다가왔다.

한기자도 곧바로 10개의 깃발로 화염을 뚫고 난룡천군과 황발 거한에게 합류했다. 일단은 황발 거한의 말에 따르기로 한 것이다.

한립도 반대하지 않고 자발 여인 쪽으로 가서 전음을 보냈다.

“복천 수사, 저 괴물의 정체에 대해 아는 바가 있으십니까?”

“부끄럽지만 저도 처음 보는 괴물입니다. 하지만 이전에 기이한 이야기를 모아놓은 상고 경전에서 마령(魔靈)들 중에 저런 비슷한 모습을 한 것이 있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마령이요?”

“저는 이곳 광맥의 영기가 마령으로 변한 것이 아닐까 의심이 됩니다. 그렇다면 괴물은 형체가 없고 물리적인 공격도 통하지 않겠지요. 어쩌다 괴물이 마수와 연합하였는지 모르겠으나 조심해서 싸워야 할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도검으로 정말 부상을 입힐 수 있는지부터 확인해보겠습니다.”

한립은 백운형의 육신을 차지한 하얀빛을 보고 눈빛이 서늘해졌다. 황발 사내와 한기자 그리고 난룡천군도 용암 거인으로 변한 마수를 상대로 대대적인 공세를 벌였다.

황발 거한은 거울 외에도 쇠갈고리를 불러내 용암 거인의 몸에 사발 크기의 구멍을 뚫어댔고 난룡천군은 빙글 돌아 안 그래도 큰 몸집을 더 부풀려 입에서 보라색 괴풍을 불어내 불바다를 치워버렸다.

한기자는 얼음 조각처럼 온몸을 투명하게 바꾸어 움직일 때마다 기이한 한기를 풀풀 풍겼는데 극한의 성질을 지닌 마공을 극성으로 일으킨 모습이었다.

사슴 머리 마수는 상극의 성질을 지닌 세 마존이 전력을 다하자 조금씩 밀리고 있었지만 용암 호수에서 무궁무진하게 화기를 빨아들이는 통에 그럭저럭 버티는 중이었다.

한립은 거한의 상황을 살피고는 푸른 장검을 불러내 백운형의 육신을 차지한 괴물을 향해 힘차게 휘둘렀다. 한립의 손에서 장검이 사라진 순간 머리 잃은 백운형의 시신 위에서 가벼운 바람이 불었다.

푸른 실이 번득이고 마령으로 추정되는 하얀 머리통이 소리 없이 둘로 갈라졌다. 화검위사(化劍爲絲)의 신통을 발휘한 것이다.

키에엑!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리고 백운형의 시체가 바싹 말라비틀어져 쓰러졌다. 둘로 갈라진 하얀 머리통이 시체를 빠져나와 하나로 뭉쳐져 이번에는 한립을 향해 날아들었다.

한립은 강대한 의식으로 상대의 음파 공격에는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불바다의 구속을 받지도 않고 쾌속으로 움직이는 하얀 머리통은 경계할 만한 대상이었다.

그의 소매에서 수십 개의 푸른 비검들이 날아올라 동시에 푸른 실로 변해 튀어나갔다.

쉬릭!

하얀 그림자는 산산조각이 났지만 빛을 머금고 원래대로 뭉쳐져 쾌속으로 한립을 덮쳤다.

“도검이 통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정말 광맥에서 발생한 마령일 수 있겠구나.”

한립은 당황하는 기색 없어 중얼거리고는 다른 소매에서 은색 화염을 분출했다.

쿠릉!

하얀 빛덩이가 은색 화염에 휘말렸다.

다른 마령을 상대하며 한립의 상황을 주시하던 은발 여인이 한립이 분출한 은색 화염도 별수 없을 거라 여기고 있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저럴 수가!’

은색 화염에 휩싸인 하얀 빛덩이가 끔찍하게 울부짖으며 미친 듯이 발버둥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울음소리가 멈추고 하얀 빛덩이는 푸른 연기로 소멸되었다. 자발 여인이 그것을 보고 놀라면서도 내심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이 잘못된 것인지 의심했다.

‘설마 이 마령은 화염을 두려워한단 말인가? 그럼 나도…….’

여인은 머리를 굴리며 미늘창을 투척해 외뿔 호랑이 허상을 불러냈다. 호랑이 허상은 입에서 검은 빛기둥을 방출해 마령을 공격했다.

시체를 차지하고 있던 마령은 펑! 터져 조각조각 흩어졌다. 그것을 본 여인이 검은 뇌화(雷火)를 폭포처럼 쏟아부어 마령 조각들을 태우려 했다.

자발 여인은 미늘창을 불러들이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데 멀리 검은 불길 속에서 폭음이 들려왔다.

파앗!

불길을 뚫고 하얀 빛덩이가 뭉쳐져 흐릿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어째서 통하지 않는 거지?”

자발 여인은 한립의 은색 화염에 특수한 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마령이 변한 하얀 빛덩이는 이미 그녀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자발 여인도 빠르게 반응해 들고 있던 미늘창에서 검은 빛들을 뿜고 다른 손으로 초승달 형태의 날카로운 칼날을 던졌다.

그런데 하얀 빛덩이는 피할 생각도 없이 검은 빛을 뚫고 녹색 칼날과 정면충돌했다.

찌직!

무언가 찢기는 소리가 들리고 하얀 빛덩이가 검은빛과 녹색 칼날을 통과해 자발 여인에게 쇄도했다. 이에 여인은 서둘러 미늘창을 투척하고 하얀 빛덩이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고운 여인의 손이 뻗어나간 순간 웅! 하고 허공이 허물어져 회색 광채를 내뿜었다. 주변 공기가 거세게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공간의 힘!”

한립의 눈이 반짝였다.

자발 여인은 자신의 공격이 통하자 또 다른 주먹을 날려 허공을 때렸다.

쿵!

회색 광채의 흡인력이 두 배로 강해져 주변 공기를 미친 듯이 빨아들였다. 무형의 몸을 지닌 마령도 흡인력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쉬익!

하얀 빛덩이가 속수무책으로 끌려 들어가 칼날 같은 힘에 분쇄되었다. 여인이 강력한 비술을 발휘해 마령의 파편들을 완전히 끝내려는데 그 순간 한립의 경고가 들려왔다.

“……!”

움찔한 그녀가 경고의 의미를 파악하기 전 회색 광채 속에서 수백 줄기의 하얀 실들이 튀어나왔다!

자발 여인의 몸에서 몇 겹의 보호막이 터져 나왔지만 하얀 실들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파고들었고 결국 그녀의 갑옷까지 이르렀다.

퍼퍼퍼퍼펑!

다행히 하얀 갑옷이 빛을 터트리며 그 안에서 흘러나온 은색 주술문자들로 하얀 실들을 막아냈다. 그래도 하얀 실들의 무서운 힘에 강타당한 자발 여인은 무력하게 튕겨나갔다.

이때 하얀 실들이 응결해 하얀 그림자로 변하며 두 팔로 자발여인을 할퀴었다.

후웅!

빛으로 이루어진 거대 손 두 개가 아직 몸을 가누지 못한 자발 여인을 내려쳤고 손이 닿기도 전에 엄청난 압력이 불어 닥쳤다. 마공으로 보호막을 펼치고 있어도 이렇게 강력한 일격을 당하면 중상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자발 여인은 이를 악물고 강제로 기운을 끌어올려 등 뒤로 호랑이의 머리에 사람의 몸을 한 흉악한 허상을 불러냈다. 호랑이 허상이 으르렁거리며 앞발들을 휘둘러 두 거대 손을 가르려 했다.

거대 손들의 위력을 너무 얕본 것이 분명했다. 거대 손들은 검은 발톱들과 맞닿기 직전 돌연 방향을 틀어 자발 여인의 머리 위에서 나타났다.

그녀가 기겁하며 어쩔 수 없이 갑옷에 마구 법력을 불어넣어 부상을 줄이려 했다. 그런데 그녀를 내려치기 직전 파동이 일고 두 덩이의 은색 화염이 날아들었다.

콰쾅!

거대 손들은 은색 화염 속에서 사라지고 은색 화염 덩이가 하나로 융합되어 불새로 변하고는 마령 본체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한립이 그녀가 위기에 처한 것을 보고 나선 것이다.

마령 본체는 은색 불새를 보고 굉장히 겁을 먹어 입에서 자홍색 빛을 뿜었다. 자홍색 빛이 수십 자루의 보라색 검기로 변해 은색 불새를 베려 했다.

화륵!

표면에 불길을 키운 은색 불새는 보라색 검기들을 맞고도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오히려 보라색 검기들이 화염 속에서 분분히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그러나 그 찰나의 순간 마령은 쏜살같이 동굴 벽으로 스며들어 종적을 감추었다.

그것을 본 한립이 손을 뻗어 은색 불새를 불러들였다. 불새는 맑게 울고는 화염으로 변해 그의 몸속으로 사라졌다. 그제야 자발 여인이 긴장을 풀고 한립을 향해 서둘러 인사를 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형이 아니었으면 마령에게 큰일을 당할 뻔했어요. 이 은혜는 돌아가는 대로 꼭 갚겠습니다.”

“아닙니다. 수사의 부탁으로 여기까지 왔으면 도와드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요. 그저 마령이 달아나게 둔 것이 아쉽습니다. 다시 잡으려면 고생일 텐데요.”

한립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목숨을 구해주셨는데 그냥 넘어갈 수야 없지요! 하지만 광산을 정상적으로 운영하려면 마령은 반드시 처리해야 합니다. 휴, 일단 마수부터 처리하고 다시 이야기 나누시지요.”

자발 여인이 쓴웃음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고 날아갔다. 세 마존의 공격을 받는 용암 거인은 아직도 새빨간 화염을 방출하고 있었다. 거인은 커다란 주먹을 마구 휘두를 때마다 녹색 불덩이가 유성우처럼 날아다녔다.

화염이 지닌 강력한 힘에 세 마존도 맞서지 않고 피하기만 해서 단시간 내에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것을 확인한 한립은 등 뒤로 삼두육비의 금빛 법상을 불러내 전투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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